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화학생물학의 기반을 닦은 화학자(2025년 11월호)
- 洪均 梁

- 4일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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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 수정일: 2일 전

2025년 11월호 『화학세계가 만난 화학자』에서는 2025년 이태규 학술상을 수상하신 연세대학교 화학과의 신인재 교수님을 모셨습니다. 신 교수님은 국내 화학생물학 분야를 개척하시고, 관련 분야에 세계적인 영향력을 끼친 연구 업적으로 올해 이태규 학술상의 주인공이 되셨습니다. 신 교수님은 탄수화물 마이크로어레이 기술의 세계 최초 개발, 균질한 당단백질의 혁신적 합성, 다중 표적 약물 전달 시스템, 유기 형광 프로브, 초분자 화학생물학, 그리고 세포 운명을 변화시키는 ‘세포 연금술’ 연구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에서 학문적 지평을 넓혀 오셨습니다.
정년을 앞두고 계시면서도 여전히 연구의 끈을 놓지 않고 계시는 신 교수님을 만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에 대한 진솔한 이야기를 나눠보았습니다.
[모더레이터: 이현수 교수(서강대학교 화학과)]
1. 먼저, 대한화학회 이태규 학술상 수상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수상 소감과 교수님께 이번 상이 갖는 의미에 대해 말씀 부탁드립니다.
먼저 이 상을 수여해 주신 재단법인 이태규선생기념사업회와 대한화학회 관계자 여러분께 깊은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지난 28년 동안 저와 함께 연구를 수행해 온 제 연구실의 석사, 박사, 박사후 연구원들에게도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또한 지금까지 변함없이 응원하고 지원해 준 가족들에게도 이 자리를 빌려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습니다. 이번 상은 대한화학회 회원으로서 그 동안의 연구 성과를 인정받는 매우 뜻깊은 일이며, 아마도 저에게는 은퇴 전 대한화학회로부터 받는 마지막 상이 될 것 같습니다. 그래서 더욱 감회가 남다릅니다.

2. 이태규 학술상 수상에 가장 크게 기여한 연구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간략히 해당 연구에 대해서 소개해 주십시오.
저는 1998년 연세대학교에 부임한 이후 지난 28년 동안 화학생물학 분야에서 다양한 연구를 수행해 왔습니다. 그중 이번 수상에 가장 크게 기여한 연구는 초분자의 생리활성을 규명한 연구라고 생각합니다. 초분자 연구는 분자 인식을 통해 새로운 화학 영역을 개척한 공로로 1987년 노벨화학상이 수여되었으며, 이후 분자 기계의 설계와 제작 연구로 2016년에도 노벨화학상이 수여될 만큼 중요한 분야로 발전해 왔습니다. 그러나 초분자의 생리활성, 특히 세포 수준에서의 작용기전에 대한 연구는 상대적으로 미진한 상황 이었습니다. 저는 이에 주목하여, 미국 텍사스대학교 오스틴 캠퍼스의 조나단 세슬러(Jonathan Sessler) 교수, 호주 시드니공과대학교의 필립 게일(Philip Gale) 교수와 협력하여 초분자의 생리활성을 탐구하는 연구를 수행했습니다. 그 결과, 특정 초분자가 이온 운반체로 작용하여 세포 내 이온 항상성을 교란하고 세포자멸사(apoptosis)를 유도하는 구체적 작용 기전을 규명할 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연구는 초분자 화학 생물학이라는 새로운 연구 분야를 개척하는 데 중요한 토대를 마련했다고 생각합니다.
3. 지난 30여 년간 매우 다양한 분야의 연구를 선도해 오셨습니다. 탄수화물 마이크로어레이, 당단백질 합성, 형광 프로브 개발, 초분자 화학, 단백질 기능 연구 등, 연구의 폭이 매우 넓고도 깊습니다.이렇게 융합적인 연구를 가능하게 한 원동력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는지요?
제가 교수라는 직업을 선택한 가장 큰 이유는 원하는 연구를 자유롭게 수행할 수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국가 연구소나 기업 연구소에서는 연구 주제가 제약을 받을 수 있지만, 대학에서는 비교적 자율적인 환경에서 새로운 연구를 시도할 수 있습니다. 연세대학교에 부임한 이후, 비록 미개척 분야라 하더라도 의미가 있다고 판단된 연구는 주저하지 않고 도전했습니다. 물론 이러한 연구는 새로운 시도인 만큼 많은 어려움이 따랐지만, 다행히도 연구실의 학생들과 연구원들이 모두 노력하여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 연구실은 언제나 독창적인 아이디어를 기반으로 문제를 끈기 있게 해결하는 것을 연구의 기본 원칙으로 삼고 있습니다. 성과 중심의 연구 환경에서도 이러한 원칙을 지켜왔기에, 새로운 아이디어에 대한 도전 정신과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끈기와 열정이 지금까지 다양한 분야의 융합 연구를 가능하게 한 원동력이라고 생각합니다.
4. 지금까지 진행해 오신 연구 중에서 특히 애착이 가거나 기억에 남는 연구 프로젝트가 있으신가요? 이유와 함께 이 연구에 대해서 소개해 주십시오.
제가 지금까지 여러 분야의 연구를 수행해 왔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기억에 남고 애착이 가는 연구는 고집적 탄수화물칩(carbohydrate microarray)의 개발 및 응용 연구입니다. 이 연구는 연세대학교에 부임한 지 4년 차에 시작한 것으로, 당시에는 고집적 탄수화물칩에 대한 선행 연구가 없는 미개척 분야였습니다. 연구실의 인프라와 연구비도 충분하지 않은 상태에서 도전한 첫 연구였기에 많은 어려움이 있었지만, 그만큼 의미가 깊었습니다.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당과학 분야에서는 탄수화물–단백질 상호작용을 고속으로 분석할 수 있는 기술이 부족했습니다.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2001년 다양한 탄수화물을 고체 표면에 고집적으로 고정한 탄수화물 마이크로어레이 개발을 시작하였고, 이듬해인 2002년에 관련 논문을 발표 하였습니다. 이 연구는 미국화학회에서 선정한 ‘2002년 올해의 연구’ 중 하나로 꼽히며 큰 주목을 받았습니다. 이 성과를 통해 탄수화물과 단백질 간의 상호작용을 고속으로 분석할 수 있는 새로운 기반 기술을 마련 할 수 있었고, 이는 이후 25년간 제가 수행해 온 다양한 연구의 토대가 되었습니다. 또한 이를 바탕으로 국가지정연구실사업(NRL)을 수주하여 연구실의 기반을 구축하였고, 이어 창의적연구사업으로 연구를 한층 확장할 수 있었습니다. 현재 탄수화물 마이크로어레이는 당과학 연구의 핵심 분석 도구로 널리 활용되고 있 습니다.

5. 다양한 연구 주제에서 세계적인 연구 성과를 내기 위해서는 효율적으로 연구실을 운영하는 교수님만의 특별한 노하우가 있을 것 같습니다. 연구실을 운영하시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시는 원칙이나 철학이 있으신가요?
저는 특별한 연구실 운영 원칙이나 철학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제 연구의 특성상 저희 연구실은 유기분자 합성을 담당하는 유기팀과 세포 실험을 수행하는 바이오팀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두 팀 간의 긴밀한 협력 연구를 통해 좋은 성과를 낼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저는 연구 과정에서 어려움을 겪을 때마다 적극적으로 토의하고, 서로 협력하여 문제를 해결하는 문화를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6. 수많은 제자들이 교수님 연구실을 거쳐 국내외에서 활약하고 있습니다. 후학을 양성하는 데 있어 교수님만의 교육 방식이나 강조하시는 부분이 있다면 소개 부탁드립니다.
제 연구실을 거쳐간 많은 학생과 연구원들이 현재 국내외 대학, 정부출연연구소, 산업계 등에서 활발히 연구 활동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저는 학생과 연구원들이 성실하고 열정적으로 연구에 임하는 자세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한국의 연구 환경에서는 학생들이 스스로 아이디어를 내고 이를 직접 수행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에, 교수로서 저는 연구 주제를 구상하고 방향을 제시하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입니다. 연구 과정에서 문제가 생기면 연구원들과 충분히 토의하여 함께 해결책을 모색합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학생과 연구원들이 난제에 부딪혀도 주저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도전하며,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역량을 기르기를 바랍니다. 제 연구실을 거친 제자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책임감 있고 주도적인 연구자로 성장하기를 기대합니다.
7. 30년 가까이 연세대학교에서 연구를 수행하고 계시는데요. 이 기간동안 어려운 시기도 있으셨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어떤 어려움이 있으셨는지, 어떻게 극복하셨는지 말씀에 주십시오.
연세대학교에서 연구를 수행한 지난 30년 동안 여러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저는 학생들이 성실하고 열정적으로 연구하기를 원했습니다. 이 때문에 한때 학위를 위해 연구실에 참여하는 학생 수가 적어 연구 진행이 어려웠습니다. 또한 제 연구 특성상 상대적으로 넓은 연구 공간이 필요했는데, 이를 마련하는 것도 쉽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문제들은 창의적연구사업 등 큰 과제를 수주하면서 해결되었습니다. 과제를 통해 연구 공간과 학생 수가 확보되면서 연구를 원활히 진행할 수 있었고, 이를 통해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었습니다. 한국의 연구 환경에서는 만족할 만큼의 연구 공간과 연구비를 확보하기 쉽지 않지만,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노력하면 충분히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을 경험으로 알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후배 교수들도 현재 여건이 어렵더라도 적극적으로 연구를 수행하다 보면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8. 대학원생 시절의 연구까지 포함한다면 연구자의 삶을 40여 년간 살아오셨습니다. 정년을 앞둔 시점에서 되돌아보았을 때, 화학자로서 이루고자 했던 목표 중 가장 만족스러운 부분은 무엇이었고, 아쉬운 점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돌이켜보면, 저는 많은 논문을 발표하지는 못했지만 독창적인 연구 성과를 남긴 것에 대해서는 만족합니다. 특히 2002년에 발표한 탄수화물 마이크로어레이 연구, 2007년에 발표한 유기분자를 이용하여 근육 세포를 신경세포로 분화시키는 연구 그리고 이후 진행한 초분자 화학생물학 연구는 큰 보람을 느낀 성과입니다. 반면 아쉬운 점도 있습니다. 좋은 연구 성과를 낸 학생들이 대부분 산업계나 정부출연연구소에서 연구를 이어가고 있다는 점입니다. 물론 산업계나 출연연구소에서 연구하는 것이 잘못된 것은 아니지만, 좀 더 자율적으로 연구할 수 있는 환경에서 자신의 연구를 계속 이어갈 수 없다는 점이 아쉽습니다.
9. 긴 시간동안 대학에서 연구를 해 오시면서 경험하신 국내 화학분야, 넓게는 이공계 분야의 연구환경과 인프라에 대해서 평가를 해 주시고, 향후 발전을 위해 보완해야 할 점이 있다면 조언을 부탁드립니다.
국내 연구 환경과 인프라는 과학 선진국에 비해 여전히 많이 부족한 편입니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 국가적 차원의 지원이 절실하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연구비 수주 환경은 매우 심각한 문제로, 연구자들이 연구비 부족으로 연구를 진행하지 못하는 상황이 무엇보다 우려됩니다. 연구비 수주를 위한 평가 제도도 과거에 비해 개선되었지만, 여전히 연구의 독창성보다는 수월성을 중심으로 평가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러한 평가 방식은 연구자의 독창적인 연구 수행에 걸림돌이 됩니다. 또한 특정 연구자를 위해 기획된 과제들은 일반 연구비로 전환하는 것이 바람직하며, 정부 주도로 탑 다운 방식으로 과제를 설정하는 구조 역시 연구자 의견을 충분히 반영할 수 있도록 개선될 필요가 있습니다. 아울러 학부생들의 대학원 진학률 감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대학원생을 지원할 제도적 방안 마련이 필요하며, 외국인 학생의 국내 대학원 진학을 촉진하는 방안도 중요합니다. 이러한 노력이 이루어진다면, 더 많은 연구자들이 안정적으로 학생과 연구비를 확보하여 어려움 없이 연구를 수행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될 것으로 기대됩니다.
10. 국내 화학계를 이끌어 오시고, 화학생물학이라는 분야의 기반을 닦으신 선배 연구자로서 후배 연구자들에게 도움이 되는 말씀을 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후배 교수들이 국내에서 안정적으로 자리 잡고 좋은 연구를 수행하고 있는 것을 기쁘게 생각합니다. 다만 한 가지 바람이 있다면, 기존 연구의 확장뿐만 아니라 더욱 독창적이고 새로운 연구에도 과감히 도전해 주셨으면 합니다. 또한 이 분야의 연구를 진행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학문 분야에 대한 폭넓은 이해와 문제 해결 능력이 필수적이며, 긴밀한 협력 연구도 중요한 요소입니다. 이러한 노력과 자세를 통해 국내 화학생물학 분야가 앞으로 더욱 크게 발전하기를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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