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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을 빛낸 화학자⑰

강성호(姜成鎬)KAIST 교수(1949~ )



강성호 교수는 1949년 2월 10일(음력) 경남 산청에서 태어나 진주, 부산에서의 유년기를 보낸 후 상경하여, 휘문 고등학교와 서울대학교 화학과(1972년)를 졸업하였다.

공군 교관으로서 5년간의 군 복무 후 동 대학원에 진학하여, 장세희 교수의 지도하에 뉴클레오사이드 합성연구로 1977년 8월 석사학위를 취득하였다. 그 당시 실험실에는 회전증발농축기, 실리카겔, TLC와 같은 합성연구에 필요한 기본적인 실험도구조차 없던 열악한 환경이었다.

이 후 도미하여, University of Texas-Austin 화학과 Stephen A. Monti 교수의 지도하에 Zizanol 및 izanoicacid 전합성 연구로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1982-1983년 Harvard 대학교 Yoshito Kishi 교수 연구실에서 박사 후 연구원으로서 해양독소의 일종인 Palytoxin(C129H223N3O54, MW 2680)의 전합성 연구에 크게 기여하였는데, Palytoxin은 당시 구조식이 알려진 천연물 중 가장 크고 구조적으로 복잡한 분자로서 전합성 연구분야의 에베레스트산이라 불린 화합물이었다. 1984년 귀국하여, 현재의 LG화학 연구소의 전신인 럭키 중앙연구소의 책임연구원으로서 Pyrethroid 계열의 농약 개발 연구를 총괄하여, 당시 글로벌 화학회사와 가격 경쟁을 하고 있던 농약의 생산원가를 큰 폭으로 절감할 수 있는 합성법 및 생산공정 개발에 성공하였다.

1985년 KAIST 화학과에 부임하여 천연물 전합성 연구를 주된 연구주제로 삼고 독립적인 연구자 및 교육자로서의 새로운 커리어를 시작하였다. 천연물 전합성 연구는 유기화학의 연구분야 중에서도 호흡이 가장 긴 연구분야로서, 목표 화합물의 성공적인 합성을 위해서는 여러가지 반응에 대한 경험이 바탕이 됨은 물론 수많은 실패를 견디는 인내와 노력이 요구되는 도전적인 분야이다.

강성호 교수는 유기반응의 개발을 꽃과 나무를 가꾸는 일에 비유한다면, 천연물 전합성 연구는 마치 대자연의 숲과 산을 어우러지게 조성하는 일이라고 여기며, 유기화학의 정점은 천연물 전합성이라는 신념을 가진 연구자였다. 또한, 교육자로서 전합성 연구과정은 다양한 반응에 대한 경험을 갖춘 실력 있는 유기 합성 화학자를 양성하기에 가장 적합한 분야라고 판단하여, 학계와 산업계에 필요한 훌륭한 인재를 길러내어 우리나라 유기화학 연구수준을 선진국 수준으로 제고하는데 이바지하고자 천연물 전합성 연구에 도전하였다.

그러나, 실험실 초기에는 미국에서처럼 거대한 분자의 합성을 목표로 다수의 인력을 투입할 수 없는 어려운 환경이었기 때문에, 연구 경험이 일천한 2~3명의 학부 연구생들과 간단한 천연물 전합성부터 시도하였다.

Tetrahydrofuran 및 tetrahydropyran 유도체의 입체 선택적인 합성 및 이를 주골격으로 하는 천연물 전합성 연구를 시작으로, 2000년대 초반까지 oxacycle 구조를 공통적으로 포함하는 (+)-Lanomycin, (+)-Furanomycin, (+)-Pamamycin-607, (+)-Lasonolide A 등의 점차 크고 복잡한 천연물 전합성을 완료하여 발표하였다. 이와 같이, target-oriented 합성의 경우에는 알려진 반응의 효율적 조합을 통해서 목표 화합물의 합성을 완료하는 것이 일반적인 전략이었다. 그러나, 강성호 교수는 이러한 전합성 연구과정에서 알려진 oxacycle의 입체 선택적 합성법의 비효율성을 개선하고자, 당량의 카이랄 시약을 사용하거나 substrate control에 의해 입체 중심을 조절하는 방법이 아닌 새로운 비대칭 촉매반응 개발을 통한 산소 고리 화합물의 효율적 합성을 시도하였다. 올레핀 화합물의 비대칭 수은 고리화반응 및 요오드 고리화반응을 개발하여, 독자적으로 개발한 비대칭화 반응을 key step 적용하여 천연물 전합성을 완성하는 단계로 발전시켰다. 또한, 카이랄 4차 탄소중심 도입을 위한 다양한 비대칭화 반응을 독자적으로 개발하여, 이를 Azithromycin, (-)-

Dysiherbaine, (-)-Kaitocephalin, Monensin B, Laidlomycin 및 Inostamycin A 의 천연물 전합성에 적용하였다.

강성호 교수는 교육과 연구에 열정적이었을 뿐만 아니라, 소속기관과 우리나라 유기화학의 발전을 위해 끊임없이 고뇌하며 리더로서의 모범을 보이신 어른이다. 1997년 유기화학분과 최초로 창의과제 단장으로 선정된 후, 1998년 KAIST 화학과에 Bruker 400MHz NMR 장비를 처음으로 도입하여 화학과 학생들과 연구 단지 내 연구자들이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도록 개방함으로써 학과 연구 발전에 기여하였다. 또한, 학과장(1994-1995) 및 BK21 분자과학사업단 단장(2006-2009)으로서 KAIST 화학과가 수준 높은 연구를 꾸준히 지속할 수 있도록 독려하였다. 또한, KAIST 교수 협의회장, 자연대학장, 초대 평의원회 의장 등 교내 주요 보직 및 봉사 활동을 통해서 KAIST의 균형있는 조직문화 발전에 크게 이바지하였다.

대한화학회 충남지부장(2001), 유기화학분과회 회장(2006), 한국유기합성학회 회장(2016)을 역임하면서, 유기화학분과 리더로서 활발한 활동을 하였으며, 한-미, 한-일, 한-중, 한-대만, 한-인도, 한-동남 아시아 등 각 종 심포지엄의 조직 및 참여를 통해서 각국 유기화학자들과 적극적으로 교류하였다.

특히, 2008년 대전 컨벤션 센터에서 개최된 ICOS-17(17th International Conference on Organic Synthesis)은 유기합성 분야는 물론, 제약, 고분자, 생화학 등 다양한 연구분야를 망라한 국내외 대학, 연구소, 산업체 등에서 1000여 명 이상의 연구자들이 참석한 대형 국제학회(총 51명의 초청강연, 500편 이상의 포스터 발표)였으며, 강성호 교수는 조직위원장으로서 공동의장(서울대 이은 교수, KAIST 김성각 교수)과 함께 학회를 성공적으로 개최하였다. 또한, 강성호 교수는 국내 유기화학분과의 활성화를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서, 일본의 유기합성학회를 벤치마킹한 한국유기합성학회의 출범을 주도하였다. 자연대 화학과 소속 연구자에 국한하지 않고 약대, 의대, 농대, 공대 등 다양한 분야의 유기화학 관련 연구자들이 교류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하고자, 한국유기합성학회 발기인 대표로서 2010년 한국유기합성학회를 출범하였다. 현재까지 총 26회의 학술대회를 개최하였으며, 국내 유기화학 연구자들의 교류의 장으로 발전하고 있다.

또한, 강성호 교수는 한국외국어대학교 하현준 교수와 함께 Wiley에 제안하여 Asian Journal of Organic Chemistry을 한국 유기합성학회 공식 저널로 론칭하는데 성공하였다.

강성호 교수는 약 30년간 KAIST 화학과에서 재직하는 동안 엄격하고 세심한 교육철학을 기반으로 박사 28명과 석사 31명의 제자를 배출하여, 현재 학계와 산업계에서 중추적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연구수행 과정에서 최선을 다하지 않는 학생에게는 누구보다 무서운 호랑이 선생님이었지만, 1년 365일 밤 11시까지 연구실에 계시는 루틴을 재직기간 내내 지속할 정도로 스스로에게도 엄격하고 부지런한 분이었다. 반면에, 인간적으로는 따뜻한 정이 넘치는 요즘말로 “츤데레”이다. 한국 유기화학 발전을 위해서는 쓴소리를 아끼지 않았지만, 후배 연구자들이 더 좋은 환경에서 연구할 수 있도록 항상 양보하고 배려하며 도와주려고 노력하셨다. 운동과 잡기에 능하셔서, 젊은 시절에는 당구, 테니스를 즐겨 하셨고 요즘은 골프를 통해 체력을 유지하신다. 면 종류, 특히 칼국수를 많이 좋아하셔서 제자들, 동료 교수들과 주변 칼국수 맛집에 자주 찾아가신다. 김밥에서 일일이 빼고 드실 만큼 당근을 싫어하신다. 그래서, 연구실에서 제자들에게 당근보다는 채찍(?)을 주셨던 것 같기도 하다. 이 짧은 글에 대한민국 유기화학 분과의 역사에 한 획을 그은 강성호 교수님을 담기에는 턱없이 부족하지만, 강성호 교수님의 많은 흔적들이 후학들에게 오래 기억되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 DGIST 화학물리학과 교수 정병혁

강원대학교 화학과 교수 이원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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