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홍제 | 광운대학교 화학과,hjang@kw.ac.kr
역사를 바꿔 온 화학 물질들은 수없이 많았다. 금속과 합금, 비료, 항생제, 반도체는 누구에게나 연상되는 대표적인 인류사의 화학적 이정표다. 물론, 그 외에도 긍정적이거나 부정적인 파급력으로 시대의 흐름과 정책의 방향, 사회의 구조를 뒤바꿔온 물질이 수두룩하다. 살아가는데 필수적이라는 의·식·주라는 커다란 구분 속에서 단순한 생존을 넘어 행복과 만족을 추구하며 물질의 수요는 계속해서 다양화되었다. 그중 용액과 농도에 대한 기초적인 문제부터 탄수화물의 화학까지 빠지는 곳 없는 작고 간단한 물질인 설탕에 초점을 맞춰 이야기를 시작해 보려 한다.
설탕을 찾아서
대항해시대의 장거리 무역, 미식 문화의 발달, 행복감을 불러오는 사치품, 그리고 아이티(Haiti)의 혁명까지 설탕이 관여한 흐름은 다채롭다. 그 자체로 매혹적인 단맛은 잘 익은 과일이나 벌꿀을 제외하고는 쉽게 얻을 수 없었다. 그 때문에 고대 로마에서 납 주전자에 포도주를 넣고 졸여 얻었던 감미료 사파(Sapa)나 녹주석에서 유래한 출처부터 고귀한 달콤한 가루는 인기였다. 후에 그 정체가 산화된 포도주 속 아세트산과 납의 반응에서 생겨난 아세트산 납(lead acetate)나 에메랄드에서 분리된 베릴륨(beryllium, Be)이어서 중독과 암을 유발한다는 사실이 밝혀지며 막을 내렸지만 말이다.
설탕을 얻는 가장 쉬운 방식은 식물에서 추출하는 것이다. 사탕수수(sugarcane)와 사탕무(sugar beet)가 대표적인 원료라는 사실은 명칭에서 유추할 수 있다. 열대 지방을 배경으로한 생존 프로그램에서 심심찮게 등장해 잘근잘근 씹어먹으며 즐거움을 주는 사탕수수는 흥미로운 식물이다. 흔히 미국의 광활한 농경지에서 재배되는 어마어마한 양의 옥수수나 밀이 가장 대표적인 농작물로 떠오르지만, 실상은 그 모든 명예가 사탕수수에게 주어질 수밖에 없다. 연간 최대 생산량을 갖는 농작물이 사탕수수이며, 거래총액으로 고려해도 다음 순위인 밀의 30배에 달하는 초대량 고부가가치 식물이기 때문이다. 단순한 농업과 산업을 넘어 사탕수수는 입사 태양광의 무려 7%에 달하는 에너지를 바이오매스로 전환한다는 특징이 있다. 환경만 적합하다면 높은 효율로 당분을 얻을 수 있는 사탕수수의 최대 생산지는 현재의 아이티 공화국이었다. 당시 전 유럽에 공급되는 커피의 60%와 설탕의 40%를 담당하던 아이티에서 혁명이 발생해 문제가 발생하자 이를 해결하기 위한 새로운 원료가 필요했으며 그것이 사탕무였다.
사실 사탕수수와 사탕무는 성분적으로 동일한 설탕이지만 보다 선호되는 것은 사탕수수에서 추출된 설탕이다. 땅 위에 솟아 자라난 줄기에서 설탕이 추출되는 사탕수수는, 땅 속에 묻혀 있다 뽑혀진 후 보관되고, 지독한 냄새를 풍기는 몇 단계 작업을 통해 설탕으로 변하는 사탕무에 비해 맛과 향이 가볍고 향긋하다 알려져 있다. 언제나 천연 비타민C와 합성 비타민C의 차이가 없다 이야기하는 화학자들도 이 평가로 불편함을 느낄 필요는 없다. 단 0.05% 내외의 다른 성분으로 느껴지는 미세한 향 차이가 만들어진 것일 뿐이다.
그림 1. 달콤함은 이제는 흔하지만 과거에는 충격이었다 (출처: Wikimedia commons)
맛의 범위를 넓히다
단맛은 매혹적이지만 여러 맛 중 한 가지일 뿐이다. 심지어 단맛 하나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가장 순수한 단맛의 집합체라 여겨지는 사탕이나 시럽도 새콤한 맛이 뒤섞이고 초콜릿도 필연적으로 씁쓸한 맛이 절묘한 비율로 섞여 완성된다. 맛에 대한 이론과 해석도 시간에 따라 달라져 왔다. 오래전 공부한 경우에는 혀의 각 부위에 따라 단맛, 쓴맛, 신맛, 짠맛을 느낀다고 배웠을테고, 이후에는 혀의 특정한 위치에 얽매여있지 않다는 사실과 더불어 감칠맛(우마미)이라는 새로운 맛이 추가된다. 많은 경우 이 단계에 머물러 있겠지만 지금은 하나의 장막이 더 걷혀져 있다. 고소함을 느끼게 하는 지방의 맛, 즉 올레오거스터스(oleogustus)가 2012년 맛의 한 종류로 인정받았다. 새로운 맛을 찾고 분류하는 시도는 전후로도 계속되어 왔다.
맛이 아닌, 공감각에서 유래한 유사 맛의 일종으로 매운맛과 떫은맛이 존재하는 것은 유명하다. 둘 모두 미각이 아닌 혀에서 느껴지는 촉각에 해당한다. 요즘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불맛 역시 후각적 요인에 좌우되는 공감각적 유사맛이다. 가끔씩 미각이 예민한 순간 느껴지곤 하는 약간은 비린듯한 물의 맛은 신맛의 일종이며, 동전이나 젓가락을 입에 물었을 때 순간 느껴지는 금속의 맛은 떫은 맛의 또다른 형태로 드러났다. 이제는 많은 사람들을 중독시키는 탄수화물의 맛을 별도로 이야기할 수 있을지, 감칠맛을 넘어선 깊은 맛이 존재할지, 지방맛과는 구분되는 고소한 맛이 따로 있을지 이야기되고 있다.
그림 2. 지방맛은 가장 최근 확인된 실재하는 맛의 일종이다 (출처: Wikimedia commons)
결국, 맛은 특정한 이온, 분자, 물질이 혀와 접촉하며 이온 채널을 통해 유입되고 신경을 자극해 신호를 보내는 결과로 요약된다. 다시 한번 단맛으로 이야기를 돌려 보자. 단맛 역시 결론적으로 생명체의 중앙처리 시스템에 의한 전기 신호의 해석이겠지만, 그 자극을 만들게 되는 과정은 무엇일지 살펴본다면 다시금 화학이다. 분자와 미뢰의 수용체 사이에 형성되는 두 개의 수소결합이 단맛이 된다. 수소를 매개체로 결합에 제공하는 하나의 작용기(AH+ 자리)와 이로부터 약 3 Å 떨어져 있는 수소를 제공받기 위한 또 다른 작용기(B- 자리)는 미뢰와의 결합을 이루며, 판데르발스 상호작용을 위한 인근 입체자리(X 자리)의 들어맞음에 따라 단맛을 느끼기 위한 신호가 발생한다.
합성 감미료와 실험실 안전의 모순
분자와 미뢰의 수소결합 여부로 단맛이 결정된다면 분자 수준에서 맛을 설계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인간의 혀는 pH 7 미만의 산성 조건에서는 양성자(H+)로 인해 신맛을 느끼기 시작하며, 반대로 pH 7 초과의 염기성에서는 쓴맛을 느끼게 된다. 수소결합을 만들고자 무작정 질소를 넣었다가는 아민(amine) 특유의 쓰고 비린 맛만이 남는다. 결국, 단맛을 위해서는 중성이며 질소가 포함되지 않고 최소한 인근에서 두 개의 수소결합이 가능한 작은 크기의 화합물이어야 한다는 조건이 드러난다.
설탕을 비롯한 당 분자가 아님에도 단맛을 갖는 유기화합물을 합성감미료라 한다. 설탕의 단맛을 기준으로 할 때 가장 약한 합성감미료의 경우인 사이클라메이크(cyclamate) 조차 30배에 달한다. 그보다 조금 더 단 것은 지금도 우리가 먹는 음료, 과자, 술 등에 포함된 아스파탐(aspartame)이며 설탕의 200배 단맛을 간단히 만들어낸다. 재미있는 사실은 아스파탐으로부터 미뢰와 분자의 결합이 단맛을 만든다는 사실을 찾아볼 수 있다는 점이다. 아스파탐은 두 가지 아미노산이 연결된 형태로 두 곳의 입체자리가 존재하는데, 감미료로 사용되는 L,L 형태는 단맛을 갖지만 D,L 형태는 오히려 쓴맛을 자아낸다. 수소결합은 가능하나 입체자리에 결합하지 못하고 반대 방향을 향하고 있기에 나타나는 결과이다. 아스파탐보다 달콤한 것은 한때 위해성 여부로 많은 논란이 있어왔던 사카린(saccharin)이며 같은 양 일때의 설탕에 비해 450배나 달다. 최근 많은 관심을 받는 것은 가장 적은 양으로도 충분한 단맛을 얻을 수 있는 수크랄로스(sucralose)다. 설탕의 600배에 달하는 단맛을 만들 수 있는 것은 설탕과 완벽히 동일한 형태를 갖지만 단 세 곳의 원소가 염소(Cl)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당 분자 두 개가 결합해 이루어진 설탕은 포도당과 과당으로 분해되지만, 수크랄로스는 미세하게 다른 구조로 인간이 흡수해 사용할 수 있는 당의 형태가 될 수 없기에 우려되는 칼로리 문제에서 자유롭다.
다양한 합성감미료의 종류와 구조, 단맛을 내기 위한 미뢰와의 결합 형태도 흥미롭지만, 가장 중요한 사실은 도대체 어떻게 ‘달다’는 사실을 발견했는가이다. 대략적이나마 단맛을 갖기 위한 최소한의 분자 구조적 요건을 확립했으니 감미료 발견이라는 목적을 우선해 설계와 합성이 이루어졌을 것으로 기대되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분명 감미료는 거대한 산업 분야에 속하나 인간이 식품으로 먹기 위한 안전한 물질을 개발하는 것은 단순한 맛의 구현을 막아서는 거대한 장벽이 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안전에 대한 중요성은 실험실에서 쉬지않고 강조되지만, 역설적으로 합성감미료 발견의 역사는 모두 우연과 안전불감증에 뿌리를 두고 있다.
그림 3. 아스파탐은 입체구조에 따라 단맛과 쓴맛을 오간다 (출처: Wikimedia commons)
사이클라메이트는 실험실에서 담배를 피다 실험 테이블 위에 잠시 올려두고 다른 일에 집중했던, 그리고 다시금 입에 가져다 대며 단맛을 느낀 Michael Sveda의 업적이다. 실험실에서 흡연하는 것도, 테이블에 올려두는 것도, 그리고 다시 입에 가져다 대는 것도 전혀 이해되지 않지만 어쨌든 다행히 사고 없이 인간에게 새로운 단맛을 선물했다. 아스파탐의 경우에는 손가락에 침을 묻혀 종이를 넘기는 습관이 있던 James M. Schlatter가 손을 씻지 않은 채 실험 보고서를 읽다 예상치 못한 단맛을 느끼며 발견되었다. 사카린은 실험 후 손을 씻지 않고 저녁식사를 하던 Constantine Fahlberg라는 대학원생이 빵에서 발견한 기적이다. 가장 당혹스러운 것은 영어에 취약해 시험해보라(test)는 지시를 맛보라(taste)는 말로 알아들은 Shashikant Phadnis라는 대학원생이 수크랄로스를 찾아낸 사건이 아닐까 싶다.
위대한 발견은 우연 속에서 이루어진다지만 실험실 안전 미이행이 달콤함이 돌아온 현실은 어떤 평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물론 이제는 이온 전도성 하이드로젤 인공 혀 등으로 맛을 감지하는 기술도 생겨나고 있으니 과거의 해프닝으로 남겨두는 것으로 충분할 것이다.
장홍제 (Hongje Jang)
KAIST 화학과, 학사 (2004.3-2008.2)
KAIST 화학과, 박사 (2008.3-2013.8, 지도교수: 한상우)
서울대학교 화학과 박사 후 연구원 (2013.9-2015.1, 지도교수: 민달희)
Georgia Institute of Technology, Department of Chemistry and Biochemistry 박사 후 연구원 (2015.1-2016-1, 지도교수: Mostafa A. El-Sayed)
광운대학교 화학과 부교수 (2016.3-현재)
Comentário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