근대 한국인이 접한 새로운 화학물질의 이름(2026년 7월호)
- 6월 27일
- 6분 분량

들어가며
지난 연재에서는 “소다” 또는 “나트륨”, 그리고 “포타시” 또는 “칼륨”의 사례를 중심으로, 화합물에 대한 인류의 지식이 축적되면서 그 이름이 어떻게 다듬어져 왔는지 살펴보았다. 이번에는 이렇게 서양에서 다듬어진 원소와 화합물의 이름이 한국에 소개된 양상을 살펴보겠다. 개항기와 일제강점기 동안 우리 나라에서 전문적으로 화학을 연구할 토대는 충분히 갖춰지지 않았다는 점을 감안하여, 이 시기 원소와 화합물의 이름에 대한 이야기는 학계보다는 산업계와 대중의 시점에서 풀어낼 것이다.
가성소다 또는 “양잿물”
개항 이후 서양 문물이 홍수처럼 쏟아져 들어오면서, 한반도의 대중들은 값싸고 신기한 새로운 물건들을 많이 접하게 되었다. 한발 앞서 산업화를 시작하고 상업을 진흥한 일본은 영국에서 수입한 면직물(일명“옥양목”), 그리고 자국에서 생산한 유리, 석유제품, 의약품, 장류, 주류, 성냥 등 다양한 소비재로 한국 시장을 공략하기 시작했다.
일상에서 두루 쓰이던 화합물 중 당시 사람들의 생활에 큰 영향을 미친 것 중 하나가 “양잿물”, 즉 수산화소듐 (NaOH)이다. 잿물은 옛날부터 여러 문명에서 중요한 염기성 원료로 이용되었다. 다만 식물 재를 물에 풀어 사용하는 전래의 잿물은 주성분이 탄산포타슘(K2CO3) 또는 탄산소듐(Na2CO3)과 같은 탄산염이고, 여기에 수산화소듐과 수산화포타슘 등 여러 가지 염과 불순물이 섞여 있는 복잡한 혼합물이었다. 따라서 화학반응에서는 약염기 용액에 가깝게 작용했다. 이에 비해 근대에 서양으로부터 새롭게 소개된 “양”잿물은 강염기인 수산화소듐만 정제하여 판매하는 것이었으므로 표백, 제지, 비누제조, 유리 제조 등 염기성 물질이 필요한 공정의 효율을 크게 높일 수 있 었다.
양잿물은 대중들이 붙인 이름이고, 그것을 만들거나 유통하는 산업계에서는 “가성(苛性) 소다”라는 이름을 사용했다. 원래 “가(苛)”는 가혹하다 또는 모질다는 뜻의 한자지만, 근대 일본에서 화학물질의 이름을 번역하면서 부식성 또는 독성을 뜻하는 관용어 “caustic”을 “가성”이라고 옮기기 시작했다. 즉 “caustic soda”라 하면 잿물에서 얻는 보통 소다보다 반응성이 강하다는 뜻이고, “caustic potash”도 마찬가지로 보통 포타시보다 강한 염기라는 뜻이었는데, 이것을 모두 “가성”으로 번역한 것이다. 오늘날에도 일본에서는 일상생활에서는 “苛性ソ〡ダ(카세이 소다)”, “苛性カリ(카세이 카리)”, “苛性石灰(카세이 셋카이: Ca(OH)2)” 등의 이름이 쓰이고 있다. 한국에서도 학술 용어는 아니지만 산업 현장에서는 “가성소다”나 “가성가리” 같은 이름을 여전히 두루 사용하고 있다.
한반도에서 양잿물이 대중이 시장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물품으로 자리잡은 것은 일제강점기의 일이다. 일본의 근대적 소다 산업은 메이지14(1881)년 조폐국과 인쇄국 산하의 공장에서 소다회 (soda ash: Na2CO3)를 생산하면서 태동하였다. 그러나 메이지 정부가 당시 유럽에서 새로 떠오르는 솔베이법(암모니아소다법)이 아니라 저물기 시작한 르블랑법을 도입하기로 결정하는 바람에, 일본의 소듐 화합물 생산은 1910년 무렵까지 양과 질 모두 낮은 수준에 머물러 있었다. 다이쇼5(1916)년이 되어서야 솔베이법과 전해법(클로알칼리법) 등 새로운 공정으로 소다회와 가성소다 등을 대량으로 생산하기 시작했다. 생산량이 늘고 가격이 내려가면서 가성소다는 공장의 산업원료 뿐 아니라 가정 잡화로 쓰임새가 확장되었고, 이에 따라 1920년대 중반 무렵에는 한반도에서도 흔하게 구할 수 있는 물건이 되었다. 가격이 싸고 손쉽게 접근할 수 있는 독성물질이었기 때문에 일본에서나 한반도에서나 양잿물 을 이용한 자살이 새로운 사회 문제로 대두되기도 했다.
잿물과 비누, 그리고 “검화”
역시 알칼리 계열 화합물이 주원료인 일상의 신문물로는 비누가 있다. 동아시아 전통 사회에도 비누 역할을 하는 물질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조선시대에는 “조두(澡豆)”를 왕실 등에서 세안에 이용했다는 기록이 있는데, 이는 팥이나 녹두, 콩 등을 갈아서 고운 가루로 만든 것을 말 한다. 16세기 청주에 매장된 순천 김씨 부인의 묘에서 출토된 간찰에는 “비노두 되”라는 한글 표현이 등장하는데, 역사가들은 이것이 “비누”의 가장 오래된 사용례라고 보고 있다. 또한 단오에 창포를 우린 물로 머리를 감는 풍습도 잘 알려져 있다. 이것은 창포나 콩과 식물 등에 사포닌(saponin) 계열의 화합물이 들어 있어 천연 계면활성제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한편 중국에서는 잿물을 이용하여 비누를 만들기도 했다. 잿물에 밀가루를 섞어 형태를 잡고 여뀌와 같은 식물의 즙을 응고제로 첨가하여 고체 형태로 만드는 것이다. 이렇게 만든 비누는 “석감(石鹼)”이라고 불렸다. 지난 회에 소개했듯이 천연 또는 인공의 알칼리 용액은 염수(鹽水), 함수(鹹水), 감수(鹼水), 노수(滷水)등 여러 가지 이름으로 통용되었는데, 이 중 “잿물 감(鹼)” 자를 취하고 고체라는 의미에서 “석(石)” 자를 붙인 것이다. 이것은 지방산과 염기의 비누화반응(saponification)을 통해 만드는 산업화 시대의 비누와는 다소 조성과 작용 기작이 다르지만, 단백질이나 지방 등 주로 인간에게서 유래한 오염물질을 제거하는 효과는 비슷했을 것이다. 한편 “이조(이자오, 胰皂)” 또는 “비조(페이자오, 肥皂)”라는 이름도 비누를 가리키는 데 쓰였다. “조”란 중국주엽이라고도 부르는 “조각자(皂角刺)나무”를 가리키는 것인데, 조각자나무의 열매(콩깍지)에는 사포닌(중국어로는 “자오수, 皂素”)이 풍부하여 옛날부터 이것을 물에 우려내어 비누처럼 사용했다고 한다. “이(胰)”는 이자(췌장)라는 뜻인데, 돼지의 췌장 효소가 지방이나 단백질을 분해하기 때문에, 조각자나무 열매와 함께 비누를 만드는 데 이용했다고 한다. 현대 중국에서는 “페이자오”가 비누를 가리키는 일반적인 말이다.
일본에서는 중국의 영향과 유럽의 영향이 함께 발견된다. 중국과 같은 한자를 써서 “셋켄(石鹸)”이라는 이름으로 부르기도 하지만, “샤봉(シャボン)”이라는 이름도 널리 쓰고 있기 때문이다. 동물의 지방과 재를 섞어 만든 비누를 게르만 조어(祖語)로는 “미끈거리는/끈적거리는 물질”이라는 뜻으로 “사이포(saipǭ)”라고 불렀는데, 고대 로마에서도 게르만인들의 풍습을 서술하면서 이물질을 “사포(sapo)”라는 이름으로 소개했다. 영어(soap), 이탈리아어(sapone), 프랑스어(savon) 등은 모두 이 라틴어에서 갈라져 나온 이름이다. 중동에도 이것이 전해져 “사분”이라 는 이름이 널리 쓰이게 되었고, 이슬람의 전파와 함께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 등 동남아시아 지역에서도 비누를 “사분”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포르투갈에서도 비누를 “사봉(sabão)”이라고 불렀는데, 포르투갈과 접촉했던 일본에서도 “샤봉”이라는 말로 서양식 비누를 가리키게 되었다.
일본에서는 일상생활에서 “셋켄”과 “샤봉” 둘 다 두루 쓰이지만, 전문용어에서는 한자어인 “셋켄”을 많이 사용한다. 그 맥락에서 비롯되어 오늘날까지도 우리 주변에 흔적이 남아있는 것이 바로 “검화반응”이라는 말이다. 물론 현행 표준 용어로는 “비누화반응”이라고 순화해야 하 지만, 검화반응이라는 표현은 아직도 꽤 많은 책이나 인터넷 문서에 남아 있다. 그런데 비누화가 왜 “검화”인가?

여기서 “검”은 “셋켄”의 “켄”, 즉 비누라는 뜻이다. “鹼”의 한국 독음은 “감”이지만, 어차피 한국에서는 일상생활에서 거의 쓰지 않는 글자여서 그 독음을 정확히 아는 이도 별로 없다. 게다가 같은 부수(僉 “첨”)를 쓰는 글자들(檢, 驗 등)은 “검” 또는 “험”으로 읽는 것이 보통이다. 그러다보니 일본에서 “saponification”의 번역어로 확립된 “켄 카(鹸化)”를 자연스럽게 “검화”라고 읽게 되었을 것이다. 한자를 같이 쓰던 시절의 문헌에는 “鹼化”라고 쓰여 있으니 뜻을 대략 추측할 수 있었지만, 1990년대 이후 대부분 의 문헌에서 한자를 쓰지 않게 되면서 오늘날에는 그 말의 내력을 짐작하기 어려워졌을 뿐이다. (“검화”라는 한글 이 름만 보고 “gum”을 떠올리지 않는다면 다행일지도 모르 겠다.)
일본과 청 상인들이 소개한 근대적 비누는 개항 직후부터 한국인들에게 큰 인기를 끌었다. 세척력도 우수하고 사용도 간편했으며 향기가 좋고 오래 보관할 수도 있어서, 쌀 한 말 값(약 80전)보다도 비싼 가격(1개에 1원)에도 불구하고 조두와 잿물 같은 전통 세정제를 빠르게 밀어내었다.
다만 비누라는 옛 이름은 그대로 살아남았다. (오래된 지 역 방언 중에는 “사분”이라는 말이 간혹 남아있기도 하다.)
“안(安)”: 농민이 만난 대표적 화학물질
도시 사람들만 신문물을 접한 것은 아니었다. 농민들도 생소한 화학물질의 이름을 하나둘씩 익히게 되었다. 물론 당시 한반도의 농업은 현금경제가 자리잡지 못하고 자급 자족에 가까운 양상이었으므로 화학비료나 살충제 등 근대적 화학제품에 돈을 쓸 수 있는 농민은 극소수에 지나지 않았다. 그럼에도 일제강점기 식민 당국은 금비(金肥), 즉 돈을 주고 사서 쓰는 화학비료의 사용을 줄기차게 권장했 고, 대농장을 운영하던 일본인 지주들을 중심으로 금비의 사용이 서서히 확산되었다.
한반도 안에서도 화학비료가 생산되기 시작했다. 1927년 일본의 재벌 노구치 시타가우(野口遵)가 세운 흥남비료공장(조선질소비료 흥남공장)은 장진강-부전강-허천강의 유역변경식 발전으로 얻은 막대한 전기를 바탕으로 아시아 최대 규모의 종합 화학공업단지로 성장하였다. 흥남 공장은 1930년부터 “류안(硫安)” 비료를 생산하기 시작했고, 이어서 “초안(硝安)”, “염안(塩安)”, 생석회(CaO), 소석회[Ca(OH)2] 등 각종 화학비료를 쏟아내었다.
지난 연재에서 다루었듯 “안”은 “암모늄”을 말한다. 즉 현행 명명법으로 류안은 황산암모늄[(NH4)2SO4], 초안은 질산암모늄(NH4NO3), 염안은 염화암모늄(NH4Cl)이다. “류”가 황을, “초”가 질소를 가리키게 된 경위에 대해서는 지난번에 설명했으니, 이번에는 그들과 짝을 이루는 암모늄이 “안”으로 약칭된 경위에 대해 살펴보자.
암모니아라는 이름은 고대 지중해 세계에서 비롯되었다. 이집트의 시와(Siwa)에 있는 태양산 암몬(Amun/Ammon)의 신전 주변에 염화암모늄의 노천광맥이 발견되어 로마인들이 염화암모늄 광석을 다량으로 채굴했고, 이것을 “암몬의 소금(sal ammoniacus)”이라고 부른 것이 기원이라고 한다. 이 “암몬의 소금”은 고대와 중세 의약 학과 연금술에서 유용한 재료로 널리 사용되었다. 1756년 조셉 블랙은 암몬의 소금과 산화마그네슘을 반응시켜 발생하는 기체를 포집하였고, 1773년 조셉 프리스틀리는 이것을 “알칼리 공기(alkaline air)”라고 이름 붙였다. 이 기체가 질소와 수소가 1:3으로 결합하여 만들어 진다는 것은 1785년 베르톨레(Claude Louis Berthol-let)가 밝혀내었다. 사실 라부아지에가 제안한 근대적 명 명법을 따르자면 “질화수소(hydrogen nitride)”와 같이 구성원소에 바탕하여 이름을 붙여야 할 것이다. 실제로 IUPAC에서도 “azane”이라는 이름(지난 회에 설명한 azote에 뿌리를 두었다)도 제안하고 있으나, 워낙 오랜 세월 친숙하게 사용하고 여러 분야에서 다량으로 생산하고 소비하는 물질이기 때문에 그냥 암모니아라는 이름으 로 부르고 있다.

일본에서는 우타가와 요안이 번역하여 펴낸 『세이미카 이소(舎密開宗)』(1837-47)에서 암모니아를 “諳模尼亜 (アムモニア)”라고 음차하여 표기하였고, 더 흔히 쓰는 한자로 음차한 “安母尼亜”도 함께 쓰였다. 차츰 후자가 많이 쓰이게 되면서 암모니아와 암모늄 화합물 등을 “안(安)” 한 글자로 약칭하는 관행이 굳어졌고, 이것이 한반도에도 전해진 것이다.
한편 중국은 한 글자로 표현하는 전통을 따라 암모니아는 “氨(ān, 1성)”, 암모늄은 “銨(ăn, 3성)”이라고 부른다. 비록 원소는 아니지만 기본물질이므로 한 글자로 표현해야 편리할 것이다. 원소기호와 마찬가지로 암모니아는 기체이므로 “기운 기(气)” 부수를 붙이고, 암모늄은 이온결합 화합물이므로 금속원소와 같은 규칙을 적용하여 “쇠 금(金)” 변을 붙인 것이다. (다음 연재에 계속)
참고문헌
1. 김현정. “조선시대 세안(洗顔)문화에 대한 고찰”.『동아시아문화연구』65, 2016, 39.
2. 전완길. “비누”.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25102.
3. 박종석. “개화기 화학교과서의 분석을 통한 화학교육의 특성 연구”.『대 한화학회지』48, 2004, 427.
4. “ソーダ工場の歴史”. 日本ソーダ工業会. https://www.jsia.gr.jp/history/.
“安母尼亜”. コトバンク. https://kotobank.jp/word/安母尼亜-2004565.

김태호 Tae-Ho Kim
• 서울대학교 화학과 학사(1994.3–1999.2)
• 서울대학교 과학사 및 과학철학 협동과정 석사 (1999.3–2001.2, 지도교수: 김영식)
• 싱가포르국립대학 박사후 연구원(2009.9–2010.8, 지도교수: Gregory Clancey)
• 콜럼비아대학교 박사후 연구원(2010.9–2011.8, 지도교수: Charles Armstrong)
• 서울대학교병원 의학역사문화원 연구교수 (2011.9–2014.8)
• 한양대학교 비교역사문화연구소 HK교수 (2014.9–2016.8)
• 전북대학교 한국과학문명학연구소 조교수 (2016.9–2024.8)
• 전북대학교 한국과학문명학연구소 부교수 (2024.9–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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