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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national Mendeleev Chemistry Olympiad참관기

  • 작성자 사진: 성완 박
    성완 박
  • 2일 전
  • 10분 분량

정현서 | 민족사관고등학교 3학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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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무더운 7월이 되었다. 방학을 맞아 학교에 있는 거의 모두가 전국으로 흩어진 상황이다. 나 또한 사람들이 북적이는 학교 생활에서 벗어나 지금은 지방에 내려가 잠시나마 조용한 삶을 살고 있다. 이 글을 쓰는 시점에서 나는 이미 고등학교 3학년으로써, 길고 길었던 대입이라는 험준한 여정에 마침표를 찍을 준비를 하고 있다. 아마 이 글을 읽고 있는 독자 여러분께 먼저 묻고 싶다. 당신의 고등학교 시절은 지금 당신의 삶에 어떻게 영향을 주었는가? 지난 22년도부터 쉴 새 없이 달려온 나의 고등학교 시절은 정말 힘들고 쉽지 않은 여정이지만, 돌이켜 보면 참으로 나란 사람이 복에 겨운 사람이라는 것을 많이 느끼게 해준다. 고등학교 입학 전에만 해도 ‘과학’이라는 학문과 나와는 거리가 있다고 생각했지만, 고등학교 입학 후 알게 된 ‘국제과학올림피아드’의 존재는 17살 소년의 마음에 불을 지피기 충분했고, 그 후 올림피아드에 미치게 되어 많은 선배 연구자 교수님들과 나와 같은 길을 걷는 다양한 학생들을 만나게 될 수 있었다. 나는 화학올림피아드에 나의 고등학교 인생을 다 바쳤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 고등학교 시절, 내게 뚜렷한 목표를 가지게 해주고, 많은 고마운 사람들을 만날 수 있게 되었던 것은 내가 ‘화학올림피아드’를 시작했기 때문이라고 귀결지을 수 있다. 

3개월 전, 나는 국제 멘델레예프 화학올림피아드(International Mendeleev Chemistry Olympiad, 이하 IMChO로 기술)에 참가했다. 화학올림피아드에 참가하는 사람들만 알음알음 알고 있는 이 대회는 무려 1967년에 소련에서 시작된 국제화학올림피아드(International Chemistry Olympaid, 이하 IChO로 기술)보다 역사가 오래된 화학올림피아드로 올해로 59회차를 맞았다. 초기에는 동구권 국가들만 참여했지만, 올해는 브라질에서 개최되었을 뿐 아니라, 한중일 모든 국가가 참여한 역사적인 대회가 되었다. IMChO는 3개의 Round로 구성되어있는데, Round 1과 Round 2는 이론 부문으로, Round 3는 실험 부문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대회가 또 알려지게 된 이유는 악명높은 문제 난이도 때문인데, 24년도 IChO에서 나왔던 가장 어려운 문제가 이곳에서는 Round 1에서 문제 중 일부로 나오는 수준이다. 그동안 한국에서는 이 대회에 나간 이력이 없어 혼자 모든 행정적인 업무와 대회 준비를 동시에 해야 했다. IMChO에 참가하고 싶다는 나의 이메일에 그들의 답장이 온 것은 그로부터 3개월 후이다. 나도 입시를 준비해야 해서 참가가 가능하다는 확신이 없는 이상 거기에 시간을 쏟을 수는 없는지라, 실질적인 대회 준비 시간은 학기 중간고사가 끝난 후 2주 정도였다. 그 후 브라질로 출국하는 비행기를 탔다. 긴 서론을 읽어주어 감사하다. 멘델레예프 올림피아드에 참가하게 된 것은 내게 굉장히 영예롭고 영광스러운 일이다. 먼 타국에서 대한민국을 알리기 위해, 무엇보다도 나 자신의 한계를 넘어서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더불어, <화학세계> 8월 호에 나의 참관기를 게재하게 해주신 대한화학회 회장이며 강원대학교 화학과 이필호 교수님께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전한다. 내게 굉장한 격려와 응원을 아끼지 않고 보내주셔서 지금의 내가 있을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이 글을 읽는 모두가 언제나 행복하고 무더운 더위를 잘 이겨나갈 수 있으면 좋겠다. 


대회 1-2일 차(4-5 MAY, SU – MO) 

어느덧 브라질 출국 날짜가 찾아왔다. 1년 전 IChO에 참가하려 도착했던 인천공항에 일 년 만에 다시 이 자리에 온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일 년 전 그때와는 사뭇 달랐다. 2년 간의 선발 과정 동안 동고동락했던 같은 대표학생들, 지도 교수님들과 낯선 나라에 간다는 약간의 두려움과 많은 새로운 사람과 문화를 접할 수 있다는 설렘을 공유했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나 혼자였다. 나를 응원하는 사람도, 출국 전 참여하는 발대식도, 그리고 무엇보다 내가 이 대회를 나간다는 것을 알고 있는 사람도 없었다. 그렇지만, 작년의 경험이 자양분이 되어 내게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 점도 있었다. 작년에는 내 생애 처음 경험했던 해외 출국이라 모든 일들이 서툴고 미숙했다. 하지만 두 번째 출국을 겪고 있는 나는 전보다 훨씬 능숙했다. 출국 수속부터 비행기 탑승까지 어려웠던 것은 하나도 없었다. 출국할 때는 새로운 나라에 간다는 것으로부터 느껴지는 설렘보다는 IMChO에 대한 대회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다. 이번 대회가 지금껏 달려온 나의 올림피아드 경력에 마침표가 될 예정이기에, 그리고 지금껏 열심히 달려왔기에 그러한 생각을 떨치지 못했다. 나의 부족했던 준비 기간 또한 그러한 생각을 거들었다. 이 대회를 ‘참가’하기 위해 상당한 노력을 기울였는데, 학기 중간고사 이전에 대회 주최측과 소통하려 몇십 통씩 이메일을 보내며 밤을 지새워 결국 IChO를 이전에 참가했거나, IMChO를 참가하기 위한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선택되었다면 대회를 참가할 수 있다는 답을 받았다. 그 후 중간고사를 마치고 2주 정도 인터넷에서 구할 수 있는 난해한 기출문제와 씨름하며 준비했더니 어느덧 공항에 와있는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그렇다. 비행기에서 최대한 한 문제라도 더 고민할 생각에 낯선 나라에 간다는 두려움 따위는 느껴지지 않았던 것이다. 그게 지구 반대편 남미에 가는 것임에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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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회 장소인 브라질 벨루오리존치(Belo Horizonte)까지 가기 위해 두바이를 거쳐 상파울루(브라질의 수도) 공항에서 국내선 비행기로 3시간 정도 가서야 도착할 수 있었다. 중간에 공항에서 머문 시간을 제외하고도 비행기에서 보냈던 시간만 27시간이 넘었다. 비행기를 타기 전 카페인 음료를 마시고 쏟아지는 잠을 이겨내며 문제 풀이에 열중했다. 지나가던 승무원과 외국인 승객들이 신기하다는 듯이 쳐다봐도 어쩔 수 없었다. 브라질의 12시간 시차를 맞추기 위해서는 아무리 잠이 와도 버텨야만 했다. 무엇보다도 준비 기간이 턱없이 부족했던 나이기에 더욱 공부에 열중했다. 1년 전에도 사우디행 비행기에서 친구들과 문제 풀이를 했지만, 이제는 혼자였다. 나는 나 자신과 싸움을 하고 있었다. 1년 전 미숙했던 나의 모습을 되풀이 하고 싶지 않았다. 비행기 불이 꺼져도, 오랜 비행기 탑승 시간에 지친 승객들이 일어나 주변을 산만하게 해도, 난기류를 만나 비행기가 심하게 덜컹거려도 나는 초연히 지금 내가 보고 있는 문제와 내 손에 쥔 샤프 끝 감각에만 의지했다. 긴 인고에 시간 끝에 벨루오리존치 현지 가이드와 접선하여 호텔로 이동했다. 호텔에 가니 멘델레예프 올림피아드 배너가 나를 반겨주었다. 이제 진짜 대회 시작이라는 생각이 남과 동시에 쏟아지는 잠을 이기지 못하고 잠에 들었다. 


대회 3일 차(6 MAY, TU, OPENING CEREMON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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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이 밝았다. 일어나 보니 창문 밖으로 브라질 풍경이 보였다. 아직은 딱히 다른 나라에 왔다는 실감은 나지 않았다. 하지만 그 생각은 곧 사라졌다. 호텔 로비로 나가자마자 각기 다른 언어로 재잘대는 각국의 사람들로 호텔 로비는 북새통을 이루었다. 이번 IMChO는 40국의 각기 다른 학생들이 최대 10명(host country는 15명까지 참가 가능) 까지, 온 국제적인 규모를 자랑했기에 들리는 언어와 보이는 생김새도 모두 달랐고, 무엇보다 이번 대회는 한·중·일 삼국이 모두 참가하는 기념비적인 대회였다.(그렇기에 문제가 어려울 것이라는 예측이 있었고, 실제로 그 예측은 현실로 드러났다!). 호텔 조식을 먹지 못해 배고팠지만 바쁘게 로비로 내려가 선수 등록(Registration) 절차를 마쳤더니 브라질 자원봉사자(참고로 한국인을 굉장히 좋아했다.)들이 참가 기념품(티셔츠, 볼펜, 텀블러 등)과 실험복, 참가자 이름표를 주었다. 오늘은 개회식(Opening Ceremony)이 있기 때문에 모두가 들뜬 상태였다. 나도 아직 다른 나라에서 온 학생들을 만나지 못했기에 어떤 사람들이 왔을지 궁금하기도 했다. 개회식 장소까지 차로 1시간을 타고 달린 결과 브라질 도심부에서 멀리 떨어진 산속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더 가니 산 중턱 즈음에 IMChO 개회식 장소임을 알려주는 배너가 있었다. 거기서 내려서 좀 더 걸으니 흥겨운 음악소리와 함께 자원봉사자들이 각국의 선수들이 입장할 때마다 환호성을 지르고 북을 치고 있었다. 음악은 우리가 남미에 있는 것을 알려주듯 평소에 자주 볼 수 없는 악기(젬베 등)들을 현지 밴드가 연주하고 있었는데, 정말 흥겹고 좋았다. 나는 바로 달려가 각국 깃발이 꽂혀있는 곳에서 태극기를 찾아서 사진으로 남겼다. 먼 타국 지구 반대편 브라질에서 발견한 우리나라 국기는 평소와 다르게 내게 다가왔다. 주위를 둘러보니 많은 나라의 학생들이 먼저 도착해서 놀고 있었다. 그중에는 눈에 정말 잘 띄는 러시아나 중국 대표팀 학생들뿐 아니라 카타르나 우간다, 키르기스스탄 등 평소 잘 볼 수 없는 나라의 학생들도 있었다. 나 또한 이런 기회를 낭비할 수 없었기에 그들과 섞여 브라질까지 어떻게 왔는지를 물어보았고, 베트남 단장과도 만나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었다. 그러다 보니 어느덧 개회식 시작 시간이 되어 자리에 앉았다. 원래 이곳에 오기 전까지는 개회식을 실내에서 진행하는 줄 알았지, 야외에서 진행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자연 속에서 진행되는 개회식에서는 오프닝 인트로 영상부터 브라질 국립 발레단에서 온 발레 선수들의 공연, 러시아 연방 과학 부의장의 환영사, 우리가 머물렀던 Minas Gerais 대학의 총장의 축사 등이 이어졌다. 그 이후 각국의 선수 소개시간이 있었는데, 한국 소개가 나오자 나도 놀란 엄청난 환호가 있었다. 지금 이 참관기를 쓰는 입장에서 말하자면, 한국의 문화가 이곳 브라질에서는 확실히 먹혔다! 그 이후 큰 삼각 플라스크 5개에 어떤 고체 물질을 대회 주최 측 인사(교수) 5명이 넣자 차례로 기체가 뿜어져 나오며 대회 시작을 알렸다. 정말 글로써는 다 묘사할 수 없는 장관이었다. 그리고 내일은 바로 첫 번째 이론시험이 있는 날이다. 


대회 4-5일 차(7-8 MAY, WE - TH, THEORETICAL EX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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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일차 참관기를 작성하기 전, 독자들의 혼란을 막기 위해 한 가지 언급하고자 한다. Mendeleev 시험은 총 두 번의, 각 5시간씩의 이론시험이 있다! (그 말은 이틀에 걸쳐 이론시험을 본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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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텔에서 눈이 떠져 일어나 보니 브라질 현지 시각으로 오전 8시였다. 전날 밤까지 이론시험 준비에 애를 먹었다. 사실상 멘델레예프 올림피아드의 꽃은 이론시험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기에 긴장감은 배가 되었다. 멘델레예프 올림피아드 이론시험의 악명은 널리 알려져 있다. 인터넷 입시-시험 관련 외국 커뮤니티에서도 멘델레예프 올림피아드를 지구상에서 가장 어려운 화학 시험(The most difficult chemistry exam on the planet)이라고 소개할 정도이다. 이 말이 궁금하다면 인터넷에서 구할 수 있는 멘델레예프 기출문제를 한번 보면 바로 이해할 수 있다. Round 1은 각 분야가 명확하게 구분되어 있지 않고 5시간 동안 8문제를 푸는 시험이다. Round 2는 5가지의 각 분야(생화학 및 고분자, 물리화학, 무기화학, 분석화학, 유기화학)가 명확하게 구분되어 있고 총 15문제로 이루어져 있다.(이 중 5문제의 점수를 ‘완전히’ 얻는다면 금메달을 얻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 이런 시험을 몇 시간 앞둔 나는 의외로 호텔 2층으로 내려가 조식을 먹었다. 이 시험은 5시간 동안의 마라톤이기에 공복 상태로 가고 싶지는 않았다. 시험장에 도착하니 아직 입장시간이 되지 않아 입장은 할 수 없었다. 브라질에서 떠오르는 태양의 아침 햇살을 맞으며 마음을 진정하고 기다렸다. 시험장에 들어가니 각자의 자리가 정해져 있었고 5시간 분량의 두꺼운 문제지와 답안지를 받고 시험지를 펼쳐보았다. 8문제를 5시간 안에 푸는게 뭐가 어렵나 싶겠지만 정말 정말 쉽지 않았다. 결국 3번과 8번은 손도 대지 못했고, 나머지 문제들을 해결하는데 최선을 다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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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다음 날 또한 긴장을 늦추지 못했다. 전날 이론시험이 끝났어도 바로 다음 날 이론시험이 예정되어 있었기에 밤까지 호텔 방에서 홀로 문제 풀이에 전념했다. 내일까지만 버티면 그래도 관광 다니는 날이 있었기에 이론시험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하려고 노력했다.(사실 실험 시험이 있기에 완전히 마음을 느슨하게 하지는 못했다.) 시험장에 가서는 전날보다 배로 두꺼운 시험지와 답안지를 받았다. 시험지를 잡아둔 스테임플러 심이 금방이라도 터질 것만 같았다. 충격적인 장면을 목격한 나는 곧바로 시험지를 펼쳐보았다. 멘델레예프 올림피아드 이론시험의 하이라이트는 생화학과 고분자, 그리고 무기화학이다. 특히 그중에서도 한국 화학 올림피아드 시험에서는 배제되는 생화학과 고분자 문제가 가장 창의적이면서 어렵게 나온다. 특히나 이번 Round 2에 나오는 생화학과 고분자 문제는 역대급으로 어렵게 나왔기에 점수를 별로 받지 못했다. 나는 Round 2 무기화학에서 나오는 괴랄한 추론 문제를 준비할 수 있었던 시간이 부족했기에 나머지 라운드에 있는 문제에 주력했다. 무기화학은 Round 1에 있었던 추론 문제를 해결한 것으로도 충분히 만족했다. 앞서 간략히 언급했던 물리화학이나 분석화학, 유기화학(특히 유기화학!!) 문제들 또한 충분히 괴랄했지만, 언급한 무기화학과 생화학 및 고분자 분야가 너무나 괴랄했기에 자세한 설명은 생략했다. 시험이 끝나고 시험 보는 동안에는 몰랐었던 구부정한 나의 목 자세로부터 밀려오는 고통(지금도 생각하면 아프다)과 Jury들이 돌아다니며 나눠주는 간식이 눈에 보였다. 그것들을 주섬주섬 챙겨서 우리가 시험을 보았던 Minas Gerias 대학의 학식을 점심으로 먹었다. 오후에는 여러 Cultural program 들을 자율적으로 참석할 수 있었다. 나는 한국을 좋아하는 현지 대학생들에게 둘러싸여(한치에 거짓도 없다.) 공짜로 대학 투어도 다니고, 중국 학생들이랑 얘기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그래도 이론 시험이 끝나니 한숨 돌렸다. 내일은 관광 투어가 있는 날이기 때문이다. 


대회 6일 차(9 MAY, FR, EXCURSION 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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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이 살짝 흐렸다. 멘델레예프 대회는 대회 기간 내에 3개의 시험이 있고, 각자의 문제에 관한 이의신청(Arbitration) 또한 학생들이 직접 한다. 그래서 사실상 IChO처럼 상당한 관광 프로그램이 있을 수가 없다. 그래서 오늘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벨루 오리존치 지역에 관광을 가는 날이다. 우리가 관광을 가는 곳은 도심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곳이였다. 가는 동안 브라질 도심도 보고 했지만, 차로 2시간 반 정도는 가야 목적지에 도착한 것 같았다. 이곳은 Ouro Preto라는 곳이었는데, 세계 2차대전 참전자들의 묘지와 바로크 형식의 건축 양식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어 마을 전체가 세계 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었다. 그리고 종교적인 건축물도 상당히 많았다. 가서 젤라또도 사먹고, 중국 학생들과 키르기스스탄 여학생들과 많이 어울려 다녔던 것 같다. 서로 다른 문화권에서 온 학생들하고 대화를 나누는 것은 언제나 즐겁다. 이것은 내가 작년에 사우디아라비아에서 느꼈던 생각과 달라지지 않았다. 아무래도 고등학생들이 모인 것이다 보니(꼭 그렇지는 않다. 몇몇 학생들은 나보다 훨씬 어린 학생들도 있었다.) 각자의 교내 생활이나 입시, 각국의 올림피아드, 그리고 대학 얘기도 많이 했던 거 같다. 중국 대표단 중 상당수는 중국화학올림피아드(CChO) 최종 선발전 50인 내에 들었기에 가오카오(중국 대학입학시험)가 면제되고 이미 대학교를 합격한 학생들이었다. 내게 올림피아드 끝나고 귀국하여 이메일을 보내준 Ge Mahao(이번 대회에서 금메달을 받았다.)는 자신이 칭화대학교에 이미 합격했으며, AI를 공부하고 싶다고 했다. 나도 이들처럼 대학교를 잘 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날은 흐렸지만 색다른 건축 양식은 내가 마치 유럽 한복판에 있는 듯한 느낌을 불러왔다. 날씨는 5월 달임에도 불구하고 매우 더웠다. 엄청나게 체험하고 즐길거리가 있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이런 날이 있기 때문에 올림피아드가 더욱 매력적으로 느껴지는게 아닐까. 


대회 7-8일 차(10-11 MAY, SA - SU, PRACTICAL EXAM & ARBITR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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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어느덧 고지를 향해 간다. 마지막 Round 3인 실험 시험만이 남았다. 사실 전날 밤은 좀 편하게 있었던 것 같다. 내가 호텔에서 실험 시험에 대한 대비를 어떻게 했겠는가? 22-24년도 실험 기출을 보면서 대강 실험을 파악하는 정도만 진행했다. 사실 학교 중간고사가 끝난 이후 내가 준비할 수 있는 한도에서 가장 어렵다고 생각하는 IChO 예비문제(Preparatory problems)의 실험 문제로 열심히 준비했다.(준비를 안 한 것이 아니다! 오해는 금물) 이제 정말 시험의 마지막이기에 유종의 미를 거두려 노력했다. 아침 조식을 먹고 각자에게 나눠준 IMChO 실험복을 챙겨 실험 시험장으로 이동했다. 이동하는 버스 안에서는 적막만이 흘렀다. 도착 후 대기했는데 창문 너머로 실험 시험을 준비하는 Jury들의 모습이 보였다. 그중에는 내가 24년도에 선수로 만났던 반가운 Timur(Russian 56th IChO GOLD medalist, 키가 2미터다!)도 있었다. 사실 이미 서로 인사했지만 내가 시험 끝나고 더 얘기 나누자고 한 상태이다. 실험 시험 시간은 이론시험과 마찬가지로 5시간이다. 우리는 5시간 동안 4개의 실험을 해야 했던 상황이었다.

생화학 실험 1개와 적정 실험 2개(이것도 평범하지는 않았다.), 그리고 사실상 하이라이트인 유기화학 정성분석 실험이 있었다. 유기화학 정성분석 실험은 8가지의 미지의 drug와 추가로 2개의 미지시료(혼합물)를 맞추는 문제였다. 문제지에 명시되어 있는 후보군 8개와 추가 미지시료에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는 5가지의 추가 화합물을 주어진 다양한 시약과 아연 금속, 물 중탕기를 이용하여 맞춰야 하는 문제이다. 사실상 이 문제로 금메달리스트를 가르는 문제가 아닌가 싶었다. 내 뒤에서는 한 베트남 학생이 실험기구를 깨서 감점을 받았는데 나중에 보니 그 학생은 금메달을 받았다.(이론시험을 매우 잘 본 학생이었다.) 끝나고 나서는 러시아 국영 방송과 인터뷰도 했다. 인사말을 러시아말로 하니 좋아했다. 실험 시험이 끝난 직후 우리는 어딘가로 이동했다. 그곳은 Minas Gerias 대학에 있는 야외 스포츠 장이었는데, 대학 운동부팀과 각각의 운동(농구, 배구, 비치발리볼, 탁구 등)에 참여할 수 있었다. 나는 그곳에서 일본 대표 학생들과 배드민턴을 쳤는데, 일본 학생 2명 중 1명은 자신이 학교 배드민턴 클럽에 속해 있다고 말했다. 그렇지만 배드민턴 실력은 내가 한 수위였던 것 같다. 끝나고 나서 다음 날 근육통이 왔지만 후회하지 않는다. 정말 소중한 시간이었다. 

실험 시험이 끝난 다음날에는 아비트레이션이 있었다. 원래 이 단계는 학생이 하는 것이 아닌 같이 온 Mentor들이 진행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멘델레예프에서는 학생들 스스로가 아비트레이션을 진행해야 했다. 그룹은 3개로 나뉘어졌고 각 소 그룹당 30분의 제한시간이 있었다. 아비트레이션은 호텔 연회장에서 진행되었다. 나도 나의 채점된 답안지를 보고 최대한 열심히 참여한 결과 0.75점을 올릴 수 있었다. 내가 대기했던 테이블에서 아비트레이션을 하고 있는 베트남 학생을 보았는데 정말 열심히 자신의 화학적인 논리를 피력하여 결국 3점을 올리는 것을 보고 참 대단한 학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 답안지 상태를 옆방에 있던 아르메니아(Armenia, 멘델레예프를 초창기 부터 참여했던 올림피아드 강국이다.) 멘토에게 얘기해주자 이 정도면 메달 받을 거 같다고 했다. 실험 시험과 아비트레이션 시험 동안은 사진을 찍지 못해 내가 가지고 있는 사진이 많지 않아 아쉽다. 


대회 9일 차(12 MAY, MO, CLOSING CEREMON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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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날부터 시험 전날보다 더 떨렸던 것 같았다. 지금껏 달려온 나의 여정이 갈무리되는 마지막 일정이니 그러한 압박감은 더할 나위 없었다. 일부러 조식을 일찍 먹고 기다렸다. 호텔 로비를 보니 사람들이 벌써 꽉 차있었다. 입장 시간까지 기다린 다음에 호텔 1층에 있었던 폐회식장에 들어갔다. 입장하기도 전에 브라질 밴드의 엄청난 음향 소리에 귀가 먹먹했다. 좀 기다리니 카운트다운 이후 멘델레예프 올림피아드 마지막을 장식하는 영상이 등장하고, Jury 소속 교수들과 참가 학생들의 소감 영상이 있었다. 그리고 사회자가 바로 메달리스트들을 호명했다. 동메달은 세 개의 섹션으로 나누어 호명되었는데 마지막 그룹에 나의 이름이 호명되었다. 그 즉시 바로 품에 있던 태극기를 펼쳐 나갔다. 무대로 올라가는 계단에는 “Go! Winner! Go!”라는 말이 있었고 나는 바로 올라가 메달을 받았고, 태극기를 가슴 높이 치켜 올렸다. 그동안 한국화학올림피아드(계절학교 4번 참여), 국제화학올림피아드, 멘델레예프 올림피아드까지 고등학생이 할 수 있는 올림피아드는 모두 참가하며 정말 길고 긴 여정을 걸었다. 비록 마지막 모습을 지켜보는 같은 대표 친구들이나 멘토 교수님들은 없었지만 그동안의 길고 긴 여정을 잘 마무리했다는 안도감과 타지에서 한국의 위상을 올리는데 일정 부분 기여했다는 자부심이 생겼다. 특히 이번 폐회식 때 들었던 생각은 생각보다 내가 생각하지 못한 국가들이 올림피아드 강국으로 부상하고 있다는 것이다. 가장 놀랐던 것은 쿠바와 이란이였는데, 정말 예상하지 못한 나라들로, 쿠바는 동메달 2명에 은메달 1명, 이란은 4명이 전부 은메달을 달성했다. 중국과 베트남은 워낙 잘 알려져 있으니 생략하겠다. 러시아는 이번 멘델레예프에 참가하여 전원 금메달(10명)을 받는 미친 듯한 쾌거를 이루었다. 정말 말도 안 되는 실력이라고 생각한다. 러시아는 서로의 멋진 미래를 기원해 주었다. 나는 항공 일정 때문에 오후 3시에 반가웠던 이들을 두고 가이드 차량에 탑승했다. 내가 화학도의 길을 잃지 않고 꾸준히 정진한다면 언젠가 다시 그들과 조우할 것이라 생각하며. 지역별로 올림피아드가 워낙 잘 활성화되어 있고, 올림피아드 메달리스트들이 다시 자국으로 돌아가 청소년 화학 영재들의 코치가 되어 활동한다. 이러한 선순환 사이클이 계속되며 매번 화학 올림피아드 강국의 위치에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또한 카자흐스탄과 이스라엘 또한 정말 놀라웠다. 이번 멘델레예프 실험 1등이 카자흐스탄 학생이고, 이스라엘 또한 4명의 은메달리스트를 배출한 것을 생각하면 정말 놀라운 성과이다. (물론 이론 1등과 종합 1등 학생은 중국 IChO 대표 학생이었다.) 또한 올해 처음 참가한 일본에서는 두 명이 와서 두 명 모두 동메달을 거두는 쾌거를 거뒀다. 내가 느낀 것은 일본이 올림피아드에 대한 관심을 높이고 있다는 것이었다. 폐회식이 끝나고 중국, 이스라엘, 러시아, 키르기스스탄 등 다양한 학생들과 사진을 찍으며 

이상으로 국제 멘델레예프 화학올림피아드 참관기를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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