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을 빛낸 화학자37(2025년 7월호)
- 성완 박
- 7월 1일
- 3분 분량
정성기(鄭盛基) POSTECH 교수(1945~)

정성기 교수님은 생유기화학 및 의약화학 분야의 선구자로, 학계와 산업계 전반에 걸쳐 혁신적인 연구 성과와 교육, 행정 리더십을 통해 대한민국 과학기술 발전에 기여를 하신 인물이다. 1972년 미국 일리노이 주립대(얼바나샴페인)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한 후, 예일대 연구교수와 텍사스 A&M대 교수로서 국제 무대에서 소중한 연구 경험을 쌓으셨으며, 1987년 POSTECH 개교 당시 화학과 교수로 부임하여 화학과 주임교수, 교무처장 등 주요 보직을 두루 역임하면서 학교의 학문적·행정적 기반을 확고히 다지셨다.
정 교수님은 유기합성 연구를 넘어 생유기화학 및 의약화학 분야에서 생체 내 대사체의 구조 변이를 도입한 유도체 라이브러리의 합성과 그에 따른 생리활성 연구에 매진하셨다. 대표적으로, 이노시톨의 모든 가능한 이성질체를 합성하여 그 구조적 다양성과 생리적 역할을 체계적으로 연구하였으며, 세라마이드와 카바슈가 변이체 라이브러리의 합성법 및 생리활성 평가를 통해 질환과 관련된 대사 경로 및 신호전달 메커니즘을 밝혀내는 데 크게 기여하였다. 또한 정 교수님이 집중적으로 추구한 의약화학 연구 중 하나는 BBB(뇌혈관장벽, Blood-Brain Barrier)를 투과하는 분자 운반체를 개발하는 일이었다. 뇌혈관장벽은 외부 물질이 뇌조직에 무분별하게 진입하는 것을 막는 매우 중요한 생체 장벽이지만, 동시에 약물의 뇌 투과를 어렵게 만들어 뇌암, 알츠하이머, 파킨슨, 헌팅턴병 등 다양한 뇌질환 치료에 큰 장애물이 된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정 교수님은 분자 구조의 친지질성(lipophilicity) 또는 양자 택일적 투과 경로를 활용하여, 뇌혈관장벽을 뚫고 뇌 조직에 효과적으로 도달하는 특수 설계 분자를 연구했다. 또한 유전자 전달(gene transfer) 응용 분야에서도 BBB 투과 전략을 적용해, 유전자 치료제나 소분자를 안전하고 효율적으로 뇌에 전달할 수 있는 방법론을 제시했다. 이 전략은 뇌종양과 같은 중추신경계 질환 치료에서 약물의 효과적 전달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이러한 성과는 정 교수님의 연구가 생명체 내부에서 발생하는 복잡한 대사 및 신호 전달 과정을 정밀하게 이해하고, 이를 응용하여 실제 임상에 적용할 수 있는 신약 개발로 연결될 수 있음을 입증한다. 이 연구는 국내외 제약 및 바이오텍 기업에 큰 파급 효과를 미쳤고, 현재에도 여러 후속 연구자들에게 영감을 주고 있다.

POSTECH에서의 행정 및 교육 분야에서도 정 교수님의 공헌은 빛난다. 개교 초창기부터 화학과 교수로 부임하신 이후, 주임교수와 교무처장 등 다양한 보직을 통해 학과 내 연구 인프라 확충, 학제 간 융합, 산학협력 체계 구축에 앞장서셨다. 특히, 1998년부터 2002년까지 포스텍 제3대 총장으로 재임하시며, 소수정예 우수 인재 양성을 목표로 “학제 간 융합”과 “세계 무대에서 활약할 인재 양성”을 핵심 비전으로 삼아 교과과정을 전면 개편하고, 조기입학제 및 무학과제 도입, 교육개발센터 설립 등 혁신적 교육 정책을 추진하여 교육의 질을 획기적으로 향상시켰다. 화학, 생명과학, 물리학, 공학, 의학 등 다양한 분야가 함께 참여하는 공동 연구를 장려하고, 관련 예산과 인프라를 확대했다. 이로써 신약 개발 컨소시엄, 반도체 소재 합성 프로젝트, 나노바이오 융합 연구 등이 학내외의 폭넓은 협력을 통해 진행될 수 있었다. 한편 국제 경쟁력 강화를 위해서, 교환학생 프로그램의 확대, 외국인 교수 및 연구진 초빙, 국제학회 유치 등을 통해 포항공대가 글로벌 이공계 교육·연구의 중심으로 도약하도록 이끌었다. 이는 포항공대가 세계 대학 평가에서 높은 순위를 유지하는 데도 큰 기반이 되었다. 또한, 최첨단 실험 장비 확충, 안전 관리 시스템 고도화, 행정 절차 간소화 등을 통해 연구자들이 본연의 연구와 교육에 더욱 집중할 수 있도록 물적·제도적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또한, 포스코로부터 4,000억원에 달하는 기금 출연을 이끌어내어 학교가 안정적이고 지속 가능한 발전을 도모할 수 있는 재정적 토대를 마련하는 등, 행정 리더십 또한 국내외 모범 사례로 평가받고 있다.

정성기 교수님께서 쌓아오신 연구 유산과 교육 정신은 후학들에게 ‘사고의 유연성’과 ‘비판적 시각’을 심어주는 귀중한 길잡이가 되고 있다. 특히 정 교수님은 후학들에게 창의성, 글로벌 마인드, 그리고 과학 윤리를 누구보다 강조했다. 학제 간 융합을 지향하며, 후배들이 연구를 대할 때 “교과서적 지식을 넘어 문제를 새롭게 바라보고 해결책을 탐색”하도록 독려했다. 이 같은 태도와 열정은 지금도 많은 생유기화학 후배 연구자들에게 귀중한 길잡이가 되고 있다. 또한 정 교수님은 의약화학 분야에서 질환 치료 효과와 부작용 최소화를 동시에 추구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뇌질환과 같은 복잡 질환에 도전할 때, BBB를 비롯한 생체 장벽을 고려한 분자 설계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앞서 보여준 것이다. 이러한 학문적·사회적 기여는 국내 화학계가 첨단 바이오메디컬 산업으로 확장하는 데에도 든든한 밑거름이 되었다. 정성기 교수님이 남긴 업적은 한국 화학계의 가치와 역량을 국제적으로 인정받게 했을 뿐 아니라, 미래 세대 연구자들에게 경계 없는 도전의식을 심어주었다. 지금까지도 그의 이름은 “한국의 화학, 나아가 세계 화학 발전에 헌신한 선구자”로서 널리 기억되고 있으며, 그가 열정적으로 펼쳐온 지적 유산은 계속해서 새로운 혁신과 창조의 동력이 되고 있다.

글 POSTECH 화학과 교수 장영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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