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호 <화학세계가 만난 화학자>에서는 한국 신약개발의 대부로 불리는 제노스코 고종성 대표님 모셨습니다. 고 대표님께서는 1979년 서울대학교 화학교육과를 졸업하고 카이스트 화학과에서 석사과정을 마치신 후, 럭키중앙연구소 연구원으로 근무하셨습니다. 이후 미국 Caltech에서 생유기화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으신 후, Scripps에서 연구원과 UC Berkeley에서 방문연구원으로 활동하였습니다. 1991년 귀국 후 16년간 LG생명과학에서 화합물은행 및 고속 약효평가 구축, 항암제 및 당뇨치료제 개발팀장을 거쳐 신약연구소장으로 역임하셨습니다. 이후, 한국화학 연구원 항암센터장 및 글로벌 항암 시범사업단장을 거쳐 2008년부터 보스턴에서 현재 대표로 계신 신약개발 회사 제노스코를 경영을 해오고 계십니다. 0.1%의 성공 확률이라는 신약 개발을, LG 재직 중 국내 최초 당뇨병 치료제 제미글로를 제노스코에서 미국FDA허가를 받은 비소세포폐암 치료제 레이저티닙까지 두 번이나 성공시킨 고 대표님은 K-바이오의 성공 신화입니다. 언제나 기회는 바닥에 있었다고 말씀하시는 놀라운 에너지의 고종성 대표님과의 인터뷰를 시작합니다. [모더레이터: 문회리 교수(이화여자대학교 화학나노과학과)]
1. 우선, 2024년 보건산업 성과교류회에서 국민훈장 목련장을 수상하셨습니다.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소감 한 말씀 부탁드리겠습니다.
대단한 영광이고 감사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동안 저와 같이 연구한 팀원과 협력연구를 하신 모든 분들에게 수훈의 영광을 돌립니다. 그리고 제미글로와 레이저티닙 개발 중 적기에 연구비를 지원하여 주신 정부에도 감사드립니다. 더불어 화학자로서 물질을 디자인하고 합성하여 환자 치료라는 중요한 일 에 기여하게 되어 매우 감개무량합니다. 특히 대한민국의 당뇨치료주권과 폐암치료주권에 기여하여 더욱 기쁩니다. 앞으로 저에게 초심을 잃지 말고 제3, 제4의 신약을 만들어 보라는 격려로 여기고 있습니다.
2. KAIST에서 유기광화학으로 석사를 마치신 뒤 럭키중앙연구소에 입사하셨습니다. 4년 정도 회사 생 활하신 후에 미국으로의 유학을 결정하셨는데요, 특별한 계기가 있으셨는지요?
심상철 교수님 연구실에서 석사과정에 있으면서 미국 암학회(NCI) 프로젝트를 접하게 되었는데, 이때 신약 개발 쪽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졸업 즈음 한국과학기술연구소(KIST) 고분자연구부장으로 근무 중이시던 故 최남석 박사님께서 국책연구소에서 민간연구소인 럭키중앙연구소(현 LG화학 기술연구원) 소장을 맡아 옮겨 가실 때 함께 하지 않겠냐는 제안을 받게 되었습니다. 안정한 국립연구소 연구부장직을 그만두고 민간연구소를 택하는 용기와 도전정신이 있으신 최 박사님과 같이 일하면 많은 것을 배울 수 있겠다 싶어서 입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이런 결정이 제가 평생의 비젼을 신약개발에 헌신하는 것으로 정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근무 중 유학을 가게 된 계기는 신약개발을 하려면 화학뿐만 아니라 생물학을 알아야 된다는 생각에서 생유기 화학을 공부하기 위해 Caltech에 Peter Dervan 실험실에서 박사과정을 하였습니다. 박사 학 위 취득 후 항체연구를 하기 위해 TSRI (The Scripps Research Institute) 총장인 Richard Lerner와 일하고 LG에 재입사 하였습니다. 한국에 돌아와 최남석 원장님과 LG에서 다시 일하면서 일에 대한 열정, 혁신적인 생각, 격이 없는 토론문화, Data-driven decision, 상업화 등 신약개발의 본질이 되는 것들을 배웠습니다.
3. LG화학에 입사하신 후로 그룹 리더, 상무, 신약연구소장 등 고속 승진을 하셨고, 당뇨병 치료제 제미글 로를 개발하셨는데요, 당시의 상황은 어땠는지요?
무엇보다 신약개발하는 일이 정말 재미 있었습니다. 실패하면서 배우고, 역경지수도 늘었지요. 심혈을 기울여 발명한 항암제 후보물질 LB-42908을 미국암연구소 (US NCI)의 전임상 지원과제에 선정되어 얻은 결과로 NOVARTIS와 기술수출 협상 중에 독성 발생으로 결렬되는 아픔을 딛고 환자가 많은 당뇨 프로그램을 과감히 시작하였습니다. 이 프로그램에서 제미글로가 탄생하였습니다. 현재 제미글로는 국내에서 허가된 19번째 신약으로 매출 1위를 차지하는 국내 최초 당뇨병 치료제입니다만, 개발 과정에서는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습니다. 이 프로젝트는 제가 상무일 때 시작한 프로젝트입니다. 당 시엔 LG로서는 처음 시작하는 당뇨분야라 동물실험 등 모든 것을 새로 갖추어 시작해야 하는 일이라 어려움이 많았지요. 프로젝트 참여인원이 적어 저도 실험을 하며 팀과 호흡을 맞추며 즐겁게 실험한 기억이 납니다. 다행히 좋은 아이디어의 접목으로 조기에 발굴한 후보물질 LC15-0133이 있었지만 전임상 단계에서 원인을 모를 독성으로 개발을 중단하는 위기에 봉착하기도 했고요. 하지만 결국 물성, 약리, 단백질 결합, 독성이 개선된 LC15-0133과 구조가 전혀 다른 ‘LC15-0444 (제미글로)’를 찾아내 었습니다. 자칫 444라는 이름이 부정적인 느낌을 줄 수도 있어서, 영어로 발음하니 Four Four Four 에 착안하여, 그 당시 아침마다 하는 어린이 프로그램인 “뽀뽀뽀 아이 조아” 가 생각나 앞으로 후보물질의 이름을 ‘죽을 4자’가 아닌 ‘뽀뽀뽀’라고 불러 개발하고 개발이 완료되어 허가를 받으면 ‘사(buy) 사삽시다’ 라고 하자고 제안했습니다. “신약개발은 긍정적 마인드가 필요하다”는 제 철학을 실천하는 과정이었습니다. 또 다른 어려움은 제미글로를 개발할 당시는 LG생명과학의 경영상황이 어려워 프로 젝트 추진이 위기였는데, 산업자원부의 바이오스타 프로그램이 제미글로의 전임상/임상개발에 57억 정도를 지원하여 주었습니다. 당시로는 전폭적인 지원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정부도 오늘의 제미글로 탄생에 큰 역할을 하여 정부에 감사해하고 있습니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블록버스터 자격 있는 신약을 자금 부족으로 글로벌 임상시험을 못한 것입니다.
4. 이후 바이오벤처회사인 제노스코를 경영하시며 보스턴에서 활동하고 계십니다. 이렇게 말씀드 리면 어떨지 모르겠지만 2008년에 이미 적지 않은 연세이셨는데, 바이오텍 운영 그것도 미국을 본거지로 새롭게 시작하신다는 것이 쉬운 결정은 아니셨을 것 같은데요, 덕분에 K-신약 1세대 라는 호칭을 받고 계시고요. 당시 상황을 좀 말씀해 주시겠어요?
대기업을 거쳐 한국화학연구원에서 항암센터장을 맡게 되었습니다. 화연 항암센터장을 맡게 된 계기는 김우식 과학부총리와 김성수 박사 (전 과학기술부 혁신본부장)께서 LG생명과학이라는 민간기업에서 배운 경험을 정부 출연(연)에 접목하여 글로벌 신약개발 프로그램을 이끌어 주기를 원하셨습니다. 첫 단계로 3개 출연(연) 연구기관인 한국화학연구원(KRICT), 한국생명공학연구원(KRIBB),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의 연구원들로 구성된 글로벌 항암연구개발 시범사업단을 출범시켜 단장으로 신약개발을 시 작하였습니다. 중점 추진과제는 좋은 과제 선정작업과 신약개발에 맞는 출연연의 프로젝트 운영을 신약 개발에 적합한 제도로 개선하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정권이 바뀌어 과학기술부가 없어지고 신약개발을 위한 제도 개선을 추진하기 어려워져 단장직을 사임하였습니다.
2008년 한국화학연구원을 퇴직하고 표적치료를 위한 신약개발을 위하여 보스턴에 진출하였습니다. 30년 지인인 오스코텍 대표인 김정근 대표와 손을 잡고 Cambridge에 제노스코 연구소를 세워 신약개발을 시작하게 되었지요. Cambridge를 택한 이유는 하버드와 MIT가 있고, 인간유전체 해독에 참여한 Broad Institute가 있을 뿐 아니라 MGH와 Dana Farber 암연구소 등 세계적 연구중심병원이 주위에 있어 세계 신약개발의 중심지로 변해가는 곳이기 때문이었지요. 당시 미국은 경제 위기로 많은 제약회사 및 바이오텍이 감원을 하고 많은 회사가 파산하는 시기였는데, 오히려 그것이 기회라고 생각 되었습 니다. 매우 적은 비용으로 연구실도 구하고, 좋은 인재를 쉽게 구할 수 있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보스톤 지역은 하버드, MIT, Yale 인력들 뿐만 아니라 Caltech 출신 지인들도 많고, LG 출신의 연구원들도 많아 초기 연구소 설립과 운영에 도움을 많이 받았습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Biogen을 비롯한 세계적 바이오텍과 Novartis 같은 세계적 제약회사 연구소가 진출하여 활발한 교류가 이루어지는 곳이라 신약개발 특히 표적치료제 연구에 매우 좋은 환경이었습니다. 이러한 좋은 생태계에서 일한 덕택에 레이저티닙 (렉라자)을 발명하지 않았나 합니다.
5. 렉라자(성분명 레이저티닙)에 대한 얘기를 나누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우선 폐암치료제 개발 을 시작하시게 된 계기, 그리고 레이저티닙이 개발되어 유한양행에 기술이전(2016년), FDA 품목허가(2024년)까지 사실 길다면 길지만 상당히 빠른 전개로 보여지는데요, 과정을 좀 말 씀해 주신다면요?
폐암은 한국을 포함한 전 세계 암환자 중 사망환자가 제일 많은 암입니다. 특히 저희가 표적으로 하는 EGFR (상피 성장인자 수용체)변이에 의한 폐암은 한국 여성 폐암의 50% 정도를 차지하기 때문에 좋은 치료제를 만들기로 결심하였습니다. 이렇게 시작한 렉라자는 국내 최초 표적 비소세포폐암 표적치 료제로서 개발 및 기술 수출을 통해 국산 항암제 최초로 미국 FDA 품목허가를 받게 되었습니다. 원천 기술 개발부터 사업화까지 R&D 전주기 프로세스를 확립한 공로를 인정받아, 이번에 국민훈장 목련장을 받기도 했고요.
렉라자 연구개발 과정에서 신약개발은 단계별로 전문 집단과의 협력, 즉 협력연구회사 및 사람이 너무나 중요하다는 것을 다시 한번 느꼈습니다. 특히, 렉라자의 기술이전을 제안한 유한양행 남수연 박사(현 차바이텍 R&D총괄 사장)와 렉라자의 임상시험을 주도하신 연세암병원 조병철 교수(폐암센터장)와의 인연이 그러합니다. 지금이야 FDA 허가까지 이루어 냈지만, 당시 여러 제약회사로부터 외면받은 후, 남 박사님의 탁월한 선택으로 유한에 기술을 이전할 수 있었습니다. 임상 개발 중 신약 개발 절차 수행의 어려움은 물론이고, 국산 항암신약 개발 시도에 대한 국내외적인 냉소적인 시각을 견뎌야 했습니다. 하지만, 제노스코와 오스코텍이 협력해서 발굴한 좋은 물질인 렉라자가 유한양행과 글로벌 임상책임자인 조병철 교수를 비롯한 글로벌 임상에 참여하신 의사분들의 헌신적인 노력 덕분으로 잘 개발되어 고통받는 폐암 환자분들을 치료할 수 있게 된 점에서 과학자로서 매우 기쁘고 감사한 일이라 생각합니다.
2024년 미국 FDA 허가 후 세계폐암학회 주 회원사이고 레이저티닙 글로벌 개발사인 J&J의 Booth에 레이저티닙만 전시되는 장면을 임상책임자 조병철 박사와 함께 보면서, 우리도 세계적 표적항암제를 개발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다시 한번 느꼈습니다. 특히 레이저티닙은 한국인이 발명하고 한국인이 글로벌 임상책임자가 임상시험을 하여 미국 FDA를 허가받은 폐암 표적치료제여서 매우 큰 의미가 있습니다.
6. 제가 “서울대 뉴잉글랜드 동창회 포럼 2022년 3월 6일”에 줌으로 발표하신 것을 유튜브로 보게 되었습니다. 치매 신약개발에 대한 발표셨는데요, 이 톡을 들으면서 복잡한 것을 단순하고 명확화 시키시는 엄청난 능력이 있으시다고 생각했습니다. 교수님이셨으면 베스트 티칭어워드를 여러 번 수상하셨을 것 같은데요~
감사합니다. 제가 사범대학 화학교육과를 다니면서 배운 교수법과 LG에서 과학을 잘 모르시는 회장님들에게 보고하면서 체득한 경험 덕택인 것 같습니다. 실제로 대학 때는 교생실습 대표 수업, LG생명 과학 연구소 시절에 방문하시는 외부 인사나 단체 대상 발표를 많이 담당하였습니다. 최근에는 회사 운영을 위한 펀드레이징 시 투자분들에게 단순하고 명확히 발표하는 일을 많이 한 덕택인 것 같습니다. 항상 발표에 참석하는 분들의 수준에 맞게 발표를 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7. 여러 병증에 대해서 연구하시다 보면 건강에 대한 염려와 준비가 남다르시지 않을까 싶습니다. 건강 한 삶을 위해 박사님께서 애쓰시는 부분이 있다면, 또는 지키려 노력하시는 루틴이 있으시다면요?
저는 운동을 참 좋아합니다. 과거엔 달리기도 많이 하고 축구, 농구, 계주 마지막 주자 등 단체 운동 도 많이 했습니다. 요사이는 심한 운동 대신 가벼운 달리기나 빠른 걸음 걷기를 합니다. 저는 많은 과학 자분들에게 운동을 권유하는데요, 특히 단체 운동을 권유합니다. 단체 운동을 통해 협력의 중요성, 상대방에 대한 이해, 이기는 법과 승자의 자세, 지고 난 후의 자세 등을 배울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8. 1992년 저희 화학세계에 투고해 주신 적이 있으십니다. 2025년 화학세계 신년호에 <화학세계가 만난 화학자>로 다시 컴백해 주셨는데요, 소감 한 말씀과 KCS 회원 여러분들께 인사말씀 부탁드 리겠습니다.
33년이 지난 후 화학세계에 만나게 되어 반갑고 기쁩니다. 화학은 우리 생활에 가장 밀접한 학문 중에 하나입니다. 특히 새로운 물질을 만들어 인류의 삶의 질을 개선할 수 있습니다. 이런 명분이 있는 일에 화학자로서 가치 있는 일을 잘 하기 위해서는 타분야와의 협력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끊임없는 지적에너지를 가지고 다른 분야와 교류하시고, 협력연구에 적극적이며 열림 마음으로 연구하시기를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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