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수은은 액체일까
- 5월 28일
- 4분 분량

과학은 호기심에서 시작된다고들 말한다. 언제나 ‘왜?’ 라는 궁금증을 이어가며 더 깊은 곳으로 파고들며 화학자 들은 자연을 구성하는 모든 물질과 변화를 해석하려 한다. 하지만 교육이나 육아를 해 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 구나 공감할 것이, 과도하게 이어지는 ‘왜?’라는 질문은 피로감으로 이어지는 경우도 있고, 당연한 사실임에도 명 확한 답변이 떠오르지 않는 순간 등골을 따라 식은땀이 흘러내리는 체험이 생겨나기도 한다. 너무나 자연적이고 당 연한 것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그만큼 당연하지만 풀어내 기 어려운 지식이 강요된다. 예를 들어 상온에서 유일한 액체 금속이라는 수은(Hg)의 위험성에 대해서는 누구나 이야기를 풀어낼 수 있지만 도대체 왜 수은만이 액체인가 는 간단히 답변하기 어렵지 않은가?

상대성이론과 원자
수은은 원래 액체로 존재한다기에는 불편한 사실이 남 아있다. 상온에서 액체 상태로 존재하는 단 두 가지 원소 는 17족의 브로민(Br)과 수은이다. 주기율표에서 아래쪽 에 위치한 크고 무거운 원소들은 더욱 밀집된 상태를 선호 한다. 같은 족에 속한 플루오린(F)과 염소(Cl)는 기체 상태 이며 그 아래 브로민은 액체로 존재하고, 더욱 무거운 아 이오딘(I)은 고체를 선호하는 자연스러운 흐름이 고개를 끄덕이게 한다. 수은은 다르다. 6주기의 거대한 원소이며 상하좌우 어느 쪽을 둘러봐도 모두 단단한 금속 고체 원소 들로로서의 명예가 뒤흔들리는 듯싶지 않은가.
더 간단한 지점부터 이야기를 펼쳐 본다면 우리는 금 (Au)이 왜 노란색인지를 이해해야 한다. 금의 색상이 기 본 단위인 원자부터 결정된다면 원자에 적용될 수 있는 이 론을 파악해 보자. 돌턴부터 슈뢰딩거까지 원자 모형은 새 로운 발견을 단서 삼아 심화되어 왔다. 특히 물리학 외의 모든 과학은 우표수집이라 치부했음에도 결국 최고의 우 표수집가 표창장인 노벨 화학상을 받은 어니스트 러더퍼 드(Ernest Rutherford)의 알파 입자 산란실험(Gold-leaf experiment)은 작고 조밀하게 뭉쳐있는 양전하 덩어리, 즉 핵을 발견한다. 하지만 핵과 전자가 충돌하지 않는 이 유를 설명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으며, 닐스 보어(Niels Bohr)가 태양계와 비슷한 궤도들로 구성된 원자 모형을 제안하며 다음 단계로 나아간다.
전자가 배치될 수 있는 궤도마다 핵과의 거리가 다를 텐 데, 핵에 가까울수록 더 강한 끌어당김을 느낄 것이다. 안 쪽 껍질의 전자는 더욱 빠르게 움직여야 정전기적 인력을 극복할 수 있을 것이며, 원자 번호가 높아질수록 강해지는 끌어당김을 극복하기 위해 전자는 더욱 더 빠르게 이동해 야 한다. 그 정도를 해석할 수 있는 개념이 아르놀트 조머 펠트(Arnold Sommerfeld)의 미세 구조 상수(Fine-struc-ture constant)다. 그리 어렵진 않지만 유도 과정을 생략 하고 결론만 살펴보면 가장 안쪽 껍질의 전자는 양성자 개 수를 137로 나눈 수치만큼 광속에 비례한다. 전자기학과 상대성이론, 그리고 양자역학의 3가지 상수가 만나 탄생한 미세 구조 상수는 금의 색상을 설명하는 단초가 된다.
원자번호 79번 금의 정보를 고려해 보자. 79/137만큼 의 비율이 적용되니 금 원자의 안쪽 전자는 무려 광속의 57.6%의 속도로 움직인다. 광속에 가까이 움직일수록 시 간이 지연되고 길이는 수축하며 질량이 증가한다는 특수 상대성이론을 적용한다면, 전자의 질량은 정지질량에 비 해 23% 더 무거워질 것이며, 원자핵과 떨어져 있는 평균 거리를 의미하는 보어 반경은 질량에 반비례하기에 수축 한다.
특정한 오비탈이 수축하면 가리움 효과에 의해 외부의 다른 오비탈은 오히려 팽창하게 되는데, 이 모든 변화는 금 원자의 에너지 준위 변동을 일으킨다. 결국 본래는 가 시광선과 관련될 수 없는 거대한 에너지 간격이 상대성이론에 의해 청자색 파장의 빛을 흡수할 수 있는 상태로 바 뀐다. 빛의 흡수에 의해 남겨진 노란색이 우리 눈에 들어 오니 금의 색상은 상대성이론이 화학 원소에 관여한 결과 라 할 수 있다.

상대론적 양자 화학
이번에도 질문을 던져보자. 11족 6주기의 거대한 원소 인 금이 상대론적 효과에 의해 특유의 색상을 보인다면, 금 주위의 다른 원소들은 물리 법칙에서 자유로울까? 자 연과학은 그러한 편의에 의해 선별되지 않는다. 금 옆에 위치한 78번 백금(Pt)은 다른 관점에서 특수 상대성이론 을 적용한다. 백금의 은백색 색상보다는 우리가 기대하는 최고의 촉매로서의 백금의 의미다.
물의 분해로 수소 연료를 얻는 작업에서도 백금은 최고 의 재료로 여겨지며, 유기화합물의 수소화 반응을 비롯한 수많은 화학 반응에 사용된다. 특히 메테인(CH4)과 반응 해 카벤(Carbene)을 이루는 반응에도 관여한다. 6s 오비탈은 수축하며 반대급부로 작용하는 5d 오비탈의 확장이다. 5d 오비탈의 에너지 준위가 위로 상승하며 그 중심이 페르미 준위(Fermi level)에 가까워진다. 높은 곳 에 위치하게 된 d전자는 수소나 산소 등 외부 분자의 오비 탈과 중첩되기 쉬워져 촉매 표면에서의 화학 반응을 용이 하게 만든다. 실험적으로 촉매를 설계하는 것을 넘어 상 대성이론을 고려한 접근이 효과적일 수 있다.
조금 더 예상외의 상대론적 효과는 배터리에서 등장한 다. 현재도 자동차 등에 흔히 사용되는 납-산 전지(Lead-acid battery)의 핵심인 납(Pb) 역시 금과 수은 주위에 위 치한다. 납 원자는 4개의 전자를 잃어버리기 좋아 Pb(IV) 상태의 산화물 등으로 화합물의 에너지를 높일 것으로 예 상된다. 여기까지는 문제가 없으나 실험적으로 얻어지는 약 2.107V의 기전력을 설명하려면 상대성이론 없이는 불 가능하다. 평균 상대론적 수치는 2.13V로 계산되어 현실 에서의 관측을 설명하는 데, 만약 상대론적 효과를 배제 하고 납 화합물들의 특성을 재계산한다면 단 0.39V에 불 과하다. 우리가 키를 돌리거나 버튼을 누르면 방전되지 않 은 한 당연히 걸려야 하는 자동차의 시동이 특수 상대성이 론에 의한 결과라 생각하면 세상에 당연한 것은 없을지도 모른다. 물론 수은 전지 등 큰 금속을 사용하는 배터리가 강력한 것은 모두 같은 방식으로 설명된다.

수은은 왜 액체인가
금의 색상과 백금의 촉매 효과, 그리고 납 배터리의 구 동 방식까지 특수 상대성이론을 통한 설명은 계속되었지 만 수은의 유독 낮은 녹는점은 21세기에 이를 때까지 해 석되지 못했다. 물론 이번에도 특수 상대성이론에 의해 중 금속의 오비탈에 영향을 미쳐 수축과 확장의 절묘한 작용 에 의한 특성이라 설명될 것이며 틀린 말은 아니다. 단지 조금 더 명확한 ‘왜’가 궁금할 뿐이다. 수은과 금의 차이라 면 단 1개의 전자 개수에 있다. 보다 안정한 수은의 전자 는 이웃한 다른 수은 원자와 결합을 이루는 대신 자신의 핵에 머무는 형태로 남는다. 화학 결합보다는 판 데르 발 스 힘과 같은 약한 상호작용에 의해 함께 거동하며, 이 뭉 침은 액체 상태라는 다소 자유로운 상태를 가능케 한다.
상대론적 효과가 강해질수록 변화가 커져, 같은 12족에 속하지만 가장 가벼운 아연(Zn)은 692.7K의 녹는점을, 아래 위치한 카드뮴(Cd)은 594.2K를, 그리고 수은은234.32K의 녹는점을 갖는 경향성이 나타난다. 상대성이론은 실제로 매우 빠르게 움직이는 물체에 대해 적용되어 GPS 위성의 위치 오류 보정과 내비게이션에 적용되는 것으로 대표된다. 그 외에도 입자가속기나 양전 자 단층 촬영 등 고에너지 장비의 핵심이다. 여기서 더 나 아가 상대론적 양자 화학은 하나의 원자를 이해하고 색상 을 비롯한 고유 특성부터 촉매 활성이나 실용적인 전지의 구동까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작용하고 있다. 당연한 현상 이 언제나 당연한 것이 아닐 수 있으며, 의외의 분야에서 설명이 이루어지는 것도 과학의 즐거움 중 하나가 아닐까.

장홍제 Hongje Jang
• KAIST 화학과, 학사(2004.3-2008.2)
• KAIST 화학과, 박사(2008.3-2013.8, 지도교수 : 한상우
• 서울대학교 화학과 박사후 연구원(2013.9 - 2015.1, 지도교수 : 민달희)
• Georgia Institute of Technology, Department of Chem-istry and Biochemistry 박사후 연구원(2015.1-2016.1, 지도 교수 : Mostafa A. El-Sayed)
• 광운대학교 화학과 부교수(2016.3 -현재)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