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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학의 본질을 위해 순수하게 연구하라


<화학세계가 만난 화학자>에서는 대한민국 화학계에 공헌한 화학자와의 인터뷰를 소개해 드리고 있습니다.


이번 호에는 제131회 대한화학회 학술발표회에서 전민제 화학인상을 수상하신 윤경병 교수님(서강대학교 화학과)을 모셨습니다. 교수님께서는 인공광합성을 이용한 액체연료 생산, 제올라이트 결정을 이용한 마이크로 결정의 자기조립 현상 및 제올라이트를 이용한 첨단 소재 개발 및 비선형광학물질 개발에 관한 연구를 수행하셨습니다.


윤경병 교수님의 연구 및 그 외 다양한 면모를 소개합니다.

[모더레이터: 한순규 교수 (KAIST 화학과)]


1. 교수님께서는 중고등학교 학창시절부터 화학에 관심이 많으셨나요? 교수님께서 화학을 전공하시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었나요?


중학교 1학년 때“물상”이라는 과목을 처음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물상에선 물리 화학 생물 지학을 종합적으로 가르쳤습니다. 그때 화학분야에서 소개된 여러 가지 화학물질들이 원소기호로 표현되어 나타났는데 난수표 같은 느낌을 받았지만 어찌하다가 보니 그들의 조성과 전하가 주기율표의 규칙성과 관련 있다는 사실을 터득하였습니다. 그때부터 화학에 대한 이해가 빨라졌고 흥미가 더 생겼습니다. 고등학교에 진학하여 매우 훌륭하신 전경갑 화학 선생님을 만나게 되는 행운을 얻었습니다. 그 선생님으로부터 화학을 좀 더 체계적으로 좀 더 많은 것을 배운후 화학에 대한 이해가 더 넓어졌습니다. 그래서 고등학교 재학 시절부터 대학에 입학하면 화학을 깊이 공부해야 겠다는 생각을 굳혔습니다.

또한, 제가 아주 어린 시절에 선친께서 비누제조 및 화장품 제조사업을 하셨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어려 서부터 글리세린 등 몇 가지 화장품 원료와 소기름, 가성소다, 굳지 않은 비누 등을 자주 보고 만졌던 생각이 납니다. 제 몸속에는 이미 화학에 대한 관심이 많은 DNA가 있는 듯하며, 그것도 제가 화학자의 길로 가는데 한몫을 한 것 같습니다.


2. 교수님께서는 서울대학교 화학과(현재는 화학부)에서 학사학위를, KAIST 화학과에서 석사학위를, 그리고 University of Houston에서 박사학위를 받으셨습니다. 그 과정에서 다양한 스승에게서 사사 하셨는데 특별히 기억나는 분이 계신가요? 그 분(들)은 현재의 교수님을 있게 한데 어떠한 영향을 끼쳤나요?


학부시절 생화학을 전공하시는 박인원 교수님으로부터 학부 논문 지도를 받아서 t-RNA에 관한 공부를 한 적 있습니다. 그러나 제도가 만든 형식적이고 단기적인 지도교수와 지도학생 간의 관계였음이 아쉽습니다. 박인원 교수님은 인품이 매우 훌륭하신 분이셨는데 그분의 인성과 학문에 관한 많은 것을 배우지 못해 매우 아쉽습니다. KAIST에서는 전학제 교수님으로부터 “제올라이트”라는 다공성 물질에 대해서 처음 배웠습니다. 당시 제올라이트는 석유화학 산업에서 원유를 크래킹시켜서 다양한 석유화학 제품을 만들 때 사용하는 촉매로서 학계와 석유 산업계에서 많은 관심을 받고 있었습니다. 따라서 전학제 교수님을 통해서 다공성 물질, 촉매, 석유화학 산업에 대해서 눈을 뜨게 되었습니다. 더 나아가 전학제 교수님께서는 저를 교수님의 큰 형님이신 전민제 사장님께 소개해 주셨습니다. 그리하여 석사과정을 마친 후 전민제 사장님께서 설립하시고 운영하신 전엔지니어링 회사에서 직원 겸 연구원으로 근무하게 되었습니다. 직원이라기보다는 월급 받으며 공부를 더하는 학생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결국 전학제 교수님과의 인연으로 제가 전민제 사장님과의 인연도 시작되었습니다. 전민제 사장님을 통해서는 화학공정, 기초설계, 상세설계 이런 개념들과 실제 화학산업에서 이러한 것들의 역할, 지식과 기술의 산업화, 사업의 지속가능성(sustainability)의 중요성 등을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그런 면에서 저는 큰 행운아라고 생각합니다. 이처럼 매우 훌륭하신 두 분 형제 선각자들로부터 너무 중요하고 많은 것들을 배웠기 때문입니다. 이 두 분한테 배운 것들이 제가 대학교수로서 연구함에 있어서 연구분야와 연구내용을 결정할 때 큰 방향이 되어 주었고 갈피를 못 잡을 때 밝은 등대가 되어주었습니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니 KAIST 대학원생 시절 지도 교수님과도 많은 대화를 하지 못한 점이 못내 아쉽습니다. 2년이라는 제한된 기간에 마쳐야 하는 석사과정이라서 아무래도 지도교수님과 많은 대화와 연구에 대한 토의시간을 갖기엔 물리적으로 불가능했습니다. 특히 당시 전학제 교수님께서는 KAIST 부원장직도 역임하셔서 실험실에 오실 시간이 많지 않으셨습니다. 대신에 매우 훌륭하신 실험실 선배님들로부터 아주 많은 것들을 배웠습니다. 이를테면 KIST에 오래 계셨던 어용선 박사님, 전남대 화학과 한종수 교수님, 전남대 화공과 서곤 교수님, 화학연구원과 인하대학에 계셨던 박상언 교수님, 서울대 오승모 교수님, 명지대 윤천호 교수님, 전북대 안병준 교수님, 제일모직에 근무하셨던 장두원 박사님 등 후일 각계에서 많은 업적을 남기신 매우 훌륭하신 선배님들이 계셨습니다. 전학제 교수님 덕분에 이렇게 기라성 같이 훌륭하신 선배님들과 실험실 선후배로서의 연을 맺을 수 있었습 니다. 그리고 KIST에서 많은 활약을 하다가 한양대학교 화학과 교수로 자리를 옮긴 한성환 교수가 제 대학동기이자 KAIST 실험실 동기인데 매우 뛰어난 화학자이자 예술가이며 세상을 넓게 그리고 아주 멀리 보는 안목과 혜안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동기이지만 매우 존경스러운 한성환 교수로부터도 아주 많은 것들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이 모두가 전학제 교수님 덕입니다. 그래서 저는 전학제 교수님께 늘 감사하고 있습니다.

제가 근무하던 시절 전엔지니어링이 재정적으로 많은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함께 근무하던 KAIST 출신 사원들 여러 명이 길 건너 석유공사(유공, 지금의 SK 이노베이션)로 이전했습니다. 전엔지니어링에선 급여가 3개월씩 밀리던 시절 유공에서는 제 또래 친구들이 전에니지니어링에서 받던 급여의 3배를 넘게 받았습니다. 보너스도 많았습니다. 그때 저도 그리로 옮겨간 동기들로부터 그리로 회사를 옮기라는 유혹을 받았으나 거절했습니다. 위에서 말씀드린 전학제 교수님과 전민제 사장님과의 소중한 인연과 가르침에 대한 고마움이 급여액 상승보다 더 크다는 사실을 깊게 인지하였기 때문입니다. 지금 생각해 봐도 그때 신의를 저버리지 않았던 점 기쁘게 생각합니다.

전엔지니어링에 3년쯤 다녔을 회사는 대우그룹 산하로 넘어갔습니다. 그 무렵 KAIST 실험실 대선배님이신 어용선 박사님의 소개로 델라웨어 윌밍턴 소재 듀퐁종합연구소에서 컨설팅을 하시던 인디애나 대학의 저명한 교수 님이신 Jay K Kochi 교수님을 알게 되었습니다. Kochi 교수님은 organic free radical의 세계적인 권위자 셨으며 균일촉매를 사용한 올레핀의 에폭시화 반응의 리더이셨습니다. 여러 번 서신을 주고받고 나서 Kochi 교수님 문하생이 되기로 하였습니다. 그새 Kochi 교수님께서 텍사스 소재 휴스턴 대학으로 연구실을 이전하신다고 하여 그리로 따라가기로 하였습니다. 그래서 휴스턴대학에 원서를 제출하여 그리로 직접 입학했습니다.

휴스턴 대에서 처음 뵌 날 Kochi 교수님께서 제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를 지도교수로 정해주어서 고맙다. 그렇다고 내가 너의 박사학위를 꼭 주겠다는 것은 아니다. 박사학위를 받는 것은 너의 몫이다. 지금부터 딜(deal)을 하자. 그 말씀에“미국교수들은 원래 이런가?”하며 문화가 매우 다름에 흠칫했습니다. Kochi 교수님께서 제안하신 딜이란 이거였습니다.“지금부터 실험실에 들어가서 네가 알아서 연구주제를 고르고 실험을 해서 그 결과를 저명 학술지에 논문도 써서 외부로부터도 검증을 받아라. 내가 연구주제를 주는 일은 결코 없다. 그러나 누가 먹다 흘린 빵부스러기를 연구주제로 삼으면 안 되고“me too”여도 안 된다. 내가 연구주제를 주지는 않지만 네가 빵부스러기를 줍는지“me too”연구를 하는지는 내가 쉽게 안다. 그런 것들은 못하게 할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 연구는 너를 즐겁게 해주고 네가 연구를 배우고 자연을 배우게 한 독창적인 연구 그 자체라야지 나를 비롯한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기 위한 것이거나 자랑하려고 하는 연구이면 안 된다. 지금부터 5년의 기한을 줄 테니 알아서 연구해라. 5년 후 내가 너와 일상생활에 관한 평범한 대화를 할 것이다. 그 대화는 주로 사람이 살아가면서 늘 마주치는 일반적인 주제에 대한 대화가 될 것이다. 이때 그 대화를 통해서 내가 판단하기에 네가 화학자가 되었음을 느끼게 되면 너보고 졸업하라고 할 것이고 아니면 학위 없이 그냥 여기를 떠나라.

사실 매우 쉬워보였기도 하지만 사실 매우 어려운 딜이었습니다. 그때 비로소 화학에 대해, 독창성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보기 시작했습니다. 사실 KAIST에서 일종의 흙가루인 제올라이트를 고체촉매로 사용하고 가스 상태의 반응물을 고온의 고체상 촉매에 주입하고 얻어지는 생성물들을 온라인 가스크로마토그래프로 정량분석을 해본 연구가 전부였던 제게 모든 실험을 유기용매에서 하던 Kochi 교수님 실험실의 연구내용이 너무 생소하고 아는 게 별로 없었습니다. 많은 시행착오 끝에 시간은 계속 흘러갔고 드디어 5년이 지나고 그날이 왔습니다. 사람은 무엇인가? 자연은 무엇인가? 남자와 여자가 결혼해서 자식을 낳고 살아간다는 게 무슨 의미인가?. 그게 자연인가? 정치란 무엇인가? 법은 무엇인가? 경제는 무엇인가? 돈은 꼭 벌어야 하나? 돈은 어떻게 써야 하나? 과학이 왜 필요한가? 앞으로 세상은 어떻게 변화할 것인가? 가치관이란 무엇인가? 한국은 어떤 나라인가? 한국 사람들은 어떤 문화를 가졌는가? 왜 사는가? 사람이 죽으면 어떻게 되는가? 사람의 삶과 죽음을 간단한 화학으로 설명할 수 있는가? 이런 수없이 많은 질문에 대해 나름대로 제 생각을 말씀드렸습니다. 이런 거시적인 질문 속에서 어떻게 제가 분자를 다루는 화학자 수준에 와 있다고 판단하셨는지는 모르겠으나 하여튼 5년의 박사과정을 마칠 수 있었고, 바로 postdoc 경험도 쌓지 못하고 서강대학교 화학과에 교수직을 얻어서 귀국하였습니다. 비로소 제 나름대로 연구를 시작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Kochi 교수님을 통해 진정한 하드코어 화학을 배웠고 그게 제가 그간 교수로서 연구자로서 살아오게 하는데 엄청나게 큰 기여를 하였습니다. 화학과 인생에 대하여 많은 것을 터득하게 해 주신 Kochi 교수님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이렇게 훌륭하신 멘토이신 Kochi 교수님과의 인연을 맺게 해주신 어용선 박사님께도 깊이 감사드립니다.


3. 교수님 연구의 대표 키워드를 뽑으라 한다면 “제올라이트”와 “인공광합성”이 아닐까 싶습니다. 화학과 학부생 정도가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교수님의 주된 연구관심사를 간략히 설명해주실 수 있을까요?


제올라이트는 미세한 공간 또는 미세한 기공이 많은 물질 중의 하나로서 천연 물질 중의 하나입니다. 요즘 반도체 산업에서는 2-3 나노미터 크기의 선폭으로 소자들을 연결하는 기술이 최첨단으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그런데 제올라이트는 2-3 나노미터 보다 더 작은 0.3에서 1 나노미터 크기의 비워진 기공을 가진 물질들입니다. 이 작은 기공 안에서 물질들을 직접 합성하면 합성된 물질이 1 나노미터보다 작아지게 됩니다. 외부에 존재하는 작은 물질을 밀어 넣어 채워줄 수 도 있는데 이 경우에도 채워지는 물질의 크기가 1나노미터 이하라야 합니다.

공간이“비어 있음”과“채워져 있음”은 서로 반대 개념이지만 사실 둘 다 똑같이 중요합니다. 비어 있어야 채울 수 있고 채워져 있어야 비울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단지 수학에서 보는 것처럼 부호가 반대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이를테면 수학에서 +1과 -1은 방향만 다를 뿐 똑같이 중요한 수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어떤 물질에 규칙적으로 -1에서 -0.3을 채우는 것은 이 물질에서 +1에서 +0.3 만큼씩 깎아 내거나 비워내는 것입니다. 깎아낸 물질 대신에 다른 물질을 그 비움 속에 규칙적으로 채워넣기도 쉽지 않습니다. 그런 면에서 -1에서 -0.3나노미터 만큼씩 비움을 가진 물질을 만들고 다시 +1에서 +0.3 나노미터 크기의 다른 물질들 더해 가는 것은 매우 흥미로운 화학의 한 연구분야이며 산업계에서 매우 유용하게 사용되는 화학입니다.

인공광합성은 인공적인 분자, 소재, 디바이스, 반응기 등을 도구로 사용하여 태양에너지와 물 그리고 이산화탄소를 반응시켜 화석연료를 대체할 수 있는 연료물질을 생산해 내는 것입니다. 이 반응이 성공하려면 무엇보다도 경제성이 있어야 합니다. 즉, 이 반응을 통해 생산한 연료가 화석연료보다 저렴해야 합니다. 그러나 인공광합성은 단위면적 이를테면 1 m2 면적 안에 그리고 일정시간(예를 들면 1초) 안에 태양에서 오는 광자(photon)의 수가 매우 적기 때문에 많은 면적을 사용하여야만 비로소 적당한 양의 연료를 만들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설치비와 유지 관리비가 너무 많이 들고 그리고 부지 비용이 너무 비싸서 경제성을 맞추기란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학문적인 호기심에선 수행할 수 있으나 당장 급한 기후위기 문제를 해결하기엔 적당하지 않은 연구분야입니다.


4. 교수님께서는 수많은 논문을 출판하셨습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기억에 남는 논문이 어떤 것인가요? 가장 기억에 남는 이유가 무엇인가요?


저는 한 주제에 안주하지 않고 여러 분야를 돌아다니며 연구한 사람에 속합니다. 광화학, 새로운 제올라이트 합성, 마이크로 결정들의 자기조립, 전기화학적 이산화탄소 환원, 알칼리인 수전해, 자체 합성한 고체 포집체를 이용한 이산화탄소 포집, 수용액 상에서 유기염기를 이용한 이산화탄소 포집, 고체흡착제를 이용한 일산화탄소 포집, 이산화탄소 수소화 반응을 위한 고체촉매 개발, 인공광합성 파일럿 플랜트 제작, Ru-계 분자촉매를 이용한 물분해, 태양광과 태양열을 함께 이용하는 물분해, 태양열만을 이용한 이산화탄소 환원, 염료감응 태양전지, 태양광을 이용한 물전기분해, o-, p-xylene 혼합물 분리막 개발, 2차 및 3차 비선형 물질 개발 등 다양한 분야에서 연구를 했습니다. 일종의 방랑자 같은 생활을 하며 다양한 분야에서 연구하였습니다. 지금 와서 생각하면 한 가지에 집중하지 못했음에 아쉬움이 남습니다.

그렇게 여러 분야에 대해서 연구를 했어도 가장 기억에 남고, 결과에 대해서 가장 흡족스럽게 생각하는 연구는 다양한 금속산화물의 표면산도(surface acidity)를 측정하여 금속산화물들의 표면산도를 정량적으로 서로 비교할 수 있게 산성도를 부여한 연구였습니다“(Acidity Scale for Metal Oxides and Sanderson's Electronegativities of Lanthanide Elements.”Angew. Chem. Int. Ed. 2008, 47, 10128-10132). 이 연구는 제가 Kochi 교수님 문하생이던 시절에 많이 이해하게 된 상대적으로 전자가 풍부한 물질(electron donor 또는 전자 주게)과 상대적으로 전자가 결핍된 물질(electron acceptor, 또는 전자 받게) 간의 전하이동 착물(charge-transfer complex) 형성 현상을 확장한 연구를 통해 얻어진 결과입니다. 이 연구에서 알리자린(alizarin)이란 분자를 프로브(probe) 전자 받게로 사용하고 여러 가지 다양한 금속산화물을 전자 주게로 보아 금속산화물 표면에서 금속산화물과 흡착된 알리자린간에 형성되는 전하이동 밴드를 분석하여 금속산화물들의 상대적인 전자 주게 능력을 일렬로 세워서 비교한 연구입니다. 사실 우리 주위에 수없이 많은 다양한 금속산화물들이 존재하며 이들은 다양한 화학반응과 다양한 장치의 소재로 사용하였지만 정작 이들의 상대적인 표면산도를 정량적으로 알 수 있는 방법들이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이를테면 어떤 금속산화물의 전자 주게 성질이 크면 이 금속산화물은 염기성 금속산화물이 되고 전자 주게 성질이 약하면 산성산화물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 간의 상대적인 산도 또는 염기도를 수치로서 서로 비교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금속산화물-알리자린 실험을 통하여 저희는 금속산화물들의 표면산도를 이해하려면 금속산화물을 이온 결합 화합물로만 보면 안 되고 공유결합 화합물로만 봐서도 안 되며, 이온결합과 공유결합이 공동으로 존재하는 물질로 봐야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또한 금속산화물의 공유결합을 이해하려면 그 금속산화물을 구성하는 원소들의 샌더슨 전기음성도 스케일(Sanderson’s electronegativity scale)이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샌더슨 전기음성도 스케일은 폴링(Linus Pauling)의 전기음성도 스케일과 쌍벽을 이루는 매우 중요한 전기음성도 스케일입니다. 그러나 고체촉매 분야에선 촉매의 산성도를 이해하기 위해 샌더슨 전기음성도 스케일이 매우 활발하고 유용하게 활용되고 있습니다. 더군다나 샌더슨 스케일에선 동일한 원소라도 그 원소의 산화상태에 따라 전기음성도가 달라집니다. 그런 면에서 샌더슨의 전기음성도 스케일이 폴링 스케일보다 훨씬 더 실질적이고, 훨씬 더 유용하다고 말 할 수 있습니다. 특히 샌더슨 스케일에선 공유결합을 하고 있는 인접한 두 이종 원자 사이에서 두 이종원자는 전기음성도가 서로 같아 질 때까지 한쪽 원자에서 다른 쪽 원자로 부분전하(partial charge)가 이동해 가는데, 이때 부분전하를 잃은 원자의 부분양전하(δ+)와 부분전하를 받은 원자의 부분음전하(δ-)의 전하 절대값이 같아질 때까지 부분전하가 흘러갑니다.


|δ+|= |δ-|


이러한 개념을 샌더슨의 전기음성도 균등화 원리(equalization principle)라고 합니다. 따라서 샌더슨의 전기음성도 스케일을 사용하면 공유결합을 한 인접한 두 원자 간의 부분전하를 계산할 수 있습니다. 나아가 물질 전체를 단순한 그들의 화학조성만을 통해서도 물질 전체의 전기음성도를 계산하고 정의할 수 있습니다. 물질 전체의 전기 음성도가 그 물질의 상대적 전자 주게 또는 전자 받게 또는 상대적 산-염기 성질로 부여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여러 가지 면에서 샌더슨의 전기음성도 스케일을 폴링 스케일보다 훨씬 더 유용합니다.

그런데 저희 연구실이 금속산화물과 알리자린 염료 간에 형성되는 전하이동착물의 전하이동 밴드 최대치 (charge-transfer band maximum)가 금속산화물의 표면산도와 함수관계가 있음을 밝히고, 전하이동 밴드 최대 치와 이온결합 성질과 공유결합 성질이 공존하는 물질이라는 사실을 밝혀내고 나서 역으로 다양한 금속산화물과 알리자린간의 전하이동밴드 최대치를 이용하여 그 물질의 샌더슨 전기음성도를 부여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런 역과정을 활용하여 샌더슨이 살아생전 전기음성도를 부여할 수 없었던 여러 가지 금속의 전기음성도를 부여할 수 있었습니다. 특히 란탄족 계열의 원소는 다양한 촉매에 활용되는데 샌더슨은 란탄족 원소들의 전기음성도를 부여 하지 못했는데 저희 연구실이 란탄족 원소들에 대해 신뢰성 있는 샌더슨 전기음성도를 부여할 수 있었습니다. 또한 샌더슨 전기음성도 스케일과 폴링 전기음성도 스케일 간에 1:1 직선관계가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직선관계를 통하여 폴링스케일을 부여할 수 없었던 원자들에게 폴링 전기음성도를 부여할 수 있었고, 실험적으로 구하지 못한 여러 가지 원소들의 수화열, 이온반경 등도 부여할 수 있었습니다. 이 연구결과는 금속산화물들의 표면산도를 최초로 정량적으로 부여하여 이들을 다양한 디바이스나 반응에 사용할 때 하나의 가이드라인이 되도록 해 주었으며, 샌더슨의 전기음성도 스케일을 란탄족 원소를 비롯한 다양한 금속 원소에 부여할 수 있게 해 주었으며, 금속산화물 내의 금속과 산소 원자 간의 결합엔 이온성 결합 성질과 공유결합 성질이 공존한다는 사실을 밝혀주었습니다.

이 연구는 현재 DGIST 소속 정낙천 교수가 당시 박사과정 학생으로서 도맡아 수행하였습니다. 정낙천 교수가 아니었으면 이렇게 역사적인 결과를 얻지 못했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정낙천 교수는 학생 시절부터 매우 훌륭한 화학자의 소양을 보였으며 앞으로도 활동에 대해 큰 기대가 됩니다.



5. 교수님께서는 1998년부터는 창의연구사업을 통해 제올라이트 초결정 연구단을 이끄셨고, 2009년 부터는 한국인공광합성연구센터의 센터장으로 큰 연구사업을 이끄셨습니다. 이들 연구사업을 이끄시면서 어려움은 없으셨는지, 또 그 어려움을 어떻게 극복하셨는지 궁금합니다.


창의과제에 대한 주제는 마이크로 결정을 정렬시키고 조직화시키는 연구였습니다. 화학은 원자들을 정렬시키 고 조직화시켜서 분자를 생성하는 게 본류입니다. 여기서 원자는 분자의 빌딩블록이 됩니다. 그러나 화학이 발전 하게 되면 결국엔 마이크로 입자를 원자처럼 정렬하는 방법론이 필요할 것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즉, 마이크로 입자들을 빌딩블록으로 보는 화학입니다. 이런 목적으로 제올라이트 마이크로 결정들을 빌딩블록으로 사용하여 이들을 정렬시키고 조직화시키는 연구를 했습니다. 워낙 시대를 앞서가던 연구인지라 당시 응용성을 몰랐는데 최 근에 디스플레이 분야에서 저희가 개발한 방법론이 그 분야가 애타게 찾고 있던 방법이라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지금이라도 이 연구결과가 산업계에서 활발히 사용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인공광합성연구는 10년간 수행하였으며 여러 교수진이 참여하였습니다. 그러나 이 프로젝트는 매우 어려운 주 제를 연구하는 프로젝트이었습니다. 결론적으로 많은 실패를 했고 대신에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왜 실패를 했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이제 다시 연구한다면 훨씬 더 당장 실용화가 가능한 연구를 할 수 있을 것이란 확신이 듭니다. 당시엔 태양빛이 갖는 한계와 복잡한 광반응 메커니즘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고 상업화가 전혀 불가능한 분야를 연구하느라 많은 시간을 소비했습니다. 이를테면 태양빛을 조사하고 전기에너지를 가해주며 물을 환원한 다든지, CO2를 환원하는 광전기수소생산(photoelectrochemical H2 production), 광전기이산화탄소환원(photo- electrochemical CO2 reduction), 또는 전기화학적 CO2 환원분야는 절대로 상업화가 불가능한 분야입니다. 이 런 사실을 모른 체 이런 분야까지 들어가서 많은 시간을 소비했습니다. 이들을 단순히 학문적 목적으로 하는 것 은 괜찮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요즘처럼 화석연료 과다사용에서 야기된 기후변화가 이젠 기후위기로 치닫는 상황에서 우리가 제한된 연구비를 사용하여 상업화가 아예 불가능한 연구분야를 인공광합성이니 기후변화대응 연구이니 위장하며 정부로부터 연구비를 타내고, 연구비를 사용한다면 과학자들이 정치가들과 국민에게 신뢰를 잃을 것입니다. 과학자들이 신뢰를 잃는 것도 큰 문제지만 국민의 세금을 사용하여 나라에 실질적으로 도움을 주지 못한다는 것도 큰 문제입니다. 만약 위와 같은 연구들을 기후변화대응 연구라고 하며 연구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당장 멈추고 신중하게 다른 분야를 찾을 것을 권합니다.



6. 교수님께서는 KAIST 화학과에 2023년 3월 29일 김용해 렉처쉽의 연사로 세미나 발표를 하셨습니다. 세미나에서 교수님은 인류가 직면한 기후변화 문제의 심각성에 대해서 말씀해주셨습니다. 한편으로는 현재 이루어지고 있는 다방면의 관련 연구가 인류가 직면한 에너지 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책이 되기에는 미흡한 부분이 있다고도 말씀하셨습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 이야기해 해주실 수 있을까요? 또 그렇다면 인류가 직면한 기후 변화 및 에너지 문제의 근본적인 해법은 무엇인지 알려주실 수 있을까요?


현재 에너지원은 9가지가 있습니다. 1) 화석연료, 2) 바이오매스, 3) 핵분열 에너지, 4) 태양광, 5) 풍력, 6) 수력, 7) 지열, 8) 조력, 9) 핵융합 에너지입니다. 이 모두 문제가 있습니다. 이를테면 화석연료나 바이오매스는 온실가스를 발생하므로 문제입니다. 현재 태양광 발전과 풍력발전으로 얻는 에너지 총량은 사용되는 모든 에너지 중에 1% 밖에 안 됩니다. 이게 2%로 증가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더군다나 태양광 패널과 풍력발전 설비는 제작시 막대한 양의 이산화탄소를 발생하므로 20년 이상 사용하지 않으면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이는데 기여하지 않습니다. 수력, 지력, 조력 발전은 미미한 양의 전기를 발생합니다. 핵융합은 적어도 70년이 지나야 상업용 발전이 가능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현재 우리 인류가 환경과 지구온난화에 해를 끼치지 않고 당장 사용할 수 있는 에너지원은 없습니다. 그러므로 근본적인 해결책을 찾아야 합니다. 즉, 친환경적이고 저렴한 무궁무진한 에너지원을 찾아야 합니다. 이것은 지구에서 인간을 비롯한 다양한 생명체들의 지속가능성을 높여주기 위해 반드시 해야 할 일 입니다.



7. 교수님께서는 많은 후학을 배출하셨고 그들은 지금 산업계, 학계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약 중입니다. 훌륭한 많은 제자가 있지만 특별히 기억나는 제자가 있으신가요?


앞의 질문에서도 소개한 DGIST의 정낙천 교수와 한양대 이진석 교수, 부경대 김현성 교수가 늘 믿음직스럽습니다. 위 세 명의 제자들을 통해서 많은 연구를 재미있게 수행하였습니다. 다들 과학자적인 훌륭한 자질을 가지고 있으며 무엇이든지 맡겨 놓으면 반드시 해내는 훌륭한 연구자로서의 소질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세 명의 제자들이 화학계에 큰 족적을 남겨주기를 늘 기대하고 바라고 있습니다.


8. 교수님은 학문적 Mentor의 가장 중요한 덕목/자질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학문적 멘토는 그 스스로가 최우선적으로 학문의 본질을 잘 이해하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자신이 잘 알지도 못하면서 남에게 가르쳐 줄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학문의 높고 깊고 넓은 본질을 잘 이해하게 되면 다른 여러 분야에서도 많은 이해를 가질 수 있습니다.


9. 지금 이 시간에도 화학연구를 열심히 해나가는 신진/중견 화학 연구자에게 조언을 부탁드립니다.


요즘 우리나라의 신진/중견 화학자들의 연구는 화학 그 자체로 보면 매우 우수합니다. 오히려 제가 이분들로 부터 배울 게 많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말씀을 드리자면“화학을 하되 순수하게 하라.”입니다. 제사를 모시면 제사 그 자체의 본질을 위해서 제사를 모셔야지 잿밥을 위해서 제사를 모시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상기시켜 드립니다. 잿밥을 위해 제사 지내는 타입의 화학자들은 아무리 좋은 음식들을 또는 연구결과물들을 전리품처럼 제사상에 차려놓아도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지 않습니다. 후학들에게도 세속에 찌든 타락한 모습을 보이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연구 그 자체의 순수한 본질을 잊지 말아 주시기를 당부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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