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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을 빛낸 화학자 19

전철호(全哲鎬)연세대학교 교수(1953~)

전철호 교수는 1953년 12월 6일 경상남도 함양군 안의면에서 태어나, 이듬해 서울 휘문고등학교에 부임하는 아버지를 따라 상경하여, 서울에서 계속 성장하였다. 화학선생님인 아버지의 영향으로 학창 시절부터 화학에 관심을 가졌으며 연세대학교 화학과에 진학하여 1976년 학사 학위를 받고 국방과학연구소에 입사하였다. 1982년 도미하여 브라운(Brown) 대학교 화학과에서 J. William Suggs 교수의 지도 하에 『전이금속 착물에 의한 탄소-탄소 결합 활성반응 연구』를 주제로 1987년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학위 후 국방과학연구소에서 선임연구원으로 근무하였으며, 1991년 다시 도미하여 예일(Yale) 대학교 화학과 크랩트리(Robert H. Crabtree) 교수 연구팀에서 박사 후 연구원으로서 『이리듐 촉매를 사용한 알카인의 하이드로실릴화 반응』과 『전이 금속착물을 이용한 알카인의 이합체화(dimerization) 반응』등 다양한 전이금속 화학에 관한 연구를 수행하였다. 1993년 연세대학교 화학과 교수로 부임하여 2019년 2월 은퇴하기까지 연구와학생 교육에 정진하였다.

박사학위 기간 중 연구한 중점 분야는 퀴놀린-8-카보닐 화합물을 이용한 탄소-탄소 결합 활성화 현상에 관한것이었다. 이 당시 출발물질인 퀴놀린-8-카보닐 화합물을 합성하기 위해 기존에 알려진 합성법으로 6개월을 실패하고서 반응의 순서를 바꾸어 합성에 성공하였다고 제자들에게 전해주신 에피소드가 남아있다. 전철호 교수가 이 분야 연구를 시작한 1980년대만 하더라도 반응성 낮은 탄소–수소와 탄소–탄소 결합을 직접 끊어 기능화하는 것은 가장 난이도가 높은 화학 반응으로 간주되었다.이러한 시점에 전철호 교수는 퀴놀린 기반의 배위자 보조 작용기 도움으로 이루어지는 탄소–탄소의 결합 활성화에 관한 그 당시로는 가장 앞선 결과들을 발표하였다(J. Am. Chem. Soc. 1984, 106, 3054. J. Am. Chem.Soc. 1986, 108, 4679 등).

귀국 후 국방과학연구소에서도 기관 과제와 더불어 배

위자 보조에 의한 탄소–수소와 탄소–탄소 결합 활성화

현상 및 다양한 탄화수소 골격 변형 응용 연구를 꾸준히

수행해 다수의 연구결과를 발표하였다.

연세대학교에 부임한 후 전철호 교수의 연구는 크게 두

방향으로 나눌 수 있다. 대표적으로 1) 일반적인 알데하이드 및 케톤의 탄소–수소 및 탄소–탄소 결합 활성화를

통해 다양한 카보닐 화합물을 환경친화적으로 합성하는

반응을 개발하였고, 2) 실리카나 유리와 같은 무기 지지

체에 기능성 유기화합물을 고정화하는 새로운 방법을 개

발하고 이의 응용 연구를 수행하였다. 부임 당시 쉽지 않

은 연구 환경에서 효율적인 연구개발을 위하여 마이크로

스케일 반응 시스템을 구축하였고, 현상을 관찰하는 착물

에 의한 당량 반응 연구에서 촉매 반응 연구로 전환하였다. 이 시기의 탄소–수소(탄소) 결합 활성 반응 연구는

대부분 디자인된 기질에 의존해 보여주기에 머물러 있었

고, 실제 일반적인 유기화합물의 합성에 활용하기에는 적합하지 못했다. 그러나 배위자 보조 작용기 역할을 하기 위하여 알데하이드나 케톤에 잠시 붙었다가 역할을 마치면 떨어져 나가는 배위자 보조제(주로 2-아미노피리딘유도체)를 도입함으로써 기존 방법의 한계를 벗어나 일반적인 알데하이드와 케톤의 탄소–수소(탄소) 결합을 직접 활성화시킬 수 있게 되었다. 이 연구는 알데하이드를 직접기질로 사용한 올레핀의 하이드로아실화 반응(J. Org.Chem. 1997, 62, 1200)과 긴장이 없는(unstrained) 케톤을 다른 케톤 화합물로 바꾸는 탄소–탄소 결합 활성화 반응(J. Am. Chem. Soc. 1999, 121, 880)을 통해 문을 열었고, 수년간 다수의 논문을 발표하며 이 분야를 꽃피웠다. 이렇게 출발물질의 변형없이 케톤을 합성하는 촉매 반응으로 이 분야를 확장시킨 것은 전철호 교수의 공이라 할 수 있다.


하이드로아실화 반응 논문 발표 후 하버드대 Eric N. Jacobsen 교수는 직접 서신을 보내 연구에 깊은 관심을 보여주었고, 본인의 강의에도 자세히 소개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렇게 생긴 인연은 전철호 교수가 2003년 하버드 대학에서 연구년을 보낼 수 있게 한 계기가 되기도 하였다. 이 연구는 Hartwig 교수의 유기전이금속화학 교과서에 수록되어 유기금속연구의 주요한 발견으로 소개되기도 하였다. 또한 배위자 보조제의 용도를 확장하여 아릴 케톤의 오르토-알킬(알케닐)화 반응을 실현하였다(Angew. Chem. Int. Ed. 2000, 39, 3440, 등). 일본의 S. Murai 교수 연구팀에서 처음 보고한 오르토-알킬화 반응(Nature 1993, 366, 519)은 실리콘 원자를 함유한 활성 올레핀 기질에만 작용하는 한계성을 나타내지만, 전철호 교수가 개발한 배위자 보조제(주로 일차아민)를 사용할 경우 일반 올레핀이나 알카인까지 반응의 범위를 넓힐 수 있었다. 특히 알카인을 적용하면 isoquinoline과 같은 헤테로고리 화합물 합성에 응용할 수 있었으며 (Org. Lett. 2003, 5, 2759), 2010년 이후 폭발적으로 연구된 9족 전이금속을 이용한 고리화 반응의 선구적인 반응으로 남아있다. 이후 반응 기질을 알데하이드에서 1차 알코올이나 아민으로 넓혀 적용 범위를 확장하는 연구(Angew. Chem. Int. Ed. 1998, 37, 145; Org. Lett. 2001, 3, 785 등) 반응 기전 이해를 통하여 온건한 조건에서 더 효율적인 촉매 반응으로 발전시켜 나

갔다(Angew. Chem. Int. Ed. 2000, 39, 3070 등).

케톤의 탄소–탄소 결합 활성 반응은 탄화수소 골격을 변형시키는데 이용되었고(J. Am. Chem. Soc. 2001, 123, 751, Angew. Chem. Int. Ed. 2002, 41, 3031 등), Guangbin Dong 교수에 의해 탄소 골격을 재형성하는 Cut-and-Sew 전략으로 확장되었으며(Acc. Chem. Res. 2022, 55, 2341), Bill Morandi 교수에 의해 이름 붙여진 Shuttle Catalysis의 초기 반응으로 소개되기도 하였다(Chem. Eur. J. 2017, 23, 12004). 한편 전철호 교수는 연구실에서 개발된 반응에 사용되는 고가의 금속 촉매와 유기 촉매들을 재사용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서도 깊게 고심하였고, 수소결합 자기조립 현상을 이용하여 균일 촉매를 불균일화하는 아이디어를 도입하였다. 이를 이용하여 고온에서는 균일상을 유지하여 높은 반응 효율을 유지하고 저온에서는 수소결합 네트워크로 촉매를 불균일화하는 획기적인 시스템을 디자인하고 실현시켜, 금속촉매와 배위자 보조촉매를 회수/재사용하는 성공적인 모델을 제시하였다(J. Am. Chem. Soc. 2004, 126, 424; Org. Lett. 2005, 7,2889; Org. Lett. 2006, 8, 2937 등).

지금까지 언급한 전철호 교수의 초·중기 연구에 대한 종합적 총설이 2008년 출판된 Accounts of Chemical Research에 자세히 소개되었으며(Acc. Chem. Res.2008, 41, 222), 1997년 하이드로아실화 반응 논문에 처음 사용한 “Chelation-Assistance”, 총설 논문에 처음 사용한 “Metal-Organic Cooperative Catalysis”라는 용어는 현재까지도 많은 후배 유기화학자들에 의해 사용되며 인용되고 있다. 이렇게 확립된 배위자 보조를 이용한 탄소–수소 및 탄소–탄소 활성화 반응은 현재까지도 다음 세대화학자들(Jin-Quan Yu, Vy M. Dong, Guangbin Dong 등)에 의해 주목받는 합성 전략으로 자리잡아 다양한 골격구조의 카보닐 탄화수소 화합물 형성에 적극적으로 활용되고 있다.

전철호 교수는 2000년 국가지정연구실 지정 이후 전념해오던 탄소–수소 및 탄소–탄소 결합 활성화 반응연구의 흐름에서 큰 변화를 시도하였다. 유기 합성에서 보호기(protecting group) 전략으로 주로 사용되어오던 알코올의 실릴화 반응을 창의적으로 해석함으로써 하이브리드 소재 합성법에 적용하고자 하였다. 기존에 사용되던 실릴화 반응 전구체인 클로로실란이나 알콕시실란은 지나치게 높은 반응성으로 인해 사용하기에 부담스러운 기질이다. 이러한 실란 커플링 전구체를 반응성이 낮고 안정한 알케닐실란 기반의 전구체로 대체하고, 금속 촉매로 알케닐기만을 손쉽게 활성화함으로써, 하이드록시 작용기를 갖는 다양한 무기 소재에 유기물을 결합시키는 효율적인 방법을 제시하였다. 특히, 기능성 화합물을 장착한 바이닐실란(vinylsilane)이나 메타알릴실란(methallylsilane) 등이 상온에서 활성화될 수 있음을 밝혀 기존 표면개질 반응의 패러다임을 바꾼 실용적인 하이브리드 소재 합성의 새 가능성을 보여주었다(J. Am. Chem. Soc. 2010, 132, 7268; Angew. Chem. Int. Ed. 2008, 47, 109). 기능성 화합물의 크기와 상관없이 순수하게 정제하여 사용할 수 있고, 높

은 효율로 무기 소재에 도입할 수 있어 재현성 높은 고순도/고성능/고강도 유기-무기 하이브리드 소재를 합성하는 독창적인 방법으로 소개되었다(Chem. Commun. 2011, 47, 4870). 나아가 활용범위를 극대화할 수 있는 이중-반응성 링커(linker)를 제작하여 응용범위를 넓혔다(Chem. Sci. 2018, 9, 7981 등).

전철호 교수는 연세대학교 화학과에서 25년여를 재직하면서 박사 14명과 석사 71명의 인재를 배출하였으며, 이들은 현재 학계와 산업계에서 중추적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전이금속 촉매화학 분야의 다양한 연구활동을 통해 약 160편의 논문을 남겼다. 1999년에는 BK21 『유기금속을 이용한 기능성 분자소재 연구팀』의 팀장을 맡아 연구하였으며, 2000년에는 국가지정연구실(NRL) 연구책임자로 선정되어 『유기전이금속촉매연구실』을 운영하였다. 또한 학회 활동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유기화학분과 간사(1997), Bulletin of Korean Chemical Society의 편집위원(2003), 대한화학회 홍보부회장(2006), 유기화학분과회 회장(2010)을 역임하였다. 특히 일본의 대표 유기화학자와 한국의 유기화학자의 정기적인 학술교류의 일환으로 2년마다 열리는 정기 학술회의에 참가하였고, 제15회 한일 유기화학 심포지엄(2011년, 경주)과 제16회 한일 유기화학 심포지엄(2013년, 센다이)의 한국측 회장을 맡은 바 있다. 전철호교수는 제1회 장세희 학술상(1998),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 과학기술우수논문상(2000), 과학재단 30대 우수연구성과상(2001), 대한화학회학술상(2004), 한국유기합성학회대상(2016) 등을 수상하였고, 2004년 한국과학기술 한림원 정회원에 선정되어 현재까지 활동하고 있다. 특히 서울대학교 유기화학 교수였던 장세희 교수님이 작고하신 후 제자들과 제1회 장세희 학술상 수상 가족의 후원금으로 만든 장세희 학술상의 제1회 수상은 대한화학회 최초의 분과 학술상인 점에서 그 의의가 있다고 할 수 있다. 또한Tateshina conference, OMCOS19 등 다수의 해외 저명 컨퍼런스에 초청 및 기조강연을 수행하였다.

전철호 교수는 스스로에게 매우 엄격하고 약속을 무척이나 중요하게 여기시는 부지런한 분이어서, 언제나 정해진 시간 동안 오래도록 연구실에서 생활하는 루틴을 지속하셨다. 또한 학생들의 연구를 지도하는 데 있어서도 언제나 엄격한 선생님이었다. 학생들에게 본인이 연구하는 화학을 다른 관점에서 바라보는 것에 대해 특히 강조하셨고, 이것이 전철호 교수가 유기화학의 다양한 분야에서 의미있는 업적을 남긴 중요한 이유라고 생각된다. 또한 교육에서도 화학의 역사와 발견의 근원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가지셨으며 이는 전철호 교수가 연세대학교 재직 당시 보여준 다양한 강의 컨텐츠로 나타났다. 또한 큰 교통사고를 겪어거동이 불편하심에도 불구하고 강의는 학생들과의 약속이라며 휠체어에 앉아 강의에 임하시는 모습, 모친상 중에도 사전에 약속된 심포지엄 발표를 강행하시던 모습들은 지켜보는 제자들에게도 많은 울림을 남겼다.

2019년 2월 정년퇴임 이후 IBS 나노의학 연구단 초빙교수로 계시면서 나노의학의 흐름 안에서 유기화학의 역할에 대해 고민하셨으며, 2022년 하반기 모든 직에서 물러나신 후 한림문화예술동호회 미술반에 가입하여 미술활동 을 즐기시며, 영상 제작에도 몰두하고 계신다. 전철호 교수님이 삶 전반에 걸쳐 보여주신 고찰과 성과는 미술작품들과 영상에서도 비슷하게 높은 수준으로 드러나고 있다. 이 글로 유기화학분과와 현대유기금속화학의 흐름에 중요한 발자취를 남긴 전철호 교수님의 흔적들이 오래 기억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글 | 한국화학연구원 책임연구원 이혁

한국화학연구원 선임연구원 김동수

서울과학기술대학교 정밀화학과 교수 박정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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