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학산책] 말(斗), 몰(mole), 물(H2O)의 관계(2025년 5월호)
- 5월 1일
- 4분 분량
여인형 | 동국대학교 화학과 명예교수, ihyeo@dgu.ac.kr
우리나라 속담 “되로 주고 말로 받는다” 표현이 있다. 그것은 통상적으로 흔히 욕을 비롯한 나쁜 일을 상대에게 주면 훨씬 더 많은 나쁜 일을 받는다는 의미로 사용된다. 홉(荅), 되(升), 말(斗)은 필자의 어린 시절에 흔히 사용된 부피 측정 단위였다. 쌀가게(쌀을 비롯한 곡식을 파는 상점은 미곡상)에서 혹은 막걸리 판매점에서 나무로 만든 부피 측정 기구를 사용해서 원하는 양을 담아서 쌀과 술을 판매했다. 막걸리 판매점에서는 막걸리 보관 온도가 낮아야 하는데 냉장고가 없어서 큰 옹기를 땅에 묻어서 막걸리를 담아 놓고 나무로 만든 덮개를 올려놓는 방법으로 막걸리를 보관했다. 그 당시 미곡상에 쌀을 사러 갈 때 “쌀을 팔러 간다”라고, “술은 사러 간다"라고 표현했다. 자료를 찾아보니 양반 체면에 아침을 굶고 쌀을 사러 가는 것이 부끄러워 대신 쌀을 팔러 간다고 했던 전통의 영향이었다고 한다. 술은 여유가 있는 사람들이나 즐길 수 있는 기호식품이니 술 사러 간다고 자랑삼아 말한 것이 아닌가 싶다.
술은 많이 먹는 사람들을 흔히 말술을 하는 사람이라고 했었다. “막걸리 한 말을 지고는 못 가도 마시고는 갈 수 있다"라는 말은 술꾼들이 술 실력을 뽐내는 말이었다. 부피 측정 기구로 1말은 현재의 부피 단위로 보면 약 18 리터(18 L = 18,000 mL)이다. 전통 부피 측정 단위를 현재의 표준 단위로 환산하면 1 홉은 180 mL, 1 되 1,800 mL, 1 말은 18,000 mL이다. 단위가 달라질 때마다 각각 10배씩 늘어났고, 그때마다 단위를 나타내는 용어를 달리 사용했다. 현재 상점 혹은 음식점에서 취급하는 작은 병에 담긴 소주는 2홉 자리이다. 즉 용량이 360 mL이다. 예전에는 2 홉들이 소주, 4 홉들이 약주(정종) 혹은 1되 막걸리 등과 같이 전통 단위를 흔히 사용했었다. 현재 사무실에서 사용되는 대용량 생수통의 부피는 18.9 L로 표기된 것이 흔한데, 그것은 미국의 부피 단위로 5 갤런(gallon)이다. 그것은 생수라는 단어가 낯선 시절 주한 미군에서 주로 사용했던 생수통의 용량에서 유래된 것으로 보인다.
전통 단위: 홉, 되, 말

옛날에도 곡물, 약재 등을 거래할 때 혹은 정부에 세금을 낼 때 일정한 기준이 필요했을 것이다. 문헌에 따르면 세종대왕의 명을 받은 박연을 중심으로 학자들이 전통 부피 기준을 정한 것으로 되어 있다. 예를 들어 기장(곡물) 1,200알이 들어가는 황종율관의 부피를 1 작으로 정했으며, 10작은 1홉, 10홉은 1되, 10되는 1말이라고 정한 것이다. 그러므로 100 작은 1 되, 1,000 작은 1 말이 된다. 황종율관은 대나무로 만든 피리이다. 전통 음악에서는 12 음률이 사용되는데, 기본이 되는 첫 음이 황종이다. 그러므로 황종율관은 음의 기본을 정하려고 만든 일정한 크기의 대나무 통이었다. 대나무 통이 음율과 연관이 되었었고, 그것을 부피 측정의 기준으로 삼았다는 아이디어가 흥미롭다. 왜냐하면 곡물인 기장은 수분 함량에 따라 길이와 무게가 조금씩 차이가 있을 것이고, 대나무의 길이와 관의 부피는 기온 변화에 변하지 않게 어떻게 유지했을지 궁금하기 때문이다. 황종관의 허용 오차범위는 얼마나 될까?
화학 물질의 양: 몰(mole)
화학 물질의 양에 대한 단위로 사용되는 것은 몰(mole, 기호는 mol)이다. 몰은 미터, 킬로그램, 초, 켈빈, 암페어, 칸델라와 함께 7 종류의 기본 단위이며, 국제 도량 총회에서 화학물질을 다룰 때 사용되는 기본값으로 정한 국제 기본단위(International System Units)의 하나이다. 생활에서 물질의 양을 나타내는 단위로 주로 사용하는 것은 g, kg이다. 화학 물질의 질량(g)을 몰로 변환하는 것은 화학 물질의 반응은 물론 화학 물질의 양을 몰로 나타내야 되기 때문이다. 화학 반응식에서 분자식 앞에 있는 숫자는 질량이 아니라 해당분자의 몰이며, 관례에 따라 1이면 생략한다. 예를 들어 수소와 산소가 반응하여 물이 형성되는 화학 반응식은 다음과 같이 적는다.
2H2 + O2 → 2H2O

이것은 수소 2몰과 산소 1몰이 반응하면 물 2몰이 된다는 것을 화학식으로 나타낸 것이다. 수소 2 g과 산소 1 g이 반응하면 물 2 g이 형성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또한 물(H2O) 1몰의 질량은 18 g이고, 순수한 물질 1몰의 질량을 몰 질량이라 한다. 몰 질량을 이용하면 질량을 몰로, 몰을 질량으로 변환하는 것이 어렵지 않다. 예를 들어 물의 1몰 질량은 18 g이므로 9 g은 0.5몰( = 9 g × [1 mol/18 g = 0.5 mol])이며, 0.1몰은 1.8 g(0.1 mol x [18 g/1 mol] = 1.8 g)이다. 몰과 질량 단위의 상호 변환은 물질의 몰 질량을 알면 쉽게 계산할 수 있는 것이다. 이온과 화합물이 아보가드로수만큼 모인 것을 각각 이온의 몰 질량, 화합물의 몰 질량이라 한다. 1몰에 포함된 원자 혹은 분자의 개수를 아보가드로 수라 부르며, 그것은 602,214,076 x 1023 개다. 그런데 실온에서 물의 밀도는 약 1.0 g/mL이므로 물 1몰의 부피는 18 mL이다.
기체의 경우에는 온도와 압력에 따라 일정한 부피에 있는 수가 달라진다. 모든 기체는 표준 상태(0 oC, 1기압)에서 1 몰의 부피는 22.4 리터이다. 기체의 특성과 무관하게 기체 원자 혹은 분자의 수가 모두 아보가드로 수만큼 포함되어 있다. 그런 특성의 기체를 이상 기체라고 하며, 그것은 기체 원자 혹은 기체 분자들끼리는 서로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1말 물은 1000 몰의 물

물 한 말은 약 18 리터이고, 그것은 물 1,000 몰에 해당한다. 필자가 이 사실을 처음 알게 된 것은 몇 년 안된다. 처음 이런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화학을 공부한 사람으로 짜릿함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황종 유리관으로 부피 측정 단위를 만든 것은 세종 때이므로 그것은 15세기 초였다. 중국에서 들여온 것을 개량했다고 하면 시기는 그보다 훨씬 전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물이 원소가 아니라 수소와 산소로 구성된 물질이라는 것이 밝혀진 시기가 18세기 중엽이었고, 그것의 분자식이 H2O라는 것을 밝혀진 것이 19세기 초이다. 물의 정체는 물론 분자식이 과학적으로 밝혀지기 수 세기 전에 부피 단위를 말로 정했다는 것이고, 말의 용량이 우연의 일치로 18 리터이고, 그것은 액체 물 1,000 몰에 해당한다는 사실이다. 한 말의 부피가 18 리터라는 자료를 보았을 때 액체 물의 양이 1,000 몰이라는 것과 물 발견의 역사를 서로 연관 지어보니 매우 흥분이 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었다. 부피 측정 기구의 크기를 정했던 세종대왕 시대에는 물이 화학물질이란 개념조차 없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통 부피 측정 기구의 단위를, 홉(180 mL, 물 10 몰), 되(1,800 mL, 물 100 몰), 말(18,000 mL, 물 1,000 몰) 등으로 정했다. 물 분자식은 물론 밀도도 모르는 상태에서 물의 양과 10진법에 맞추어 부피 단위를 선정한 선조들의 혜안에 날벼락을 맞은 사람처럼 놀랄 수밖에 없었다.
정종 1되의 추억
대학 시절에 하숙집 주인어른은 술을 매우 좋아하셨던 분이었다. 그분에게 드리려고 아주 가끔 샀던 정종(술) 1되(1,800 mL)는 하숙비(약 15,000원/월)의 약 1/10 정도(1,500원)였다. 술을 워낙 좋아하셨던 분이어서 정종 1병을 선물받으면 너무 좋아하시던 모습이 정종 값과 함께 기억에 남아 있다. 현재에는 같은 크기의 정종 1병은 약 12,000원 정도 된다. 필자가 다닌 대학의 첫 학기(1974년) 등록금이 10만 원, 입학금이 35,000원이었다. 또한 국민소득은 약 550불, 달러 환율은 약 480원 정도였다. 흥미 삼아 현재의 국민소득과 환율을 적용해서 대학 등록금 및 정종 1병 가격을 계산하고 비교해 보니, 그 값들은 세월을 잊은 듯하다.
참고자료: 국가기술표준원, 단위로 보는 표준 이야기
여인형의 화학공부, 2023, 사이언스 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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