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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이 불편해진 세상에 대하여


자연(nature)이라는 단어에서 느껴지는 것. 서로 합의 한 바 없음에도 우리는 싱그러움과 푸름, 생명과 아름다움 을 떠올린다. 그와는 반대로 인공(artificial)이라는 단어 는 날카롭고 기계적이며, 삭막하고 인위적인, 금속성으로 가득한 께름칙한 공감각을 연상하게 된다. 하지만 자연과 인공은 대응되는 개념일지언정 별다르지 않다. 인간에 의 해 만들어진 모든 것은 인공이며, 자연은 그 여집합에 해 당한다. 자연적인 것이 언제나 최선을 의미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기능을 상실한 자연적인 장기 대신 사용될 인공 심장은 자연을 모사해 인간에 의해 만들어졌고 불쾌함 대 신 생명을 구하는 아름다움으로 가득하다. 자연과 인공, 안전과 위험 사이의 간극은 현대 화학이 직면한 가장 고민 스러운 측면 중 하나다.

 

인식은 의도에서 기인하지 않는다

 

언제부터인가 화학은 대중에게 불편함의 대상이 되었다. 화학자들은 화학이 만들어낼 빛나는 미래를 가장 아름답게 기대한다. 수소연료를 이용하는 친환경 운송수단이나 무한한 가능성을 지닌 상온초전도체, 극한 환경에서도 유용한 합금과 놀라운 효율의 태양전지까지. 하지만 우리가 우려하는 것은 조금 더 현실적인 이야기들이다. 환경호르몬이라는 이름이 더 친숙해진 내분비교란물질, 식품과 화장품 속 방부제, 어디에나 있는 중금속 미세먼지나 유독성 화학물질까지. 오염은 번영의 대가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하지만, 편리함 뒤에 드러나는 부채는 뼈아프다. 플라스틱은 반도체와 더불어 첨단 시대의 기반이 되었지만, 미세 플라스틱이라는 또 다른 과제를 안겨줬고, 플라스틱을 최소화하려 도입된 기발함의 상징과도 같은 종이 빨대는 오히려 젖지 않도록 코팅하는 데 사용되었다는 과불화 화합물(perfluoroalkyl substance)의 유출로 더 큰 문제로 변하고 있다. 이 모든 현상의 끝은 화학공포증(chemo- phobia)이라는 사회적 현상으로 표출된다.

대상에 대한 공포는 인지에서 시작된다. 그리고 대상을 인지하는 것은 오롯이 우리의 경험과 언어, 문화로부터 형성된 결과로 볼 수도 있다. 우리는 인간을 닮은 귀신이나 심령현상을 쉽사리 떠올리지만, 단 한 번도 본 적 없는 형상의생명체를 괴기의 대상으로 어둠 속에서 체감하지 못 한다. 화학에도 인지는 저변에 깔려 있다. 완벽히 정수된 순수한 물 네 잔이 앞에 놓여 있다 가정하자. 조금 더 구체적으로 정의하자면, 어떠한 오염 물질도 함유되지 않은, 완벽히 깨끗한 물 분자의 집합체가 담긴 네 개의 유리잔이다. 하지만 정수 전의 수원이 지하수나 강물, 빗물, 그리고 하수로 차이가 있다면 네 잔의 물 중 자연스레 손이 가지 않는 것은 하수로부터 정수된 물 한 잔이다. 과학적으로는 아무 문제가 없더라도 하수는 더럽고 불결한 것으로 생각 하는 인간의 인식은 선택을 거부한다. 또한, 물(water)이 라는 단어에서 갈증이 해소되는 시원함과 생명을 느끼는 것과 달리, 지극히 화학적인 명명법을 빌려 하나의 산소와 두 개의 수소로 이루어진 분자라는 의미로 다이하이드로 젠모노옥사이드(dihydrogen monoxide)라 읽어내는 순간 왠지 모르게 상쾌함은 홀연히 사라진다. 이처럼 언어나 문화는 생각보다 많은 것을 좌우하고 있으며, 새롭게 만들어져 친숙하지 못한 다양한 화학물질로 가득한 현대 사회 에서 화학적 용어를 빌릴 수밖에 없는 대상들은 공포로 다 가오는 것이 당연하다. 언젠가 인식의 개선이 과학 기술의 발달 속도와 교차하는 순간 모든 미지의 공포는 납득 될 것이다.

 

인공은 오히려 환경을 구한다

 

화학물질에 대한 공포를 희석하고자 설득을 계속하는 것보다는, 그 과정이 만들어낸 긍정적인 현상을 소개하는 것이 인상 깊을 것이다. 화학 기술의 발전은 의외로 자연 과 환경, 생태계를 인간으로부터 지속시키는 역할을 하고 있다. 공업화학의 시작이자 합성염료 산업의 시초라 할 수 있는 사건은 석유화학 산업의 찌꺼기인 타르(tarr)에서 이루어졌다. 중세 시대까지 보라색은 특별함을 상징했다. 동양에서는 붉은색과 금색이 왕권을 상징했듯, 서구권에서 는 보라색이 권위를 의미했다. 언제나 희소성이 가치를 결정하듯 아름다운 보라색을 자연에서 구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바닷속 고둥 수만 마리로부터 추출되는 티리안 퍼플(tyrian purple)이라는 염료는 단 한두 방울에 불과했으며, 이로 인해 로얄 퍼플(royal purple)이라는 별칭으로 대중에게 간단히 허락되지 않았다. 심지어 높은 비용에도 태양 빛에 노출되면 자외선에 의해 쉽게 탈색되는 문제도 남아있었다. 하지만 이후 검은 찌꺼기로만 보이던 타르에서 용매 처리를 통해 분리에 성공한 다채로운 보랏빛의 물질은 염료산업의 폭발적 성장과 더불어 대량 학살의 피해 자였던 고둥을 구원했다.

여러 동식물로부터 질병을 극복하기 위한 약품이 개발되어 온 것처럼, 의약품 분야에서의 화학의 기여는 혁신적 이었다. 특히 난치성 질병을 개선하기 위한 물질은 수익과도 연계되었기에 발명과 더불어 생산에 투자가 이루어진 다. 안타깝게도 그 과정에서 유래가 되는 동식물은 희생될 수밖에 없다. 키나나무 함유 물질인 퀴닌(quinine)은 말라리아 치료제로 각광 받지만, 한정적인 지역에서 생장하기 때문에 대량 생산에는 적합하지 않았다. 염료의 경우와 같이 화학적 합성은 이 문제를 해결한다. 조금 덜 유명하지만 극적인 사건으로 탁솔(Taxol)이라는 제품명으로 유명한 항암제를 들 수 있다. 파클리탁셀(paclitaxel)이라는 이름을 갖는 분자는 서양 주목나무 껍질을 긁어 내 추출이 가능했다. 다만 의미 있는 양을 추출하기 위해서는 10~20 여년의 수령을 갖는 나무의 껍질을 벗겨내야만 했고, 암이 라는 비극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생태계를 고려해 손상을 자제할 것을 당부하기에는 효과가 없었다. 광범위한 수림이 완전히 손상되어 지속 불가능한 상태에 이르렀고, 이를 해결한 것은 화학 기술의 발달을 통해 전합성(total synthesis)라는 유기 분자의 조립을 바탕으로 한 인공적인 파클리탁셀의 생산이었다.

비타민이나 호르몬, 의약품 등 모든 유익한 것들은 화학 물질이다. 양식이 수렵을 개선하고 농경이 채취를 뛰어넘었듯, 천연물 추출이라는 고귀한 단어에서 화학적 인공 합성이라는 실효성있는 영역으로의 전환은 인공적인 과정을 결코 폄하할 수 없게 한다.

우리가 인공이라는 단어에서 불안함을 느끼는 것은 단순히 자연을 대체하기 때문이 아닌 생명에 대한 도전으로 느껴질 수도 있기 때문일 듯 싶다. 거대한 법칙과 해석 불가능한 우주적 원리에 의해 오랜 시간 다듬어진 생명이라는 매혹적인 대상이, 또 다른 생명인 인간들에 의해 창조 되고 변형되어 예측할 수 없는 커다란 문제를 만들어내는 것은 아닐 지에 대한 우려와 두려움이 저변에 깔려 있다. 하지만 인공은 단순히 인간이 만들어낸 모든 것을 의미하는 표현이며, 오히려 자연을 유지하기 위해서 기여하고 있다는 점을 생각하면 조금은 자연스럽게 받아 들여지지 않을까 싶다.




장 홍 제 Hongje Jang


• KAIST 화학과, 학사(2004. 3 - 2008. 2)

• KAIST 화학과, 박사(2008. 3 - 2013. 8, 지도교수 : 한상우)

• 서울대학교 화학과 박사 후 연구원(2013. 9 - 2015. 1, 지도교수 : 민달희)

• Georgia Institute of Technology, Department of Chemistry and Biochemistry 박사 후 연구원 (2015. 1 - 2016. 1, 지도교수 : Mostafa A. El-Sayed)

• 광운대학교 화학과 부교수(2016. 3 - 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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