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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과 진실의 물, 에탄올


예로부터 생명의 물(Aqua vitae)이라 불려온 물질이 있으니, 정말 여러가지 이유로 생명의 물이라는 명칭이 아깝지 않은 에탄올(ethanol)되겠다. 감염성 바이러스 혹은 세균 시대를 견뎌내 온 우리에게 에탄올을 이용한 손 세정제의 긍정적인 효과는 기억에 남아있다. 또한, 채혈이나 주사 직전에 국소부위 소독을 위해 필수적으로 사용되는 에탄올인 만큼 그 기능에 의심의 여지가 없음을 알고 있다. 보건·의료적 용도를 벗어난 다소 일상적인 관점에서도 피로한 하루의 마무리를 함께해 주거나, 답답하고 속상한 기억에 잊고 싶은 순간을 넘기게 해 주는 에탄올 수용액, 곧 술은 생명의 물이라 해도 그럴싸하다.


에탄올과 술


어느 학문 분야나 소위 괴담 혹은 전설 등이 곳곳에 숨어있다. 학생 시절 가장 자주 들었던 이야기는 실험을 위한 에탄올에는 혹시라도 술처럼 마시지 못하도록 독성 물질인 메탄올이나 다른 화학 물질을 혼합해 판매한다는 것이었다. 너무 극단적인 처방인 것은 아닌지 의아했다. 필요한 용매를 추가적으로 증류해 고순도로 사용하는 유기화학 실험실의 경우에는 걱정할 일이 없겠지만, 판매되는 시약을 그대로 사용하는 다른 많은 실험실에서는 불순물로 인한 문제가 발생하는 것은 아닐지 궁금했다.

언제나 많은 일이 당시에는 이해하지 못했었더라도 시간이 흐르며 갑작스레 깨닫게 되는 순간이 오듯, 실험용 고순도 에탄올과 공업용 변성 에탄올의 차이도 자연스레 이해 되었다. 의도적인 불법 밀주 제작의 우려도 있지만, 그보다 본질적인 섭취로 인한 죽음이 유발되지 않도록 삼킬 수 없는 고미제를 첨가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에탄올은 다양한 면면을 갖는다. 실험실에서의 에탄올은 (바람직하지 않은 태도지만) 안전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맨피부에 몇 방울 혹은 잔뜩 쏟아져도 겸연쩍게 털어 내고 닦아낼 수 있는 용매다. 피부 접촉으로는 큰 유해성이 실감 나지 않는, 매우 안전하고 평이하며 흔한 용매인 셈이다. 하지만 상처를 통해 드러난 피부밑 조직에 닿는 순간 소독작용과 더불어 급격한 탈수를 일으켜 뜨겁게 지지는 듯한 고통을 느끼게 한다. 입으로 마셔야하는 순간에는 농도에 따라 다양한 수준의 통증이나 열감을 일으키기도 하고, 서서히 중추신경이 마취되는 듯한 기묘한 상태에 빠지기도 하니, 더 이상 별것 아닌 용매가 아니게 된다.



에탄올과 진실


에탄올(C2H5OH)은 두 개의 탄소(C), 여섯 개의 수소(H), 그리고 단 하나의 산소(O)로 이루어진 매우 간단한 구조의 유기 분자다. 하지만 몸에 유입되기 시작하는 순간 연속적이며 극단적인 변화가 시작된다. 그중 하나가 논리와 마음의 장벽이 무너져 내리며 자신도 모르게 속마음이나 진실을 내뱉는다는‘취중진담’의 순간이다.

섭취된 에탄올은 우리의 감정과 신호 전달, 그리고 중추 신경의 핵심인 신경전달물질의 분비를 촉진하기 시작한다. GABA라고도 불리는 감마-아미노뷰틸산(γ-aminobutyric acid)의 급격한 방출은 수용체에 작용하며 뇌의 인지작용을 느리게 만들고 신경 세포의 작용을 감소시킨다. 우리는 이 과정에서 점차 생각과 반응이 둔해진다고 체감한다. 동시에 도파민(dopamine)이 방출되기에 음주가 시작된 초기에는 편안함과 기분 좋은 느낌을 느끼게 된다. 문제는 에탄올 섭취가 증가할수록 글루타메이트(glutamate) 수용체의 기능이 저하 된다. 이는 기억 형성에 관여하는 역할이기에 어느 순간 우리의 기억은 군데군데 빈 공간이 생기거나 완전히 새카맣게 사라지게 된다.

취중진담은 이해할 수 없을 정도의 복잡한 인지적 작용은 아니다. 에탄올의 영향으로 GABA 수용체가 작용해 진정되고, 잠이 오며, 뇌 기능과 작용이 느려져 인지 기능이 둔화 되는 것이 전부다. 들통나지 않을 정도의 거짓을 꾸며 내는 것은 생각보다 복잡한 작업이기 때문에, 둔화된 인지 기능은 거짓을 이야기하기 어려운 환경에서 자신도 모르게 간단한 반응과 대처를 통해 진실을 표출하는 것이다. 과학적으로 이 과정을 신뢰할 수 있을까? 물론이다. 음주 과정과 만들어내는 이야기에 대한 뇌파 측정은 취중진담이 과학적 결과임을 보였다.














화학적 자백제

자백은 유죄 추정이나 판결에서 중요한 요인이다. 자신의 치부를 드러내고 싶어하지 않는 것이 일반적인 만큼, 신뢰할 수준의 진실일 이끌어내기 위해 다양한 방식이 사용 되었다. 가장 비인도적이며 왜곡이 작용할 수밖에 없는 자백 유도 기술은 아마도 물리적인 고문일 것이다. 의지와 무관하게 고통이나 정신적 압박을 이용해 허위 진술로 이어 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와는 다른 인지 기능의 둔화로 깊은 곳에 감춰둔 사실을 꺼내도록 만드는 것은 어떨까? 물론, 국내에서는 자백제의 사용은 증거로 채택되지 않는다. 소위 알코올로 인한 심신미약이라는 표현이 많은 경우 보호장치로 작동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하지만 화학자의 입장에서는 분자가 작동하는 메커니즘이 밝혀졌다면 이를 얼마든지 활용해 더 효율적인 물질을 만들어내고 싶을 수밖에 없다. 가장 오래된 자백제는 육각형 고리 구조로 이루어진 바르비튜레이트 계열의 분자들이다. 아모바르비탈(Amobarbital)이나 싸이오펜탈(Thiopental)을 비롯한 유사 구조들은 에탄올의 뒤를 잇는 자백제의 시초다. 위험성으로 인해 다른 분자들로 대체 되었지만 여전히 애용되는 국가들도 있다.

다이아제핀 계열의 유명한 분자인 다이아제팜(Diazepam)이나 아크릴사이클로헥사민 계열의 케타민(Ketamine)은 사회적으로도 여러 문제를 일으키기도 하는 물질 들이다. 이들 역시 뛰어난 자백제가 아닐 수 없다. 프로포폴(Propofol) 역시 마찬가지다. 사실상 진정, 최면, 자백은 크게 다르지 않은 개념이다. 인간의 의식과 인지능력을 하위 단계로 끌어내려 원하는 목적을 이끌어내기 때문이다.


에탄올에서 벗어나기


에탄올의 의식 둔화에서 시작해 극단적인 자백까지 이야기했지만, 우리가 실제로 우려해야 할 것은 그보다는 한참 낮은 단계다. 날이 좋아서, 날이 좋지 않아서, 날이 적당해서 마셨던 에탄올이 남겨놓은 여파를 벗어나기 위한 수많은 노력이 현실적인 난관이 무엇인지 체감하게 한다. 자연스레 숙취 해소 효과를 강조한 다양한 음료와 제품들이 개발되었고, 사람마다 효과의 편차가 있지만, 그럭저럭 작동하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음료, 알약, 젤 등 다양한 형태의 숙취 해소 제품들 속에 서도 만고불변의 전통적 숙취해소제로 이야기되는 것은 꿀물이다. 실제로 꿀물을 마시든 아니든 간에 주위 누군가 숙취에 허덕이고 있다면 자연스레 꿀물을 권하곤 한다. 별 다를 것 같은 달콤하기만 한 꿀의 기능은 신뢰할 만한 것 일까? 의외로 그렇다.

꿀벌은 꽃을 오가며 다양한 형태의 당분을 채취해 집에 보관한다. 그 과정에서 꿀벌의 체내에서 분비되는 효소는 두 개의 당 분자가 연결된 이당류 물질인 자당(설탕)을 분해해 포도당(glucose)과 과당(fructose)이라는 두 가지 단위체로 분해한다. 그중 알코올 대사 과정에 중요하게 작용하는 것은 바로 과당이다. 과당은 포도당에 비해서 당 수치를 덜 상승시키지만, 흡수가 빠르며, 에너지원으로 즉각적인 활용이 어렵기 때문에 잔여 열량이 간단히 지방의 형태로 저장되어 체중 증가의 주원인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탄수화물을 분해해 과당 형태로 전환 시킨 액상 과당의 사용과 섭취가 우려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체내에 유입된 에탄올은 체내 효소의 도움을 받아 숙취를 유발하는 주원인이라 알려진 아세트알데하이드를 거쳐 아세트산의 형태로 산화된다. 아무 대가 없이 효소가 작동 하며 산화 반응이 일어날 리는 없다. 체내 여러 산화 반응에 작용하는 NAD+는 NADH로 전환되며 알코올과 그 중간체들을 제거한다. 소모된 재료는 보충되어야 한다. 과당은 체내에서 소르비톨로 변환되며 다시금 NADH를 유용한 NAD+로 전환한다. 가장 즉각적인 과정에 대한 참여에서 예견되듯, 과당의 섭취는 혈중 알코올의 제거나 대사 속도를 적게는 40%에서 크게는 100% 이상 가속 시킨다. 우리는 넘치는 정보와 과학적 사실들, 그리고 그 틈에 교묘하게 숨어있는 유사과학과 미신적인 사실들을 정신없이 구분한다. 하지만 조금 더 진지하게 가장 기본적인 과정을 추적하다 보면, 가볍게 흘려넘기던 이야기 속에 매력적인 화학적 원리들이 녹아들어 있다는 것을 체감할 수 있다. 분명 세상은 화학으로 이루어져 있다.



장홍제 Hongje Jang

• KAIST 화학과, 학사(2004.3-2008.2)

• KAIST 화학과, 박사(2008.3-2013.8, 지도교수 : 한상우)

• 서울대학교 화학과 박사 후 연구원(2013.9-2015.1, 지도교수 : 민달희)

• Georgia Institute of Technology, Department of Chemistry and Biochemistry 박사 후 연구원 (2015.1-2016.1, 지도교수 : Mostafa A. El-Sayed)

• 광운대학교 화학과 부교수(2016.3-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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