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해성은 화학의 원죄일까? (2025년 5월호)
- 洪均 梁
- 4월 30일
- 1분 분량
최종 수정일: 5월 1일

서방기독교에는 원죄(原罪, Original sin)라는 개념이 존 재한다. 태초의 인간이 창조주와의 약속을 어기며 범하게 된 죄로 낙원에서 쫓겨나며 자손에게 이어지는 모든 죄의 시작이자 낙인과 같은 형태를 이야기한다. 물론 창조와 징벌, 그리고 뉘우침은 모든 종교에서 공통적으로 등장하는 모습이기도 하다. 하지만 원죄의 유무와 죄 사함 여부를 제 외해도 인간이라는 종에게 공통적으로 적용되는 죄 개념은 여러 매체에서 흥미롭게 다뤄진다. 이 모든 개념적 매력은 우리가 직접적인 대상이 되지 않을 때나 매력적이다. 그리고 우리 –화학자- 는 지금도 유일하게 모든 과학 분야에 속한 전문가 중 원치 않는 일종의 원죄와 같은 것을 느끼곤 한다.
독과 약은 같다
독과 약의 차이는 단지 용량에 의한 것이라는 파라켈수스(Paracelsus)의 이야기는 독성학(Toxicology)의 시작이 되었다. 16세기 가장 경험주의적 탐구자였던 파라켈수스는 호문쿨루스를 이야기한 도전적 연금술사로 그려지기도 하지만 위대한 의학자였던 것을 간과할 수 없다. 여러 일화 중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은 나름 성공적인 매독 치료법을 최초로 찾아낸 것이다. 매독은 나선형의 그람 음성균에 의한 전염성 질환으로 현재는 다양한 치료약이 개발되었기에 성병이라는 특성상 사회적 불명예를 얻을 수 있을지언정 목 숨이 위험할 정도의 치명적인 감염병으로 연상되진 않는다. 하지만 16세기 당시 매독은 천벌과 다름없을 정도로 높 은 치사율을 갖는 고위험성 질환이었다.
파라켈수스는 수은(mercury, Hg)을 이용해 매독균을 사멸시키는 방식으로 치료에 성공한다. 비록 이제는 수은이 독성 중금속이라는 사실을 누구나 알고 있기에 일상적으로 사용되지 않지만, 흐르는 금속이라는 영롱한 자태와 아말감(amalgam)으로 다른 금속과 쉽게 융합되고 또 분리되는 특성에서 연금술 발전 과정에서는 가장 중요한 물질로 여겨지기도 했다. 수은은 증기의 형태로 환부에 쐬거나 염화 수은을 뜻하는 칼로멜(calomel, Hg2Cl2)을 발라 치료를 시도했다. 수은의 독성에 의해 환자보다 매독균이 먼저 죽는다면 치료고, 매독균보다 환자가 먼저 죽으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자신의 목숨과 치료 후 수은 후유증을 걸고 하는 한 판의 큰 도박이었을지언정, 그 외 치료법이 없었으니 마지막 동아줄과 다름없어 이후 300여년 이상 수은 치료는 성행하게 되었다.

그리고 1910년 파울 에를리히(Paul Ehrlich)는 또 다른 독성 원소인 비소(arsenic, As)를 이용한 유기비소 화합물 인 아르스페나민(arsphenamine), 다른 이름으로 살바르 산(Salvarsan) 혹은 화합물606(compound 606)을 이용 해 매독을 대상으로 한 표적 치료에 성공한다. 이전까지 금 속 정련 산업에서 악명높던 비소는 독에서 약으로 입지가 뒤바뀌었으며, 반대로 선택지 없는 치료제로 사용될 수밖 에 없던 수은은 약에서 온전한 독으로 변모한다.
식용색소 적색3호
유익하게 사용되던 물질이 어느 순간 밝혀진 유독성으로 인해 사용 금지되는 일은 계속되어 왔다. 몇 가지 유명한 예 를 든다면 임산부를 위한 입덧 완화제로 주목받은 탈리도마이드(Thalidomide)는 약효를 보이는 물질과 거울 대칭성인 이성질체로부터 미처 확인하지 못했던 발생독성이 나타나 수많은 기형아 문제를 유발한 역사가 있으며, 뛰어난 살충 효과로 노벨 생리의학상의 주인공이 되기도 했던 DDT 의 환경 및 생체 누적 독성 또한 커다란 사회적 문제로 대두 된 바 있다.
화학 물질이 인간의 식생활과 관련될 경우 파급력은 더욱 크다. 설탕 대신 사용되는 사카린과 아스파탐(Aspartame) 을 비롯한 인공 감미료들은 잠재적인 독성 이슈가 계속해서 터져 나오고 있다. 직접적인 문제가 관찰된 것은 아니지 만 40여년이 넘는 임상 아닌 임상 실사용에서 끝없는 우려 의 제기와 엄밀한 검증이 반복되고 있다. 비록 설탕에 비해 장기적인 유해성이 낮다고는 하나 작은 불안감에도 여론은 뒤흔들린다.
천연 염료에서 합성 염료로 의류를 비롯한 여러 물품은 바래지 않는 선명함을 부여받았지만, 특히 식용색소 분야에서는 새로운 발견과 퇴출이 이어지고 있다. 가장 최근의 사건으로는 미국 FDA에 의해 사용이 금지된 적색4호를 눈 여겨 볼 수 있다. 색소 명칭이 숫자로 이름붙여지는 것만 보더라도 수없이 많은 색소가 알려져 있을 것임을 짐작할 수 있다. 하지만 그 처음이라 할 수 있을 적색1호 색소는 이미 찾아볼 수 없다. 화학적으로는 존재하나 일상적으로는 사라진 환상 속의 물질처럼 동물 독성이 높다는 사실이 드러나며 1960년대 이후 퇴출되었기 때문이다.
현재 사용되는 적색 색소는 의외로 한정적이다. 적색2호 는 아마란스(Amaranth)라 불리는데 천연물이 아닌 석유 화합물로부터 도출된 화학 물질이다. 아이스크림이나 케이크, 초콜릿 등 다양한 분야에 쓰이고 있다. 적색3호는 에리스로신(Erythrosine)으로 통조림 체리 등 몇몇 식료품에 사용되고 있지만 최근 발암성의 증거가 나타나기 시작해 사용 이 줄어들고 있다. 예전부터 립스틱 등 화장품에는 사용이 허가되지 않았지만 오히려 식품에 사용되고 있는 현실은 화합물 안전에 대한 조금 더 구체적인 기준이 필요함을 보인다. 장기적으로 2028년까지는 모든 제품에서 사용을 금지 할 예정이기 우리에게 주어진 섭취 가능한 색상이 곧 하나 줄어드는 셈이다. 그 외에도 오렌지의 색상을 보기좋은 주황빛으로 물들이는데 사용되는 적색7호 시트러스 레드 2(Citrus red 2) 또한 발암성이 있어 버려지는 껍질 등에만 사용되고 있으며, 차슈나 탄두리 치킨 등 몇몇 공산품 식재료에 사용되는 적색102호 폰슈 4R(Ponceau 4R) 또한 알러지나 ADHD의 유발이 우려되어 사용이 제한된다. 현재 까지 유일하게 안전한 것은 적색40호 알루라 레드 AC(Al- lura red AC) 뿐이니 군것질거리를 찾는다면 성분표를 확 인해 사용된 색소를 자체 검사해 보는 것도 현명하겠다.

편리함과 유해함 사이
독과 약이 동일하다는 이야기처럼 세상에는 어떤 사용 조 건에서도 절대적으로 안전한 화학 물질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대량생산을 통해 현재의 경제 체계와 물품의 공급과 풍족한 사용이 가능해졌다. 화학물질이 갖는 잠재적이고 장기적인독성은 풍요로운 삶을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 생각할 수는 없다. 하지만 언제고 발생할 수 있는 문제는 계속해서 확인하고 바로잡아야 할 측면이다. 만약 책임을 묻는다면 누구의 잘못일까. 설계와 합성을 통해 세상에 새로운 물질을 탄생시킨 화학자, 그리고 안전성 혹은 위험성을 다양한 기준으로 평가한 생과학자나 산업적 가치를 발견해 제품 생산에 활용한 기업가, 상세한 정보를 다양한 경로를 통해 대중에게 알리지 못한 정부기관과 크고 작은 경고와 우려에도 편리함을 따라 무분별하게 사용한 소비자 중 어느 한 명을 탓할 수는 없다.

하지만 화학 물질에 대해서 가장 높은 전문성을 보유한 것은 화학자인 만큼 발생하는 이후의 문제에서는 원죄처럼 낙인 찍히기도 한다. 고온 조건을 제외하고는 모든 상황에서 높은 내구성을 보이며 가볍고 투명한 소재로 새로운 시대를 열었던 플라스틱은 해양쓰레기와 미세플라스틱의 사유가 되었고, 증기기관 이후 본격적인 기계 문명의 구동에 필수가 된 화석 연료는 지구 온난화와 대기 오염의 가장 큰 이유로 손꼽힌다. 공장과 연구소에서의 화학 물질 사고나 폐수 유출로 인한 환경 문제 등 화학 물질은 분명 두 개의 얼굴을 갖는다. 강력한 폭발력으로 국가 간의 전쟁 억제력을 만들어 세계평화를 유지하고자 했던 알프레드 노벨(Alfred Nobel)은 죽음의 상인으로 불리며 오명을 이겨내고자 노벨상을 만들기도 했던 일을 기억할 수 있다.
만약 우리가 연구하는 화합물이 심각한 문제를 일으킨 다면, 우리는 어떤 책임감을 느끼게 될까? 발생 가능성이 낮더라도, 이는 화학자로서 한 번쯤 깊이 고민해볼 만한 주제다.

장홍제 Hongje Jang
• KAIST 화학과, 학사(2004.3 - 2008.2)
• KAIST 화학과, 박사(2008.3 - 2013.8, 지도교수 : 한상우)
• 서울대학교 화학과 박사후연구원(2013.9 - 2015.1, 지도교수 : 민달희)
• Georgia Institute of Technology, Department of Chemistry and Biochemistry 박사후연구원 (2015.1 - 2016.1, 지도교수 : Mostafa A. El-Sayed)
• 광운대학교 화학과 부교수(2016.3 - 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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