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세대학교 시스템생물학과
구조생물학 실험실
글 | 김의진, 연세대학교 시스템생물학과 uijin311@gmail.com
구조가 기능을 결정한다
2003년 연세대학교에서 연구실을 열어서, 지금까지 시스템생물학과에서 계속 연구를 진행 중에 있습니다. 현재는 석박사 통합과정 6명, 박사과정 1명, 석사과정 1명 총 8명의 학생들과 교수님까지 한 구성원으로 막단백질 및 수용체, 병원성 박테리아와 바이러스의 단백질에 대한 연구를 활발히 진행 중에 있습니다. 다소 뜬금없는 질문을 하나 드리고 싶은데요, 독자분들께서는 앞선 실험실 소개를 어떻게 읽으실 수 있었나요? 여러 복잡한 과정이 머릿속에 떠오르실 텐데요, 간단하게는‘눈이 빛을 받아들여서 볼 수 있다’라고 이야기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럼 눈은 어떻게 빛을 받아들일까요? 눈에는 시세포가 있는데, 이 세포들이 빛을 받아들이고 이를 신경 신호로 변환하여 우리가 비로소 글자를 볼 수 있게 됩니다. 시세포는 어떻게 빛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요? 마찬가지로 여러 요인들이 있지만, 시세포에 위치한 로돕신 단백질이 빛을 받아들이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럼 로돕신은 어떻게 빛을 받아들일까요? 로돕신은 G protein coupled receptor이기 때문에, 흡수한 빛 에너지가 로돕신 단백질 구조를 변화시키고, 로돕신 단백질의 구조가 변경되면 G protein이 로돕신에 결합하여 세포 내 하위 신호를 전달하게 됩니다. 구조 생물학은 바로 이 지점에서, 생명체 및 단백질 거대분자의 구조를 규명하고, 그 작동 원리를 분자 수준에서 밝혀내는 분야입니다. 여러 생물학적 현상들도 종국엔 생체 내 분자들의 상호작용에 의해 이뤄지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구조 생물학은 생물학의 여러 분류 중‘어떻게?’라는 질문에 대해 가장 자세하고 정확하게 답할 수 있는 분야라고 생각합니다. 저도 이 점이 마음에 들어서 구조생물학 실험실로 지원하게 되었습니다.
저희 연세대학교 구조생물학 실험실에서도 조현수 교수님의 지도 아래 여러 단백질의 3차원 구조를 규명하고 그 기능에 대해 밝혀내 왔습니다. 2016년에는 앞서 언급했던 로돕신 단백질의 구조를 규명했는데요, 이 연구는 당시 불모지이던 국내 막 수용체 연구의 초석이 되기도 했습니다. 그 이후로도 동일한 GPCR인 CRF1 수용체 및 살모넬라균의 병원성 단백질에 대한 구조를 규명했고, 이 연구들은 각각 단백질 억제제 특허 및 신약 발굴로 이어지기도 했습니다. 최근에는 전 세계를 강타했던 COVID-19의 중화 항체 및 단백질 결합체의 구조를 규명해 여러 코로나 변이를 한꺼번에 억제할 수 있는 단백질 치료제도 개발한 바 있습니다. 이처럼 다양한 분야의 단백질에 대해 구조적 연구를 진행하고 있기 때문에, 서울대학교, 카이스트 등 대학 연구실에서부터 KBSI, IBS 등의 국책연구기관과 세브란스/서울대학교 병원 실험실까지 다학제에 걸쳐 활발한 공동 연구를 진행 중에 있습니다.
트렌디한 학문 구조생물
‘트렌디’라는 단어와 학문의 조합을 다소 생소하게 느끼실 수도 있을 것 같은데요, 구조생물학 분야에서 만큼은 예외인 것 같습니다. 최신 연구 동향을 익히고, 적용하는 건 어느 분야에서나 통용되는 덕목이겠지만, 최근 구조생물학은 지각 변동이라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로 연구의 주류 자체가 시시각각 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2017년 노벨 화학상이었던 Cryo-EM과 딥러닝 기반 구조 데이터 분석 기법, 그리고 AlphaFold2 등의 단백질 구조 예측 알고리즘 등은 불과 3~4년 사이에 연구 접근 방법 자체를 송두리째 바꿔 놓았습니다. 저희 실험실도 2018년까지는 기존의 X선 결정 기법을 주로 사용하여 단백질 구조를 규명하려 했지만, 학계의 시류에 발맞춰 다각도로 연구 주제를 변화시켜 나갔습니다. 교수님께서 항상 최신 기술 습득을 중요하게 생각하시는 덕분에, 학생들은 원하는 만큼 KBSI, KRIBB, IBS 등의 국가 연구기관에 파견 및 출장 실험을 갈 수 있었고, 최근 들어 그 결과를 하나 둘 만들어 내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국내외 다양한 학회를 참가하며 연구를 바라보는 시야를 넓히고, 타 연구 기관 및 해외 연구자들과도 교류할 수 있는 자유로운 분위기가 형성되어 있는데요, 특히 2018년에 규명했던 박테리아 병원성 단백질의 경우, 학회에서 저희 실험실 포스터를 본 Kansas 대학의 Philip Hardwidge 교수님이 직접 연세대학교로 방문하셔서 공동 연구에 대해 의논했던 사건은 재밌는 일화로 남아있습니다. 이외에도 실험실 전원이 참석했던 싱가포르 AsCA2019 학회나 프랑스 파리에서 열렸던 ECM33 학회는 학회 자체 뿐만 아니라 해외에서 쌓은 실험실 학생들끼리의 즐거운 추억으로 남아있습니다.
연기(緣起)
연기(緣起)란 모든 현상은 무수한 원인과 조건이 상호 관계하여 성립되므로, 모든 원인과 결과는 상호 의존적으로 상관하는 관계에 있다는 불교 용어입니다. 교수님이 저희에게 자주 해 주시는 말씀인데요, 실험실 구성원끼리의 모든 인연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그 관계를 닦아 나가라는 뜻에서 회식 자리에서 말씀해 주시곤 합니다. 이러한 생각 아래 저희 실험실 구성원들은 연구적인, 혹은 연구 외적인 부분까지 서로 도와주고 공유하며 실험실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그 과정에서 학생들끼리 열띤 토론을 하기도 하고, 그 토론의 결과로 더욱 더 나은 방법을 찾아내기도 합니다. 이러한 교수님의 생각은 당신이 저희를 대하실 때에도 나타나는 것 같습니다. 교수님께서는 길을 알려주며 직접적으로 지도해 주시기 보다는, 학생이 스스로의 노력 끝에 옳은 방향으로 갈 수 있도록 믿어주시는 편인데요, 실험의 주제나 방향을 결정할 때에도 상하 관계로 대하시기 보다는 한 명의 독립된 연구자로써 학생 개개인의 의견을 많이 존중해 주시곤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생들이 최선의 연구 결과를 낼 수 있게 실험실의 장비 및 기자재나 연구기관 파견 등에도 많이 지원해주시고, 매주 미팅 시간을 가지며 학생들의 연구에 관심을 가져 주십니다. 돌이켜 보면 신입생 시절에는 수업과 시험에 익숙해서 오히려 내가 할 수 있는 일과 해야 하는 일이 많아 혼란스러웠던 적도 있지만, 교수님의 이러한 믿음 속에 한 명의 독립적인 과학자로 성장할 수 있는 게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런 가르침 덕분인지, 최근 실험실 선배들 중 두 분이 신규 교원으로 임용되셨는데요, 저희는 선배들의 이러한 모습을 보면서 미래에 나아갈 길에 대해 자극을 받기도 하고, 앞으로 어떤 선택을 할지 꿈꾸기도 합니다.
맺는 글
구조 생물학의 심도 있는 탐구와 혁신적인 연구를 통해 우리는 미지, 미시의 영역을 계속해서 밝혀내고 있습니다. 그 과정에서 맺어 지는 인연과 연구자 간의 연결, 지식과 경험의 공유는 우리 실험실의 가치 중 하나입니다. 우리 실험실의 연구와 혁신을 위한 여정이 계속 될 수 있기를 바라며, 이 과정에서의 모든 지원과 협력을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앞으로도 함께 일하며 더 나은 내일을 만들어 나가기를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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