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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제57회 국제화학올림피아드-멘티편

  • 작성자 사진: 성완 박
    성완 박
  • 9월 1일
  • 16분 분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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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효종 | 서울과학고등학교 3학년, 최예준 | 서울과학고등학교 3학년

이예준 | 대구과학고등학교 3학년, 심유찬 | 서울과학고등학교 3학년 


김효종 학생

7월 4일 – 출국일 

출국 당일 아침까지도 내가 국제대회에 참가한다는 사실이 실감 나지 않았다. 공항까지 가는 길의 기억도 희미하다. 공항에서 교수님과 친구들을 만났을 때에서야, 마침내 떠나는 날이 되었음을 실감할 수 있었다. 단복으로 갈아입고, 스카프와 태극기를 준비한 뒤 단체 사진을 찍으니 앞으로 펼쳐질 여정의 첫 단추를 끼운 듯해 설렘이 밀려왔다. 

간단히 출국 수속을 마치고 가볍게 요기를 한 후, 공항을 이리저리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1시간 이상 여유가 있었지만, 네 명이 흩어져 각자 시간을 보내고 있었기에 적당히 시간 때울 일을 찾기 위해서 였다. 당장 면세점을 둘러볼 생각은 없어 탑승구 근처로 발걸음을 옮기던 중, ‘Book Store’라고만 적힌 간판을 발견했다. 적당한 책을 집어 비행기 안에서 읽을 것을 마련하고 마실 물을 사서 헷갈렸던 예비문제를 복습하며 시간을 보냈다. 비행기를 타기 직전 친구와 교수님께 RS 특강을 들은 것이 기억에 남는다. 

비행기가 막 이륙했을 때는 제공되는 음악을 듣고 책을 읽으며 시간을 보냈다. 가만히 앉아 책을 읽다 보니 피로가 몰려와 몇 시간 잠을 잤다. 탑승 전에는 영화를 볼까 고민했지만, 비행의 절반이 지나자 뒤늦게 걱정이 되었다. 앞자리에 앉은 친구들이 예비문제를 공부하고 있었고, 호텔에 도착하면 전자기기를 압수당할 거라는 교수님의 말씀이 떠올랐다. 이게 마지막 복습 기회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자 마음이 급해졌다. 친구들의 열정에 자극을 받아 남은 3시간 동안은 예비문제를 풀고, 그중 일부는 공책에 따로 정리해두었다. 


7월 5일 - 1일차 

비행기 안에서 잔 덕분인지, 두바이에 도착한 흥분 때문인지, 9시간의 긴 비행 끝에 공항에 도착해서도 피곤하다고 느껴지지 않았다. 입국 심사관들이 아랍 전통 복장을 입고 있었는데, 이국적인 분위기가 인상 깊었다. 짐을 찾고 유심을 교체하는 등의 사소한 과정조차 단체 여행을 온 듯 들떴다. 

호텔 행 버스를 타러 공항을 나서자, 상상을 초월하는 습기와 열기가 우리를 덮쳤다. 공항의 강한 냉방이 경이롭게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저녁 9시임에도 기온은 40도에 가까웠고, 사막임에도 습도가 60%를 넘는 기이한 날씨에 우리는 내내 손 선풍기를 손에서 놓지 못했다. 

먼저 멘토 호텔에 도착하여 등록을 마쳤다. 호텔에 도착하자마자 이스라엘 학생 1명이 말을 걸어왔다. 우리에게 기념품을 건네고 사진을 찍고는 홀연이 떠나서 당황스러웠다. 이어서 캐나다 학생들과 인사를 나누고 연락처를 교환할 수 있었다. 덕분에 1학년 때 만들어둔 채로 방치했던 SNS 계정에 마침내 쓸모가 생겼다. 명찰과 기념품을 받고 기념촬영을 한 후 우리는 교수님과 헤어져 근처의 학생 호텔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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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각국의 학생들이 하루 이틀 새 몰린 탓에 방 정리가 마무리되지 않았기에 우리는 호텔 로비에서 수십 분을 기다려야 했다. 그래도 같은 나라 학생끼리 방을 배정받은 듯해 안심이 되었다. 몇몇 학생들이 먼저 말을 걸어와 자연스럽게 교류할 수 있었고, 다행히 아직 전자기기 압수는 시작되지 않아 계속 연락처도 교환할 수 있었다. 일본 대표단과는 기념 사진도 남겼다. 로비에 점점 더 많은 학생들이 모여들었고, 서양 학생들의 압도적인 체격에 새삼 놀라게 되었다. 

기다림 끝에 마침내 방을 배정받았다. 호텔 방은 기대보다 훨씬 깔끔해서 만족스러웠지만, 침대가 하나뿐이라는 점은 조금 당황스러웠다. 간단히 짐을 풀고 방을 둘러보았다. 화장실 수도를 틀었더니 물이 시원하게 잘 나와서 안심이 되었고, 창밖으로는 멋진 야경이 보였다. 우연히 발견한, 비치되어 있던 쿠란 번역본을 몇 페이지 읽어보기도 했다. 방 구경을 마친 뒤 씻고, 침대에 눕자마자 그대로 곯아떨어졌다.



7월 6일 - 2일차 

시차에 적응하지 못한 탓에 현지 시각으로 아침 6시에 눈이 떠졌다. 다시 잠들기에는 애매한 시간이라 핸드폰을 보고 있었는데, 전화벨이 울렸고 그 소리에 예준이도 함께 일어났다. 미처 받기도 전에 끊겨 의아했지만, 30분쯤 지나 다시 모닝콜이 왔다. 버스가 떠나기 전에 아침을 먹으라는 재촉에 단복으로 갈아입고 로비로 내려갔다. 현지 식문화를 경험할 수 있기를 기대했지만, 음식은 평범한 호텔 조식과 크게 다르지 않아 다소 아쉬웠다. 간단히 배를 채운 뒤 방으로 돌아와 준비를 마치고, 정해진 시간에 맞춰 로비로 내려가 현지 멘토인 야스민을 만났다. 우리에게 한국어로 인사하셔서 깜짝 놀랐다. 곧 버스를 타고 개회식이 열리는 교수님 호텔로 이동했다. 

개회식은 상당히 인상 깊었다. 푸른 조명으로 가득한 어두운 홀은 묘한 분위기를 풍겼다. 입장 당시에는 자리가 다소 비어 있었지만, 금세 각국의 학생들로 가득 찼다. 앞에는 일본, 오른쪽에는 카자흐스탄 대표단이 앉아 있었다.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나니 행사가 시작되었다. 

시작에 앞서 리허설이 있었다. 홀의 양옆과 뒤쪽으로 큰 국기들이 세워져 있었는데, 그 국기를 들고 행진을 한다고 안내받았다. 한국에서 챙긴 큰 국기를 놓고 왔기 때문에 다행이라 여겼다. 리허설은 빠르게 마무리되었고, 이어 본격적인 개회식이 시작되었다. 국기를 들고 행진할 때는 가슴이 벅차오르는 감정이 몰려왔다. 나는 비교적 자연스럽게 걸었다고 생각했지만, 나중에 교수님들이 다들 긴장한 모습이었다고 하셔서 함께 웃었다. 

개회식이 끝난 후에는 결국 전자기기를 반납해야 했다. 우리는 “앞으로 일주일간 도파민 디톡스 시작이네”라며 실없는 농담을 주고받았다. 반납한 전자기기는 교수님께서 보관하도록 되어있었는데, 그 과정이 상당히 허술하게 느껴졌다. 점심은 같은 건물의 뷔페에서 먹었고, 혹시 음식이 입에 맞지 않을까 싶어 챙겨온 컵라면이 무색해질 정도로 만족스러운 식사였다. 아침식사와 달리 본격적인 요리들이 다양하게 준비되어 있었고, 특히 연어 요리가 완벽했다. 

버스는 오후 2시에 오기로 되어 있었지만, 개회식이 예정보다 1시간가량 일찍 끝나 시간이 많이 남았다. 그동안 우리는 어제 본 캐나다 대표단에 더해 중국이나 멕시코와 같은 나라들의 대표 학생들과 교류했다. 중국 학생들에게 팬더 인형을 받았을 때, 우리 선물인 복주머니를 호텔에 두고 온 것이 생각났다. 받기만 한 것이 미안해서, 나는 그 뒤로 항상 복주머니를 가방에 챙겨두고, 기회가 될 때 한 개씩 나눠주게 되었다. 

문제는 약속된 2시가 넘어도 버스가 오지 않았다. 기다림은 점점 길어져 버스는 3시가 넘어서 도착했다. 첫 공식적인 일정부터 터진 사건에, 앞으로도 이런 일이 반복될까 불안했다. 그 뒤로 Dubai Festival City Mall에 방문하는 일정도 덩달아 미뤄졌다. 우리 호텔로 돌아가서 편한 옷으로 갈아입은 우리는 5시가 다 되어 겨우 호텔과 연결된 몰에 갈 수 있었다. 

몰 내부는 호텔 방에서 내려다본 모습보다 훨씬 넓고 화려하게 느껴졌다. 우리는 가장 먼저 일종의 마트에 들러 간식과 음료, 그리고 무엇보다 두바이 초콜릿을 구입했다. 정말 다양한 종류의 유사한 제품들이 있었다. 가격이 꽤 나갔기 때문에 섣불리 대량 구매하기 망설여졌다. 우리는 멘토 야스민이 추천해준 초콜릿을 한 개씩만 사서 먼저 먹어본 뒤, 마음에 드는 것이 있으면 나중에 다시 사기로 했다. 

호텔로 돌아가기까지는 아직 시간이 조금 남아 있었고, 우리는 몰 안쪽으로 더 깊숙이 들어가 보기로 했다. 대부분이 향수, 명품, 의류 매장이어서 당장 살 만한 물건은 별로 보이지 않았다. 이미 간식과 초콜릿 등 필요한 물건들을 손에 들고 있었기 때문에, 나중을 기약하며 호텔로 돌아가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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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텔에서 석식을 제공하기까지 30분 정도 남은 애매한 시간이었다. 유찬이는 먼저 방으로 올라가고 나머지 세명은 로비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이 때 우리는 카자흐스탄 친구들을 만나게 되었는데 이 중 한 명이 내가 본 한국에 가장 관심이 많은 학생이었다. 이번에 카이스트에도 지원했다는 뜻밖의 말에 크게 놀랐다. 10분 정도 서로의 나라에 대해 질문하고, 관광지를 추천해줬다. 카자흐스탄의 대부분의 즐길 거리는 말과 관련되어 있는 점이 흥미로웠다. 마지막에는 말 우유 초콜릿과 복주머니를 교환하며 헤어졌다. 

저녁 식사를 마치고 방으로 올라오니, 이른 시간이었지만 마땅히 할 일이 없었다. 자연스럽게 TV를 켰지만, 아무리 채널을 돌려봐도 영어 자막조차 보기 어려워 아쉬웠다.   


7월 7일 - 3일차 

이날은 세계에서 가장 큰 몰이라는 두바이 몰에 방문하는 날이었다. 호텔에서 거리가 있어 버스에 꽤 오래 있었다. 가는 길 양옆으로 높은 건물들이 널려 있었으며 가이드 분이 종종 특별한 건물들에 대해 설명해 주셨다. 이때 미래 박물관의 외관을 스쳐 지나가듯 볼 수 있었는데, 은빛 타원형에 문양이 새겨진 모습이 강렬한 인상을 주었다. 

두바이 몰은 입장 전부터 상상 이상의 규모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도로를 사이에 끼고 다리로 연결되어 있는데다, 양쪽 모두 각각만 해도 세계 최대를 노려볼 수 있을 만한 규모로 보였다. 겉으로 보기에는 마치 거대한 직사각형 블록 같았다.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엄청 더운 데에 비해 몰 입구 근처만 가도 서늘할 정도로 냉방이 강했다. 우리는 야스민의 인도하에 몰을 둘러볼 수 있었다. 집합 장소 근처의 기념품 가게를 보고 마지막에 돌아와 들리자고 계획했다. 맨 처음 향한 것은 거대한 폭포였다. 전 층에 걸쳐, 벽을 따라 옆으로 쭉 이어져 있었다. 폭포를 따라 뛰어내리는 회색 마네킹 사이에 슈퍼맨 하나가 눈에 띄었다. 

몰이 상당히 넓었기 때문에 두바이 몰 앱이 제공하는 지도에 의지하여 길을 찾았지만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큰 길을 연결하는 작은 터널 같은 샛길들이 많았고, 심지어 때때로 여러 층 중 일부 층만 연결되어 있어서 왔던 길을 몇 번씩 돌아간 적도 있었다. 물론 그 과정에서 몰을 구경하는 재미가 있어 전혀 지루하지 않았다. 

폭포 다음 행선지로, 부르즈 할리파가 가까이서 보이는 야외 광장이 지목됐다. 부르즈 할리파로 향하던 중 우연히 차이나 타운 입구가 보여 안으로 들어가보았다. 처음에는 아랍 에미리트에도 차이나 타운이 있는 것이 마냥 신기했다. 점점 깊숙이 들어갈수록 이대로 가다가는 끝날 때까지 차이나 타운만 돌아다니겠다 싶을 정도로 넓었고, 결국 중간에 다시 나와야했다. 

마침내 우리는 야외 광장에 나가 부르즈 할리파를 볼 수 있었다. 고개를 수직으로 꺽어야 할 정도로 높았고, 그 독특한 외형이 잘 보였다. 빠르게 단체 사진을 찍은 우리는 더위를 피해 금세 다시 실내로 들어왔다. 이 이후로도 멈추지 않고 몰을 돌아다니며 스타벅스에서 독특한 메뉴를 주문했고, 상하반전 컨셉의 오락실 구경도 하고, 그러는 동안 몰의 한쪽 끝자락까지 도달했다. 슬슬 돌아갈 시간이 되어 미리 봐두었던 기념품 가게로 가 기념품 쇼핑을 즐기고 버스에 올랐다. 대부분의 가게가 명품과 같이 우리의 관심사 밖에 있던 것이 조금은 아쉬웠다. 

호텔 로비에서 방으로 올라가려할 참에 가이드 분이 곧 로비에서 내일 있을 실험 평가의 연습이 있을 것이라 안내하셨다. 혹시 문제에 대한 힌트나 문제 수, 진행 방식에 대한 안내가 있을까 기대하여 저녁 6시쯤 내려왔지만 단순한 실험 기구 사용법에 대한 안내였다. 피펫팅에 대해 알려주는 것을 보고 그냥 올라갈까 싶었다. 그러나 이어서 난생 처음 보는 형태의 콕을 가진 뷰렛과 뷰랫처럼 눈금 아래 여유공간이 있는 피펫을 꺼내는 것을 보고 상당히 당황스러운 동시에 기다려보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혹시 계산기 배분은 어떻게 되는지 물었더니 확실치 않다고 대답하여 방으로 돌아갔다. 

씻고 나오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전화벨이 울렸다. 계산기를 나눠준다는 연락이었다. ‘이럴 거면 미리 말해주지…’ 하는 불평을 하며 로비로 내려가 보니 이미 긴 줄이 늘어서 있었다. 복잡한 상황 속에서 겨우 계산기를 받고 방으로 돌아왔다. 

다음 날이 실험 평가인 만큼, 자기 전에는 예비 실험 문제와 집중 교육 자료를 복습했다. 그리고 연습 시간에 봤던 기구를 바탕으로, 예준이와 함께 어떤 문제가 나올지 예측해 보았다. 시계 반응, 적정, 정성 분석 문제 중 3가지가 나올 것이라는 결론에 도달했고, 관련 개념을 다시 한 번 정리한 뒤, 다음 날 기상을 대비해 저녁 9시에 잠자리에 들었다. 


최예준 학생


7월 8일 - 4일차 

오늘은 실험 시험이 있는 날이었다. 새벽 5시라는 아주 이른 시간에 일어나야 했지만, 다행히도 전날 밤 10시 정도에 일찍 잠들어서 컨디션이 나쁘지는 않았다. 아침을 먹고 6시 반 정도가 되어서야 버스가 출발하기 시작했다. 가는 동안 열심히 연습했던 7개의 실험 예비 문제들을 떠올려 보았다. 1,6,7번은 화합물의 정성분석 및 TLC, 2,3번은 적정, 4번은 무기합성, 5번은 시계반응에 관련되어있는 문제였다. 실험 시험을 치르는 장소가 엑스포인지라 유기합성과 관련된 문제는 절대로 나올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고, 정성분석 1개, 적정 1개, 시계반응 1개가 나올 것으로 예상하고 있었다. 

그렇게 예비 문제들을 떠올리다 보니 버스는 어느샌가 Sharjah Expo에 도착하였다. 약 30분 정도가 걸린 듯했다. 무슨 일 때문이었는지는 모르겠으나, 우리는 버스가 도착한 뒤 약 30분이 더 지난 시점에서나 내릴 수 있었다. 그 후, 엑스포의 큰 홀에 지정된 자리에 앉아 실험 기구들을 확인하였다. 눈에 보이는 건 정말 많은 시약들, 뷰렛, 여러 개의 시험관, 여러 개의 TLC 판들이었다. 예상대로 정성분석 위주의 문제가 나오는 듯 보였다. 

하지만 여기서 큰 문제가 생기고 만다. 이번 IChO에서는 최초로 컴퓨터를 이용하여 문제지를 읽는 방식을 사용했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학생의 자리에는 컴퓨터가 한 대씩 놓여 있고, 자체 제작된 프로그램을 이용해 문제지를 볼 수 있었다. 실험 시험을 시작하기 전에 20분간 문제지를 읽어보는 시간이 있었고, 학생들이 동시에 프로그램에 접속하여 문제지를 띄우기 시작했다. 그런데, 많은 학생들이 문제지를 띄우지 못하고 지속적인 오류가 발생하였다. 네트워크에 치명적인 문제가 생겼던 것이다! 그 덕분에 약 1시간 가량의 추가 지연이 발생하게 되었고, 원래 8시에 시작되어야 했던 시험은 무려 9시 50분이 되어서야 시작하게 되었다. 

총 3문항이 출제되었고, 무기 합성 문제, 아미노산 정성 및 정량 분석 문제, 미지 유기화합물 정성 분석 문제가 출제되었다. 정성 분석 문제가 출제되는 것은 어느 정도 예상한 사실이었는데, 무기 합성 문제가 출제된 것은 예상 밖의 일이었다. 다행히도 무기 합성 문제는 그렇게 어렵지 않았으나, 정성 분석 문제들이 상당히 어렵게 출제되었다. 시간도 매우 촉박해서 모든 과정을 완료한 후에 2분 정도 밖에 남지 않았었다. 5시간이 정말 빠르게 흘러 갔다. 

시험이 끝나고 애들과 이야기를 나눠보니 다들 어렵게 느꼈던 것 같았다. 작년보다 확실히 어려웠다는 얘기도 나왔고, 이론 시험을 잘 봐야겠다는 얘기도 나왔다. 나는 더 이상 실험 시험에 대해서는 떠올리지 말아야 겠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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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가는 것도 쉽지 않았다. 버스에 모든 인원이 탑승했음에도 불구하고 무려 1시간가량을 대기시켰던 것이다. 그동안에도 20분 내지 30분 정도의 지연은 항상 있어 왔기에 처음에는 평상시와 다를 바 없다고 생각했으나, 1시간이 넘어가자 잘 기다리던 외국 친구들의 입에서도 불만이 터져 나왔다. 그렇게 엑스포에서만 약 10시간가량을 보내고 숙소로 돌아왔다. 당연하지만 그 이후의 일정은 지연으로 인해 전부 취소되었다. 

씻고 침대에 눕자, 그제서야 긴장이 풀려 잠이 솔솔 오기 시작했다. 절반이 끝났다고 생각하니 약간은 후련한 기분도 들었다. 이론 시험은 꼭 잘 봐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잠자리에 들었다. 


7월 9일 - 5일차 

오늘은 아부다비 투어를 하는 날이었다. 우리가 머무는 호텔로부터 버스로 약 1시간 30분 정도를 달려서 도착하였다. 다음날 이론 시험이 있는 만큼 몸을 사려야 겠다는 생각을 하며 아부다비로 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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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먼저 도착한 곳은 루브르 박물관이었다. 프랑스의 것은 유명한데 아부다비에는 존재하는 줄 몰랐다. 기하학적 패턴들로 이루어진 돔 구조가 상당히 인상 깊었으며, 여러 예술 작품들을 조용히 관람할 수 있었다. 개인적으로 박물관을 엄청 좋아하는 스타일은 아니라서 약간은 지루하게 느껴지는 시간이었다. 

점심을 먹기 위해서 아부다비의 호텔로 이동하였다. 그동안 먹은 것들에 비해 더 다양하고 맛있는 음식들을 먹을 수 있었다. 식사 도중 시리아 친구들과 합석을 하였지만 우리와 몇 번 이야기를 주고 받더니 결국 자기들끼리만 얘기해서 우리는 전부 뻘쭘하게 앉아 있기만 하였다. 

점심을 먹고 나서 Sheikh Zayed Mosque로 향하였다. 모스크로 들어가기 위해서 남녀 모두 복장 규정을 준수해야 했다. 남성은 어깨가 드러나는 옷과 반바지를 입지만 않으면 대부분 통과시켜주지만, 여성은 머리카락도 전부 감싸는 복장을 해야 출입이 허용되었다. 우리 버스의 몇몇 여학생들도 히잡을 착용하였는데, 처음 착용해본 터라 신기한 모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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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세계에서 6번째로 큰 모스크라는 말이 잘 와닿지 않았으나, 두 눈으로 직접 보니 그 스케일이 어마어마했다. 모든 건축물이 하얀 대리석으로 만들어져 있고, 내부는 화려한 샹들리에와 카펫으로 장식되어 있었다. 개인적으로 이번 IChO에서 가장 만족스러웠던 관광지였던 것 같다. 

원래는 모스크를 보고 아부다비 왕궁을 둘러보는 투어도 준비되어 있었다. 하지만 항상 있었던 지연 때문에 이 투어 역시 취소되었다. 호텔에 도착하니 8시 정도로 평소보다 늦은 시간이었다. 간단하게 저녁을 먹고 씻고 내일 있을 이론 시험에 대비를 했다. 그동안 풀어봤던 예비 문제들을 한 번 더 보고 무슨 문제가 나올지 고민해 보는 정도였다. 하지만 보면 볼수록 무엇이 나올지 예상이 되지 않아 빠르게 잠자리에 들기로 하였다. 내일은 무려 새벽 4시에 일어나야 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긴장을 안은 채로 5번째 밤이 지나갔다. 


7월 10일 - 6일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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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4시, 비몽사몽한 채로 눈을 떴다. 아무리 빨리 잤어도 역시 새벽 4시에 일어나는 건 힘든 일이었다. 실험 시험 때의 지연 때문인지, 그때보다 1시간은 빨리 움직였다. 하지만, 오늘 역시 지연이 없었던 건 아니다. 줄을 세워 들어간다고 360명의 학생들을 엑스포 광장에 집결시키고 줄을 세웠는데, 그 과정에서 약 1시간가량이 소모되었다. 결론적으로 이론 시험 역시 30분 늦어진 8시 30분에 시작했지만, 실험 시험의 여파 때문인지 비교적 정상적이라고 생각했다. 

이론 문제들은 정말 난이도가 높았다. 문제 하나의 난이도만 비교한다면, 다른 해의 최고 난이도 문항에 비해 쉬운 편이었지만, 올해 처음 출제되는 생소한 개념들을 활용한 문제들이 전반적인 난이도를 올리는 주범이었다. 특히 2번, 9번의 생유기화학과 입체화학을 활용한 문제, 3번의 이성질체 수 세기 문제와 4번의 테니스 공 문제가 정말 어려웠다. 시간 역시 상당히 촉박한 편이었다. 다 풀고 나니 실험 시험과 마찬가지로 2분 정도밖에 남지 않았다. 

시험이 끝나자, 학생들은 다 같이 박수를 쳤다. 엑스포가 떠나갈 정도로 큰 박수였다. 그동안 노력해왔던 것이 전부 끝나서일까. 마음이 정말 후련했다. 한 켠으로는 걱정도 되었다. 평상시보다 확실하게 풀지 못한 문제가 많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 와서 후회하고 걱정한다고 나의 점수가 바뀌는 것도 아니기에, 더 이상 시험에 관한 생각은 하지 않기로 하였다. 

저녁에는 4일간 보지 못했던 교수님들을 다시 만나는 Reunion Event가 계획되어 있었다. 교수님이 머무는 호텔로 이동한 뒤 우리끼리 먼저 밥을 먹고 있자, 잠시 후 교수님들의 얼굴이 보이기 시작했다. 겨우 4일 만에 보는건데도 말이 통하는 사람이 없어서 그런지, 교수님들이 무척 반갑게 느껴졌다. 

교수님들은 우리에게 시험치느라 수고했다고, 이제 남은 기간동안은 즐기다 가라고 말씀해주셨다. 이론 시험 직후, 실수가 많았던 것 같아 기분이 좋지 않았는데, 교수님들의 말씀들이 큰 위로가 되었던 것 같다. 그리고 반납했던 전자기기들을 돌려받았다! 스마트폰을 켜자 4일간 쌓여 있던 연락이 쏟아져 왔다. 새삼 21세기에 인터넷이라는게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던 순간이었다. 

그렇게 교수님들과 Closing Ceremony 때 만나자는 인사를 하고 호텔로 돌아왔다. 그렇게 그날 밤엔 빼앗겼던 만큼 열심히 스마트폰을 하고 잠자리에 들었다. 


이예준 학생


7월 11일 - 7일차 

오랜만에 폰을 받아 늦게까지 폰을 한 만큼 아침에도 늦잠을 잤다. 두바이에 와서 시험이 끝나기 전까지는 핸드폰도 없고, 컨디션 조절을 위해서 늦게는 7시, 빠르게는 4시쯤에 일어났었는데, 처음으로 늦잠을 자니 정말 기분이 좋았다. 오늘 일정은 테마 파크를 방문하는 것이었다. 아부다비에 페라리 월드가 있어 내심 페라리 월드를 가기를 기대했으나 아쉽게 IMG 테마 파크를 방문하였다. IMG 월드 오브 어드벤쳐는 두바이에 있는 실내 테마파크로 마블, 카툰 네트워크, 로스트 밸리 등 여러 테마와 관련된 놀이기구들이 있었다. 

이 중 가장 재미있었던 어트랙션은 바로 밸로시랩터 롤러코스터였다. 놀이기구를 기다리다가 잠깐 만난 멕시코 친구들이 밸로시랩터가 정말 재밌다고 추천해줬던 만큼 기대했었는데, 그만큼 정말로 재밌었다! 기존에 아는 롤러코스터와 달리 출발하자마자 최고 속력을 찍는 런치드 롤러코스터 형식이었는데, 눈 깜짝할 사이에 정상에 와 있는 것이 놀라웠다. 

그 외에도 Predator, 스파이더맨 등 재밌는 놀이기구들을 즐길 수 있었다. 특히 Predator 롤러코스터는 수직으로 올라가서 수직보다 더한 각도로 떨어지는 것이 매우 인상깊었다. 저녁은 테마 파크 내 음식점에서 페투치네 까르보나라를 먹었는데, 한국에서 익숙한 파스타 면과 달리 얇고 넓은 면이어서 이색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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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오는 버스에서 외국 친구들은 파티를 벌였다. 전에는 노래만 불렀었는데, 가이드님이 스피커를 준비하시더니 시험도 끝나겠다, 다 같이 버스에서 일어서서 춤을 추었다! 우리나라 친구들은 모두 I였던지라 가만히 보고만 있었는데, 이를 의식이라도 한 건지 갑자기 ‘강남스타일’을 틀고는 같이 추자고 했다! 정말 부끄러웠지만 우리나라에서도 유찬이가 나가서 함께 춤을 추었다. 그렇게 친구들은 호텔로 가는 동안 계속 광란의 춤시위를 벌였다. 어쩜 저렇게 높은 텐션을 유지할 수 있을까… 


7월 12일 - 8일차 

오늘은 아침에 친구들과 함께 Dubai Festival City Mall을 가기로 했기에 어제보단 일찍 일어났다. 원래 일정상 Mall에 갈 수 있는 시간이 많았고, 호텔과 바로 연결되어있기 때문에 많이 다닐 수 있을거라 생각했지만 일정들이 많이 바뀌는 바람에 오늘 꼭 초콜릿, 기념품 등을 사야겠다고 생각했다. 다행히 2일차에 잠깐 둘러봤던 터라, 길을 찾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그렇기 친구들과 함께 열심히 쇼핑을 했다. 가장 먼저 초콜릿 등을 사기 위해 마트로 보이는 곳에 들어갔다. 중간중간에 한국 식품들도 보여서 나름 신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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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회 전 기말고사가 끝난 친구들이 쇼핑 리스트를 미리 제작해주었는데 낙타 비누, 무당벌레 비누, 선인장 샴푸, 대추야자 등 상품들을 하나하나 찾으면서 쇼핑카트에 넣으니까 참 재미있었다. 또한 가족들과 친구들, 선생님들께 드릴 두바이 초콜릿과 대추야자도 한가득 샀다. 그렇게 Mall 안에 들어가기 전에 600디르함(23만 원 정도)을 써버렸고 어쩔 수 없이 호텔에 짐을 놔두고 온 뒤 다시 본격적으로 Mall 구경을 하였다. 

3일차에 방문했던 Dubai Mall도 정말 넓었는데, Dubai Festival City Mall 또한 못지 않게 넓었다. 무엇보다 이 Mall을 쭉 가다보면 교수님들께서 계신 호텔이 나온다는 것이 정말 신기했다. Mall 안에는 명품 등을 판매하는 가게들이 많았기에 물건을 사기보다는 아이쇼핑을 많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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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에는 원래 사막 사파리 투어가 예정되어 있었으나, Museam of the Future을 방문하는 것으로 일정이 변경되었다. 아무래도 5일차에도 박물관을 방문했었고, 개인적으로 사막을 가보고 싶었던 마음이 컸기에 아쉬웠지만 어쩔 수 없었다. 로비에서 출발을 기다리는 도중 여러 친구들과도 대화하였다. 덴마크 친구들이 덴마크 간식을 나누어줬는데, 온갖 해산물이 생각나는 정말 신 맛이었다. 결국 끝까지 먹는 것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얘들아 미안... 그리고 자신의 수첩이나 실험복에 여러 친구들의 사인을 모으는 친구들도 있었다. 나 또한 친구들에게 한글로 된 이름을 적어주거나, 실험복에 사인을 해주기도 하였다. 다양한 친구들이 적극적으로 교류하는 모습이 정말이지 아름다웠고, 먼저 다가가는 것이 어려운 나에겐 한편으론 본받고 싶기도 하였다. 

예술작품 등을 위주로 전시한 Louvre Abu Dhabi와는 다르게 Museam of the Future은 자신들이 2071년의 미래를 상상하며 미래의 첨단 기술, 도시의 새로운 모습 등을 주제로 상상의 나래를 펼친 매력있는 박물관이었다. 

저녁에 돌아와서는 오랜만에 저녁 시간이 비어 호텔에 있는 헬스장에 갔다. 헬스를 잘하지는 않지만 즐겨하는 나였기에 매일 헬스장에 가고 싶었지만, 생각보다 빡빡했던 일정 때문에 8일차가 되어서야 처음으로 갈 수 있었다. 다만 헬스장이 그렇게 크지는 않았던 터라 살짝 실망했다. 특히 머신의 수가 적었고 한국과는 다른 머신이 많았는데, 아무래도 사용하기 불편했던 터라 프리웨이트랑 스미스 머신, 사이클을 주로 사용하였다. 

그렇게 오랜만에 땀을 흘리고 씻고 나니 기분이 매우 좋았다. 내일은 중요한 일정이 있기에 다른 날보다는 일찍 폰을 내려놓고 잠에 들었다. 


7월 13일 - 9일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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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대망의 폐회식이 있는 날이었다! 폐회식 또한 개회식과 동일한 장소에서 진행되었다. 로비에서 여러 중동 옷을 입은 분들이 춤을 추고 있길래 설마 폐회식 때 축하 공연을 해주시는건가 했지만 아쉽게도 그냥 춤을 추고 계신 거였다. 여러 높으신 분들의 연설을 시작으로, 대망의 폐회식이 시작되었다. 가장 먼저 Honorable Mention이 불렸다. 총 30명의 친구가 불렸으며, 5명씩 그룹으로 빠르게 불렸다. 우리 버스에 있던 정말 텐션이 높은 아일랜드 친구가 불렸는데, 정말 좋아하는 모습을 보니 나도 모르게 기분이 좋아졌다. 그렇게 Honorable Mention이 빠르게 지나가고, 동메달 수상자 발표가 시작되었다. 이번 대회에서 동메달은 총 107개로, 정말 많은 친구들의 이름이 하나하나 호명되었다. 우리는 한 명의 이름이 불릴 때마다 숨죽이며 살펴보았고, 결과적으로 동메달 세션에서는 아무도 불리지 않았다. 여담으로 사회자가 크로아티아를 부를 때 자꾸 ‘콜씨아’로 불러서 우리나라인 줄 알고 가슴 철렁했던 적이 많다. 물론 우리나라는 ‘Republic of Korea’이지만...아무튼 그 다음으로 은메달 수상자 발표가 시작되었다. 지금부터는 나의 이름이 불릴 수도 있다는 생각에 긴장되면서도 태극기를 어떻게 잡아야 할지 생각하고 있었다. 은메달에서는 대회 중 보았던 캐나다, 카자흐스탄 친구들도 여럿 불렸고, 일본 친구들도 3명 불렸다. 은메달 수상이 점점 진행되자 앞에 있는 일본 친구들이 ‘너희 모두 금메달 아니야?’ 하면서 농담을 하기도 하였다. 그렇게 은메달 수상자가 한 50명째 불리면서 점점 긴장의 끈을 놓고 있던 그때, 나의 이름이 가장 먼저 불렸고 나는 생각할 틈도 없이 단상으로 향하였다. 금메달을 받았으면 좋았겠지만 은메달이 어디냐. 아쉬운 마음을 뒤로하고 나는 단상에 서서 밝은 모습으로 태극기와 함께 사진을 찍었다. 그 후 은메달 수상이 거의 끝나갈 즈음에 갑자기 유찬이의 이름이 불렸다. 아쉬워하던 시간도 모자라 바로 다음에 (최)예준이의 이름도 불렸다. 은메달 수상 막바지에 금메달 3개가 거의 확정 아닌가 생각하던 시점에 우리나라 친구들의 이름이 2명이나 불렸고, 더 충격적이었던 건 (최)예준이의 메달 수상을 끝으로 은메달 수상이 마무리되었다는 사회자의 말이었다. 금메달 수상을 확정지은 주위의 많은 친구들이 환호성을 질렀다. 나 또한 금메달을 확정지은 효종이를 축하해주었으나, 한편으로는 우리나라 친구들이 각각 1, 2등 차이로 금메달을 못 받았다는 사실에 정말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결과는 받아들여야 하는 법. 이어서 바로 금메달 수상이 이어졌고 잠시 후 효종이의 이름이 불리자 기쁜 마음으로 진심으로 축하해주었다. 그렇게 폐회식이 끝난 후 우리들은 교수님들과 함께 사진을 찍었다. 교수님들도 축하한다는 말을 해주셨지만, 정말 아깝게 놓친 금메달 2개가 아쉬우셨을 것 같다. 

모든 일정이 끝나고, 우리는 Farewell Dinner을 가졌다. 이름이 거창하기에 불꽃 쇼나 스테이크가 나오는 거창한 저녁인 줄 알았지만 기대와는 다르게 그냥 평범한 식사 자리였다. 교수님들과 함께 그동안의 이야기, 재밌었던 에피소드 등을 얘기하며 즐거운 식사를 가졌다. 그러다가 외국 친구들이 하나 둘 기념품을 교환하는 걸 보고 우리도 기념품을 교환해야 한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성격 때문에 막상이 몸이 움직이질 않았는데, 교수님들께서 빨리 가서 친구들한테 말 좀 걸라고 하셔서 복주머니를 들고 출발하였다. 처음에는 진짜 부끄러웠는데, 유찬이를 선두로 여러 나라의 친구들에게 말을 걸며 서로 선물을 교환하니 생각보다 재미있었다. 특히 많은 가이드분들께서 관심을 가져주셨는데, 원하는 색으로 바꿔달라는 등 적극적으로 반응해주시니 괜스레 뿌듯한 마음이 들기도 하였다. 그렇게 외국의 여러 친구들과 얘기도 하고 연락처도 교환하면서 마지막 밤을 마무리했다. 


7월 14일 - 10일차 

공식적인 일정은 끝났지만 오전 시간이 많이 남았기에 교수님들께서 함께 두바이에 있는 대관람차를 타자고 하셔서 일찍 체크아웃을 한 뒤 떠났다. Ain Dubai라고 하는 높이 250m의 세계 최대 규모 대관람차인데, 예전에 런던아이를 타봤을 때도 인상 깊었던 기억이 있었기에 이번 대관람차도 굉장히 기대를 하였다. 대관람차를 타기 전 교수님들께서 사주시는 점심을 맛있게 먹고 드디어 대관람차에 탑승하였다. 내부가 상당히 넓었고, 교수님들께서 특별히 프리미엄 석으로 예약해주신 만큼 우리 대표팀 8명만 탈 수 있었기에 굉장히 쾌적한 환경이었다. 대관람차가 올라가기 시작하자 탁 트인 두바이의 바다가 보였고, 내가 9일 동안 살았던 두바이가 이런 또 다른 매력이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대관람차가 최고점에 다다르자 팜 주메이라의 모습이 보였다. 이는 야자수의 모습을 본떠 인공적으로 만든 지역인데, 정말 기술력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떻게 저런 아름다운 모습으로 섬을 만들었을까? 공식 일정에서 팜 주메이라를 가거나 한눈에 볼 수 있는 전망대 등이 없어서 아쉬웠는데, 교수님들 덕분에 마지막 날에 정말 좋은 구경을 할 수 있었다. 그렇게 40분 정도 되는 시간동안 단 한 번도 앉은 적 없이 경치를 관람하다가 아쉽게 대관람차 여정이 마무리되었다. 정말이지 짧게 느껴졌던 시간이었다. 

그렇게 10일간의 두바이에서 일정을 마무리하고 공항에 도착했는데, 무언가 스치듯 머리에 생각이 떠올랐다. 바로 호텔에 단복을 두고 온 것이었다. 순간 온 몸이 굳었지만 침착하게 상황을 설명하니 해결해주시겠다고 하셨다. 가이드인 Yasmin이 호텔에 문의를 해주었고, 호텔에서 공항으로 직접 배달해주겠다고 해서 정말 다행으로 단복을 찾을 수 있었다! 다음부터는 꼭 짐을 잘 챙기겠습니다...여담으로 Yasmin이 공항에서 일해서 우리의 체크인을 빠르게 도와주었고, 비행기 탑승구도 미리 알려주었다. 정말 첫날부터 마지막 날까지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또 문제가 발생했는데, 바로 수하물이 무려 3kg나 초과한 26kg였다는 것이었다. 아무래도 들고 타는 짐을 최소화하고 싶어서 캐리어에 최대한 많이 넣었는데, 그 결과 할 수 없이 다시 공항에서 짐을 빼내야 했다. 결국 수화물을 23kg로 맞춘 후, 더 뚱뚱해진 가방을 매고 공항을 다닐 수밖에 없었다. 공항에서 비행기 시간을 기다리면서 교수님께서 사주신 음료수도 먹고, 면세점도 구경하고 KFC에서 치킨도 사먹었다. 10일 내내 호텔식만 먹다가 외부 음식을 먹으니 더 맛있게 느껴졌다.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우리는 비행기를 타고 마침내 한국에 도착할 수 있었다. 

한국에 도착하니 피곤하다는 감정이 제일 먼저 떠올랐다. 그래도 할 건 해야지. 우리는 다시 단복으로 갈아입고 사진을 찍었다. 이렇게 부모님과의 재회, 그리고 교수님들과 친구들과의 헤어짐을 마지막으로 우리의 두바이 10일 여정은 끝을 내리게 되었다. 



심유찬 학생


에필로그 

우리나라 대표팀의 성적은 금메달 1개와 은메달 3개로, 전체 국가들 중 일본, 싱가포르와 함께 공동 10위를 차지하였다. 기쁨 그리고 조금의 아쉬움이 남는 행사는 이렇게 마무리되었다. 열흘이라는 기간은 나의 삶을 그려내기에는 너무나 짧은 시간이지만, 그 열흘은 나에게 잊을 수 없는 기억을 선사하고 그렇게 떠나버렸다. 

대회의 폭풍이 지난 이후 며칠이나 더 지난 지금에서 다시 눈을 감고 생각해 보면, 인천공항에서 위풍당당하게 단복을 차려입고 출국장에서 사진을 찍던 당돌한 고등학생이 떠오른다. 한국을 넘어 전 세계에 발을 들인다는 것이, 내가 접해보지 못한 새로운 이야기에 빠져든다는 것이 어떤 느낌인지 전혀 몰랐기에. 그렇기에 의기양양하고도 걱정이 많던 나였다. 학생은 이윽고 가족들과 인사를 마치고 두바이로 향하는 비행기에 올랐다. 

이 모든 일들을 내가 스스로 헤쳐나가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될 때까지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나를 응원해주는 가족, 대표단에게 끝없는 도움을 주신 교수님들, 끝내 서로에게 최고의 동료가 되었던 대표단 친구들과 떨어져 나를 시험하는 최종장에 도달했을 때, 나는 지레 겁을 먹고 주저앉았다. 종일 밤을 새고 괜스레 동이 트지 않은 새벽에 잠이 깨 호텔 로비를 이리저리 돌아다니던 나는 더 이상 도망칠 수 있는 곳이 없었다. 무언의 압박감이 나를 감싸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스스로가 각자의 한계를 극복해 나갔다. 시험이 지연되는 틈을 타 한숨을 돌린 나는, 실험 시험에서 최대한 집중력을 잃지 않게 노력했다. 화면에 출력되는 글자, 낱말, 문장, 작은 지시사항들을 하나도 빠짐없이 관찰했다. 그렇게 내가 평소에 하던 대로 실험을 수행하다 보니 결과물은 의외로 꽤 잘 굴러가고 있었다. 종국에는 오히려 시간에 쫓기지 않고, 여유를 가지며 열정적으로, 그리고 주체적으로 대회에 임하는 나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IChO에 직접 나가 참가해보기 전까지는 좋은 상이 좋은 사람으로 이어지는 줄만 알았다. 한국에서 국가대표 교육을 받을 때도, 아랍에미리트의 땅을 처음 밟을 때에도, 그리고 시험 전날에 공부를 할 때에도 나는 오로지 높은 점수를 받는 방법만을 추구했다. 그때의 나는 참 광인처럼, 무언가에 홀려 성적에 연연하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모든 시상이 끝나고 어지러진 색종이와 뜨거웠던 분위기를 한껏 담은 단상에 올라서 돌아보니, 그저 이 길을 포기하지 않고 걸어온 나와 대표팀이 자랑스러울 뿐이었다. 긴장감에 뒤덮여 전혀 이해하지 못했던 “이 대회를 즐기라”는 개회식의 메시지를 진정으로 이해하게 되는 순간이었다. 

이 멋지고 환상적인 이야기가 만들어지는 데 많은 사람들의 도움이 있었다는 사실을 또한 알게 되었다. 국가대표로 선발된 날부터 최선을 다해 대표단을 지도해 주신 교수님들께 우선적으로 감사의 말을 전해드리고 싶었다. 모든 게 낯설고 어색한 공간에서, 교수님들이 우리의 곁에 있어 주셨기에 조금이라도 더 힘을 낼 수 있었다. 더불어 대한화학회의 김예림 대리님과 곽현영 국장님도, 대회에 동행하시지는 않았지만 대회 참가와 관련해서 우리에게 정말 큰 힘이 되어 주셨다. 이외에도 나라는 사람을 가장 믿고 응원했던 나의 가족들과, 십시일반으로 작은 마음을 모아 보내준 나의 친구들에게도 정말 고마웠다. 

대회에 나가서 얻게 된 교훈은 하나 더 있었다. 정말 많은 국가에서 온 354명에 달하는 학생들이 올해 IChO에 참가했기 때문에, 굉장히 다양한 아이들을 만나볼 수 있었다. 처음에는 영어로 대화하는 것이 너무 힘들고 진이 빠졌다. 내가 원래 속해 있던 익숙한 세상, 나의 모국어가 사방팔방에 울려 퍼지는 대한민국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그러나 이미 수많은 학생들 사이에 섞여 있던 나는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는 말처럼 적극적으로 새 친구들을 만나보기로 결정했다. 

다가서기 전에는 걱정이 기대를 앞섰다. ‘내가 영어를 못해서 애들이 답답해하거나 피하면 어떡하지?’ ‘무의식적으로 밉보일 만한 행동을 하면 어떡하지?’ 등 겪어보지 못한 일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의 되물음이 내 앞을 가로막았다. 실제로 이 때문에 처음 도착했을 때는 다른 나라의 대표단에게 간단한 인사나 스몰토크를 시도하는 것조차 너무 버거웠다. 

그렇지만 학생들은 생각보다 그렇게 차갑지 않았다. 대부분은 우리의 이야기를 정말 잘 들어주었고, 몇몇과는 인스타그램 맞팔로우를 하며 새로운 인간관계를 만들 수 있었다. 우리는 짧은 시간 동안 세계인들과 함께 생활하며 하나가 되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 화학이라는 리본으로 선물을 포장한다고 생각해 보아라. 서로 알지도 못하고 말도 통하지 않는 수백 명의 사람들이 화학이라는 열매 아래 모두 모였다는 것은 그 누구도 감히 표현해내지 못할 아름다운 광경일 것이다. 

IChO 2025는 나에게 국제대회 그 이상의 존재가 되었다. 실험 능력과 이론 능력을 통해 화학 실력을 줄 세우는 평가의 장에서, 이제는 나의 정체성을 만들어주고 평생의 기억으로 자리 잡을 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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