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현서 | 민족사관고등학교 2학년 / 나규승 | 대구과학고등학교 3학년
이정엽 | 서울과학고등학교 3학년 / 김도형 | 광주과학고등학교 3학년
글 | 정현서 학생
JUL 20, Departure
국제화학올림피아드(IChO)에 출전할 학생은 긴 시간 동안 여러 과정을 거쳐 선발된다. 국가대표가 되기 위해 고등학교 1학년 학생들은 5월 달에 있는 여름학교 입교 평가시험에 응시해야 한다. 그렇게 2년간 4번의 계절학교와 12번의 시험을 통해 최종 4명의 학생이 선발된다. 우리는 그렇게 24년도에 선발되었던 학생들이었다.
고등학교 1학년 때부터 국가대표 학생들을 동경하는 마음이 있었던 나로서는 24년도 사우디아라비아로 출정을 가기 위해 지난 2년 동안 끈질기게 노력했고 마지막 POSTECH에서의 TST(Team Selection Test)를 통해 국가대표로 선발되었다. 그 이후 학교생활과 국가대표 주말교육 & 집중교육을 병행하다 보니 어느덧 출국 날이 다가왔다.
해외 출국이 처음이었던 내겐 모든 것이 새로웠다. 새벽 4시에 일어나 공항버스를 타고 인천 공항에 도착하니 오전 10시였다. 인천 공항에 가보니 2024 파리올림픽에 참가하는 국가대표를 응원하는 전자배너가 있었다. 조금 더 지나니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했고 양성익 단장님이 도착했을 때 모두 모인 우리는 출국 전 단체 사진을 찍었다. 가슴에 태극기를 단 나 스스로가 자랑스러워지는 순간이었다.
우리의 항공편은 우선 인천공항에서 두바이 아부다비 공항에서 경유하여 사우디 리야드 국제공항으로 가는 항공편이었다. 그러나 모종의 이유로 대한항공 기내에서 기다려야 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마침내 굉음을 내며 비행기가 이륙했다. 분명 해외 출국은 즐거워야 하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았다. IChO에 대한 부담이 심해 스트레스를 받던 상황이었다. 8시간 동안의 비행시간동안 편안히 숙면을 취할 수 없었고 비행기에서 올해 예비 문제를 공부했다.
두바이에 내려 사우디로 가는 비행기를 탔다. 모종의 이유로 또 한 번 비행기가 지연되었고, 이제는 IChO에 참가한다는 긴장감보다는 피로함이 더 압도적이었다. 리야드 공항에 내려 메리어트 호텔로 이동했다. 어느 덧 한국 시간으로 아침 7시었다. 충격적인 광경을 목격한 나는 기절하듯 잠에 들었다.
글 | 나규승 학생
JUL 21, Arrival & Registration
아침에 눈을 뜨니 현지시간으로 9시쯤 되어 있었다. 비행기에 서 숙면을 잘 취했던 터라 피로하지는 않았다. 샌드위치로 허기를 달래고, 룸메이트 도형이를 깨워 12시에 호텔 로비로 모였다. 호텔 뷔페에서 점심을 먹었는데, 굉장히 먹음직스러운 음식들이 많았다. 특히 말로만 듣던 중동의 디저트를 직접 먹어보니 정말 맛있었다.
점심을 먹고는 다시 공항으로 이동해야 되었는데, 대회 일정상 대부분의 국가는 오늘 도착하는 만큼, 공항에 환영 부스와 버스들이 대기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호텔에서 나오니 사우디의 여름 날씨가 우리를 반겨주었고, 우버를 타고 공항으로 다시 향했다.
IChO 환영 부스에서 우리를 맞이해주었고, 등록 후 현지에서 사용할 돈도 환전했다. 대추야자를 먹어보았는데 굉장히 달았으며 커피는 그저 그랬다. 버스를 기다리며 타이완 팀과 처음으로 대화를 나누었는데, 오랜 비행으로 인해 다소 피곤해 보였다. 10일 동안 좋은 추억을 만들자며 인사를 했다. 버스를 기다리는 사이 카자흐스탄, 세르비아 등의 많은 나라가 도착하였고, 그사이 우리는 교수님과 헤어져야 만 했다. 버스를 타고 대학교로 향하며 우크라이나 친구들과 비행기는 어땠는지 대화를 나누었고, 도형이는 뒤의 세르비아 친구들과 축구 얘기를 하고 있었다. 기숙사에 도착하여 우리 팀의 가
이드은 Raseel을 만났다. 일단 점심을 먹으러 갔는데, 밥을 먹으며 대화를 하다가 만 17세라는 것을 알고 깜짝 놀랐다. 고등학생이며, 봉사활동을 위해 자원해서 왔다고 했다. 밥은 그리 맛있지는 않았지만, 그럭저럭 먹을 만했다. 쌀이 있었던 만큼 적응도 빨리 되었다. Raseel은 한국말을 배우는 중이며 외국어 중에 가장 배우기 쉬워 선택했다고 한다. 앞으로의 소통을 위해 Whatsapp을 개설하고, 기숙사의 여러 시설들을 소개시켜 주었다. 짐을 정리하고, 핸드폰 및 전자기기를 반납하고, 각종 기념품을 수령했다. 가방, 티셔츠, 물병, 볼펜, 수첩 등등
저녁을 먹기 위해 기다리다가 미국팀을 만났다. 기념품을 교환하며 ACS 로고가 적힌 인형을 주었는데, 굉장히 귀여웠다. 미국 친구가 한국어 욕을 알고 있다며 우리에게 들려주었는데, 굉장히 발음을 잘하여 우리가 칭찬해 주니 흡촉해하는 표정이었다. 놀라운 점은 4명 모두가 MIT에 합격하고 왔다는 것. 저녁을 먹으며 싱가포르 팀과 대화를 나눴다. 싱가포르 기념품도 받았고, NUS 화학과에 대한 설명도 듣게 되었다. 4명 모두 화학을 전공하고 싶다고 했고, 당장은 시험보다는 잠을 자고 싶다고 하여 모두가 웃었다.
그날 저녁, 예상치 못한 문제가 하나 발생했다. 바로 기숙사의 수압이 매우 약해 물이 잘 나오지 않는다는 것. 어떻게 할까 대책을 강구하다가 결국 페트병을 이용해 샤워를 하게 되었고, 이는 또 하나의 잊지 못할 경험이 되었던 것 같다. 그렇지만 기숙사에 이야기하니 빠른 시간 내에 고쳐져 이후로는 괜찮았다.
JUL 22, Opening Ceremony & King Salman Science Oasis
개회식이 예정되어 있던 만큼, 6시에 일어났다. 빠르게 아침을 먹고, 돌아와 단복으로 환복 후 개회식이 열리는 강당으로 향했다. 교수님을 기다리며 주위의 던킨 도너츠에서 가이드 Raseel이 먹을 것을 사주었고, 스페인과 멕시코 친구들을 만났다. 스페인 친구들에게 유로 이야기를 하니 매우 좋아했다. 놀라웠던 점은 스페인 팀 중 한 명은 IPhO에도 참가했었고, 물리와 화학을 동시에 잘한다는 것이었다. 기념품을 교환하고 있으니 멕시코 친구들도 만났다. 관광에 있어 멕시코 친구들과 같은 조였기에 계속 친하게 지내게 되었다. 국기를 들고 사진을 찍으며 멕시코 국기에 대한 이야기도 해주었다.
교수님과 재회하고, 음식, 기숙사 등은 괜찮은지 물어보셨다. 입장을 기다리며 필리핀 친구 Jake를 만났다. 한국을 매우 좋아하고, 9월부터 KAIST에 다닐 예정이라고 하였다. 한국 교통카드를 보여주어 이미 준비를 다 마쳤다고도 하여 서로 폭소했다.
입장하고 기다리는 시간이 길어 주변의 크로아티아, 우크라이나 친구들과 재미있게 놀았다. 기념품도 주고, 예비 문제 중에서 어떤 문제가 기억에 남는지, 화학을 어떠한 책으로 공부했는지 등에 대해 이야기했다. 많은 분들의 연설과 참가국 소개가 끝나고 나가려고 하는데, 갑자기 누가 ‘안녕하세요’라고 인사를 건네 깜짝 놀랐다. 사우디 대사와 직원분이 같이 오셔서 인사를 해주셨다. 많은 나라의 대사들이 각 참가국을 응원하러 가는 것을 보고왔다고 하시며, 대회 일정이 끝나고 식사를 대접하겠다고 하셔서 우리는 깜짝 놀랐다. 교수님과 연락처를 교환하시고 우리에게 파이팅 한다고 응원해주셨다.
교수님과 결별하기 전 점심을 먹었는데, 출장 뷔페였다. 특히 즉석에서 손질하여 주던 양고기가 매우 맛있었다. 점심을 먹은 후 기숙사로 돌아와 편한 옷으로 갈아입고 오후 일정을 준비했다.
오후는 King Salman Science Oasis를 가는 것이었는데, 버스에서 미국팀의 Anants와 친해졌다. USNCO의 시스템에 대해서도 물어보고, 어느 화학 분야를 가장 좋아하는지, 특히 야구를 좋아한다고 하여 메이저 리그에 대해서도 이야기하며 재밌는 시간을 보냈다. 도착하여 석유 산업에 관한 영상을 보고 각종 기념품도 받았다. 과학관을 둘러보며 중국팀 친구들과도 친해졌는데, 굉장히 친절하였다. Jury라는 친구는 Mendeleev 올림피아드에서 1등을 했다고 하며, 화학 실력이 상당한 것 같았다. 중국팀의 판다 기념품 또한 매우 귀여웠다.
일본팀 친구들과도 같이 대화를 나누었는데, 학교에서 배운 일본어를 실전에서 사용해 볼 수 있었다. 특히 Kenta Saito친구는 생일이었기에 축하해 주었다. 일본팀과도 기념품을 교환하고, 도쿄 근처에 산다고 하여 추후 여행지를 추천해달라는 등의 이야기를 나누었다. 유기화학을 가장 좋아한다고 했고, 멘토 교수님의 강의가 너무 재밌다고 하였다.
관람이 끝나고 단체사진을 찍고, 기숙사로 돌아와 식사 후 거의 기절했던 것 같다. 아직 피로가 덜 풀렸던 탓일까, 내일 일정을 기대하며 꿈나라로 향했다~
글 | 이정엽 학생
Jul 23, Exam meeting & Diriyah Bujairi
어제처럼 아침 6시에 일어나 7시까지 밥을 먹었다. 모든 식사를 학교 기숙사에서 먹다 보니 식사가 매번 똑같았지만 나쁘진 않은 것 같다. 아침부터 상당히 더워서 식당까지 걸어갈 때 야외로 지나가는 게 좀 힘들었다. 햇볕도 따갑고 공기도 뜨겁고 건조해서 실내랑 상당히 대비되었다.
일정표에 SABIC Event라고 쓰여 있어서 뭔가 했는데 8시쯤 에 Opening Ceremony를 했던 강당 옆의 작은 강당으로 이동하였다. 그곳에서는 앞으로 있을 실험평가와 이론평가에 대해 전체 규칙을 읽어주고, 각 평가의 진행 방식에 대해 설명을 해 주었다. 간단하게 요약하자면 실험평가의 경우 첫날 받았던 목걸이에 색이 표시되어 있는데 그 색대로 바닥의 선을 따라가면 실험실이 나오고, 실험실에는 여기서 나눠준 실험복만 챙겨갈 수 있다는 것이었다. 보안경이 준비되어 있지만 안경 때문에 크기가 안맞는다고 따졌더니 보안경은 챙겨갈 수 있게 해주었다.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점은 실험평가가 5시간 한 번에 진행되는 것이 아니라 반씩 쪼개진다는 점이다. 보통 실험평가는 3문제가 5시간 동안 주어져 시간에 맞게 잘 설정하여 진행하고 유기 문제 하나, 분석 문제 2개 또는 분석문제 무기 문제 하나씩 진행되는데 이번에는 그렇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하였다. 유기 실험이 상당히 오래 걸리기 때문에 시간을 쪼개면 진행하기 힘들어진다. 2012년 미국에서 이와 비슷하게 진행한 이후 처음이라는 것을 나중에 알게되었다. 이론평가의 경우도 실험평가와 마찬가지로 색이 표기되
어 있는데 이것은 시험장 내에서 위치이고 색깔별로 같이 이동할 것이라고 한다. 역시나 이론평가도 아무것도 챙겨갈 수 없다고 했다. 예전처럼 똑같이 5시간 한 번에 진행된다. 생각보다 갑작스러운 소식이 많아서인지 많은 학생들이 질문을 하였지만 크게 기억할 만한 내용은 없었던 것 같다. 시험장에서 펜과 계산기를 지원해 주며 그것만 쓸 수 있다고 하였다.
이후에는 점심을 먹으러 가기 전 도서관을 갔다. King Salman Central Library로 대학교 중앙도서관이었다. 딱히 볼만한 건 없었고 6층에서 내일 있을 실험평가 예비 문제나 다시 풀어 보았다. 12시쯤 점심을 먹으러 식당에 갔는데 식사는 언제나 비슷하게 나왔다. 빠르게 밥을 먹고 기숙사로 가던 중 가이드분이 오늘 일정을 5시, 6시, 7시, 8시, 9시 선택할 수 있다고 해서 5시에 가기로 하였다. 아마 한 번에 너무 많은 사람이 가면 복잡해서 시간을 나눈 것 같았다.
일정 전까지 기숙사 1층 로비에서 다 같이 실험 평가 공부를 하였다. 예비 문제가 8문제 나왔는데 1, 2번은 정성분석 문제였고(용액을 섞거나 여러 도구를 이용해 미지시료의 종류를 맞추거나 순서를 구하는 문제) 3~6번은 정량분석 문제였다(적정 문제). 그리고 마지막 7, 8번은 유기 문제였지만 유기합성 대신 TLC(얇은 막 크로마토그래피)를 찍는 문제밖에 없었다. 그래서 오늘 들은 소식도 있으니 유기 실험이 엄청나게 축소돼서 나오거나 아예 안 나올 것 같다는 생각을 하였다.
4시 50분쯤 가이드분이 일정을 늦춰 6시에 가자고 하다가 여러 연락을 주고받은 뒤 저녁을 먼저 먹고 8시에 출발하기로 하였다. 하지만 저녁 줄이 길어 결국 저녁을 먹지 못하고 출발하게 되었다. 공부는 더 할 수 있었지만 돌아오면 10시 가까이 될 예정이어서 내일 컨디션이 걱정되었다. 심지어 내일이 실험 평가라서 더욱 중요하였다.
걱정을 품고 간 것과 달리 Diriyah Bujairi는 예상보다 멋있다. 야경을 찍기 좋은 게 정말인 것 같았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으며, 예전 사우디 사람들이 모래로 지은 성 느낌이었다. 안쪽에도 신기한 것이 많았고 특히 왕족의 이름이 전부 적힌 족보가 있었는데 정말 커서 놀랐다. 그리고 생각보다 엄청 넓었는데 실내에 에어컨을 많이 틀었는지 들어가자마자 시원했다. 가장 좋았던 것은 야경이 멋졌다는 것인데 좋은 사진을 많이 남긴 것 같았다. 버스를 타고 이동하는 중에 물병을 던져 세우는 활동을 하였는데 4명이 돌아가면서 한 번씩 던져 연속으로 4번 성공할 때까지 던진 것이다. 이것으로 인해 어느 정도 시험에 대한 긴장감을 해소할 수 있었던 것 같다. 밤늦게 돌아와 저녁을 먹고 내일을 위해 바로 잠들었다.
Jul 24, Practical Exam & Boulevard
오늘은 실험평가가 있어 아침 6시에 기상하여 7시 15분까지 아침을 먹었다. 가이드 다섯 분이서 각 색깔을 들고 계셔서 각 색별로 줄을 섰다. 다 같이 실험장으로 이동하는데 잘할 수 있겠다는 마음과 무언가 꼬일 것 같다는 마음이 계속 교차하였다. 물론 어제 예비 문제를 계속 풀어보긴 했지만 실험평가의 특성상 실전이 정말 중요하기에 잘 될지 알 수 없는 것이었다.
실험실은 식당 옆 건물이었고 7시 반쯤 친구들과 헤어지고 실험실에 들어가 내가 할 실험들의 재료를 보게 되었다. 2번 실험은 상자에 담겨 선반에 놓여있었고, 1번 실험의 경우 책상에 세팅되어 있어 시작 전 미리 확인할 수 있었다. 번호가 적힌 용액이 1번부터 8번까지 코니컬 튜브에 담겨 있었고 옆에는 HCl이 있었다. 시험관대에는 40개의 빈 시험관과 모세관, 용액 A~D, Ea, En, Eb가 적힌 용액이 담긴 작은 코니컬 튜브가 있었다. 이외에도 TLC판 등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래서 용액과 지시약을 섞어 색을 확인해 용액의 종류를 맞추고 그중 일부를 TLC판에 올려전개를 확인할 것이라고 예상하였다. 8시 조금 전에 시험이 시작되었는데 시험 직전까지 상당히 많이 떨렸다.
시험이 시작하고 가장 당황했던 것은 1번 실험이 1시간 45분 밖에 안 된다는 것이며, 다음으로는 두 번째 실험의 이름이 무게 적정이었던 것이다. 무게 적정은 예비 문제 중 하나였는데 상당히 오차가 많고 익숙하지 않은 실험이었다. 게다가 무게 적정이 3시간 15분이나 나와서 어떻게 꼬아서 나올지 감도 안 잡혔다.
물론 1번 실험을 진행해야 해서 자세히 생각하긴 못했다. 생각보다 변수가 많았는데, TLC판을 찍다가 위쪽에 용액이 좀 묻었고, 생각보다 판의 전개속도가 정말 느렸으며, 그것 때문에 전개 액이 끝까지 올라갈 뻔했다. 또 B 지시약이 표면장력이 작아 잘못 넣을 뻔했으며, NaOH와 Na3PO4를 구분하는 것이 상당히 힘들었다. 하지만 다행히도 시간 내에 문제를 다 풀 수 있었다.
쉬는 시간이 되어 친구들과 만나 2번 문제에 대한 이야기를 하였다. 지나간 시험은 잊어버리자는 마음으로 무게 적정을 대비하였다. 간식을 주어 당 보충을 할 수 있었다. 쉬는 시간에 물병을 한 번 더 던져 보았는데 몇 번의 시도 끝에 성공하여 그나마 마음이 놓였다. 생각보다 금방 쉬는 시간이 끝나고 2번 문제를 풀러 들어갔는데 예상대로 서로 다른 적정 4가지를 진행해야 했다. 각각 까다로운 점이 있어 쉽지 않은 실험이었다. 게다가 두 번째 파트의 경우 처음부터 잘못해서 실험을 다시 해야 했다. 하지만 결국 3분 남기고 실험을 마무리할 수 있었다. 마지막 파트에서 두 가지 답 중 한 가지를 골라야 했던 것이 상당히 마음에 걸렸지만 그래도 긍정적으로 생각하기로 하였다. 무게 적정이다 보니 익숙하지 않아서(예비 문제에서도 한 문제밖에 나오지 않았다) 가장 고생했던 것 같다. 그래도 나름 대처를 잘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친구들이 끝날 때까지 기다리면서 내가 다리가 아프다는 사실을 인지하였다. 실험실에 의자가 없어 간식시간을 제외하고 5시간 동안 서 있었던 것이다. 다들 슬픈 마음을 접고 점심을 먹은 후 방에 가서 쉬는 시간을 가졌다. 5시쯤에 Boulevard에 갔는데, 전통 시장 같은 곳이라고 볼 수 있다. 공항에서 환전한 돈을 여기서 쓸 수 있었는데 우리는 사우디 남자들이 입는 흰옷과 전통 빨간 모자를 샀다. 또 사우디 사람들이 특별한 날 입는 흰옷 위에 걸치는 검은 옷도 샀다. 가게 중 하나에서 노란색 가루가 날리는 스노우볼도 하나 살 수 있었다. 이번 대회에서 유일하게 개인행동을 허락해 주어 재미있게 즐길 수 있었던 것 같다. 약 250리얄 정도 쓴 것 같다. 친구가 전통 모자를 썼는데 생각보다 멋있었고 주변 어른들이 전부 좋아해 주셨다.
숙소로 돌아오는데 숙소 앞에 땅이 파여 있었다. 아마 물이 잘 안 나오는 것 때문에 수도관 공사를 한 것 같았다. 다행히도 이후에는 물이 좀 나왔다. 저녁을 먹고 피곤하여 빨리 잠들었다.
Jul 25. King Fahad National Library
오늘은 시험날이 아니라서 7시쯤에 일어나 8시까지 밥을 먹었다. 아침 일찍 일정이 있어 출발했는데 사우디 국립 도서관으로 갔다. 도서관은 정말 컸고 밑에 전시관 같은 곳에서 쿠란이나 왕의 사진 등을 볼 수 있었다. 이후 2층에 올라가 책을 둘러보았는데 아랍어 책은 앞뒤가 반대로 되어 있었다. 아랍어가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쓰고 읽기는 하지만 책도 반대 방향일 줄은 몰랐다. 그리고 도서관을 뒤지다가 한국어와 한국 문화라는 책을 찾았는데 한국 저자가 쓴 책이었다. 이외에도 영어로 된 천연물 합성 책이나 생화학 책 등을 찾아 신기했다.
이론시험 전날이어서인지 오늘 일정이 이것으로 끝나서 이론시험 공부를 하였다. 이론 예비 문제의 경우 30문제가 있는데 물리, 분석, 무기, 유기 문제가 존재한다. 이번 예비문제의 경우 가장 특이했던 것은 유기 문제 마지막에 고분자 문제였는데 기타 유기화학과 다른 경향성을 가져서 특이한 유형이었다. 마지막 날이라서 그런지 이쪽에 더 중점을 둬서 공부한 것 같았다. 다행히도 오늘은 밤늦게 일정이 있지는 않아서 일찍 잠들었다.
글 | 김도형 학생
JUL 26, Theoretical Exam & Reunion Party
금요일 아침이 찾아왔다. 이날은 이론시험이 있는 날이기에 새벽 5시 30분에 기상했다. 경건한 마음으로 샤워를 한 후 우리는 아침밥을 먹으러 식당에 갔다. 아침밥을 너무 과하게 먹으면 시험 중간에 화장실을 가는 불상사가 생길 수도 있기에 조금만 먹었다. 그리고 식당에서 대기한 후 모두 일렬로 줄을 서서 시험장으로 이동했다. 이동하면서 같은 조에 있던 멕시코 친구 Gerardo와 간단하게 대화한 후 서로 시험을 잘 보라는 행운을 빌어주었다. 시험장은 엄청 컸고 긴장될 법했지만 사실 나는 긴장하지 않았다. 우황청심환을 먹은 것 마냥 마음이 편안했고 오히려 피로 때문에 하품이 자꾸 나왔다. 긴장을 무지 한 것보다는 이런 상태가 더 나은 것 같기도 하고… 아무튼 자리에 착석한 후 계산기와 필기구를 점검했다. 실험 평가 볼 때는 계산기가 매우 구식이 어서 불편했지만 다행히 이론 시험에서는 계산기가 최신형이라 잘 작동하였다. 시험 시작 소리와 함께 문제를 읽어보았는데 이럴 수가… 문제가 상당히 어려웠다. 사실 어려운 걸 떠나서 예비 문제
와 이론 문제와의 관련성이 상당히 떨어지는 것 같았다. 특히 고분자가 그랬다. 전통적인 고분자 문제는 GPC 해석 및 conversion, kinetic 관련된 것을 물어봤다면 이번에는 전혀 그러한 문제가 아니었다. 또한 5번 문제가 상당히 어려웠는데 아마 그 문제는 대부분의 학생들이 못 풀었을 걸로 예상했다. 시험 끝나고 친구들한테 물어보니 모두 hell이었다고 했다. 그렇게 지옥 같던 5시간이 흘러갔고 그래도 최선을 다해서 문제를 풀었다.
이론 시험이 끝난 후 드디어 핸드폰을 받을 수 있었다. 핸드폰을 받자마자 핸드폰이 원래 이렇게 무거웠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후 기숙사로 와서 핸드폰을 충전한 다음 멕시코 친구들과 규승이와 함께 탁구를 치러갔다. 규승이가 탁구를 좋아한다고 듣긴했지만 실제로 보니 잘했다. 그렇게 40분 정도 탁구를 친 다음 기숙사로 돌아와 핸드폰을 하면서 잠에 들었다. 오후 5시가 되고우리는 Reunion party에 갔다. 파티장에 도착하니 문 앞에서 낙타들이 서있었다. 낙타들과 함께 사진도 찍은 다음 실내로 들어가니 교수님들이 서 계셨다. 오랜만에 만난 교수님들과 그동안 있었던 일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이후 친구들과 사진 찍는 부스에서 사진도 찍고 독수리 구경, 사우디 전통 춤, 농구 자유투 등 다양한 체험을 했다. 저녁은 뷔페식으로 운영되었는데 맛이 정말 훌륭했다. 그리고 기숙사로 돌아와서 규승이와, Leo, Julian과 신라면을 먹었다. 외국인 친구들이 신라면을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고 괜히 국뽕이 차올랐다.
JUL 27, Riyadh Park & E-sport world cup
토요일 아침이 밝아왔다. 이제 시험도 끝났으니 본격적으로 노는 일만 남았다. 나는 아침밥을 스킵하고 잠을 충분히 취했다. 오랜만에 늦잠을 자니 기분이 좋았다. 이후 버스를 타고 시내에 있는 리야드 파크에 갔다. 리야드 파크는 리야드에 있는 아주 큰 복합 쇼핑몰로 여러 매장들이 자리 잡고 있었다. 문에 들어서자마자 샤넬, 디올과 같은 명품 샵들이 즐비했고 우린 돈이 많지 않기에 바로 2층으로 올라갔다. Raseel이 버블티가 마시고 싶다고하여 버블티 매장으로 갔는데 버블티가 하나에 28리얄, 우리나라 돈으로 대충 11000 이였다. 엄청 비싸다고 생각했지만 맛이 궁금하여 망고 버블티를 시켰는데 맛은 훌륭했다. 지금까지 마셔본 것 중 가장 맛있었다. 이후 나는 호날두의 알 나스르 유니폼을 구하기 위해 여러 매장을 둘러보았지만 아쉽게도 찾지 못했다.
학교로 돌아와 점심을 먹고 잠깐 잠이 들었다. 사실 사우디는 낮이 매우 덥기에 점심시간 때 활동을 거의 하지 않는다. 그래서 기숙사에서 핸드폰을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잠에 들게 되었다. 그리곤 오후 5시에 모여 e-sport world cup이 열리는 곳으로 갔다. 이곳은 lol이나 발로란트, 배틀그라운드처럼 세계에서 유명한 게임들에 대해 여러 팀들이 참가하여 경쟁하는 곳이다. 건물들이 모두 웅장했고 사람들이 엄청 많아 축제 분위기를 이루고 있었다.
그곳에서 간단한 설명을 들은 후 우린 조별로 움직였다. 멕시코 친구들과 쿠바 친구인 Hector와 함께 다녔는데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f1 레이싱 체험이었다. 이것은 자동차와 유사한 운전대에 앉아 수준 높은 시뮬레이션을 느껴볼 수 있는 곳으로 벽에 박으면 의자가 진동할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었다. 나는 운전 실력이 미숙하여 여러 번 벽에 박아 의자가 거의 안마의자 급으로 진동하였다. 결국 면허 정지 수준의 사고만 내고 f1 racer의 꿈을 접게 되었다. 이후 배고파져서 쉑쉑 버거에서 햄버거와 감튀를 먹었다.
개인적으로 좀 아쉬웠던 것은 한국보다 햄버거의 크기가 작은 점이었다. 아무튼 배도 채우고 다른 체험 부스로 이동하였다. 그곳은 매우 시끄러웠는데 알고 보니 사우디에서 꽤 유명한 유튜버들이 왔다고 한다. (무려 400만 유튜버이다.) 우린 사람들의 소음을 피해 여러 게임도 해보고 친구들과 누워서 플레이스테이션으로 피파도 즐겼다. 마지막으로 버스 타기 전에 슬러시도 야무지게 먹어주었다. 하루 종일 돌아다녔던 피곤한 몸을 이끌고 기숙사에 돌아오자마자 바로 꿈나라로 가버렸다.
글 | 나규승 학생
JUL 28, SABIC event & King Abdulaziz Arabian Horses Center
전날 e스포츠 경기장에서 너무나 오랜 시간 머물고 많이 걸어다녔던 만큼, 휴식을 취했다. 핸드폰이 생긴 만큼 그동안 못 보았던 프로야구 결과도 확인하고, 올림픽 소식도 보는 등 인터넷의 소중함을 느끼는 순간이었다. 간식으로 요기를 한 후 오전 일정인 SABIC event를 위해 로비로 모였다. 사실 이론 시험문제 중 하나의 제목이 SABIC이었기에 안 좋은 기억이 올라오기도 했지만, 로비에서 기다리며 외국 친구들과 이야기해보니 다들 해탈한것 같았다.
IChO의 각종 물품에 SABIC이 적혀있을 정도로 큰 후원사라는 것만 알고 있었기에, 회사에 대해 많은 기대가 되었다. 버스를 타고 이동했지만 대학교에서 굉장히 가까운 곳에 있었고, 내려서 담당자의 설명을 들었다. 둘러볼 곳은 생산된 석유 제품을 테스트하는 장비들이 줄지어 있던 곳으로 각종 설비들이 바쁘게 돌아가고 있었다.
LDPE, Polycarbonate 등 SABIC에서 생산하는 다양한 고분자들의 시편을 보여주고, 이를 테스트하는 과정, 특히 인장강도 등의 표준 규격을 요구하는 시험에 대해 어떻게 테스트하는지를 설명해 주었다. SABIC은 전 세계에 공장 및 판매 센터를 두고 있고, 한국에도 고분자 판매를 담당하는 곳이 있다고 했다. 구조적으로는 사우디의 국영 석유회사인 Aramco의 자회사 성격이며, 석유의 시추 및 정제까지는 Aramco에서 담당하지만, 플라스틱 등의 제품 생산부터는 SABIC이 담당한다고 했다. 흥미로운 시간이었지만, 너무 짧은 일정이라 다소 아쉬웠다. 기념촬영 후 다시 대학교로 향했는데, 외국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어 보니 비슷한 반응이었다. 일부 친구들은 회사의 좋은 면만 너무 강조한다며 생산과정에서 발생한 가스 등을 어떻게 처리하는지 물어봤지만 애매하게 답변했다며 의심을 품기도 했다.
숙소로 돌아와 점심을 먹고 나니, 긴장이 풀려서 인지 계속 잠이 왔다. 오후 일정은 저녁에 예정되어 있었으며, King Abdulaziz Arabian Horses Center로 향했다. 이때까지 일정 중에 가장 긴 시간인 1시간 반가량을 이동했지만, 보이는 건 말이 재롱떠는 게 전부. 처음엔 사진을 조금 찍다가, 다들 그룹처럼 삼삼오오 모여 대화를 나누었다. 나 또한 둘러보다가 우크라이나, 필리핀, 이란, 인도네시아, 룩셈부르크, 아일랜드, 러시아, 라트비아 등 지나가는 친구들과 대부분 대화한 듯했다. 다들 지루하다는 반응이 대부분이었기에 각 나라의 기념품을 교환하며 시간을 보냈다. 특히 핸드폰이 있었던 만큼 SNS도 교환하고, 서로 궁금한 게 있으면 검색해서 보여주곤 했다. 내가 가장 많이 받았던 질문은 게임과 드라마에 관한 것이었는데, 생각보다 한국 드라마를 좋아하는 친구가 많았다. 전날 갔던 e스포츠 센터에서 페이커의 사진이 굉장히
크게 걸려있던 만큼, 한국이 게임 강국인 이유에 대해 물어보자, PC방에 대해 소개해 주었다. 다들 엄청 놀라는 반응이었고, 자국에 그런 시설이 없다는 것을 아쉬워했다.
버스를 기다리며 인도네시아에서 온 James와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자국 내의 사립학교는 대부분 영어를 사용해서, 자기는 영어가 더 편하다고 했다. 화학자로서의 진로와 취미, 돌아가면 뭐 할 건지 등등 대화를 나누었다. 나는 인도네시아의 수많은 섬들에 대해 물어보았고, 자기는 수도에 살아 주변 지역밖에 잘 모른다고 했다. 흥미로웠던 점은, 최근에 수도를 이전하고자 계획 중이라고 한다.
대학교로 돌아와 식당에서 저녁을 먹고 도형이와 나는 비장한 마음으로 로비로 모였다. 그 이유는 오늘이 바로 축구를 하는 날이기 때문이었다. 가이드가 축구공을 구해주었고, 도형이의 주도로 축구를 할 수 있는 충분한 인원이 모이게 되었다. 낮에 봐두었던 축구장으로 향했다. 사우디는 밤이 되면 나름 시원하기에 축구하기 적합했다. 팀을 나눠 몸을 풀고 있었는데, 멀리서 유럽 친구들도 도착했다. 인원이 다소 많아져 결국 작은 컵 대회 느낌으로 4개의 팀으로 나누고(한 팀당 7명), 토너먼트처럼 진행하기로 했다.
우리 팀은 나와 도형이, 세르비아 2, 쿠바 1, 스페인 2로 구성되었다. 가장 놀랐던 점은 쿠바 친구는 맨발로 축구를 했으며 발 재간이 엄청 좋았고, 세르비아에서 온 Bogdan이라는 친구는 키가 190cm에 근육까지 겸비하여 그 친구의 돌파를 아무도 막을 수 없었다. 4강에서 도형이가 골을 넣었고, 결과적으로 1:0으로 승리했다. 스페인 친구가 골키퍼를 매우 잘 봤고, 도형이의 슛도 훌륭했다. 나는 수비에 기여하려고 했지만... 유럽과 남미 친구들을 막는 것이 쉽지만은 않았다. 대망의 결승전, 나는 좌측 풀백을 맡았다. 상대편의 남미 친구들의 돌파로 초반 실점을 허용했지만, 도형이의 극적인 동점골과 세르비아 친구의 역전골로 경기 종료, 다 같이 환호했다. 유로 우승컨셉으로 기념사진도 찍고, 축구했던 모든 친구들과 단체사진도 찍었다.
기숙사로 복귀했지만, 아직 잠들기는 이르다. 축구 후 허기진 상태에서 한국식 마무리를 보여주기 위해 남미, 필리핀 친구와 같이 신라면과 즉석 밥, 참치캔을 나눠먹었다. 신라면을 조금 매워하긴 했지만, 다들 맛있게 먹었기에 한국 음식에 대한 자부심을 느끼는 순간이었다. 라면을 다 먹고는 카드게임을 했는데, 내가 알고 있던 카드게임 외에도 각 나라에서 유행하는 카드게임을 배우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JUL 29, Closing Ceremony & Embassy visit
전날 늦게까지 놀았던 터라 늦잠을 자고 있었는 데, 가이드 Raseel이 오전에 National Museum을 가기로 했던 일정이 취소 되었다고 했다. 조금 쉬고 있었는데, 멕시코 친구 Julian이 도형이한테 박물관에 갈 거냐고 물었고, 가이드에게 빠르게 연락하여 우리도 갈 수 있냐고 물었지만 아쉽게도 무산되었다. 나중에 알기로는, 친한 가이드끼리 오전에 다녀왔다고 했다.
아쉬운 마음을 뒤로하고 도형이와 식당에서 점심을 먹으러 갔다. 미국 친구들과 이야기하며 먹었는데, 한국 학생들 사이에서는 인스타그램이 가장 많이 쓰이지만, 미국에서는 디스코드가 보편적으로 쓰인다고 한다. 오후에 있을 폐회식에 대해 서로 농담도 하며 즐겁게 식사를 마치고, 전에 봐두었던 식당 옆의 스타벅스로 갔다.
문을 열고 들어갔는데, 갑자기 한 아저씨가 우리를 빤히 쳐다보았다. “한국 분이세요??” 우리 팀 외에 들어보는 한국어가 얼마만인지, 정말 반가웠다. 좌초지종을 들어보니 친구끼리 여행을 온 거라고 하셨다. 우린 올림피아드 때문에 머물고 있다고 하니 영광이라며 일단 주문부터 하자고 하셨다. 가장 큰 사이즈로 시켜주셔서 너무나 감사했다. 테이블에 둘러앉아 오랜만에 한국어로 이야기를 나누며, 올림피아드의 자초지종과 조금 전에 사우디담당자가 다녀갈 때 오늘 폐회식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말씀해주셨다. 국가대표를 만나 영광이라고 하셔서 괜히 쑥스러워지는 듯했다. 한 분은 덕원고 출신이셨는데, 현택환 교수님이 친한 선배라 하여 깜짝 놀랐다. 다른 한 분은 뉴저지 주에서 컴퓨터 공학을 가르치시는 교수님이셨기에, 심상치 않은 모임인 것 같았다. 미국에 주로 머문다고 하셔 작년 이공계 탐방을 갔던 이야기를 해드리고, 한국 화학의 방향성(?)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나누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사진도 찍고, 명함도 주셨다!! 정말 고마운 분들이었다.
그리고 중동의 명물인 스타벅스 머그컵과 텀블러도 조금 많이 사고, 기숙사로 돌아와 단복을 입고 폐회식을 위해 모였다. 주로 동아시아 친구들은 정장 계열을 입었지만, 유럽 친구들의 간결한 복장과 우크라이나 친구들의 전통 복장도 멋있어 보였다. 외국 친구들은 우리 단복에 있는 태극기가 멋있다고. Raseel과 함께 폐회식 장소로 조금 일찍 이동했는데, 멀리서 수염이 많은 아저씨가 “한국 분이세요?”라는 유창한 발음으로 말을 거셔서 깜짝 놀랐다. “한국말 조금 할 줄 알아요.”, “ 나 방글라데시 사람이에요” 등 엄청 유창하셨다. KSU에서 코딩을 가르치고 계시며, 박사학위를 경희대학교에서 받았다고 하셨다. 양성익 교수님이 경희대 출신이라고 말씀드리니 매우 신기해하시며 빨리 만나보고 싶다고 하셨다.
교수님을 뵙고, 교수님과 우리는 결과에 대해 서로 이야기 하지 않기로 했다. 친구들과 축구한 얘기, 즐거운 추억 얘기들도 했고, 중국과 러시아 친구들이 우리는 손도 못 뎄던 5번 문제를 쉽게 풀었다는 이야기, 끝나고 대사관 가는 이야기 등 오랫동안 못 나누었던 이야기들을 하며 기다리다가 입장했다.
사우디 교육부 장관과 IChO담당 교수님들의 연설이 끝나고, Honor Of Mention이 불렸다. 첫 수상자 발표이기에 침묵이 흘렀고, 한명씩 호명되었다. 우리 팀에서는 현서가 호명되었다. 다음으로는 동메달을 불렀고, 그룹 1에서 남은 3명의 이름이 안 불렸기에 내심 기대했지만, 그룹 2에서 도형이의 이름이 불렸고 우리는 진심으로 축하해 주었다. 중간에 문화 공연을 하나 보고, 은메달 세션에서 내 이름이 불렸다. 불린 순간은 조금 아쉽기도 했지만 결과는 나왔으니 뭐 씩씩하게 걸어 나갔다.
메달을 수여받고 돌아오니, 교수님께서 실험 문제에 대한 비화를 이야기해 주셨다. 내가 적정해서 얻은 값 2개 중 하나는 만점이었고, 하나는 0점이었는데 0점인 값을 골랐다는 것. 평소 적정 실험을 할 때 평균을 내기보다는 자신 있는 값을 선택해왔기에 이번에도 그랬다. 그렇지만 실험 평가 때로 돌아간다고 해도 그 상황에서는 자신 있었던 값을 선택했을 것이기 때문에 후회는 없었다. 후회가 없는 만큼 스스로도 뿌듯해지는 순간이었다. 운이 조금 없었던 거지 뭐!! 금메달 세션에서 정엽이의 이름이 불리자 진심을 다해 축하해 주었다.
모든 순서가 끝나고 무대 위에서 사진을 찍고, 대사관 영사님을 만나 대사관으로 향하는 차량에 올라탔다. 아직 시상식의 여운이 가지도 않았는데 바로 대사관이라니, 뿌듯함과 기대감이 더해 져 내 기분은 하늘로 날아갈 듯했다. 사우디에 있지만 법적으로 한국 땅인 곳에 가다니, 두 나라를 왔다 갔다 한다는 생각도 들어 신기했다. 경계가 삼엄한 철문을 통과해서 대사관으로 들어섰다. 방명록에 내 이름을 크게 남기고 초청해 주셔서 감사하다고 남겼다. 대사관의 상징인 한국과 사우디 국기 앞에서 사진도 찍고, 만찬 자리에 앉아 코스 요리를 하니 씩 즐겼다. 뉴스에서나 보던 대사관이었기에 모든 것이 신기했다. 대사님, 영사님과 사우디 이야기, 역사, 문화, 정치 등 다양한 분야에 대해 말씀해 주시며 올림피아드 수상을 축하한다고 해주셨다. 특히 요리 중간에 오랜만에 먹었던 한식, 그중에서도 김치는 정말 최고였다. 스테이크도 정말 부드러웠고, 디저트로 나왔던 망고 케이크도 정말 맛있었다. 대사님은 약속이 하나 더 있으셔서 먼저 가셨고, 영사님과 대화를 나누며 외교에 대해 많이 알게 되었다. 외교관은 정말 대단한 직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밖의 정원도 둘러보고, 대사관의 신기한 사실들에 대해 알게 되었다.
많은 사진들을 남기고, 다시 대학교로 돌아왔다. 기숙사에 도착하니 Raseel이 오늘은 마지막 날이라고 자면 안 된다고 했고, 우리도 짐만 조금 정리하고 다시 내려와 둘러앉아 놀았다. 멕시코, 남미, 필리핀, 아앨랜드 친구들과 그동안 있었던 일에 대해 이야기하며 재밌는 시간을 보냈다. 남은 기념품들도 가이드 및 각 국 친구들에게 모두 나누어주었다. 정확한 기억은 없지만 3시쯤 잠에 든 듯했다. 비행기 시간으로 인해 새벽에 떠나는 친구들을 보며 조심해서 가라고 인사도 나누고, 연락처도 교환했다.
JUL 30, Departure
오늘은 대부분의 나라들이 돌아가는 날이다. 우리와 가장 가깝게 지냈던 멕시코 친구들이 아침 일찍 떠난다고 하였고, 방으로 찾아와 마지막 인사를 나누었다. 아침에는 캐리어와의 전쟁이었는데, 그동안 받은 기념품과 산 물품들이 너무 많아 캐리어가 잘 닫히지 않았다. 우여곡절 끝에 짐 정리를 마치고, 기숙사도 카드도 반납한 다음 로비에서 버스를 기다렸다. 먼저 떠나는 친구들과 인사를 나누며 10일간의 즐거웠던 추억들을 서로 회상했다.
버스는 호텔에서 교수님을 먼저 모시고 기숙사로 왔고, 이제는 진짜 떠날 시간이 되었다. 가장 처음 보았던 친구들인 싱가포르 친구들과 연락처를 교환하고 버스에 올라탔다. 공항으로 향하는 길, 사우디의 풍경들을 하나씩 눈에 담으며 가이드와도 인사를 나눴다. 공항에 도착하여 사진을 찍고 10일간 함께했던 가이드와 작별했다. 한국어 공부를 계속하기로 한 만큼 나중에는 한국어로대화하기로 약속했다.
공항에서 항공권을 발급받고, 위탁수화물의 무게를 쟀는데, 26kg이 나왔다. 20kg 넘으면 추가 운임이라고 들었는데, 다행히도(?) 직원분께서 괜찮다며 넘어가 주셨다. 공항이 그리 크지는 않았지만, 사우디의 대표 상품인 대추야자와 대추야자 초콜릿을 사고, 기념품도 샀다. 남은 리얄(사우디 화폐)을 모두 사용하는데 성공했다. 샌드위치로 배를 채우고 비행기에 올라탔다. 2시간의 짧은 비행인 만큼, 일기를 쓰며 시간을 보냈다. 옆자리가 비어 비교적 여유롭게 갈 수 있었다.
두바이에 내려서 환승경로를 따라 이동해 사우디에 갈 때와 같은 곳에서 비행기를 기다렸다. 두바이 공항이 규모가 커서 볼 거리가 많았는데, 또 언제 와보겠어라는 마음으로 중동의 기념품들을 많이 샀다. 다 사고 보니 100불 가까이 되었는데, 충동구매의 무서움을 알게 되는 순간이었다. 탑승 게이트로 가니 대한항공 승객을 대상으로 한 한국어 방송이 나와 반가웠다. 탑승구가 1층이라 당황했는데, 알고 봤더니 버스를 타고 가 계산으로 올라타는 거였다. 버스를 타고 가는 보딩은 처음이었기에 이리저리 둘러보며 전용기를 타는 사람 마냥 인사도 하고 홀가분한 마음으로 올라탔다. 돌아오는 길에는 못 봤던 드라마도 보고, 잠도 잤다. 기내식으로 나온 비빔밥은 정말 맛있었고, 고추장을 통해 입맛을 다시 살려주었다. 인천 공항에 도착하니 기내에 거북이의 비행기 노래가 흘러나와 한국에 도착했음이 실감되었다.
입국장을 거쳐 짐을 찾고 게이트로 나왔더니 부모님과 김예림 대리님, 곽현영 국장님과 이필호 대한화학회 회장님, 오한빈 총무부회장님이 축하해 주셨다. 부모님을 안아드리고, 기념사진도 찍고 교수님과 마지막으로 인사를 한 후 비로소 모든 화학올림피아드 일정이 끝이 났다. 이로써 잊지 못할 여정은 막을 내렸다.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경험들이었다. 전 세계의 화학을 좋아하는 친구들과 수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고, 많은 친구를 만들며 잊지 못할 추억들을 남겼다. 화학자를 꿈꾸는 나에게 있어 이보다 더 강력한 동기부여는 없을 것 같다. IChO에서 보았던 친구들, 교수님들을 빨리 학회에서 뵙고 싶다. 이상으로 2024 국제화학올림피아드 참관기를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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