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꿀에 대한 속설과 화학적 관점


“화학은 우리 삶과 어떤 관계가 있나요?”


강연이나 인터뷰를 하면 가장 자주 듣는 질문 중 하나다. 그리 유별나고 날카로운 질문은 아니다. 물리나 생명과학 등 어느 과학 분야에도 적용될 수 있고, 과학이 아닌 다른 학문 분야로도 치환될 수 있다. 그럼에도, 단순함에도 명확한 표현이 어려운 질문이기도 하다.‘인간, 환경, 도구, 자연 등 주위의 모든 것이 화학과 화학 분자로 이루어져 있으며, 화학 반응을 통해 시간 축을 따라 세상이 움직인다.’설명함이 가장 거대한 답변이다. 왠지 모를 씁쓸한 끝 맛이 남는다. 뻔한 질문에 당연한 대답은 누구를 납득시키기 위한 것이었을까? 그럼에도, 부인 못 할 사실을 이야기한 것이며 우리 생각보다도 더 깊이 화학 원리들이 경험적 지식 위에 깔려있음을 이야기해보자. 그것도 아주 달콤하게.


‘꿀은 상하지 않는다’에 대해


모든 식품은 시간이 흐르면 신선한 상태를 잃게 된다. 차갑게 보관하지 않으면 과일이나 채소는 며칠 만에 짓무르고 변색되며 끔찍한 냄새를 풍기기 시작한다. 물론 냉장보관 역시 영원한 신선함을 보장하지 않는다. 탄수화물과 단백질, 지방으로 이루어진 식재료들은 어디선가 날아들어 달라붙은 세균의 증식에 의해 부패로 변질됨이 자연스러운 과정이다. 세균 역시 생명체인 만큼 섭취해 증식하기 위한 영양소와 환경이 필요하며, 대부분은 당분의 공급이 열쇠를 쥐고 있다. 하지만 기묘하게도, 사실상 거의 당분으로만 이루어진 식품인 꿀은 의외로 상하지 않는 식품이라는 속설이 있기도 하다.

강렬한 단맛에서 예상되듯 꿀을 구성하는 물질의 대부분은 즉각적으로 흡수되는 단당류가 대부분을 차지한다. 과당이 38.5%를 차지하며 그 뒤를 31.0%의 함량으로 포도당이 뒤따른다. 단 두 종류의 당 분자가 무려 70%를 구성하며, 이들의 결합(과당+포도당)으로 이루어지는 설탕은 단 1.5%에 불과하다. 물론 그 외 성분 또한 다른 이당류(포도당+포도당)인 말토스가 7.5%인 만큼 당 덩어리라 해도 과장이 아니다.

세균의 먹잇감임에도 꿀이 상하지 않는 것은 두 가지 이유로 요약된다. 첫째로 과한 것은 독이 되기 때문이다. 꿀에 포함된 수분은 아무리 많아도 20%를 넘지 않는다. 꿀과 비슷하게 상한 것을 찾아보기 힘든 유사한 식재료인 잼이나 시럽을 살펴봐도 비슷한 경향을 보인다. 이들 모두 33% 내외의 수분을 포함하며, 사실상 섭씨 20도에서 설탕의 용해도를 고려했을 때 포화상태에 속한다. 이보다도 적은 수분으로 이루어진 꿀은 세균이 증식하기에 과도하게 높은 당과 적은 수분으로 이루어진 물질인 셈이다.

두 번째는 꿀이기 때문에 갖는 항균성이다. 꿀벌은 꽃을 찾아다니며 꿀을 채취해 체내의 꿀주머니(honey stomach)에 저장한다. 소화를 위한 위(stomach)와는 구분되는 장기이자 꿀의 저장과 처리만을 위한 특별한 장소다. 꿀주머니에 모인 꿀은 이제 꿀벌의 하인두선(hypopharyngeal gland)에서 생성되는 자당 분해 효소인 인버테이스(invertase)에 의해 분해된다. 꽃에서 채취한 설탕(자당)이 어째서 꿀에는 포도당과 과당의 형태로 분해되어 있는가에 대한 해답은 꿀벌의 역할에 있다. 임무를 마치고 돌아온 꿀벌은 모아 처리한 꿀을 토해내 벌집을 채우는 방식으로 저장 하는데, 이 과정에서 소량의 포도당 산화효소가 뒤섞여 들어간다.

포도당 산화효소는 이름 그대로 수분 환경 속에서 포도당과 산소의 화학 반응을 일으켜 글루코노락톤(gluconolactone)과 과산화 수소를 생성한다. 과산화 수소는 소독약으로도 흔히 사용되는 만큼, 과량은 독성을 보일 수 있지만 꿀에 함유된 소량은 단순히 항균 물질로 세균의 발생과 증식을 억제해 부패를 방지하는 효과가 있다. 추가적으로 글루코노락톤은 남아있는 수분과 반응해 산성 물질인 글루콘산(gluconic acid)로 변화하는데, 3.2~4.5에 해당하는 꿀의 낮은 pH는 여기서 기인한다. 물론 약산성 환경 역시 세균의 증식을 억제하는 효과에 기여함은 당연하다.

결국, 꿀의 달콤함과 끈적임, 꿀벌의 노력에서 유래한 항균성 과산화 수소의 생성과 산성 환경의 조성은 꿀이 세균에 의해 상하지 않는 식품이 되게 한다. 꿀의 관리가 소홀해 과산화 수소를 분해하는 과산화 효소(peroxidase)나 카탈레이스(catalase)가 뒤섞인다면, 그리고 높은 습도로 수분 함량이 높아진다면 꿀 역시 변질된다. 절대 상하지 않는 기묘한 식품은 존재하지 않으며, 단지 복합적인 화학 원리 들이 꿀을 특별하게 만드는 것뿐이다.













‘금속은 꿀을 상하게 한다’에 대해


이 칼럼을 쓰는 이유를 솔직히 이야기한다면, 최근 꿀을 덜어내려고 평소 사용하던 스테인리스강 재질의 금속 숟가락을 사용했고, 금속 도구를 사용하면 꿀이 상하니 나무 재질을 사용해야 한다는 가벼운 꾸중을 들었기 때문이다. 의아함을 느꼈던 것은 다큐멘터리에서 본 양봉업에서는 목제 도구만을 고집하지 않고 누가 봐도 금속으로 여겨지는 다양한 물품들도 사용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제아무리 천연 꿀을 취급한다 해도, 많은 양을 생산함이 필수적인 현대 산업에서 목재를 고집하는 것은 합리적이지 못하다. 결국 내구성있고 관리가 편리한 금속 제품의 도입이 중요해진다. 양봉업자들이 벌통에서 꺼낸 벌집을 모으고 가공하는 데 금속 기계들이 사용되며, 꿀을 퍼 옮기는 도구인 허니 스틱 역시 고급스러운 금속제가 많이 판매되고 있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금속은 꿀을 부패시키지만, 모든금속이 그렇지는 않는다. 꿀의 가공이나 취급에 사용되는 금속은 스테인리스강에 해당한다. 스테인리스강은 이름 그대로 녹슬지 않는 철강 물질이다. 성분으로는 기본적으로 철합금에 해당하는 만큼 절반가량이 철(Fe)로 이루어져 있 으며, 녹슬지 않는다는 고유의 성질을 부여하기 위한 크로뮴(Cr)과 니켈(Ni)이 각각 20% 내외씩 뒤섞여 있다. 그 외 몰리브데넘(Mo)이나 알루미늄(Al), 구리(Cu)와 같은 미량 금속과 더불어 철강 특유의 탄성과 강도를 부여하기 위한 금속과 더불어 철강 특유의 탄성과 강도를 부여하기 위한 탄소(C)역시 0.1% 미만 포함되어 만들어진다. 철보다 쉽게 녹슬지만 투명하고 튼튼한 산화물을 이루는 크로뮴 등이 표면을 뒤덮어 철이 녹슬지 않게 된다. 여러 금속 원소들이 나열되었지만, 꿀의 관점에서 가장 주의해야 하는 것은 철이다.














철이 녹슨다는 현상은 산소와 결합하는 산화의 관용적인 표현이다. 철은 두 개의 전자를 잃는 대신 하나의 산소와 결합해 산화 철(II)(FeO)을 형성하며, 그중 일부의 철이 추가 적으로 전자를 더 잃어버린다면 두 종류의 철 이온이 뒤섞여 만들어진 산화 철(II, III)(Fe3O4)로 변모한다. 모든 철이 산화된다면 산화 철(III)(Fe2O3)이 되어 우리가 상상하는 붉은빛의 바스러지는 녹이 된다. 중요한 것은 단순히 철제 숟가락을 꿀에 담가 오염되는 것을 우려하는 것이 아니다.

산화된 철은 우리 몸속에서도 중요한 작용에 포함된다. 적혈구 속 헴에 잡힌 채 산소를 운반하는 데 사용되며, 다양한 효소 작용으로 인체의 기능을 유지하는 데 쓰인다. 철은 효소의 일부이기도 하지만, 그 자체로 효소가 되기도 한다. 산화 철은 무기물이 생체 효소의 작용을 모사하는 인공 효소(artificial enzyme)의 시작이었으며 나노입자 형태의 작은 알갱이로 작동하는 나노자임(nanozyme)의 대표적인 예다.

조각, 알갱이, 나노입자 등 무엇이 되었건 산화 철 인공 효소의 작용은 두 가지로 구분된다. 만약 매질의 산성도가 염기성(pH>7)이라면 과산화 수소를 분해해 산소로 변화시키는 카탈레이스로 작동하며, 매질의 산성도가 산성(pH<7)이라면 이번에는 과산화 수소를 다른 방식으로 분해해 높은 반응성을 갖는 활성 산소종인 수산화 라디칼(•OH) 로 변환시키는 과산화 효소가 된다. 앞서 살펴봤듯 꿀은 산성 물질이니 과산화 효소 작용이 발생하게 된다. 물론 어느 환경이든 꿀이 부패하지 않도록 보호하는 과산화 수소가 소모되어 언제든 상할 수 있는 위태로운 상태가 됨은 자명하다.

스테인리스강이 발명되지 않은 과거에도 꿀은 달콤함으로 인간의 곁에 있었다. 그리고 구리나 철 등이 함유된, 산화에 그다지 강한 저항성을 보이지 않는 금속 도구들을 사용한다면 꿀의 산성 환경에 의해 산화되어 보이지 않는 아주 작은 인공 효소 금속조각들을 꿀에 미량 흩뿌려놨을 것 이다. 촉매나 효소는 그 자체는 변화하지 않은 채 계속해서 화학 반응을 일으키는 물질인 만큼, 아무 문제 없어 보였던 꿀도 어느 순간 부패하고 말았을 것이다. 금속으로 꿀을 다루면 상한다는 이야기는 근거 있는 과거의 일화였음이 충분히 예상되며, 스테인리스가 보급된 현대 사회에서 같은 결과가 관찰되지 않았다고 미신이나 속설로 치부할 필요는 없겠다.

꿀의 속설만으로도 이야깃거리가 쏟아지듯, 화학은 우리삶 어디에나 있다.



장홍제 Hongje Jang


•KAIST 화학과, 학사(2004.3-2008.2)

•KAIST 화학과, 박사(2008.3-2013.8, 지도교수 : 한상우)

•서울대학교 화학과 박사 후 연구원(2013.9-2015.1, 지도교수 : 민달희)

•Georgia Institute of Technology, Department of Chemistry and Biochemistry 박사 후 연구원 (2015.1-2016.1, 지도교수 : Mostafa A. El-Sayed)

•광운대학교 화학과 부교수(2016.3-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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