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예린, 권승용* | 경상국립대학교 화학과 조교수, srkwon@gnu.ac.kr
서 론
거시규모(macroscale)의 전극(지름 mm 이상 전극)을 이용한 고전적 전기화학에서 벗어나 1980년대 Wight- man과 Fleischmann 연구그룹을 중심으로 지름 25μm 이하 극미세전극(ultramicroelectrode, UME)을 이용하여 여러 가지 특징적인 전기화학 현상을 보고하였다. 거시전극에서는 전극 크기와 비교하여 확산층(diffusion layer)의 두께가 상대적으로 작기 때문에 선형적 확산이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것에 반해 UME는 확산층의 두께가 전극의 크기보다 상대적으로 크기 때문에 전극을 중심으로 반구형(hemisphere)에 가까운 확산 거동이 나타난다. 이러한 물질 전달 특성으로 인해 거시전극보다 UME는 큰 전류 밀도를 가진다. 더불어 일반적인 전기화학 측정에서 용액 저항을 최소화하고 작업전극의 전위를 기준전극 대비 정확하게 조절하기 위해 충분한 양의 전해질이 포함된 용액(10 mM 이상)을 이용한다. 이에 반해 UME와 같이 크기가 작은 전극에서는 전류가 거시전극에 비해 훨씬 작으므로 용액 저항에 의한 전압강하(또는 IR 강하)가 크지 않다. 즉, 소량의 전해질을 포함하는 용액에서도 전기화학 측정이 가능하며 심지어 전해질을 첨가하기 어려운 유기 용매에서도 신뢰성 있는 전기화학 측정 결과를 얻을 수 있다. 더불어 작은 전극 면적의 장점으로 충전 전류(charging current)를 최소화하여 전기화학적 활성종 (electro-active species)에 의해 나타나는 패러데이(산화환원) 전류가 상대적으로 뚜렷하게 관찰될 수 있다.
1990년대에 이르러 반도체 나노 공정 기술의 비약적인 발전으로 수백 나노미터 수준 또는 그 이하 규모의 전극 제작이 가능해짐에 따라 ‘나노전기화학’의 시대가 도래하였다. 나아가 전자빔리소그래피(electron-beam lithog- raphy)와 같은 패터닝 기술로 수~수십 나노미터의 정교한 나노구조체를 포함하는 나노복합체 전극 제작도 가능해졌다. 다양한 나노구조체 중에서 특히 나노포어/채널과 같은 나노다공성 구조물이 큰 주목을 받았다. 나노포어 내벽의 표면기능화를 통한 다양한 물리화학적 특성을 쉽게 부여할 수 있고 다공성 구조물과 전극을 결합한 나노전극 복합체를 구성하여 제한적인 공간에서 나타나는 분자나 이온의 물질 전달 현상을 이해하는데 유용하게 활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2010년대 이전에는 포어내벽 기능화를 통한 친수성 나노포어에서의 물질 전달 연구가 주를 이루었다. 2010년 이후부터는 친수성 나노다공성 물질에서 발생하는 수용액의 물질 전달 연구와 더불어 소수성 나노포어/채널에서 발생하는 물질 전달 제어 연구도 주목받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연구는 생체채널의 메커니즘을 이해하고 모사하고자 하는 노력에서 출발하였으며 현재도 연구 초기단계에 머물러 있지만 소수성 나노채널의 물질 전달 제어를 통한 응용 사례도 최근 보고되고 있다. 이 글에서는 소수성 나노포어/채널 구조체에서 나타나는 물질 전달 거동을 전기 화학적으로 측정, 해석한 연구들과 이러한 연구를 기반으로 센서, 수 처리, 약물 전달시스템과 같은 몇 가지 응용 연구 사례를 함께 소개하고자 한다.
본 론
1. 나노포어/채널의 제작 방법
나노다공성 구조체 제작은 매우 다양한 방법들이 사용되고 있으나 이 글에서는 매우 제한된 공간에서 나타나는 물질 전달 현상 연구에 적합한 나노포어/채널 제작 방법을 주로 소개한다. 나노포어를 제작하는 방법으로 트랙 에칭 기술(track-etching technique)이 매우 유용하게 사용되어 왔다[그림 1(A)]. 이 방법은 수십~수백 나노미터 지름의 나노포어를 단일 또는 저밀도 수준의 무작위 배열 (random array)로 제작이 가능하며, 제작된 나노포어의 양 끝단은 지름이 다른 원뿔 형태를 주로 보인다. 나노포어 내벽에 카복실기(carboxyl group)나 아민기(amine group)와 같은 작용기 도입을 통해 양/음 전하의 포어로 제작 가능하며, 고정된 작용기의 밀도, 용액 pH 조정 등에 따라 나노포어 전하 밀도도 쉽게 조절할 수 있는 장점을 제공한다. 더불어 탄화수소를 포함하는 알리파틱(aliphatic) 화합물, 플루오르카본(fluorocarbon)과 같은 분자를 내벽에 고정하여 소수성 나노채널을 얻을 수도 있다. 나노포어를 제작하는 방법으로 집속이온빔(fo- cused-ion beam, FIB)도 널리 사용되고 있다[그림 1(B)].[참고문헌 1] 전자빔(electron beam)을 사용하는 주사전자현미경(scanning electron microscopy, SEM)과 유사하나 전자빔 대신 이온빔(ion beam)을 이용하여 나노포어 구조체를 제작하는 방법이다. 이온빔 전류, 가속전압, 머 무름시간(dwell time)과 같은 변수들를 세부 조정하여 포어 지름, 길이, 형태 등을 정교하게 제작할 수 있는 큰 장 점을 제공하며, 나노포어 배열 제작 시 포어와 포어 사이의 거리(pore-to-pore distance)도 세밀하게 조절할 수 있는 장점으로 인해 매우 균일한 나노포어 배열 제작이 필요할 때 트랙 에칭 기술에 비해 더 선호되는 방법이다.
나노포어 제작 기술이 더욱 정교해지면서 단백질 검출, DNA 시퀀싱(sequencing) 뿐만 아니라 분자량이 크지 않은 저분자(small molecule), 심지어 최근에는 단원자 이온의 선택적 수송 연구도 보고되고 있다. 나노포어와 같은 제한된 공간에서의 분자, 이온의 거동은 이들의 집합체 거동과는 확연히 다를 것으로 예측되나 나노포어에서의 분자나 이온의 선택적 수송을 연구하기 위해서는 이와 비슷한 크기의 나노포어 제작이 반드시 필요하다. 하지만 수 나노미터 또는 그 이하의 나노포어를 재현성 있게 제작하는 기술의 부재로 연구가 진행되지 못하다가 최근 지름 수 나노미터 또는 그 이하의 나노포어를 제작할 수 있는 방법들이 제안되었다. 대표적인 사례로 2014년 Tabard-Cossa 그룹에서 10-30 nm 두께의 질화규소(SiNx) 막에 강한 전기장을 인가하여 절연파괴(dielectric breakdown)를 통해 지름 2 nm 수준의 나노포어를 제작 하였다.[참고문헌 2] 제작된 나노포어는 DNA translocation 측정에 유용하게 사용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였다. 절연파괴법을 이용한 방법은 경제적인 기기장치로 쉽게 나노포어를 생성할 수 있는 장점을 제공한다. 최근에는 전압, 전류 등 의 전기적 신호의 변조, 최적화를 통해 1 nm 이하의 나노 포어도 보고되었으며, 이를 활용한 생체모사형 이온선택 성 나노포어도 보고된 바 있다.[참고문헌 3] 이와 유사하게 투과전자 현미경(transmission electron microscopy, TEM)을 이용한 나노포어 제작 방법도 사용된다. 2003년 Dekker 그룹에서는 전자빔 리소그래피(electron-beam lithog- raphy)와 비대칭 식각(anisotropic etching)을 동원하여 지름 20 nm의 산화규소(silicon oxide) 나노포어를 만든 후 높은 에너지의 전자빔을 조사하여 축소를 유도하여 2 nm미터 수준의 나노포어를 제작할 수 있는 방법을 보고하였다.[참고문헌 4] TEM을 이용한 나노포어 제작법은 나노포어 크기를 실시간으로 관찰하면서 원하는 지름의 나노포어를 얻을 수 있는 장점을 제공하지만, 고가 장비의 접근성, 소재의 전처리 과정으로 광범위하게 사용되기는 어렵다. 이외에도 고밀도 나노채널 막 제작방법으로 블록 공중합체(block copolymer)를 사용할 수 있다. 대표적인 예로 polystyrene-b-poly(4-vinylpyridine) (PS-b- P4VP) 블록 공중합체 용액을 평면 기판에 스핀코팅하면 용매의 증발과 동시에 미세 분리(micro-separation)가 일어나면서 지름 10 nm 수준의 나노채널이 막(mem- brane)으로 제작된다[그림 1(D)].[참고문헌 5] 이와 같은 고밀도 나노 채널 막은 대량 고속 처리(high-throughput)로 이온, 분자의 수송이 가능하므로 수처리, 에너지변환, 스마트밸브 등 다양한 곳에 향후 응용될 수 있다.
2. 소수성 나노포어에서 외부 전기장 자극에 의한 물질 전달 조절
나노포어의 구조와 표면 전하 종류, 밀도에 따라 나노포어를 통과하는 이온의 흐름이 달라지는 것이 1990년대 후반, 2000년대 초반에 실험적으로 밝혀졌으며, 나노포어에 인가되는 전기장의 방향, 전해질의 이온세기에 따른 전압-전류 거동 등 다양한 연구가 진행되었다. 2010년대에 접어들면서 소수성 나노포어에서 일어나는 물질 전달 거동에 대한 연구도 주목받기 시작하였다. 소수성 나노포어에서 이온, 분자의 수송 연구는 생체채널의 작동 메커니즘을 이해, 모사하고자 하는 노력에서 시작되었다. 생체채널은 작동 기제에 따라 달리 분류되는데, 그 중 소수성 개폐 (hydrophobic gating) 기반 생체채널은 채널 특정 부위 에 소수성 구간이 존재하며 외부 자극이 없는 조건에서 증기 영역을 포함하여 어떠한 물질도 통과할 수 없는 물질 전달이 차단된 상태로 존재한다. 생체채널 안팎으로 특정 이온의 농도 차이가 발생하면 전기장이 발생한다. 이와 같은 자극에 의해 기화 상태의 마른 채널이 젖은 상태로 전환되며 이때 채널을 통한 선택적 물질 전달이 허용된다. 이러한 작동원리에 영감을 받아 소수성 나노채널을 제작하여 기본적으로 증기 구간을 포함하는 마른 상태의 나노 채널에서 압력, 전기장, 빛과 같은 외부 자극에 의한 나노 채널의 젖음(또는 습윤, wetting)과 마름(dewetting)의 변환을 관찰한 연구가 보고되었다.
2010년 Smirnov와 동료 연구자들은 탄화수소(hydro-carbon), 플루오르카본(fluorocarbon)으로 이루어진체 인형태의 분자를 포어 내벽에 고정하여 소수성 나노포어 를 제작하였다[그림 2(A)].[참고문헌 6] 외부 압력이 가해지기 전에는 소수성 나노포어는 기본적으로 마른 상태를 유지하고 있지만 외부에서 특정 압력 이상이 인가되면 포어 내부에 수 용액이 유입되면서 젖은 상태의 나노포어로 변환된다. 마른 나노포어 상태에서는 물을 포함한 분자, 이온의 수송이 차단된 off 상태를 유지하고, 외부 압력에 의해 나노포어에 물이 유입되면서 젖은 상태로 변환되면 나노포어를 통한 물질전달이 허락되는 on 상태로 변환된다. 연구진은 소수성 나노포어 내부로 물이 유입되어 젖은 상태로 변환되었을 때 소량의 증기방울이 존재하고 있어야만 다시 마른 상태로 전환이 가능하여 젖음-마름의 가역적 변환이 일어날 수 있는 것을 규명하였다. 같은 그룹에서 2011년 에는 압력 대신 외부 전압에 의한 소수성 나노포어의 젖음, 마름 가역적 변환을 보고하였다[그림 2(B)].7 300 nm 두께의 질화규소(SiNx) 막에 FIB을 이용하여 100 nm 지름의 나노포어를 제작하고 여기에 trimethoxyhexadecyl- silane과 같은 탄화수소 분자를 내벽에 고정하여 소수성 나노포어를 완성하였다. 강력한 소수성의 특성으로 나노 포어는 증기를 포함하는 영역의 존재로 나노채널 막 사이로 물질전달이 차단된 상태를 유지한다. 이 상태에서 나노 포어를 사이에 두고 2 V 이상의 강한 전압이 인가되면 나노포어에 물이 유입되어 젖은 상태로 변환되고 이에 따라 용매와 함께 이온, 분자의 수송이 가능하다. 이러한 소수성 나노포어의 젖음과 마름의 가역적 개폐 효과를 통해 on-off 상태의 이온 전류가 103배 차이나는 효과적인 밸 브시스템 구현이 가능하였다.
친수성 나노포어를 이용하여 이온이나 분자의 수송을 조절하는 연구는 많이 보고되었다. 나노포어의 비대칭 구조, 포어 내벽의 전하 종류, 나노포어를 가로질러 인가되는 전기장의 세기 및 방향 제어를 통해 나노포어를 통과하는 이온의 이동이 다이오드와 유사한 정류(rectification) 현상이 대표적으로 관찰되었다. 정류현상의 결과로 정방향, 역방향의 전류의 상대적 크기, 즉 높은 정류비(recti- fication ratio)가 얻어질 수는 있으나 역방향의 전류가 전자회로 다이오드처럼 전류가 “0”에 가까운 상태를 얻기는 힘들다. 하지만 소수성 나노포어에서는 외부 자극이 없는 기본 조건에서 나노포어 내부에 포함하는 증기 구간으로 물질 전달이 완벽히 차단된 off 상태 실현이 가능하다. 따라서 전압과 같은 외부 자극에 의한 소수성 나노포어의 on-off 상태 변환은 정교한 물질 전달 조절이 필요한 약물전달 시스템, 바이오/화학 센서, 에너지 저장/변환 장치 등 다양한 곳에 응용 가능성이 매우 크다.
Smirnov와 동료 연구자들이 보고한 소수성 나노채널을 이용한 물질 전달 조절 시스템을 더욱 최적화하여 같은 2011년도에 소수성 단일 나노포어를 이용하여 전류가 “0” 이 되는 절연상태를 구현하여 완벽한 on-off 상태의 물질전달 제어가 가능한 생체모사형 나노포어를 Siwy와 동료 연구자들이 보고하였다.[참고문헌 8] 12 μm 두께의 polyethylene terephthalate(PET) 막에 트랙 에칭 기술을 이용하여 한 쪽은 지름 500 nm, 다른 쪽은 4−30 nm 지름을 가지는 원뿔형 비대칭 단일 나노포어를 제작하였다. 소수성 단일 나노포어는 기본적으로 포어 내부에 증기 영역을 포함하여 완벽한 절연상태를 유지하지만, 나노포어를 사이에 두고 1 V 이상의 전압을 인가하면 마른 상태(dewetted state)를 유지하고 있던 나노포어에 물이 유입되면서 용매 물과 함께 포함된 이온이 비로소 나노포어를 통해 이동이 가능한 젖은 상태(wetted state)로 변환되어 상승한 전류를 나타낸다. 이 연구를 통해 스마트 물질 전달 제어의 응용에 더욱 근접하게 되었다.
3. 소수성 나노포어에서 다중자극에 의한 물질 전달 조절 연구
소수성 나노포어에서 전기장에 의한 나노포어의 젖음과 마름 연구는 전기장외 다른 외부 자극에 의한 소수성 나노포어의 물질 전달 조절 연구로 이어지게 되었다. Jiang 과 공동연구자들은 나노 채널의 전하 밀도 조절을 통한 물 수송을 보고하였다[그림 2(C)].[참고문헌 9] 두께 12μm의 PET 막에 지름 10 nm 정도의 나노채널을 형성하였다. 이렇게 제작한 나노채널은 카복실기를 포함하고 있으므로 pH 조정을 통해 채널 내부의 음전하 밀도를 조절할 수 있다. pH 10 용액에서는 카복실 음이온(carboxylate)로 존재하여 강한 음전하를 띤다. 그 결과로 채널은 강한 친수성으로 물의 수송이 원활한 상태가 된다. 반대로 용액 pH를 2.8로 조정하면 카복실 음이온이 양성자화(protonation)로 중성이 되어 소수성에 가까운 채널이 된다. 이에 따라 나노 채널을 통과하는 물의 수송이 제한되어 전류가 현저히 낮은 값을 보인다. 이 결과로 pH 조절을 통한 나노채널을 통과하는 물의 수송이 제어될 수 있음을 증명하였다. 추가로 용액 pH를 7로 조정하여 PET 나노채널 내벽에 존재하는 카복실기의 일부는 중성 전하로 낮은 전하 밀도를 띠고 카복실 음이온이 여전히 존재하는 다른 구간은 높은 음전하 밀도를 가진다. 이 상태에서 낮은 전하밀도를 가지는 부분은 소수성에 가까운 구간으로, 증기 영역을 포함하여 나노채널을 통과하는 물질 전달이 저해되어 전류가 낮은 상태를 보인다. 여기에 1 V, 또는 2 V 전압을 인가하면 나노채널에 물이 유입되는 젖은 상태로 변환되어 물질 전달이 원활한 상태로 전환되어 상대적으로 큰 전류를 나타낸다.
2018년에는 Jiang 그룹에서 12μm 폴리이미드(poly- imide) 막에 트랙 에칭 기술을 이용하여 나노포어 지름 500 nm, 10 nm의 원뿔형 비대칭 나노포어를 제작하고, 포어 내벽에 아조벤젠(azobenzene) 유도체를 고정하여 소수성 나노채널을 완성하였다[그림 2(D)].[참고문헌 10] 이 소수성 나노채널은 이전과 마찬가지로 전압을 조정하여 채널의 젖음과 마름 가역적 변환을 관찰할 수 있었다. 채널 내벽에 고정된 아조벤젠 유도체는 베타-사이클로덱스트린 (β-cyclodextrin, CD)과 선택적인 주인-손님 반응 (host-guest reaction)을 일으킬 수 있다. 나노채널에 430 nm 가시광선을 쪼여주면 채널 내벽에 고정된 아조 벤젠기가 트랜스(trans) 형태로 구조변환이 일어나고 CD 와 주인-손님 반응으로 결합하여 나노채널은 친수성 성질로 변환된다. 채널 내부에 물이 유입되어 물질 전달이 원활하게 일어난다. 반대로 365 nm UV 빛을 쪼여주면 트랜스형태의 아조벤젠기가 시스(cis) 형태로 전환되어 손님 분자인 CD의 분리가 유도되어 나노채널은 다시 원래의 소수성으로 돌아가게 된다. 연구진은 빛과 전기장 이중 자극에 의한 나노채널의 젖음, 마름의 가역적 전이를 이용한 물질전달 제어 시스템을 실현하였다.
이와 유사하게 나노채널의 친수성, 소수성 변환을 이용한 물질 전달 조절의 또 다른 방법으로 pH 감응형 나노채널 막을 이용한 사례도 보고되었다. Paul Bohn 그룹은 PS-b-P4VP 블록 공중합체를 이용한 효율적인 물질 전달 조절법을 보고하였다[그림 3(A)].[참고문헌 11] 블록 공중합체 용액을 평면 기판에 스핀코팅법으로 막을 제작하면, 고분자용액의 증발과 함께 고분자 내에서 미세 분리(micro-separa- tion) 과정이 일어난다. 이 과정에서 폴리스티렌(poly- styrene, PS)은 막의 뼈대를 형성하고 폴리비닐피리딘 (poly(4-vinylpridine), P4VP)이 지름 10~20 nm의 원 기둥 모양의 직선형 나노채널을 형성한다. 이 나노채널은 육방정계(hexagonally close-packed)의 조밀한 구조로 형성되어 고밀도 나노채널 막이 된다. 이때 막 내부의 나노채널 길이는 사용하는 고분자 용액의 농도와 스핀코팅의 회전속도에 따라 조절된다. pKa 4.8의 P4VP 나노도 메인(nanodomain)은 산성용액 (pH <4.8)에서는 피리 딘의 질소 원자에 양성자가 결합하여 양전하를 띠게 된다. 따라서 PS-b-P4VP 나노채널 막은 친수성 음이온 교환 막으로 작동한다. 반대로 pH 4.8 이상의 용액에서는 피리딘 질소 원자의 탈양성자화로 중성전하가 되면서 소수성 나노채널로 변환된다. 연구진은 금과 같은 평면 전극에 PS-b-P4VP 나노채널 막을 코팅하여 용액 pH에 따른 물 질 전달 거동을 Fe(CN)63- 음이온과 Ru(NH3)63+ 양이온을 이용하여 확인하였다. pH 4.8 이하에서는 예상대로 음이온 교환막으로 작동하여 Fe(CN)63-의 산화환원 전류 거동이 뚜렷하게 관찰되는 반면, Ru(NH3)63+의 경우 나노 채널 막을 통과할 수 없으므로 산화환원 전류가 관찰되지 않았다. 용액 pH 4.8 이상에서는 Ru(NH3)63+ 양이온, Fe(CN)63- 음이온 모두 포말 전위(formal potential)에서 산화환원 전류 거동이 관찰되지 않았다. 이 결과로 소수성 나노채널 막 내부에는 증기화된 물 방울(vaporized water bubble)을 포함하기 때문에 물뿐만 아니라 이온, 분자도 나노 채널 막을 통과할 수 없음을 증명하였다. 나아가 같은 연구그룹에서 PS-b-P4VP의 소수성에 주목하여 외부 전기장 자극에 의한 나노채널의 젖음과 마름의 가역적 변환을 보고하였다.[참고문헌 12] pH가 블록 공중합체의 pKa 4.8보다 높은 조건의 용액에서 나노채널 고분자막은 소수성 성질 로 물의 수송이 차단된 조건을 기본적으로 유지하고 있다. 여기에 나노채널 막이 코팅된 평면 작업전극에 -1 V보다 강한 음전위를 인가하면 이때 가해진 전기장에 의해 나노 채널 내부로 물이 유입되어 초기의 마른 상태에서 젖은 상태로 전환되는 전기습윤(electowetting) 현상이 유도된다. 이때 전해질에 포함된 전기화학 활성종이 나노채널 내부로 함께 유입되어 비로소 뚜렷한 환원전류의 증가를 관찰할 수 있다. 이 실험으로 PS-b-P4VP 블록 공중합체로부터 제작된 나노채널 막이 pH와 전위(potential) 이중 자극에 의해 조절되는 on/off 형태의 물질전달 제어 시스템을 개발하였다.
4. 소수성 나노포어의 젖음/마름 변환을 이용한 물질 전달 시스템 응용
2010년대 초기에는 전기장과 같은 외부 자극에 의한 소수성 나노채널에서 발생하는 마름과 젖음의 가역적 변환 관찰과 실험적 증명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다면, 최근에 는 소수성 나노채널을 이용한 응용 사례가 보고되고 있다. Paul Bohn 연구그룹은 70 nm 두께의 금전극(gold elec- trode), 70 nm 질화규소(SiNx), 70 nm 금전극, 70 nm 질화규소, 70 nm 금전극, 200 nm 산화실리콘(SiO2) 유 전층(dielectric layer)을 차례대로 증착하여 2차원 평면 에 3개의 금전극이 삽입된 다층구조(multilayer struc- ture) 막을 형성하였다.[참고문헌 13] 여기에 나노입자 리소그래피 (nanosphere lithography)와 반응성 이온 식각(reac- tive-ion etching) 연속 공정을 통해 나노포어 전극 어레 이(nanopore electrode array)를 제작하였다[그림 1(C)]. 2차원 평면으로부터 형성된 나노포어는 입구 지름이 대략 350 nm로 상층(top), 중간전극(middle electrode)은 고리형태(ring structure)로 나노포어 내벽을 구성하여 유입된 전해질과 직접적인 접촉이 가능하게 설계되었다. 맨 아래에 삽입된 70 nm 금 바닥전극은 전해질과 직접적인 접촉이 불가능한 질화규소에 파묻혀 있는 상태로 제작되 었다[그림 4(A)]. 이 바닥전극은 전해질과 직접적인 접촉을 하고 있는 중간, 상층전극과 다르게 전해질에 포함된 전기화학활성종과 직접적인 전기화학 반응이 불가능하다. 이 상태에서 바닥 전극에 +2 V를 지속적으로 인가하면 질 화규소의 절연파괴(dielectric breakdown)가 유도되어 대략 10 nm 이하의 작은 지름을 가지는 나노채널이 형성 된다. 이 상태에서 바닥전극에 기준전극 대비 +1.7 V 이상, 또는 −1.5 V 이하의 전위가 인가되면 질화규소 나노 채널이 마른 상태(dewetted state)에서 젖은 상태(wet- ted state)로 변환되어 전해질 용액이 채널 내부로 유입 되고, 비로소 바닥전극에서 전기화학 반응이 일어날 수 있는 조건이 성립된다. 이 실험으로 전기장(또는 전위)에 의한 질화규소 나노채널의 젖음, 마름 변환을 통해 3개의 전극(상층, 중간, 바닥전극)에 다른 전위를 인가하여 수용액 상에서 전기습윤(electrowetting) 기반의 트랜지스터 거동을 실현하였다.
소수성 나노채널 기반 물질 전달 제어의 또 다른 응용처는 초고감도 바이오/화학 센서 개발이다. Paul Bohn 그룹에서 2022년에 나노포어 전극 어레이 표면을 PS-b- P4VP 나노채널 고분자막으로 코팅하고, 용액 pH 조절을 통해 나노채널의 소수성-친수성 변환을 관찰하였다.[참고문헌 12] 더불어 pH 4.8 이상 용액에서 외부 전기장에 의한 소수성 나노채널의 가역적 마름, 젖음 변환을 통해 전해질 용액을 나노포어 내부에 유입시키고, 나노포어 내부 용액을 소수성 나노채널 막을 사이에 두고 벌크 용액으로부터 효과적으로 분리, 가둘 수 있는 방법을 보고하였다. 2023년에 는 이를 바탕으로 바이오센서에 적용한 사례를 보고하였다[그림 3(B)]. 포어 내부에 tyrosinase 효소가 고정된 나노포어 전극 어레이를 소수성 나노채널막으로 코팅하였다.[참고문헌 14] 그 다음 나노채널 고분자막이 코팅된 나노포어를 ty- rosinase 효소의 기질(substrate)인 4-에틸페놀(4-eth- ylpheonol, EP) 용액에 노출시켰다. 이때 나노채널 막의 소수성으로 인해 전해질용액은 막 밖에만 존재하고 나노 포어 내부는 여전히 비어있는 상태를 유지한다. 이 상태에서 나노포어 내부에 있는 전극에 -1.2 V 또는 이보다 더 강한 음전위를 인가하면 소수성 나노채널에서 전기습윤이 일어나면서 벌크 용액이 나노포어 내부로 유입된다. 이때 물과 함께 효소의 기질 EP가 포어 내부로 유입된다. 유입 된 EP는 나노포어 내부에 미리 고정된 tyrosinase의 촉매 반응으로 전기화학활성 분자인 퀴논(quinone)으로 변 환된다. 나노포어 전극 2개에 산화, 환원 전위를 인가하여 레독스 순환(redox cycling)반응으로 퀴논에 의한 전류를 증폭 검출할 수 있다. 비교군으로 나노채널 고분자막이 없는 오픈(open) 나노포어 전극 어레이의 경우 EP가 포어 내부에 고정된 tyrosinase 효소에 의해 퀴논으로 변환 되더라도 지속적인 확산으로 나노포어에서 벌크 용액으로 유실된다. 따라서 긴 시간이 주어지더라도 나노포어 내부 퀴논 농도의 연속적인 증가를 기대할 수 없으며, 이는 민감한 바이오센서를 개발하는데 치명적인 단점으로 작용한다. 그에 반해 소수성 나노채널 막이 코팅되어 있는 나노 포어의 경우 효소 생성물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나노포어 내부에 계속 축적되어 소량의 효소가 존재하더라도 축적 된 생성물의 전기화학적 검출로 초고감도 센서 개발에 유용하게 사용될 수 있다.
소수성 나노채널의 또 다른 응용처는 조절된 약물 전달(controlled drug delivery)과 같이 on-off 형태의 스마 트 밸브 시스템이다. 이러한 사례로 2018년 Zhai와 공동 연구자들은 산화알루미늄(anodized aluminum oxide, AAO) 나노채널 막 표면에 perfluorooctane-sul- fonate(PFOS)가 도핑된 폴리피롤(polypyrrole, PPy)을 코팅하였다[그림 4(B)]. [참고문헌 15] PFOS가 도핑된 PPy 필름은 산화 전위가 인가되었을 때는 강한 소수성의 성질로 인해 수용액에 포함된 pulsatile 약물이 AAO 채널을 통과하지 못하는 물질 전달이 차단된 “off ”상태가 만들어진다. 이 상태에서 PPy 필름에 환원전위를 인가하면 PPy필름에 함께 존재하는 도펀트(dopant) PFOS 음이온이 PPy 필름에서 이탈이 유도되어 친수성의 성질로 변환된다. 이에 따라 물과 함께 포함된 pulsatile 약물이 AAO 채널을 통과하여 소수성의 PPy 필름 조건보다 크게 증가하는 전류를 보여준다. 물질전달 on-off 게이팅 비율(gating ratio)은 105배로 소수성 나노채널을 이용한 물질 전달 제어가 매우 효과적임을 의미한다.
결 론
소수성 나노다공성 구조체를 활용한 마름/젖음에 기반한 물질 전달 제어 방법은 2010년대에 이르러 실험적으로 증명이 되기 시작한 상대적으로 초기 상태에 해당하는 연구분야라 할 수 있다. 소수성 나노다공성 구조체에서 보여 주는 외부 자극에 의해 조절되는 on-off 형태의 물질 전달 제어 시스템은 물질 전달이 완벽하게 차단되는 off 상태의 구현이 가능한 것이 이미 실험적으로 증명되었다. 더불어 소수성 나노채널/포어를 통과하는 물질전달을 제어할 수 있는 외부 자극으로 전기장, 빛, 주인-손님 반응, pH, 나노포어/채널 내벽의 전하밀도 조절 등 여러 가지 자극이 동원될 수 있음이 보고되었고 앞으로도 더욱 다양한 요인에 의한 소수성 나노채널의 물질전달 조절 시스템이 개발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러한 기초 연구를 바탕으로 앞서 소개한 초고감도 센서, 수용액 기반 이온트로닉스(iontronics), 정교한 약물 전달 시스템 외에도 에너지 변환/저장 장치, 물의 정화 및 처리 등 매우 다양한 곳에 향후 응용될 것으로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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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 예 린 Yerin Bang
• 경상국립대학교 화학과, 학사(2017.3 - 2023.2)
• 경상국립대학교 화학과, 석·박사 통합과정(2023.3 - 현재, 지도교수 : 권승용)
권 승 용 Seung-Ryong Kwon
• 인천대학교 화학과, 학사(2001.3 - 2009.2)
• 인천대학교 화학과, 석사(2009.3 - 2011.3, 지도교수 : 김규원)
• 서울대학교 화학부, 박사(2011.3 - 2016.8, 지도교수 : 정택동)
• 서울대학교 화학부, 박사 후 연구원(2016.9 - 2016.10, 지도교수 : 정택동)
• University of Notre Dame, Chemical and Biomolecular Engeering 박사 후 연구원(2016.11 - 2021.2 지도교수 : Paul W. Bohn)
• 경상국립대학교 화학과 조교수(2021.3 - 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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