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고는 지난 2024년 7월 28일부터 8월 3일까지 미국 콜로라도 포트 콜린스에서 열린 제45회 국제배위화학회(International Conference on Coordination Chemistry, ICCC)에서 2032년 개최 예정인 제49회 ICCC 학회 (49th ICCC 2032)를 제주로 유치하는 데 성공한 과정을 시간 순으로 구성한 후기입니다. 국제배위화학회는 1950년에 첫 학회가 개최된 이후, 2년마다 전세계 50여 개국의 배위화학 전문가들이 모여 최신 연구성과를 발표하고 비전을 논의하는 분야 내 가장 영향력 있는 학회입니다. 특히, 본 학회가 48회 진행되는 동안 유럽 28회, 아시아 6회, 북아메리카 5회 등이 개최되었으나 한국에서는 단 한 번도 개최된 적이 없었습니다. 마지막까지 순탄치 않았던 유치 과정을 대한화학회 회원들과 공유하고, 2032년 제주국제컨벤션센터(ICC Jeju)에서 열릴 ICCC-49의 성공적인 개최에 많은 관심과 도움을 부탁드리고자 이 글을 기고합니다.
2023년 7월 24일
오후 2시 30분. 꺄톡! 알림음이 울린다. 단톡방 이름은 ICCC2032. 2023년이 아니라 2032년이라고? 폰을 든 채 멍한 것도 잠시, 남원우 교수님(이화여대)의 여러 문자가 한 번에 들이 닥친다. 뇌보다 손가락이 먼저 움직여 답장을 찍고 있다.‘ 네, 교수님’. 이것이 1년 간의 대장정의 서막이었다.
2023년 11월 7일
ICCC Team이라는 새로운 단톡방이 만들어졌다. 4명에서 6명으로 인원이 늘어났다. 역시나 남원우 교수님의 폭풍 문자가 쏟아진다. 요약하면,‘ 조직책임자는 남원우-옥강민(서강대)-문회리(이화여대), General Secretary는 이은성(서울대), Local Organizing Committee는 서준혁(GIST), 윤민영(경북대)이 주도한다’이다. 혹시 나만 처음 듣는 얘기인 건가? 하지만, 이번에도 역시 모두 손가락이 먼저 움직이고 있다.‘ 네, 교수님!’
2023년 12월 5일
문자와 이메일을 통한 여러 논의 끝에 드디어 오후 3시, 6인의 첫 줌미팅이 열렸다. 12월 말까지 제출해야 하는 개최의향서 작성에 관한 논의였다. 그리고 오후 4시 18분, 이은성 교수님이 개최의향서를 작성하여 단톡방에 공유한다. 이렇게나 빨리? 엄청난 추진력이다.
2024년 3월 7일
어느 새 해가 바뀌고 3달이 지났다. 오전 8시, 알림음이 울린다.‘ 우리의 목표는 2500명입니다~~~’. 남원우 교수님은 아무래도 선몽을 받으시는 듯하다. 아침 에너지가 어마어마하신데 그 바이브를 따라가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우리는 생각할 필요가 없다. 또다시 답장을 보낸다.‘ 네, 교수님!’
2024년 3월 12일
개최지 및 개최 시기에 대한 심도 깊은 줌 미팅이 열렸다. 제주, 부산, 송도, 세 도시로 압축하여 각 도시의 뷰로 및 컨벤션센터와 접촉하여 여러 조건들을 비교-논의하기로 하였다. 각 도시의 담당자들과 연락을 주고받으며, 이 분들이 지역 경제 활성화를 위해 얼마나 열심히 노력하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큰 규모의 학회를 유치한다는 것은 단순히 학회 발전의 차원을 넘어서 그 도시의 발전과도 긴밀한 관계가 있음을 느낀다.
2024년 3월 19일
여러 각도의 조사와 고민 끝에 개최장소를 제주국제컨벤션센터(ICC 제주)로 확정하였다. 이제는 제안서를 작성해야 한다. 모두 함께 돕되 서준혁 교수님과 윤민영 교수님이 제안서 작성을 주도하기로 한다. 서준혁 교수님은 2029 ICBIC을 제주에 유치할 때 일하신 경험이 있고, 윤민영 교수님은 AsCA 2020을 비롯해 크고 작은 국내외 학회 조직에 있어 재무 및 후원 유치의 달인이다. 이은성 교수님의 기지 넘치는 scientific program 조직까지 더해져서 제안서 작성은 문제없을 듯하다. 대한화학회 이필호 회장님, 무기화학분과 이광렬 회장님, 한국과학기술한림원 유욱준 원장님, 제주 여러 인사들 등의 지지서도 포함되었다.‘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아프리카 속담이 떠오른다. ICCC를 한국에 최초로 유치하려면 각계 각층의 도움이 필요하다.
2024년 3월 29일
서준혁 교수님을 필두로 여러 교수님들, 그리고 제주 뷰로 측의 도움으로 멋진 최종 제안서가 마무리되고, ICCC의 Executive Secretary를 맡고 있는 캐나다 University of British Columbia의 Chris Orvig 교수에게 전달되었다. 완성된 제안서를 보니 ICCC-49는 제주에서 열리리라는 확신이 든다. 7월 콜로라도에서 열릴 ICCC-45의 International Advisory Board 위원회에서 각국의 대표의 프레젠테이션을 통해 최종 결정될 예정이다. 어쩌다보니 필자가 발표를 담당하게 되었다. 쉽지 않겠지만 마지막까지 파이팅!
2024년 4월 11일
Orvig 교수로부터 프레젠테이션에 대한 안내 메일이 왔다. 우리와 경쟁할 도시가 인도 Kolkata와 네덜란드 Maastricht인 것은 알고 있었으나, 최종적으로 오스트리아 Vienna까지 합류하여, 최종 4개국 경쟁구도가 되었다. 이런 치열한 경쟁은 최초라고 한다. 유럽이 주도해온 학회이고, 위원회 구성원의 상당수가 유럽 연구자인 이 경쟁에서 한국이 과연 이길 수 있을까?
2024년 4월 16일
본격적인 발표 준비에 앞서 ICCC2032 유치 준비위원회를 최종 구성하였다. 총 19명의 거대군단이다. 학회가 2032년에 열릴 것을 고려하여 시니어-중견-신진, 연구 분야, 성별(여성 위원 37%) 등 다각도로 고민하여 구성하였다. 처음 4명으로 시작한 ICCC 2032 단톡방은 이제 19명으로 구성된‘ ICCC 2032 유치위원회’로 확대되었다.
2024년 6월 17-18일
발표자료 준비를 위해 제주 답사팀이 꾸려지고, 연구비 제안서와 학기 마무리로 정신없이 바쁜 8분 교수님들의 일정을 겨우 조정하여 이틀간 제주에서의 회의가 진행되었다. 제주 뷰로와 제주국제컨벤션센터에서도 함께 동행하여, 대한화학회 등으로 이미 익숙한 장소이지만 새로운 마음가짐으로 ICC 곳곳을 다시 둘러보고, 조금 더 매력적인 장소에서의 gala dinner를 제안하기 위해 여러 장소를 답사했다. 언제 보아도 제주는 정말 아름다운 곳이다. 남원우 교수님의 진두지휘 아래 심도 깊은 회의가 이루어졌고 프레젠테이션의 대략적인 흐름이 완성되었다. 이 모든 과정에서 제주 측의 적극적인 서포트는 너무나 큰 힘이 되었다. 특히, 제주 뷰로 김효정 주임은 무기화학분과에서 활달하기로 유명한 필자와 임미희 교수님(KAIST)을 합쳐 놓은 듯한 에너지로 이틀 내내 답사팀에 활기를 불어넣어 주었다. 2032년 행사까지 쭉 함께 할 수 있기를!
2024년 7월 18일
제주 측에서 최초 섭외한 프리젠테이션 제작업체의 작업 퀄러티가 기대에 미치지 못하면서 급히 다른 제작업체를 섭외하는 등 자료 준비에 난항을 겪었다. 우여곡절 끝에 자료가 완성이 되었고, 발표 자료 최종 점검 줌 미팅을 가졌다. 학회 시즌인지라 미국, 일본, 싱가폴, 인도, 중국, 한국 등 세계 곳곳으로 학회 참석차 흩어져 있던 준비위원회 교수님들이 빠짐없이 참석했다. 정말 대단한 열정들이다. 띄어쓰기, 마침표 하나 틀리지 않기 위해 38개의 눈이 열심히 확인하고 또 확인했다. 이제 발표만이 남았다.
2024년 7월 29일
드디어 2032년 ICCC 개최지를 결정하는 International Advisory Board 위원회가 있는 날이다. ICCC-45가 열리는 미국 콜로라도 포트 콜린스에 발표 및 응원을 위해 10여명의 한국 교수님들이 속속 도착하셨다. 여러 학회 참석으로 발표 준비가 충분하지 못했던 필자는 위원회가 열리는 저녁 시간까지 긴장된 마음으로 마무리 준비를 했다. 7분 발표시간 엄수를 여러 번 강조하는 위원장의 멘트를 들으니, 연습 시 늘 몇 십초 초과되었던 터라 걱정이 밀려왔다. 회의장에서 발표 한시간 전에 만난 남원우 교수님도 긴장하신 기색이 역력하셨다. 남원우 교수님의 ICCC 2032 한국 유치에 대한 간절한 염원이 느껴져서 마음 한 켠이 뭉클해졌다. 네덜란드-한국-인도-오스트리아 순으로 발표가 진행되었다. 역시나 많은 위원들이 유럽 연구자들이었다. 하지만, 발표 전 같은 테이블에 있던 연구자들과 대화를 나눠보니 한국에 대한 호감이 상당했고, 한번도 한국에 와보지 못한 이들은 이번 기회에 한국에 꼭 가보고 싶다는 뜻을 강하게 비쳤다. 발표가 시작되었고 정말 다행히도 발표 종료 인사와 동시에 7분 종료 알람이 울렸다. 질의 응답도 무난히 진행되었고, 일본측 위원이신 동경대 Makoto Fujita 교수님도 강력한 지지 의사를 공개적으로 밝혀 주셨다. 모든 발표가 종료된 후, 회의실 앞에서 4개국 발표자들이 결과가 나오기를 기다렸다. 그리고 15분여 후, 회의실 문이 열리며 Orvig 교수가 우리 앞에 섰다. ‘2032년 ICCC개최지는 한국으로 결정되었습니다.’ 그 순간, 2011년 Jacques Rogge IOC 위원장이 2018년 동계올림픽 개최도시 ‘Pyeongchang’을 발표하던 장면이 떠올랐다고 한다면 웃을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그 순간 남원우 교수님과 내 심정은 그와 유사했으리라 믿는다.
학교 근처 바에 모여 결과 발표가 나기를 기다리던 교수님들과 제주에서 긴장하며 기다리는 여러분들께 기쁜 소식을 카톡으로 전하고서 남원우 교수님과 함께 걸어가던 길에서의 밤공기와 기분은 오래도록 잊혀지지 않을 것 같다. 바에 거의 도착했을 때 교수님들이 마중나와 길 한복판에서 소리 높여 축하해 주셨다. 정말 우리는 원팀이었음이 온 몸으로 느껴졌다. 그리고, 제대로 축하 파티를 하기 위해 다음 장소로 이동하던 중, 운명처럼 ‘Jeju’라는 간판을 마주하게 되었다. 미국 콜로라도 Fort Collins라는 작은 도시에서 만난 ‘Jeju’라니! 완벽한 마무리였다. 그날, 몇 시에 끝났는지 기억도 희미한, 하지만 행복감만은 확실하게 기억에 남은 2024년 7월 29일의 밤을 모두 함께 오래도록 기억할 듯하다.
2024년 8월 2일
6일간의 긴 학회가 Closing Ceremony와 함께 막을 내렸다. 새로이 선출된 Executive Secretary인 University of Birmingham의 Michael Hannon 교수가 차기 학회 개최지를 발표했다. 2026년 46회 덴마크 Odense, 2028년 47회 아일랜드 Dublin, 2030년 48회 호주 Brisbane, 그리고 대망의 2032년 49회 대한민국 제주!
친절하게도 처음으로 한국에서 열리는 ICCC임을 빨간 글씨로 강조하여 보여주었다. 홀가분함과 동시에 ‘2500명’이라는 숫자의 압박감이 밀려온다. ‘8년 뒤의 일인데, 뭐 어떻게든 되겠지!’. 마주치는 젊은 교수님들께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어본다. 한동안 잊고 지내다, 일년 전 남원우 교수님께서 카톡으로 우리를 놀래 키셨듯, 후배 교수님들에게 폭풍 문자를 보낼 날이 오지 않을까. 그때 부디 옥강민 교수님과 남원우 교수님(?) 그리고 필자의 문자를 외면하지 마시길……
남원우-옥강민 준비위원장님 말씀
“Team Korea”; 2024 프랑스 파리올림픽에서 눈부신 활약을 하는 우리나라 선수들을 보면서 자랑스러운 대한민국 국민으로 무덥고 습한 여름 밤을 보내고 있습니다. 우리는 지난 일년 동안 “Team ICCC” 로 제49회 국제배위화학회 (ICCC 2032) 유치를 열심히 준비하여 2032년에 대한민국 제주에서 국제배위화학회를 개최하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성공적으로 ICCC 2032를 유치해냈다는 것에 “Team ICCC” 는 너무나 자랑스럽고 기쁨을 금할 길이 없었습니다. 문회리 교수님께서 유치 후기에 생생하게 기술하신 바와 같이, 이러한 국제 학회 유치는 구성원 모두의 헌신과 노력 없이는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바쁜 일정 속에서도 맡은 바 소임을 다해주신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일을 하는 동안에 마음에 상처를 받는 어려운 일이 생겼을 때도 너그러운 마음으로 이해를 하시고 묵묵히 일을 하신 유치위원님들께 죄송하고 감사한 마음을 전달합니다. 특히, 시종일관 탁월한 리더십으로 성공적인 학회 유치를 이끌어 주시고 훌륭한 발표를 하신 문회리 교수님 그리고 준비 과정에 헌신적으로 참여해주신 이은성, 서준혁, 윤민영, 주상훈, 임미희, 박인혁, 황승준, 박선아, 윤홍석, 임주현, 박정은, 유창호, 이해리, 김진영, 한지연, 김영석 교수님들께도 깊은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또한, ICCC 2032 제주 유치를 위해 물심양면으로 지원을 아끼지 않으신 제주 뷰로와 제주국제컨벤션센터 직원분들 그리고 대한화학회 이필호 회장님과 무기화학분과회 이광렬 회장님을 비롯한 많은 분들께도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이제는 남
은 기간 동안 더욱 철저하게 학회 개최를 준비하여, 어렵게 유치한 제주 ICCC 2032가 성공적으로 개최될 수 있도록 우리 “Team ICCC”는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대한화학회 회원님들의 지속적인 관심과 성원을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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