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장세희(張世熹)서울대학교 교수(1927~1997)
장세희 교수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화학과
1997년 10월 24일 대구 계명대학교 성서캠퍼스 강당 에서 개최된 제80회 대한화학회 총회에 투병 중이시던 장세희 교수님께서 별세하셨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총 회는 회의를 잠시 중단하고 모두 일어나 고인의 명복을 비는 묵념을 올렸다. 장세희 교수님은 그만큼 존경받는 스승이자 선배였으며 또한 학회 일에도 깊숙이 관여한 진정한 화학인이셨다.
이당(怡堂) 장세희(張世熹, Sae Hee Chang) 교수님은 1927년 7월 14일 서울에서 태어나 1950년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화학과를 졸업한 후 국방부 과학기술연구소 에서 연구관으로 잠깐 계시다가 학교로 돌아와 조교와 전 임강사로 재직하며 1955년 석사학위를 받았고 조교수로 재직하던 중 도미하여 1960년 Louisville 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1953년 6월부터 화학과에서 전임강사를 시작으로 조교수와 부교수를 거쳐 1967년 정교수가 되신 후 1992년 정년 퇴임하기까지 40년 동안 서울대학교 화학과에서 후학을 가르치고 연구 토대를 마련하며 유기화학 분야의 연구에 시동을 건 우리나라 유기화학 분야의 선구자이다. 장세희 교수님은 재직 중 문리과대학 교무과장과 이학부장을 역임하였으며 1983년 에는 자연과학대학(1975년 문리과대학에서 자연과학대학 으로 학제 변경됨) 학장을 맡아 2년 동안 대학 발전에도 크게 공헌하였다. 또한, 1970년부터 1984년까지 문교부 학술진흥위원회와 대학시설조사위원회의 위원으로 활동 하며 기초과학의 진흥과 시설 확충에 크게 기여하였다. 장세희 교수님이 연구를 시작한 1960년대는 연구 환경 이 너무나 척박한 시절이었다. 실험실도 없었고 연구 시 설과 장비는 물론 분석기기 하나 없는 그런 시절이었다. 시약을 신청하면 최소한 반년 이상 걸렸고 분석 기기라고 는 화학과에 자외선 분광기 한 대밖에 없던 시절이었다. 장세희 교수님이 국내에서 발표한 첫 논문이 1965년『대한화학회지』에 게재된 것만 보아도 실험하기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짐작할 수 있다. 장세희 교수님은 이와 같이 어려운 연구 환경 속에서도 5-아미노유라실의 Sandmeyer 반응과 같은 여러 가지 합성방법을 개발하였으며, 인삼과 토연교, 지오오갈피와 같은 천연물에서 생리활성 물질을 분리하여 구조를 확인하고 그 생리학적 성질을 고찰하는 연구와 무당개구리의 복피에 들어있는 카로테노이드 색 소에 관한 연구 등 전통적인 천연물 연구에 주력하면서 40여명의 석·박사 제자를 배출하였다. 그 제자들이 1970년대부터 우리나라 유기화학 분야의 연구를 이끌어 왔고 이제 3세대와 4세대가 그 꽃을 피우고 있으니 장세희 교수님의 제자들이(여러분이 타계하였고 대부분은 은퇴 하였다) 이 글을 읽으면 아마 감회가 새로우리라 생각한다. 장세희 교수님은 대한화학회 활동에도 적극적으로 참여 하였다. 1963년 편집 간사로 학회에 발을 들여놓은 후 별 세하실 때의 화학 올림피아드 위원회 위원장까지 35년을 한결 같이 학회에 봉사하였다. 편집 간사 2년에 이어 화 학술어제정위원회 위원장(1969.1~1972.12), 화학교육위 원회 위원장(1976.1~1982.7), 제16대 간사장(1976), 유기 화학분과회 초대 회장(1982.2~1984.2), 화학 올림피아드 위원회 초대 위원장(1991.4~1997) 뿐만이 아니라 여러 위 원회에서 위원으로 활발하게 봉사하였다. 특히, 화학술어 제정에 관심이 많아 처음부터 적극적으로 회의에 참여하여 화학술어집을 발간하기까지 크게 기여하였고, 중고등학 교의 과학교육을 정상화하고 선진화시키기 위하여 백방 으로 노력하였으며, 우리나라가 국제화학 올림피아드에 참가할 수 있도록 과학재단과 협의하여 지원을 이끌어 내 고 여름학교와 겨울학교를 개설하여 참가 학생을 교육시 키고 직접 대회에 인솔하는 등 오늘날의 국제 및 국내 화학 올림피아드의 기틀을 마련하였다.
장세희 교수님은 1965년부터 사범대학의 이태녕 교수님과 고려대학교의 김태린 교수님 등과 함께 서울대학교 에서 부정기적으로 만나 연구 토론회를 가졌다고 한다. 이와 같은 연구 모임이 모태가 되었는지는 모르지만 1977 년 2월 故 심상철 교수님의 주도하에 유기화학자들이 의견을 모아 전국적인 규모의‘유기화학 세미나’를 탄생시 켰고 이 세미나는 지금까지도 지속되고 있다. 또한, 이 모 임을 확장시켜 1982년 2월에는 대한화학회에‘유기화학 분과회’를 창립하고 유기화학 심포지엄을 시작하였으며 이 창립총회에서 장세희 교수님을 초대 회장으로 추대하 였다. 그리고 별세하실 때까지 학계에서 원로이자 스승으 로서 존경을 받으셨다.
한 마디로 장세희 교수님은 우리나라 유기화학 분야의 개척자 중 한 분이시다. 서울대학교에 재직하셨기 때문에 동료들보다 더욱 돋보였을 수도 있으나 책임감 또한 더 욱 컸으리라 생각된다. 장세희 교수님은 매우 박식하고 분석적이고 논리적이셨다. 항상 웃음을 보이시고 부드러 우시고 온화하셨지만 일에는 빈틈이 없으셨고 열정적이 셨다. 장세희 교수님은 진정한 우리의 사표이시다.
글 고려대학교 화학과 명예교수 정봉영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