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홍제 | 광운대학교 화학과,hjang@kw.ac.kr
우리는 ‘천연’이라는 단어에서 자연스럽고 싱그러움을 느끼고 ‘인공’이라는 표현에서는 삭막함과 작위적임을 느낀다. 물론 화학자의 입장에서는 조금 다를지도 모르겠다. 천연물의 복잡한 구조를 재현하기 위해 골머리를 싸매며 반응을 파헤치며, 그 모든 과정은 인공이거나 생체 반응의 모사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대중적으로는 완벽히 동일한 물질이더라도 천연과 인공이 부여하는 가치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 레몬에서 직접 짜내 추출했다는 비타민C는 제아무리 청결하고 안전한 합성 경로를 통해 얻어진 초고순도의 합성 비타민C보다 높은 가격으로 대우받는다. 우리 모두는 이 아이러니한 사회적 기준에 납득하지 못하면서도, 자유로운 선택권을 준다면 자신도 모르게 천연에 손을 뻗곤 한다.
인공의 가치에 대하여
인공artificial이라는 단어가 부정적 뉘앙스를 갖게 된 것은 오래지 않은 현대 시점에 이르러서다. 먼 과거에는 호문 쿨루스와 같은 인공 생명을 구현하기 위해 파라켈수스 이래 파우스트의 제자였던 바그너 박사의 실험실까지 탐구의 대상으로 그려졌다. 여러분과 나의 문화적 시대적 기억이 다를 수 있겠지만, 어릴 적 공상과학 만화나 소설에서 그려지던 인공, 즉 인조인간이나 사이보그, 합체 로봇과 변신 로봇은 불쾌함이 아닌 낭만이었다.
모든 문제는 빠르게 급변하는 기술 흐름을 사회적 인식이 따라가지 못할 경우 싹트기 시작한다. 인간과 부대끼며 살아가는 일상과는 다르게 매체에 소개되는 인간을 닮은 움직이는 인공물들은 불편함으로 다가온다. 불쾌한 골짜기 (Uncanny valley)라는 표현으로 미묘하게 어긋한 감각의 유사-인간 외형적 객체들이 미지의 혐오를 자극하기도 한다. 닮아가는 모습과 기능에서 우리의 위치를 빼앗진 않을까 걱정하며, 한편으로는 과거의 러다이트 운동(Luddites movement)을 재현하고자 하는 욕구마저 불러 일으킨다 (나노입자를 스스로 합성하는 기계장치가 발명되고 있다는 사실을 본 나만의 심정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화학자로서 인공은 언제나 추구해야 할 가치다. 가장 흔한 것들로부터 귀중한 물질을 만들어내는 생명의 연금술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식물의 광합성을 인공적으로 재현하려는 도전은 태양광 발전을 탄생시켰다. 작은 도전은 현재의 지구 온난화와 환경 위기를 극복할 하나의 장치로 기대받고 있다. 어디든 달라붙는 도마뱀붙이나 홍합, 다공성 구조의 불가사리 골격, 오색으로 빛나는 어패류의 껍질내부 등 모든 자연을 인공적으로 모사하는 과정에서 화학은 발달하고 또 다른 미래로 연결되어 왔다.
▲ 인공적인 무엇인가는 단순히 만들어진 것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 같은 구조와 형태라도 규모에 따라 얻어지는 정보의 종류는 달라진다.
[출처: Wikipedia]
인공의 목적에 대하여
인공의 최종적인 목적은 하나로 귀결되지 않는다. 쉽사리 얻을 수 없는 물질을 다량 얻기 위한 자연친화적이고 경제적인 방식을 위해서, 탐나는 자연의 기능을 인위로 만들어 활용하기 위해서 등 여러 기준이 있겠다. 하지만, 내가 생각하는 인공의 가장 매력적인 목적은 설명할 수 없는 자연을 대체하는 시뮬레이션에 있다.
화학은 물질이 있어야 성립한다. 물질을 연결하고 쌓고 관계짓는 과정을 통해 유용하거나 새롭거나 흥미로운 새로운 물질이 탄생한다. 물질로 물질의 스펙트럼을 넓히는 과정이자, 최근 듣게 된 가장 매력적인 표현을 빌리자면 ‘우주의 법칙과 삶의 규칙 사이에 다리를 놓는 과학’이다.
작은 블록으로 만들 수 있는 것은 우리의 창의력에 따라 수없이 다양하다. 약간은 어이없을지도 모르지만 흥미로운 제작품은 조금 더 큰 블록이 될 수도 있다. 가로 2칸 세로 4칸 높이 1칸의 가장 작은 레고 블록 단위체를 여러 개 쌓아, 같은 비율을 갖는 가로 20칸 세로 40칸 높이 10칸의 거대 블록을 만드는 셈이다. 아무런 의미가 없는 장난으로 비칠지 몰라도 그 자체로 다른 제안으로 이어진다.
만약 가장 작은 블록들로 작은 집 모양 구조물을 하나 제작 했다고 생각하자. 지붕과 벽면, 기둥이나 주위 조경까지 블록의 사용에 따라 실제 건물과 미학적으로 다를 바 없는 멋진 결과를 창조할 수 있다. 하지만 미학에서 멈출 뿐, 실용으로 다가설 수는 없다. 실제로 들어가 지내보며 편의성과 유용함을 평가하고 확인하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햄스터나 토끼를 집어넣어 사육장처럼 활용해 볼 수는 있겠다. 그것이 인간에게 그대로 적용될 수 있을 리는 없지만 말이다. 하지만 사용한 단위 블록이 가장 작은 블록들을 연결해 만들었던 10배 큰 블록이라면 어떻게 될까? 우리가 제작한 집의 크기는 조금 전 구조물보다 10배 더 거대한 규모가 될 것이며, 문을 열고 들어가 눕거나 벽에 기대앉을 수 있다. 또다시 블록으로 만든 가구를 채워넣어 볼 수도 있고, 전기나 수도를 연결할 수 있다. 나라마다 있는 레고 랜드(Lego land)를 방문하거나 덴마크 빌룬에 위치한 거대한 레고 하우스(Lego house)와 같다. 활용하며 얻을 수 있는 정보는 단순히 블록으로 만든 집은 살기 편하다거나 비효율적이라는 단편적인 의미가 아니다. 많은 비용과 노력이 필요한 새로운 건축물을 설계할 때, 간략하게나마 시뮬레이션하고 평가할 수 있는 도구가 주어지는 셈이다. 블록으로 만드는 방적기, 프린터 등을 넘어, 이제는 세포를 3D 프린팅하는 기기까지 블록으로 간단히 설계해 조립할 수 있을 정도니 인공의 가치는 모사를 넘어 도구의 측면으로 비춰 질 수도 있겠다.
그리고 인공의 화학에 대하여
인공을 찬미하는 것과 같은 매우 긴 서론은 최근 눈여겨 봤던 하나의 흥미로운 학술 논문의 내용을 공감하기 위한 작업이다. 이 글을 읽고 있는 학식 있는 유사 직종의 독자들 이라면 굳이 앞선 인공찬가가 없었더라도 흥미를 느끼기 충분할 듯싶다.
아무리 작은 세계로 다가가더라도 화학에는 한계가 있다. 세상을 이루는 모든 물질의 기본 단위라는 원자보다 작은 크기는 화학이 성립하지 않는다. 원자 크기를 보는 기술도 속속들이 등장하고 있다. 원자 해상도의 전자현미경이나, 최근 몇 달 사이 발표되어 온 옹스트롬 해상도의 형광 현미경과 탄소-수소 결합의 변화를 측정하는데 사용한 오비탈 해상도 X-선 기법 등이다. 하지만 관측과 해석은 또다시 구분된다.
앞서 인공적으로 큰 규모를 만들어 시뮬레이션이 가능함을 주장했다면, 화학의 근간이 될 분자를 구성하기 위한 원자를 인공적으로 만드는 가장 작은 방향으로의 인공을 살펴 보고자 한다. 너무나 부정확한 관계로 원자와 관련된 많은 것에는 근사나 가정을 비롯한 애매함들로 가득하다. 원자의 규모를 이야기하기 위한 전자 덩어리의 경계는 파동함수와 확률로 어렴풋이 설명되며, 양자역학과 불확정성의 원리 등 모든 애매함의 요소들이 납득을 강요한다. 혼성 오비탈과 분자 오비탈, 공명 구조 등 모든 기본적 화학 원리와 크게 다르지 않다. 흔히 학창 시절 산염기 문제를 풀며 초기 농도에 비해 천여 배 작은 변화량을 편의상 근사해 무시하듯, 원자 핵과 전자의 질량 차이는 보른-오펜하이머 근사로 처리된다. 원자핵들의 진동이나 회전 운동에 비해 전자의 움직임이 압도적으로 빠르니 슈뢰딩거 방정식을 두 개로 나누어도 근사 가 성립한다는 식이다. 만약 이 모든 근사가 적용되는 조건에서 충분히 작은 규모로 인공 원자가 재현된다면 어떨까?
블록으로 큰 블록을 만들었던 예시와 같이, 우리는 고정된 위치에 커다란 인공 원자를 만들기 위한 적절한 작은 실제 원자를 수없이 가지고 있다. 그 중 세슘(Cs)은 가득 차있는 안쪽 껍질의 오비탈들을 제외하면 6s 오비탈에 단 하나의 전자만이 남아 있다. 슈테른-게를라흐(Stern-Gerlach) 실험에서 같은 경우인 은(Ag) 원자를 이용해 스핀 양자수를 규명했던 것과 같다. 커다란 규모에도 불구하고 단 하나의 스핀은 세슘 원자를 하나의 인공 전자로 고려하기에 최소한 의 요건을 만족하는 셈이다.
세슘 원자를 원하는 위치에 배치하는 것은 과거 35개의 제논(Xe) 원자를 니켈 표면에 배치에 IBM이라는 웅장한 문구를 새겼던 일이나, 그로부터 3년 후 48개의 철(Fe) 원자 를 구리 표면에 울타리 모양으로 고정했던 것을 생각한다면 불가능한 일이 아니다. 주사 터널링 현미경을 통해 원자핵 이 위치해야 할 중앙을 비워둔 채, 주위에 옥텟 규칙이 적용 되는 온전한 저주기 전형원소의 모양새대로 8개의 세슘 원자를 배치한다면 보른-오펜하이머 근사가 적용되는 원자로 만들어진 인공 원자를 구현한 셈이다.
두 개의 원자가 인접해 전자 밀도가 중첩을 이룬다면 결합 혹은 반결합을 형성할 수 있다. 두 개의 인공 원자를 11 nm 간격을 두고 나란히 배치했을 때 관찰되는 피크 에너지 에서의 전도도(dI/dV) 이미징은 일반적인 원자의 결합/반 결합과 마찬가지의 궤도 분포를 보였다. -133 mV에서의 결합 궤도 공간 분포와 -86 mV에서의 반결합 궤도 공간 분포의 형태가 나타난다. 조금 더 실제적인 형태를 보기 위해 벤젠과 사이클로뷰타다이엔의 형태로 인공 원자들을 배치 했을 경우에도 혼성화를 통한 궤도 지도가 이론적으로 통용 되는 것과 동일하게 나타났다. 심지어 1,3-뷰타다이엔의 cis와 trans 구조에서의 입체 장애 여부에 따른 에너지 차까지 그대로 확인되니 원자로 만든 인공 원자로 만드는 인공 분자로 분자를 보는 시도는 성공적이겠다. [E. Sierda etal., Science 2023, 380, 1048-1052]
인공 원자를 이용한 양자 시뮬레이션을 두고 미약한 시작 이라 말하기 어려워 보인다. 현재는 수많은 분야에 섞여들어가 활개치는 나노화학 분야가 지각없이 기원전부터 사용 되어 왔음에도 20세기 중반에 이르러 입증된 것은 커다란 심증과 미약한 물증 때문이었다. 틴들 현상이나 이색성 (dichroism) 등 미루어 짐작할 요소들은 많았지만 당시 광학의 한계를 극복할 전자 현미경 없이는 규명될 수 없었다. 하지만 그 이후 상황은 급격히 변했음을 모두가 알고 있다. 인공 원자를 이용한 보편적 진실에 대한 다른 관점에서의 실험적 규명은 이후 많은 것을 바꿀 것이다. 원자 규모의 3D 프린팅 기술이 확립되거나, 모사할 수 있는 대상의 범위가 넓어짐에 따라 블록으로 만들어진 커다란 블록으로 지어진 집의 실용성을 체감하듯, 인공과 자연의 사이에 다리를 놓는 순간을 보고 있는지도 모른다.
▲ 세슘 원자를 인공 전자로 삼아 표면에 고정시켜 인공 전자를 만든다.
[출처: Wikiped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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