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영하 | 평택여자고등학교, young920403@hanmail.net
서 론
대부분의 2015 개정 교육과정 고등학교 화학 II 교과서에서는 교육과정 성취기준에 따라 물과 이산화탄소의 상평형 그림을 도입하여 압력과 온도 변화에 따른 물질의 상태 변화를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김현희 등[참고문헌 1]의 연구에 의하면 대부분의 과학 교사들이 물의 상평형 그림을 이용하여 물의 상태 변화를 설명하는데 어려움을 느끼는 것으로 나타났다.
필자는 선행연구와 관련된 연구를 진행하다가, 상평형 그림을 구글 번역기에 넣어보면‘phase equilibrium plot’ 으로 번역되는 것을 발견하였다. 하지만 상평형 그림의 원문은‘phase diagram’이다. 원문을 우리말로 번역하면서 평형이라는 단어가 추가된 것을 확인한 후 상 그래프, 상 도표와 같은 용어로 직역하지 않고 평형이라는 단어가 추가된 것에 의문을 갖게 되었다.
이 의문을 해결하기 위해 2015 개정 화학Ⅱ 교과서와 외국의 일반화학 서적들을 비교·분석해 보았다. 이번『화학 세계』에서 그 내용을 공유하고자 한다.
본 론
가. 분석 대상
이 연구에서는 국내에서 출판된 2015 개정 교육과정 화학Ⅱ 교과서 6종[참고문헌 2-7]을 분석하였다. 분석한 교과서는 표 1에 나타낸 것처럼 기호를 부여하였다.
나. 연구 대상
연구 대상자들은 충북 지역의 한 사범대학에 재학 중인 일반대학원 화학교육전공 파견교사 7명으로 이루어졌다. 연구 대상자들은 전부 사범대학을 졸업한 화학교육전공 교사 들이며, 교직 경력은 최소 6년이었다. 성별은 남성이 3명, 여성이 4명이었으며, 현재 근무하는 학교급은 중학교가 4명, 고등학교가 3명이었다. 연구 대상자들을 나타내는 기호는 TA~TF로 지정하였다.
다. 교과서 분석 결과와 교사들의 인식
상평형 그림에 대한 정의를 분석한 결과, 2015 개정 교육과정 화학Ⅱ 교과서에 실린 상평형 그림의 정의에 대한 관점은 두 가지로 나타났다. 첫째, 상평형 그림은‘온도와 압력에 따른 고체, 액체, 기체 사이의 평형을 나타낸 것이다.’라는 평형 개념을 포함한 관점이다. 둘째,‘온도와 압력에 따라 나타나는 물질의 상태를 표현한 것이다.’라는 평형 개념을 포함하고 있지 않은 관점이다. 분석에 사용한 교과서 중 HA, HD 2종의 교과서는 평형 개념을 포함하는 관점으로 상평형 그림을 정의했으며, 나머지 4종의 교과서는 평형 개념을 포함하고 있지 않은 관점으로 상평형 그림을 정의하였다. 두 가지 관점에 대한 교과서의 진술 방식을 분류하면 표 2와 같다.
교과서에서도 다양하게 설명하는 상평형 그림의 정의를 연구 대상자들은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지 조사하였다. 우선 연구 대상자들에게 상평형 그림의 정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질의하였다. 연구 대상자들의 응답은 두 가지 유형으로 나타났다.
첫 번째 유형은 온도와 압력에 따라 물질이 나타내는 상태와 더불어 온도나 압력의 변화에 따른 상태 변화도 함께 살펴볼 수 있는 그림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인식은 교과서 정의 중 평형 개념을 포함하는 관점과 관련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왜냐하면 연구 대상자들이 상평형 그림의 곡선 위에서 두 상태가 평형을 이루기 때문에 상태 변화를 설명할 수 있다고 응답했기 때문이다. 두 번째 유형은 온도와 압력에 따라 물질이 나타내는 상태를 표현한 그림이라는 것이다. 이 유형은 교과서 유형 중 평형 개념을 포함하고 있지 않은 관점과 동일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연구 대상자들의 응답을 분석한 결과 교과서마다 상평형 그림을 정의하는 관점에 차이가 있다는 것을 대부분의 교사가 인식하고 있지 못하는 것과, 평형 개념을 포함한 관점과 포함하지 않는 관점이 비슷한 수의 응답으로 갈리는 것을 확인하였다.
하지만 상평형 그림에 대한 정의가 두 가지로 나뉘어 교과서마다 다르게 제시되는 것은 문제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본 연구에서는 외국의 일반화학 책[참고문헌 8-9]에 서술되어 있는 상평형 그림의 정의를 조사하여 비교해보았다. Atkins et al [참고문헌 8]는 상평형 그림을‘A phase diagram is a map that shows which phase is the most stable at different pressures and temperatures.’라고 정의하고 있었으며, Oxtoby et al[참고문헌 9]는‘A plot of pressure against temperature that shows the stable state for every pressure’ 라고 정의하고 있었다. 두 외국 교과서 모두 용어와 정의에서 평형이라는 용어와 개념은 전혀 사용하고 있지 않은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따라서 본 연구에서는 phase diagram을 상‘평형’그림으로 번역하면서 상평형 그림을 평형 개념과 연관 짓게 되는 것은 문제라고 판단하였다.
Phase diagram은 외국의 일반화학 서적에 따르면 온도와 압력을 독립 변인으로 나타내고 물질의 상(phase)을 종속 변인으로 나타낸 도표이다.[참고문헌 8] 이에 비추어 보면‘온도와 압력에 따라 나타나는 물질의 상태를 표현한 것이다.’라는 평형 개념을 포함하고 있지 않은 관점이 본래 정의에 비추어 보았을 때 보다 올바르다고 할 수 있다. 연구 대상자들에게 phase diagram 용어에는 평형 개념이 포함되어 있지 않은데, 번역의 과정에서 평형이라는 용어가 추가되었다는 내용을 안내한 뒤 이에 대한 인식을 조사해보았다. 연구 대상자 중 TB는 평형이라는 용어가 추가된 것에 의문을 나타내었다.
학부 시절 공부할 때도 phase diagram을 왜 상평형
그림으로 해석하는지에 대한 의문이 있었어요. 특히 저는
상평형 그림에서 평형이라는 개념이 어떠한 실험 조건에서
나왔는지 명확하지 않아서 평형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것이 항상 찝찝했어요. [연구 대상자 TB의 응답]
반면 나머지 연구 대상자 6인은 상평형 그림의 공존 곡선에 초점을 두면서 평형 개념을 포함한 관점이 평형 개념을 가르치기 위해 필요하다는 주장을 하였다. 대표 응답으로 연구 대상자 TG의 응답은 다음과 같다.
선 위에 존재하는 점의 경우 두 가지 상태가 공존하고
있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평형 개념을 사용했다고 생각
합니다. 예를 들어 녹는점에서는 고체가 액체로 바뀌면서
온도는 일정하게 유지되고 액체의 비율이 점점 더 증가하
게 되는데, 그러한 현상을 보다 잘 설명하기 위해 평형이
라는 단어를 추가했다고 생각합니다. [연구 대상자 TG의 응답]
평형 개념이 포함되어 있지 않은 외국 교과서의 사례를 제시했음에도 불구하고, 연구 대상자들이 상평형 그림과 물질의 평형을 계속해서 연관 지으려고 하는 모습이 나타났다. 이를 통해 연구 대상자들이 사고하는 데 있어 교과서에 사용된 과학적 용어가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라. 평형 개념을 추가하였을 때의 문제점
하지만 대부분의 연구 대상자들이 상평형 그림을 물질의 평형을 설명할 수 있는 도구로 인식하는 것과는 별개로, phase diagram을 상평형 그림으로 번역하여 상평형 그림의 해석을 평형에 초점을 맞추면 다음과 같은 문제가 발생 할 수 있다.
첫째, 공존 곡선이 아닌 위치에 대한 상태의 해석이 모호해진다.
예를 들어, 그림 1에 표시된 점 X에서 보이듯이 1기압 25℃에서 물은 단일 액체 상의 영역에 존재한다. 이때, 이 지점은 상‘평형’그림에 표현된 지점이므로 평형 상태로 간주해야 하는지에 대한 문제가 발생한다. 이와 관련한 연구 대상자들의 인식은 세 가지 유형으로 나타났다.
첫 번째 유형: 평형이다.(TA, TB)
TA: 점 X가 상평형 그림의 액체 영역에 위치함에도 불구
하고 평형 개념을 설명하기 위해 기체가 자연스럽게 생긴
다는 가설을 세웠다.
TB: 상평형 그림 위의 모든 점은 평형을 나타낸다는 인식
을 가지고 있었다.
두 번째 유형: 평형이 아니다.(TC, TD, TE, TG)
평형이 아니라고 응답한 연구 대상자들은 단일한 상으로
존재하기 때문에 정반응과 역반응을 논의할 수 없어 평형
이라고 할 수 없다는 이유를 공통적으로 응답하였다.
세 번째 유형: 잘 모르겠다.(TF)
하지만 상평형이라는 용어는 두 가지 이상의 상 간에 이루어지는 동적 평형을 의미하기 때문에,[참고문헌 3] 액체가 고체나 기체로 변화하고, 고체나 기체가 다시 액체로 변화하는 과정을 포함할 수 없는 1기압 25℃ 지점에 평형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것에는 문제가 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phase diagram을 상평형 그림이라고 번역하면 단일 상태 영역을 평형 상태로 오인하게 되는 원인이 될 수 있다. 인터뷰 에서 보이는 것처럼 현직 교사들이 상평형 그림이라는 용어로부터 형성하는 다양한 인식들은 학생들의 개념 형성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을 것이다.[참고문헌 10]
Phase diagram을 상평형 그림으로 번역하여 상평형 그림의 해석을 평형에 초점을 맞추면 발생할 수 있는 두 번째 문제는, 상평형 그림에서 공존 곡선 위의 점은 항상 평형상태라는 오개념을 형성할 수 있다는 점이다. 연구 대상자들에게 그림 2를 제시한 후‘점 X가 평형 상태인가?’라는 질문을 하였다.
연구 대상자들은 전부 평형이라고 응답하였다. 대표 응답으로 연구 대상자 TE의 응답을 제시하면 다음과 같다.
점 X가 나타내는 100℃에서는 끓는 상태이기 때문에 물
과 수증기가 동시에 존재할 수 있고 따라서 평형이라고
생각해요. 두 상태가 함께 공존하는 것을 우리는 평형이
라고 이야기합니다. [연구 대상자 TE와의 인터뷰 발췌]
연구 대상자 TE뿐만 아니라 다른 연구 대상자들도 점 X 가 평형인 이유에 대해서 액체와 기체가 동시에 같이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응답하였다. 연구 대상자들에게 공존과 평형이 같은 개념인지를 추가로 질의하였지만, 그 둘을 명확하게 구분해서 응답한 연구 대상자는 없었다. 하지만 공존과 평형은 같은 개념이 아니다. 공존은 말 그대로 함께 존재하는 것을 나타내는 용어이며, 평형은 정반응과 역반응의 속도가 같아 겉보기에 아무런 변화가 없어 보이는 상태를 의미하는 것이다. 공존은 평형의 충분조건으로, 계가 평형을 이루기 위해서는 공존이라는 조건이 필요하지만 공존하고 있다고 해서 평형인 것은 아니다. 하지만 연구 대상자들은‘곡선 위의 점은 평형이다.’라는 선 개념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즉각적으로 점 X가 평형이라는 응답을 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만약 점 X가 공존 곡선 위에 있다고 하더라도 항상 평형 상태를 나타내는 것은 아니다. 이에 대한 근거를 박종윤[참고문헌 11]이 제안한 피스톤 그림을 통해 확인하려고 한다. 피스톤 그림을 그림 3에 제시하였다.
그림 3에서 외부 압력을 1기압으로 유지한 채 용기를 가열하여 실린더 내부의 온도가 100℃가 되었다고 가정하면,
상평형 그림에서 이 지점은 그림 2에 표현된 점 X처럼 표준 끓는점을 나타내게 될 것이다. 하지만 끓는점은 액체와 기체가 공존하는 지점이지 평형을 이루고 있다고 할 수 없다. 왜냐하면 상태 변화가 일어나는 지점에서 가해주는 열은 계의 온도를 높이는 데 사용되는 것이 아니라 물질의 상태 변화를 일으키는 데 사용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1기압 100℃에서 물이 전부 기체로 변하기 전까지 지속적으로 가열된다면, 가열되는 중에 나타나는 각각의 상태는 상평형 그림에서 전부 1기압 100℃에 위치할 것이다.
다시 말해, 그림 2에 점 X로 표현된 계는 열에너지를 지속적으로 받는 열적 비평형 상태의 무수히 많은 상태를 포함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액체:기체 = 1:3인 상황과, 액체: 기체 = 1:5인 경우가 같은 지점인 점 X로 표현될 수 있다. 따라서 그림 2의 점 X는 액체와 기체가 동적 평형을 이루고 있는 상황은 물론, 열적 비평형인 상황까지 포함하게 된다. 따라서‘점 X는 평형 상태를 나타낸다.’라는 명제는 그렇지 않은 반증 사례가 존재하므로 옳지 않다고 할 수 있다. 양기창, 백성혜[참고문헌 12]는 가열을 통해 온도의 변화가 일어나고, 온도의 변화를 줄이는 방향으로 평형이 이동하는 것이 액체가 기체로 기화하면서 기화열을 흡수하는 과정이라고 끓음을 해석하며, 끓음은 동적 평형 상태에서 액체와 기체가 공존하는 상평형과는 구분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박준우 등[참고문헌 13]도 열린계의 액체가 끓을 때는 액체가 계속 기화 하면서 액체의 양이 줄어들고 기체의 양은 늘어나기 때문에 그런 상태는 열역학적 평형의 상태는 아니라고 주장했는데, 닫힌계에서도 액체와 기체의 비율은 가해준 열에너지의 크기에 따라 결정되므로 1기압 100℃를 항상 평형 상태로 간주할 수 없다.
결 론
본 연구에서는 연구 대상자들이 상평형 그림과 물질의 평형을 연관짓게 되는 것에 있어‘상평형 그림’이라는 용어의 영향이 지대하다고 판단하였다. 왜냐하면 과학적 사고는 과학적 개념을 통해 이루어지기 때문이다.[참고문헌 14] 따라서 다음의 두 가지의 용어 변경을 제안한다. 첫째, phase diagram을 상평형 그림으로 번역하는 것이 아니라 상 도표로 번역하 는 것이다. 이를통해 phase diagram이 상 간의 평형을 설명하기 위한 그림이기보다는 상 그 자체를 나타내는 것임을 강조할 수 있다. 둘째, 융해 곡선·승화 곡선·증기압 곡선 등을‘공존 곡선(Coexistence curve)’이라는 용어로 유목화하는 것이다. Coexistence curve는 각 곡선 위에서 두 상이 평형을 이루고 있다기보다는 함께 공존하고 있음을 보다 직관적으로 나타내는 용어이다. 이 용어는 이미 외국에서 화학 교과서[참고문헌 9]와 해외 연구[참고문헌 15] 등에서도 활용되고 있다. 공존 곡선이라는 용어를 통해 학습자는 곡선 위의 점이 평형을 나타내는 점이 아니라 상들 간 공존을 나타내고 있다는 것을 명시적으로 알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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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 영 하 Hwang YoungHa
• 한국교원대학교 화학교육과, 학사(2011.3-2017.2)
• 한국교원대학교 과학교육학과 화학교육전공, 석사 과정(2022.3-현재, 지도교수 : 백성혜)
• 경기도교육청 교사(2018.3-현재)
• 현재 평택여자고등학교 근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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