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강석구(姜錫久)성균관대학교 교수(1948~2002)
故강석구 교수
성균관대학교 화학과
강석구 교수님(1948~2002)은 경남 거창 출신으로 1971년에 서울대학교 화학과를 졸업한 후 1979년에 미국
브라운 대학 화학과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이후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을 거쳐 1981년부터 2002까지 성
균관대학교 화학과 교수로 재직했다. 재직기간 중 매사추세츠 공과대학교(MIT) 객원 교수이자 BK21 분자과학사
업단 단장, 과학기술부 국가지정연구실(National Research Laboratory) 사업(금속촉매유기반응연구실) 책
임자 등을 역임했으며, 대한화학회 학술진보상, 과학기술총연합회 우수 논문상, 기초과학연구소 우수 논문상, 교
육부장관 표창장을 받았다.
2002년 가을 강석구 교수님의 갑작스런 부고를 듣고 망연자실했던 기억은 근 20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도 잊
혀지지 않는다. 향년 54세, 현재 필자의 나이와 비슷한 때에 안타깝게 운명을 달리하신 강석구 교수님을 기억하
고추모하며 고인의 업적을 되돌아보고자 한다.
필자가 강석구 교수님과 인연을 맺게된 것은 순전히 우연이었다. 석사학위 지도교수로 일찌감치 마음에 두었던
유찬모 교수님을 찾아 뵈었는데 실험실 정원에 여유가 없어 미안하다며 강석구 교수님 연구실을 권유하셨다.
필자가 석사학위 과정을 진행하던 90년대, 40대 중반의 강 교수님은 ‘ 에너자이저’ 그 자체였다. 강 교수님은 언
제나 분주하셨고, 강의나 미팅을 위해 이동하실 때는 잰걸음으로 무척 빠르게 움직이셨다. 일상적인 것에는 전혀
관심이 없는 분처럼 보였고, 책상에는 언제나 최신 논문들이 산더미처럼 쌓여있었다. 당신이 SCI저널의 편집장
이자 리뷰어로서 많은 직책들을 맡고 계셨으며, 지금처럼 인터넷이 발달되지 않던 시절이라 연구실에서 직접 구독
하고 있지 않은 유기화학 저널들을 학교 도서관과 외부 도서관을 이용해서 입수하고 탐독하셨다.
강 교수님이 특별히 애정을 갖고 연구를 진행하신 분야는 유기금속 촉매반응이었다. 강 교수님은 1990년대 초
반부터 팔라듐(Pd)을 촉매로 사용한 탄소-탄소 짝지음반응에 큰 관심을 갖고 계셨다. 연구실에서는 자주 최신 논
문에 소개된 반응과 메커니즘에 대해 열띤 토론을 벌였고, 어떻게 하면 알려진 방법 대비 더 새롭고 효율적인
방법을 찾을 수 있을까하는 고민과 더불어 제약 및 소재분야에서 적용할 수 있는 최적의 반응법을 찾고자 하는
데 노력을 기울였다. 이 즈음 석사학위를 진행했던 학생들은 평균적으로 2년여 동안 10편 이상의 SCI저널에 발
표하고, 학회에서 포스터 및 구두발표도 활발히 수행했으며 이는 여느 연구실의 박사과정과 비교될 정도여서 부러움을 사기도 했다.
지난 2010년 팔라듐 촉매를 활용한 탄소-탄소 짝지음반응을 발견하고 기여한 공로로 리처드헤크, 에이이치네기시, 아키라스즈키 등 세 분이 스웨덴왕립과학원으로부터 노벨화학상을 수상했는데, 필자는 이따금 강 교수님이 안타깝게 운명을 달리하지 않고 계속 이 분야의 연구를 수행하셨더라면 어떠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강 교수님의 일상은 마치 정밀한 시계와 같았다. 언제나 변함없는 출근 및 퇴근 시간, 날마다 진행하는 연구실 미팅, 강의 시간을 제외하곤 언제나 책상에 앉아 논문을 리뷰하거나 직접 작성하시던 모습. 매주 수요일마다 KIST로 출장을 가셨으며, 다음날 학생들에게 하드카피 논문들을 나눠주셨는데, 이는 수요일에 공부하고 기획한 신규 과제에 대한 것이었다. 교수라는 직업이 평생에 걸쳐 새로운 분야의 학습을 멈추지않고 학문의 경계를 계속 확장해가며 미지의 세계에 끊임없이 문을 두드리는 탐험가라는 생각을 강교수님의 모습을 보면서 하게 됐다.
강 교수님은 학생들로 하여금 끊임없이 생각을 하게끔 하셨다. 당신이 기획하신 신규 과제를 넘겨주실 때 친절하게 하나부터 끝까지 설명하는 경우는 드물었고, 중요한 부분에 표식을 한 논문들을 주시면서 어떤 아이디어가 좋을지 검토해보라고 하셨다. 당시에는 막막하기도 했지만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정말로 효율적인 교육방법이었다. 교수님의 의도가 나와 같지는 않을까하는 의구심을 가지면서도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고안해 내고자 많은 고민을 했었던 기억이 새롭다.
한번은 필자가 구리(Cu)를 이용한 촉매 반응을 진행했는데,기대했던 것과 완전히 다른 결과를 얻어서 크게 실망했던 적이 있었다. 강 교수님께 이에 대해 미팅을 요청하고 NMR과 MS결과를 설명드리면서 이 과제는 접어야 할 것 같다고 말씀드렸는데, 잠자코 듣고 계시던 교수님이 갑자기 손뼉을 치며 기뻐하시는 바람에 어안이 벙벙했다. 교수님 말씀은 예상과 다른 결과가 나온 것은 더 멋진 일이 아니냐며, 다른 경우에도 그러한지 확인해 보고 만약 그렇다면 예상되는 반응의 메커니즘을 그려오라고 숙제를 주셨다. 필자는 이 결과에 대해 메커니즘을 제시했고, 교수님의 허락을 받아 학회에서 발표했다.
세기 말의 혼돈이 가득하던 1999년 연구년을 맞이한 강 교수님은 홀연히 매사추세츠 공과대학교(MIT)의 스테판 부크왈드(Stephen L. Buchwald) 연구실로 박사 후 연구원(Postdoctoral Researcher)의 자격으로 참여한다. 지금은 유명해진 미시간대학교 화학과의 존 피울프(John P. Wolfe)가 부크왈드의 제자로서 박사과정을 밟고있던 시기이기도 하다. 부크왈드는 팔라듐 촉매를 이용한 탄소-아민 짝지음반응으로 당시 세계적인 명성을 쌓고 있었는데, 강교수님은 당신보다 7살이나 어린대가에게 연구년을 할애해 새로운 배움의 길에 들어서기로 결심한 것이었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이미 많은 것을 이루고 계셨고, 독자적으로도 수준높은 연구가 충분히 가능했던 교수님이 왜 그러한 선택을 하셨는지 쉽게 이해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강 교수님은 원래 그런 분이셨다. 언제나 새로운 지식에 목말라했고, 연구 이외의 것에는 전혀 욕심도 관심도 없었던…
유기화학자로서, 교수로서, 과학인으로서 강 교수님은 제자들과 동료교수들에게 많은 영향을 남기셨다. 강 교수님이 끝까지 놓지 않으셨던 연구에 대한 순수한 열정은 이미 십수 년 전에 영면을 취하고 계신 지금에도 여전히 살아 숨 쉬는 듯하다.
글 J2H Biotech 대표 김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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