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구의 여정:학생들에게 과학의 진정한 의미를 가르치다 (2025년 4월호)
- 성완 박
- 3월 31일
- 3분 분량
최종 수정일: 4월 1일
권동혁 | 진해냉천중학교 과학교사, kdhspy007@hanmail.net
초임 시절, 과학교사라면 학생들의 탐구 활동을 당연히 지도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지도를 통해 얻은 가시적인 성과가 대입이나 과학교사로서의 역량 강화에 도움이 된다고 여겼기 때문에 주제의 난이도와 상관없이 목표 지향적인 탐구 활동을 추구했습니다. 목표가 뚜렷했기에 학생들과 저의 열정으로 다양한 탐구대회와 활동에 참여하며 성과를 조금씩 이루기 시작했습니다. 전국과학전람회, 대한민국학생발명전시회, 화학탐구프런티어, STEAM R&E, K-SEF, 에너지환경탐구대회 등 전국 규모의 대회에서 좋은 결과가 나오면서 우리 모두에게 큰 외적 동기부여가 되어 역량과 열정은 나날이 높아졌습니다.
탐구 지도에서 제일 중요한 부분은 탐구 동기와 주제입니다. 탐구 주제를 선정할 때 학생들이 직접 정하기도 했지만, 전문가 특강이나 전문가와의 대화에서 얻은 아이디어, 기관에서 제공한 큰 테마를 활용하기도 하였습니다. 그 중심엔 교사인 제가 주도적으로 학생들을 이끌어가며 노력하였기에 저 또한 많은 성장을 할 수 있었습니다.
교직 10년 차에 접어들면서, 학생들과 함께 탐구대회를 준비하던 중 문뜩 한 가지 의문이 들었습니다. “학생들은 왜 이 활동을 할까? 이 활동을 통해 무엇을 얻을까?” 항상 목표를 위해 결과를 찾던 저에게 다시 질문을 던졌습니다. “이게 맞는 것일까? 학생들은 정말 과학을 배우고 있을까? 나에게 배운 학생들은 과학자의 꿈을 가질까?”
이 질문은 정말 어려운 숙제였습니다. 고민하기 전의 시기에는 ‘이 주제를 선택한 이유가 무엇인가요?’라는 스스로 던진 질문에 ‘좋은 데이터가 많이 나오기 때문입니다.’ 라고 스스로 답했습니다. 데이터 결과가 결론 도출에 효과적이라면 잘 만든 보고서와 차트가 만들어질 것이며, 이는 곧 수상 가능성이 클 수 있음을 직감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학생의 관점에서 제 자신을 돌아보았을 때 상황은 전혀 다르게 느껴졌습니다. 학생들은 왜 이 실험을 하고 있는지 모른 채, 선생님의 프로토콜에 따라 결과를 내고 보고서를 작성하며 발표 준비를 했습니다. 몸은 능동적이었지만, 정신은 수동적이었음을 그제서야 깨달았습니다. 학생들은 분명히 많이 배웠다고 느끼겠지만, 탐구라는 본질적인 가치는 제대로 심어 주지 못한 채 졸업하여 생활한다는 사실에 지도했던 학생들에게 많은 미안함이 들었습니다. 학생들에게 남은 것은 보기 좋은 상장과 기록하기 좋은 활동 내용뿐이었습니다.
학생들은 저와 함께 활동하면서 탐구에 대한 흥미를 느끼고 과학자의 꿈을 가졌을까요? 확신이 들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스스로 탐구하는 자세를 가르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중·고등학교 수준에서 과학 탐구는 도대체 어떻게 하는 것일까? 과학탐구실험 교과서에 나와 있는 활동을 단순히 반복해야 하는 것이 탐구일까?’ 끊임없이 고민해 보며 그 물음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생각의 전환을 시도하였습니다.
학생들과 탐구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나누면서 그 물음에 대한 답이 점점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단순하지만 가장 중요한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주제를 선정할 때부터 학생 스스로 해야 한다는 사실을요. 그 내용이 아무리 엉뚱하고 추상적이더라도 구체화할 수 있게 토론의 장이 열리게끔, 아이디어를 끄집어내게끔 하는 조력자 역할을 교사가 해야 한다는 것이죠.
간단하고 당연한 말이지만 이를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순간 학생들에게 어떤 가치를 심어 줄지 명확해졌습니다. 학생들에게 필요한 것은 결과가 아니었습니다. 결과가 아무리 우수하더라도 선행 연구나 유사한 기초 탐구가 대부분 이전에 진행되었기 때문입니다. 학생 수준의 탐구는 실생활이나 활용도 면에서 부족하지만, 활동을 마무리한 것만으로도 의미가 큽니다. 그렇다면 교사인 제가 신경 써야 할 것은 바로 과정에 집중하는 것입니다. 중·고등학교 때 배운 탐구 역량을 학부나 대학원에서 활용하도록 만드는 것이죠.

그래서 저는 중학교 동아리 학생들을 대상으로 과정 지향적인 탐구 활동을 진행했습니다. 주제는 ‘지구를 살리는 바이오플라스틱, 정말 이용할 수 있을까?’였습니다. 일반 인도 만드는 바이오플라스틱 제조법은 있지만, 왜 아직 상용화되지 않는지 탐구하는 주제였습니다. 이 주제를 정하기까지 동아리 학생들과 10여 차례 토의하였고, 저는 학생의 아이디어에 단순히 반론을 제기하며 스스로 의미를 찾도록 유도했습니다. 여러 변인을 직접 설정하여 상관관계를 파악하고, 결과가 가설과 일치하지 않을 경우 실험 오류를 찾아내거나 변인을 변경하여 재실험을 진행했습니다. 2개월간 점심시간과 방과후 시간을 활용하여 실험한 결과, 재료 조합 비율을 달리하여 상용화 가능성이 높은 최적의 바이오플라스틱을 만들어냈습니다. 대회 결과는 기대에 미치지 못했지만, 아쉽지 않았습니다. 학생들이 스스로 연구하며 얻은 결과값에서 느낀 내적 만족감은 처음 경험해 본 것이었으니깐요. 그때 저는 이 학생들이 과학자가 되고 싶다고 생각할 수 있겠다고 느꼈습니다. 과학자가 연구하는 길이 쉽지 않다는 것을 알면서도 충분히 해낼 것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현재 대학 입시에서 원하는 과학 인재상은 조작적 능력이 뛰어난 학생이 아닌 학업 역량이 우수한 학생입니다. 학생들은 내신과 수능 등급을 잘 받기 위해 누구보다 열심히 공부합니다. 그러나 이 학생들이 대학에서도 잘할 것인지에 대해 의문이 듭니다. 대학은 학점만을 따러 가는 곳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학업 역량이 뛰어난 입학생은 입학 후 학점 관리에만 신경 쓰지만, 탐구 역량을 키운 입학생은 학부 과정에서 자신의 연구 방향을 빨리 결정하여 실험실 인턴으로 들어가 석사, 박사 과정에 대한 진로를 깊이 고민할 수 있다고 기대합니다.
우리나라 이공계 발전을 위해 과학교사로서 중·고등학교에서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묻는다면, ‘과제 연구와 같은 탐구 활동을 꾸준히 하는, 결과 지향적인 학생이 아닌 과정 지향적인 학생을 만드는 것’이라고 답할 것입니다.

권동혁 Donghyuk Kwon
• 경상국립대학교 과학교육학부, 학사(2005.3 – 2011.2)
• 경상남도교육청 교사(2012.3-현재)
• 현재 진해냉천중학교 근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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