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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을 빛낸 화학자 27(2025년도 2월호)

김하석(金夏奭)서울대학교 교수(1945~)


한국전기화학회 회장, 국제전기화학회 (International

Society of Electrochemistry, ISE) 회장을 역임한 김하

석 교수님은 한국의 전기화학과 분석화학을 국제 무대에

발을 들여놓게 하는 데에 가장 큰 기여를 했습니다. 수십

년 동안 관련 국제 학회의 조직과 연계에는 항상 김하석

교수님의 이름과 노력이 있었습니다. 에너지 대전환 시기

인 오늘날 르네상스를 맞고 있는 전기화학 분야에서 한

국전기화학이 국제적으로 중요한 위치에 있을 수 있게 된

것은 이 시기를 오랜 시간 묵묵히 준비하신 김하석 교수

님의 덕택이고, 이는 우리나라 화학계가 김하석 교수님께

지고 있는 크나큰 빚이고 은혜입니다. 또한, 한국전쟁 이

후 1950년대에서 70년대까지 불모지나 다름없던 우리나

라 분석화학의 터를 닦으신 1세대 최규원 교수님을 이어

서 분석화학 분야의 발전과 기틀을 마련하셨고, 현재 학

계와 산업계 곳곳에 그 제자들이 중요한 위치에서 새로

운 발전을 이루고 있습니다.

김하석 교수님은 1967년 서울대학교 화학과를 졸업하

고 1973년 일리노이대 어배나-샴페인 캠퍼스(UIUC)에서

전기화학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하셨습니다. 이후 일리노

이대와 플로리다대에서 박사후 연구원 생활을 마치고

1977년 서울대학교 화학과 분석화학 전공 교수로 임용되

었습니다. 그 후 많은 연구를 진행하고 제자들을 양성하

면서도 서울대학교 자연과학대학 학장, 한국전기화학회 회장, 국제과학영재학회 회장, 과학기술사회실현을 위한 국민연합(과실연) 공동대표, 국가연구소재중앙센터 이사장, 서울대학교 특임부총장 및 대학원장 등 수많은 요직을 역임하셨습니다. 그리고, 2010년 대구경북과학기술원(DGIST) 석좌교수로 자리를 옮긴 후에도 국제전기화학회(International Society of Electrochemistry, ISE) 회장등 국내외를 막론한 왕성한 활동을 이어 나가셨습니다.

선생님께서 귀국하여 독립적인 경력을 시작하신 1977

년은 서울대학교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과학계는 여명과

도 같은 시기였습니다. 제대로 된 연구비 지원 체계가 전

무하던 시절 선생님은 척박한 환경에서 연구실을 꾸려 나

갔습니다. 74학번으로 대표되는 첫 번째 대학원생들은 황

의진, 곽주현, 배인태, 차형기, 유희수 등이 있습니다. 그

들은 모두 다음 세대 학계와 연구소, 산업계에서 이끌어

가는 분석화학에 기반하여 기둥이 되었고 이제는 대부분

현역에서 은퇴할 정도로 세월이 흘렀습니다. 1977년부터

2010년까지 총 125명에 달하는 석박사 인재들이 김하석

교수님의 연구실을 거쳐갔고 그 제자들의 제자들까지 현

재 대학교수로서, 연구자로서 자리를 잡았습니다. 그리하

여, 국내 전기화학과 분석화학 분야의 학계에는 수많은 김하석 교수님 졸업생들이 주축을 이루고 있을 뿐만 아니라 동경대 김유수 교수 (금년에 GIST-IBS로 이직) 등 세계적인 학자로 성장한 제자들도 포진하고 있습니다. 또한, 산업계에서도 두각을 나타내어 삼성전자 반도체 사업부 펠로우, 디스플레이 사업부 부사장, LG에너지솔루션 안전솔루션 센터 전무 등 국가 첨단 산업의 중추적인 역할을 맡고 있습니다. 사회 봉사도 활발하셨던 선생님을 본받아 졸업생들은 정책과 경제 분야에도 진출하였습니다. 현 대통령실 과학기술정책 수석과 전 골드만삭스 사장이 서울대학교 화학과 전기화학 연구실에서 김하석 교수님의 지도 하에 공부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한 사람의 지도를 받은 연구실에서 우리 사회에 이토록 광범위한 분야에서 왕성히 활동하는 인재들을 배출한 사례를 찾기는 쉽지 않을 것입니다.

인재양성 측면에서 그의 문하가 미친 영향력을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로 놀랍지만, 김하석 교수님의 더 큰 기여는 한국전기화학을 궤도 위에 올려놓은 공로라고 할 수 있습니다. 거의 아무런 연구 지원 체계가 없던 1970-80년대를 지나 1990년대에 접어들면서 한국학술진흥재단 등의 공공지원 체계가 처음으로 만들어졌습니다. 선생님께서는 기존 테두리 안에 머물던 한국의 전기화학을 다른 차원으로 확장시키겠다는 의지를 가지고 계셨습니다. 강력한 추진력으로 국내 전기화학 관련 과학자들과 엔지니어들을 의기투합시켜 한국전기화학회(KECS)라는 단일 커뮤니티를 1998년에 출범시켰습니다. 이것은 우리나라 학계 뿐만 아니라 산업계 전반에 있어서 커다란 의미가 있는 사건이었습니다. 한국전기화학회가 출범하던 당시 LG화학의 어느 작은 부서에서는 몇몇 연구원들이 배터리를 시험하는 중이었고 국내 연료전지와 수소 관련 기

술 연구는 걸음마도 떼기 전이었습니다. 미래를 내다본 커뮤니티의 조직화와 결집은 괄목할 만한 성장을 거듭하여 이제는 한국전기화학회는 대한화학회를 비롯한 6대 화학 관련학회 연합회 정식 멤버가 되기에 이르렀고 봄, 가을 학회마다 2천 여명이 참여하는 큰 학회로 발전했습니다. 또한, 4년 마다 열리는 환태평양 전기화학 국제학술대회(Pacific Rim international Meeting on Electrochemical and solid state science, PRiME)를 한국전기화학회가 당당히 미국 전기화학회(ECS), 일본 전기화학회(ECSJ)와 어깨를 나란히 하며 공동 주최함으로써 한국 전기화학회의 국제적 위상은 한껏 높아졌습니다. 김하석 교수님은 한국전기화학회의 산파역을 자임하셨고 오늘날 K-배터리와 수소 경제 비전 등은 한국전기화학회와 함께 성장해온 한국전기화학의 결실입니다.

한국전기화학이 국제 무대에서 인정을 받게 된 것은 김하석 교수님의 국제활동에 힘입은 바가 큽니다. 김하석 교수님은 1990년대부터 한-일, 한-타이완, 한-중 교류심포지엄 등 동아시아 지역 국제 교류의 물꼬를 거의 혼자 트다시피 하였습니다. 특히 한-일 전기화학 교류심포지엄은 우리나라 전기화학이 세계로 나가는데 디딤돌 역할을 하였습니다. 당시 우리나라와는 비교하기 어려울 정도로 역사가 깊고 저변이 넓었던 일본 전기화학계와의 교류가 이루어지면서 학문적인 성장 뿐만 아니라, ISE나 ECS와 같은 국제적인 전기화학 단체들에 본격적으로 진출할 수 있었습니다.

1993년 한일전기화학 심포지엄
1993년 한일전기화학 심포지엄

김하석 교수님은 2005년 부산에서 국내 첫 국제전기화학회 (ISE) 연차학술대회를 총지휘하셨습니다. 이를 발

판으로 한국 전기화학은 본격적으로 국제 무대에 등장합니다. 그는 여기에 그치지 않고 2021년 두번째 ISE연차

학술대회를 제주에 유치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셨습니다. 2002년부터 2004년까지 ISE 부회장을 거쳐 2013

년부터 2014년까지 아시아인으로는 두번째, 한국인으로서는 첫번째 ISE 회장을 역임하셨으니 가히 국제사회에

서 한국 전기화학의 얼굴 역할을 해오셨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ISE 활동, (좌)2005년 처음으로 유치한 부산 ISE 학회에서, (우) 2013년 Queretato, Mexico ISE 학회에서, ISE 회장 시기
ISE 활동, (좌)2005년 처음으로 유치한 부산 ISE 학회에서, (우) 2013년 Queretato, Mexico ISE 학회에서, ISE 회장 시기

또한, 김하석 교수님께서는 2017년부터는 Current Opinion in Electrochemistry (Elsevier)의 초대 편집장

을 맡아 영향력 지수(impact factor)가 7.6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또한, section editor로 한국 학

자의 참여를 이끄는 등 지금도 한국전기화학의 국제화를 이끌고 계십니다. 이러한 무수한 활동은 일관되게 한국의

세계적 위상을 끌어올리고자 하는 김하석 교수님의 의지와 열정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연구 성과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김하석 교수님 연구실에서 이루어진 연구는 크게 분석을 중심으로 한 기초전기화학과 연료전지를 중심으로 진행되었습니다. 유기분자의 전기화학적 활성이 그와 결합할 수 있는 금속 이온 혹은 다른 분자들에 의해 변화하는 현상을 체계적으로 탐구하였습니다. 광범위한 이온 또는 분자의 선택적 인지와 이를 이용한 선택적 전기화학적 분석이 가능함을 밝혔습니다. 합성 전문 그룹과의 협업을 통하여 간편하고 도 정교한 분석법을 개발하였고, 유기용매 속에서의 산염기 성질을 전기화학적으로 손쉽게 측정할 수 있음도 보고하였습니다. 이에 더하여 연료전지 연구 역시 수십 년에 걸쳐 꾸준히 진행되었습니다. 막전극에서의 전기촉매 및 물질이동 현상에 대한 다수의 연구 결과를 발표하였습니다. 선생님께서 지도하신 연구실에서 수행된 연료전지 관련 전기화학 연구는 최근 들어 전세계적인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전기촉매 연구의 원조격이라 할 수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수소 경제를 위한 전기화학 관련 담

론도 결국 오랜 기간 꾸준히 이어져온 김하석 교수님 연구실에서 수행되었던 내용을 포함한 선행연구에 학문적,

기술적 바탕을 두고 있습니다.

2024년 2월 제자들과 함께 저녁 식사 후
2024년 2월 제자들과 함께 저녁 식사 후

김하석 교수님은 말수가 적고 엄격하셨습니다. 교수님의 분석화학, 기기분석 강좌는 까다롭기로 소문이 나 있었고 학생들은 다가가기 어려워했습니다. 연구실에서도 대학원생들은 그룹 미팅을 긴장 속에 준비해야 했으며 말한마디 한마디에 신중해야 했습니다. 조금이라도 근거가 부족하거나 논리 바깥의 무엇인가에 의존하면 얼음장 같은 꾸지람을 듣기 일쑤였습니다. 그만큼 논리에 완벽을 추구하셨고 자신에게도 학생들에게도 논리적이기를 요구하셨습니다. 이러한 지도 방식에 학생들은 많은 경우 적응하기 쉽지 않았지만 훗날 각계각층에서 활약한 여러 졸업생들은 그 시절 가장 중요한 것을 훈련 받았다고 술회하곤 하였습니다. 강의실과 연구실에서 이처럼 긴장의 연속이었지만 예외가 있었습니다. 초창기부터 매년 설 명절이 되면 최규원 교수님 댁에 들러 세배를 하고 뒤이어 김하석 교수님 댁에 몰려가 세배와 함께 먹고 즐겼습니다.

많은 학생들이 댁에 다닥다닥 붙어 앉아 사모님께서 준비해주신 음식으로 식사를 했는데, 어떤 때는 모두 어울려 여러가지 놀이를 하기도 하였습니다. 이렇게 힘든 연구실 생활과 인간적인 에피소드를 쌓으면서 문하생들 간에 동료애가 싹텄습니다. 그랬기에 선생님 정년퇴임 이후로도 매년 설을 전후하여 제자들이 선생님 내외분을 모시고 안부를 여쭙는 자리를 빠짐없이 가져왔던 것 같습니다. 이제는 댁에 찾아가 예전처럼 민폐 손님 노릇을 하기에는 다들 나이가 들었지만 과거 늘 찾아 뵙고 함께 했던 추억이 있어서 가능한 일이 아닌가 싶습니다.

우리는 김하석 교수님을 이렇게 기억합니다. 강의실과연구실에서는 엄한 선생님과 교수님으로, 국내 커뮤니티에서는 탁월한 행정가로, 국제 무대에서는 왕성한 화학 외교관으로, 그리고 졸업한 제자들과는 술잔을 기울이는 노신사로 ^.^ 김하석 교수님은 이제 현역에서 은퇴하였지만 그의 제자들은 지금도 한국 전기화학을 이끌어가고 있습니다. 지난 20여 년 동안 다른 어떤 분야보다 눈부시게 성장해온 한국 전기화학은 김하석 교수님의 노고와 혼이 스며든 터전 위에 서 있습니다.


글 서강대학교 화학부 교수 신운섭

서울대학교 화학과 교수 정택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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