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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 속의 화학

장홍제 | 광운대학교 화학과,hjang@kw.ac.kr



세상에는 어마어마하게 많은 양이 판매되고, 또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으며 오랜 시간 읽혀 온 책들이 많다. 역사상 가장 많이 판매된 서적이라는「성경」을 시작으로「햄릿」, 「맥베스」등의 4대 비극과 「베니스의 상인」,「한여름밤의 꿈」을 비롯한 5대 희극, 그리고 여기 포함되지 못하는 가장 유명한 「로미오와 줄리엣」까지 수없이 많은 명작을 남긴 셰익스피어의 책들이 뒤를 잇는다. 애거서 크리스티나 코난 도일, 현대로 오면 칼 세이건, 베르나르 베르베르, 무라카미 하루키, 제레드 다이아몬드 등 세계적으로 거대한 인기를 끌었던 책들은 다양하다. 그리고 우리나라의 많은 청소년들 심지어 성인들까지도 한 번쯤은 읽어보았거나 최소한 등장 인물들의 이름과 대략적인 관계라도 알고 있는 책이 있다. 바로「삼국지(三國志)」다.




삼국지 최고의 악역, 동탁


삼국지가 실제 역사를 얼마나 반영했는가를 떠나 중국의 긴 역사 속 한 지점에서 삼국지는 시작된다. 후한(後漢) 말 영제(靈帝) 때 정권을 잡아 자신들의 입맛대로 조정을 망가 뜨린 십상시의 난과 황건적의 난을 시작으로 군웅할거의 시대를 통해 위(魏), 촉(蜀), 오(吳)의 천하 삼분의 시기, 그리고 서진에 의해 통일된 3세기 후반까지의 이야기를 다룬다. 수많은 장수와 지략가, 배반과 역모를 일으킨 자들이 출현 하지만, 삼국지 이야기를 통틀어 가장 확고한 악역은 한 명 으로 의견이 모인다. 워낙에 유비 현덕(劉備玄德)을 중심으로 오호대장군, 와룡과 봉추, 강유, 그리고 간손미 삼총사 (게임 상에서 어중간한 능력치로 애매한 활용도를 갖는 간옹, 손건, 미축의 별칭)까지 시대적이고 도의적인 측면에서 촉나라에 몰입하기 쉬운 분위기상 과감하고 냉혹하며 능력 주의적인 위나라의 조조 맹덕(曹操 孟德)을 대적자의 위치에 선 악인으로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삼국지 이야기 초반에 등장하는 맹장이었으나 권력의 중심에 섬에 따라 폭군의 면모를 드러낸 동탁 중영(董卓仲英) 앞에서는 악인의 위엄이 바랜다.

인물들을 미화해 표현하는 와중에도 동탁은 살찌고 탐욕스러운 모습으로 그려지곤 한다. 그 때문에 동탁에게 매력을 느끼는 사람은 매우 흔하지 않지만, 동탁을 보좌하던 인물들의 능력과 관계가 출중해 기억에 남는다. 장수 화웅과 장료, 그리고 책사인 가후와 이유, 그리고 삼국지 최강의 무장인 여포와 세상을 흔들 미녀였다는 초선까지.

하지만 나를 비롯한 많은 사람의 기억에 남는 것은 동탁의 죽음과 그 이후일 것이다. 동탁의 죽음으로 본격적인 삼국지의 이야기가 펼쳐짐과 동시에 폭정을 일삼던 악인의 죽음 이후를 묘사한 다음과 같은 설명 때문이기도 하다.

‘생전에 남달리 몸이 비대하던 동탁은 죽은 송장도 유난히 크고 기름져 군사들이 그의 배꼽에 심지를 박아 불을 켜서 등(燈)을 만들었다.’ 사람의 배에 심지를 꽂아 등으로 사용하는 것은 가장 기 초적인 화학 반응인 연소로 귀결되는 흥미롭고도 매력적인 장면이 아닐까?


심지 효과와 자연발화


초가 타오르는 과정은 학창시절 간략하게나마 배우는 내용이다. 촛불은 그을음 나노입자들이 가득해 불꽃이지만 벽면에 그림자가 맺힌다는 사실이나, 초의 가장 안쪽이 푸른 것은 온도 때문이 아닌 탄소 연료에서 생성된 CH* 라디칼의 화학 발광(chemiluminescence) 때문이라는 사실까지는 아니어도, 적어도 액화된 파라핀이 심지를 타고 올라가 연소가 지속된다는 정도는 들어보았을 것이다.

인체의 자연발화(spontaneous human combustion)라는 풀리지 않고 검증되지도 않은 현대 미스터리를 과학적으로 설명해보려는 시도도 심지의 타오름을 이야기하는「심지 효과(wick effect)」로 시작된다. 인체에 열이 가해지며 점차 체내의 지방이 녹아 심지처럼 옷감을 타고 올라 불이 지속된다는 것이다. 인체가 곧 심지가 되는 셈이다. 하지만 정말 이런 단순한 접근만으로 소위 <동탁 등불>이 설명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체내의 지방은 충분할 것이지, 타오름이 지속될 수 있을지, 지방의 액화가 단순히 낮은 녹는점을 갖는 파라핀처럼 심지 근처 불꽃에서 퍼지는 열 만으로 가능할 것인지.

물론 정확하진 않더라도 재미삼아 하나씩 추측하고 계산 할 수 있다. 과학자들이 꽤나 좋아하는 ‘이래서 이과란….’ 의 방식으로 말이다.


















동탁 연료의 잠재적 에너지량


동탁은 비대한 몸으로 그려지지만 실제로 어느 정도인지 알기 어렵다. 동탁의 키에 대해서도 간헐적인 정보만이 남아있을 뿐 추측이 어렵다. 삼국지 연의(演義)와 정사(正史) 에서 각각 다르게 표현되곤 하지만 유비, 장비, 조운, 제갈량은 8척으로, 관우는 9척, 그리고 조조는 7척의 키고 묘사 된다. 한 척은 보통 30 cm 내외라 하지만 단위의 기준도 시대에 따라 달랐다. 후한시대의 한 척은 23.7 cm였으며 조선 시대에는 31.1 cm였다. 그나마 동탁의 신장을 묘사한 한 2차 창작 게임(삼국무쌍)을 기준한다면 6척으로 일컬어지는 동탁의 키는 후한말 기준 최소 142.2 cm이며 조선 시대 기준 최대 189.6 cm의 범위 안에 있을 것이다.

신장으로부터 체지방의 질량의 계산도 가능하다. 체질량 지수(body mass index, BMI)로 간단한 추산이 가능하며, 후한서 동탁열전에 쓰여진「체구가 작고 뚱뚱하다」는 묘사와 삼국지연의의「몸이 비대해서 오래 앉아있지 못하고 드러누웠다」라는 표현은 우리 상상보다 동탁의 BMI가 높을 것을 의미한다. 동탁이 매우 극심한 비만이라 가정해 BMI 100으로 판단한다면, 동탁의 체중은 최소 202.2 kg에서 최대 359.5 kg의 범위에 들게 된다. 앞선 키의 범위를 고려했 을 때 말이다.

몇 가지 보편적으로 알려진 통계적 수치들을 통해 조금 더 유용한 정보로 접근할 수 있다. 첫째, 일반적으로 골격근량은 평균적으로 체중의 35%에 해당한다. 둘째, 골격근량은 전체 근육량의 57.7% 수준이다. 셋째, 근육은 단백질과 수분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이는 불에 쉽게 타오를 수 없으니, 체중에서 근육량을 제외해 지방의 무게만을 구해볼 수 있다. 넷째, 지방은 g당 9 kcal의 열량을 보유하고 있다. 이 모든 과정은 동탁 등불의 열량이 2.9~5.3 MJ에 달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동탁 등불은 얼마나 오래 탈까?


문헌에 따라 불을 붙인 동탁 등불은 3일 가량 타올랐다고도 하고 무려 50일이나 꺼지지 않았다고도 한다. 다음과 같은 표현을 통해 본다면 잠시 동안이 아닌 꽤나 오랜 시간동안 동탁 등불은 꺼지지 않았어야만 한다.

‘붙인 불은 이글이글 기름이 끓으며 며칠 밤을 두고 탔다. 지나가는 사람마다 동탁의 시체를 발로 짓밟고 머리를 걷어 차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동탁 연료의 열량은 에너지법 시행규칙 제5조 제1항 관련 환산 기준을 통해 무려 66.0 kg의 등유나 70.8 kg의 휘발유, 혹은 87.6 kg의 파라핀과 같은 양인 것을 알 수 있다. 이 정도면 만에 하나의 사태에서 인간을 연료로 사용하는 것도 나쁘지 않은 모양새다. 우리가 필요한 것은 타오르는 시간이니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350 g 중량의 초를 기준으로 열량을 계산하자. 동탁은 최소 250개만큼, 그리고 최대 444 개 만큼의 초와 같다.

시계가 없던 과거에는 초가 시간을 재는 도구로 사용되기 도 했다. 350 g의 초는 60시간 동안 연소 가능해 가장 대표 적인 단위로 사용되었다. 임의로 최소동탁시간과 최대동탁시간을 도출한다면 하나의 동탁 연료 단위는 625일에서 1110일이라는 어마어마한 시간동안 연소한다. 곧 동탁 등불은 ‘이론상’가능한 셈이다.




동탁은 바이오디젤화 되었을 것이다


여기서 작은 문제가 하나 발생한다. 동탁의 체내에 있는 지방이 심지 효과를 통해 지속적으로 액화 연료로 변환되기 에는 인체의 지방은 다양한 부위에 분포되어 있다는 한정조건이 생겨난다. 동탁의 배에 심지를 꽂았다 쓰였으니 배에 쌓인 두툼한 복부 지방은 유용한 연료겠지만, 팔과 다리, 등 부위의 지방은 사용될 수 없는 지방으로 분류된다.

이 문제는 의외로 간단히 해결될 수 있는데, 동탁이 장시간 동안 방치되고 있다는 것과, 길을 지나는 사람들이 걷어 차거나 무언가를 뿌리는 등 훼손을 일삼았다는 것이다. 일련의 과정들이 동탁 체내 동물성 지방을 바이오디젤(biodiesel)로 변환시켰다면 모든 문제가 해결된다. 연료에 유동성이 생겨나며 체내 수분에 비해 비중이 낮은 바이오디젤은 심지에 가까운 복부로 상분리를 통해 모이게 된다. 보편적으로 트라이아실글리세라이드(triacylglyceride)와 같은 지방질에 알코올과 강한 염기를 처리하면 지방산 에스터와 글리세린 (glycerin)으로 분리되는데 이 과정이 바이오디젤의 형성에 속한다. 정확히는 알코올과 에스터 결합을 통해 형성되는 지방산 에스터가 연료다. 동탁 등불에 알코올이나 잿불을 뿌리며 걷어차 교반을 시키는 모든 행위들이 동탁 바이오디젤로 변환시킨 셈이다.

삼국지에 서술된 하나의 사건에 대한 짧은 문구로부터 우리는 과학적 사고 혹은 이과적 감성으로 가능성의 추론과 문제의 해결까지 도달할 수 있다. 이 모든 내용이 진실일지 여부가 과연 중요할까? 조금은 잔인하지만 언젠가 실제로 사용될 지식이 될 수도 있고, 바이오디젤화 반응에 대해 서도 이야기해 볼 수 있으며, 모두가 관심갖는 친환경 에너지의 활용에 대한 제안까지 가능하니 삼국지는 또 하나의 교훈을 남긴 셈이다.



장 홍 제 Hongje Jang

  • KAIST 화학과, 학사(2004.3-2008.2)

  • KAIST 화학과, 박사 (2008.3-2013.8, 지도교수 : 한상우)

  • 서울대학교 화학과 박사 후 연구원 (2013.9-2015.1, 지도교수 : 민달희)

  • Georgia Institute of Technology, Department of Chemistry and Biochemistry 박사 후 연구원 (2015.1-2016.1, 지도교수 : Mostafa A. El-Sayed)

  • 광운대학교 화학과 부교수(2016.3-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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