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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기와의 전쟁


‘여름이 오는 길목에서’를 통해 헤르만 헤세(Hermann Hesse)는 ‘일 년 중 가장 아름다운 때는 여름을 기다리는 때’라고 말했다. 나날이 뜨거워지는 여름이지만 그래도 그 나름의 매력이 숨어있다. 수박, 바다, 빙수, 물놀이, 싱그러운 신록, 그리고 모기. 정정하자면 무엇이든 호와 불호가 나뉘기 마련이지만 모기에 대해서는 섣불리 장담하기 어렵겠다. 종류에 따라 위험한 병을 옮기기도 하고, 조용히 침입해 혈액을 강탈해 감은 물론, 대가로 남겨두는 것은 부어오른 피부와 심한 간지러움이니 말이다. 모기 유충인 장구벌레나 모기는 포식자의 먹잇감으로 생태계를 유지한다는 주장도 있지만, 그럼에도 모기는 인간에게 해충이며 적어도 인간에게 직접적인 이로움은 없는 듯 싶다.

 

옳게 된 화학무기

 

치부되는 경우도 있지만, 거대한 역사 속 흐름을 만들어 내는 생명체인 적도 많다. 대표적으로 1000여 년이나 지속되어 온 로마 제국 멸망의 결정적인 원인이 모기에 의한 말라리아 확산이라는 증거도 유적지에서 발견되는 유골들로부터 확인된 것을 떠올릴 수 있다.

자연스레 모기의 전쟁에서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기 위 한 무기들도 새롭게 탄생한다. 손으로 때려 잡던 원시적인 방식에서 도구를 사용하게 되며, 침입을 막기 위한 촘촘한 모기장의 제작, 살충을 위한 모기약의 발명, 그리고 예방 차원에서 접근을 방지하는 모기 기피제까지 다양하다. 물리적인 모기의 배제는 한계가 있다. 방식의 단순함을 떠나 모기가 인간에 비해 너무나 작은 곤충인 만큼, 조금 더 효율적인 방식이 필요해졌기 때문이다.

결론은 조금은 비인도적인 이야기 같지만 특정 생물종에게만 효율적으로 작용할 수 있는 화학 무기의 개발이다. 간혹 외계 생명체에 의해 무자비한 침공을 당하는 영화에서도 특정 종에게만 효과를 보이는 물질이나 무기를 이용해 지구를 위기에서 구해내곤 한다. 인간이라는 종 전체를 구하기 위한 화학 무기 사용도 지양해야 할 것인지는 계속 해서 논의가 이루어져야겠지만, 그와는 무관히 대 모기 전략은 발전하고 확립되어 왔다.


인간이 합성해 낸 가장 효율적인 화학 무기는 DDT로 간단히 불리곤 하는 다이클로로다이페닐트라이클로로에테인(dichlorodiphenyltrichloroethane)이었다. 1948년 노벨 생리의학상의 주제이기도 했으며 생활 속 모기 퇴치 부터 열대 지역에서의 전쟁과 말라리아 격퇴까지 꾸준히 사랑받았다. 환경과 생태계에 축적되고 체내에서도 지방질에 쌓여 심각한 문제를 일으키는 유기염소(organochlo- ride) 물질이라는 사실이 밝혀지기 전까지 말이다. 이제는 DDT의 사용이 금지되었을 뿐만 아니라, 부신(adrenal gland) 기능 저하 작용을 하는 DDT의 효과만을 긍정적으로 활용하기 위해 유기 화학 방법론을 이용해 구조 개량된 미토테인(mitotane)이나 암페논 B(amphenone B)와 같은 화합물이 이전과는 다른 용도로 사용되고 있다.

유기염소 살충제에 대한 또 다른 흥미로운 사실은 단일 결합으로 이루어진 육각형의 고리형 분자인 사이클로헥세인(cyclohexane)의 탄소마다 하나씩 염소를 도입한 분자 인 린데인(lindane)의 합성에 성공한 인물이 누구인가에 대해서다. 만약 이 문제를 퀴즈로 접했다면 어떤 저명한 유기 화학자들을 떠올리기 바빴겠지만, 의외로 주인공은 가장 위대한 과학자 중 하나로 꼽히는 마이클 패러데이 (Michael Faraday)다.


대 모기전 화학무기와 부비트랩

 

패러데이의 린데인이 낯선 것은 유기염소 살충제인 만큼 효과와 비례하는 잠재적 위험성이 산재해 있었기 때문이다. 적절한 화학 무기의 준비를 위해 사람들이 눈길을 돌린 것은 모기를 비롯한 곤충 퇴치 효과가 있는 식물들의 천연 살충 분자였다. 특히 국화 중 일부에는 제충 효과가 강해 제충국이라는 명칭으로 불리기도 했는데, 핵심 분자인 국산(크리산템산, chrysanthemic acid)과 유사 구조 인 파이레트린(pyrethrin)은 천연 성분임에도 모기 퇴치 효과를 보였다.

하지만 지금 우리가 여름철 모기를 막아내기 위해 집집마다 국화를 기르지는 않는 것처럼, 효과가 매우 강력하고 광범위한 것은 아니어서 화학적 방식을 통한 변화가 주목 받는다. 그 결과 탄생한 물질은 파이레트린과 유사한 구조를 갖는 알레트린(allethrin)과 프랄레트린(prallethrin) 이다. 화합물 명칭만으로는 어디에 사용되고 얼마나 위험 할지 도무지 예상되지 않지만, 실제 제품의 형태를 듣는다면 뇌리를 관통하듯 효과가 연상될 수밖에 없다. 소용돌이 모양으로 만들어져 불을 붙이면 특유의 향과 함께 끝부터 서서히 타들어 가는 모기향, 그리고 이제는 거의 관용명이 되어버린 에프킬라라는 분사식 모기약이 바로 이 두 물질이 사용되는 제품이다. 천연물 구조에 기 반을 둔 만큼 유기염소나 유기인산 살충제에 비해 안전해 가정에서 편히 사용할 수 있는 셈이다.


비슷하지만 조금 더 흥미로운 물질은 역시나 파이레트린 계열의 화학 분자인 델타메트린(deltamethrin)이다. 델타메트린 역시 살충제로 사용되기도 하지만, 의외로 사용법은 모기망 제작이다. 모기망은 물리적으로 모기의 접근을 막는 그물이다. 하지만 조금 더 효과적인 사용을 위해서는 모기망의 섬유 가닥을 살충 물질로 코팅할 수 있다.

제아무리 모기의 발생이 불편하다지만 툰드라나 열대 지역에 비하면 우리나라는 상식적인 편이다. 살충약으로 코 팅된 모기망을 쉽게 찾아볼 수 없는 것은 당연하다. 반면, 앞서 이야기한 폭발적인 모기 발생이 이루어지는 지역에 서는 말라리아나 뇌염을 비롯한 질병의 감염과 확산을 막기 위해서라도 살충 모기망을 사용한다.

델타메트린의 또 다른 재미있는 점은 내성 극복이 가능 함이 최근 확인되었다는 것이다. 항생제, 살충제, 진통제 등 다양한 약은 반복적인 사용을 통해 생물에게 내성을 유발한다. 프리드리히 니체(Friedrich Nietzsche)의 말마 따나 ‘나를 죽이지 못하는 고통은 나를 더 강하게 만든다’ 는 의미다.



DDT와 같은 파괴적인 물질의 사용이 금지된 만큼, 델타메트린 등을 이용한 말라리아 퇴치가 계속되고 있다. 모 기망과 같은 표면에 약 분자들을 고정시킨 만큼, 일종의 결정 구조를 형성하며 분자들은 응집된다. 누군가 호기심 에 델타메트린 결정을 가정용 전자레인지로 잠시 가열했 다. 순간적인 열 처리는 델타메트린 결정 구조를 변화시켰 는데, 물질 자체가 변화한 것이 아님에도 예상치 못하게 모기 퇴치 효과는 내성이 사라진 것처럼 완벽히 재생된 것 이다. 일반적인 모기약으로 10시간이 소요되는 모기 퇴치가 전자레인지 처리된 물질로는 30분 이내에 완벽히 가능했다. 이론상 3~4년의 사용으로 말라리아 모기의 완전 박 멸이 가능하리라는 시뮬레이션까지 이어졌으니, 혁신은 정말로 멀리 있는 것이 아닌 셈이다.

이후에도 강력한 살충 효과를 갖는 천연 물질의 구조들 을 참고해 새로운 살충제는 속속들이 탄생하고 있다. 니코틴(nicotine)의 구조를 모사한 약품들이나 버드나무에서 유래한 천연 살충제인 라이아노딘(ryanodine)을 활용하는 등 다채롭다. 모기의 퇴치는 어렵지 않다. 문제는 그 과 정에서 생태계의 중요한 축을 담당하는 꿀벌과 같은 이로운 곤충에 대한 파급력이다. 우리는 같은 실수를 반복해서 는 안된다. 효과적인 화학 무기를 신중하게 사용하려 노력하며, 다른 측면에서는 꿀벌의 위장 내부에서 살충제를 분해하는 인공 효소 예방약을 이미 개발하기도 한 만큼, 자 연과의 공존은 인간의 편의 만큼이나 계속해서 추구해야 할 가치겠다.




장 홍 제 Hongje Jang


• KAIST 화학과, 학사(2004. 3 - 2008. 2)

• KAIST 화학과, 박사(2008. 3 - 2013. 8, 지도교수 : 한상우)

• 서울대학교 화학과 박사 후 연구원(2013. 9 - 2015. 1, 지도교수 : 민달희)

• Georgia Institute of Technology, Department of Chemistry and Biochemistry 박사 후 연구원 (2015. 1 - 2016. 1, 지도교수 : Mostafa A. El-Sayed)

• 광운대학교 화학과 부교수(2016. 3 -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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