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희 생명나노화학 연구실(Bio-Nano Chemistry Lab;BNCL)은 2011년 한양대학교 ERICA 바이오나노학과에서 시작하여 채필석 교수님 지도하에 2023년 현재 박사 후 연구원 4명과 석박사 통합과정 4명, 석사 과정 4명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저희 연구실의 연구주제는 넓게 이야기하면 목표 지향성 기능성 유기분자의 설계 및 개발로 주로 막단백질 구조분석에 유용한‘양친매성 분자’와 다양한 분석을 검출하는 ‘형광 유기 센서’를 개발하는 것 입니다[그림 1].
마이셀 형성 양친매성 분자
막단백질은 세포막수송, 세포 인식, 세포 신호전달 등의 다양한 세포 활동에 담당하고 있습니다. 막단백질의 구조가 중요한 이유는 막 단백질의 구조를 통해 이 복잡한 생체고분자의 작용 메커니즘을 분자 수준에서 규명할 수 있기 때문이고 무엇보다도 현재 50% 이상의 약물이 막단백질을 타겟으로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세포막에 들어있는 막단백질 연구를 위해서는 세포막에서 이를 추출해서 수용액에 용해 시켜야 합니다. 하지만 수용액 환경에 노출 되었을 때 막단백질은 응집되거나 변성되는 경향이 커서 원래의 구조와 형태를 잃어버리므로 막단백질 구조는 가장 어려운 연구중에 하나로 알려져 있습니다. 세포막으로부터 추출한 막단백질을 정제한 후 다양한 분석방법(초저온전자현미경 분석법, 핵자기 공명법, X-선 결정법 등)을 사용하여 단백질이 구조를 규명합니다 [그림 1]. 세포막에서의 추출단계부터 그 구조분석에 이르는 최종 단계까지 막단백질의 구조변화를 방지하기 위해 세포막을 모방할 수 있는 구조가 필요합니다. 이러한 세포막 모방구조가 바로 양친매성 분자가 만들어내는 마이셀입니다. 마이셀은 막단백질 구조연구에 가장 널리 사용하는 세포막 모방구조로 막단백질과 작은 복합체를 형성하여 핵자기 공명법(NMR)과 X-선 결정법를 통해 단백질 구조분석을 가능하게 합니다. 하지만 전통적으로 많이 사용 하는 양친매성 분자(예를 들면 DDM)는 불안정한 마이셀을 형성 하고 이에 둘러싸인 막단백질도 안정성을 쉽게 잃어버립니다. 이에 마이셀의 장점을 유지하면서도 그 단점을 보완하는 양친매성 분자를 개발하는 일은 막단백질 구조연구 분야에 매우 중요한 일 입니다. 저희 연구실에서는 LMNG와 GDN과 같은 새로운 양친매성 분자를 개발하였으며 두 개의 양친매성 분자는 지난 10년간 수 백 개의 막단백질 구조분석 연구에 사용되어왔습니다[그림 2]. LMNG는 G-단백질 연결 수용체(GPCR)의 안정성에 탁월하며 GDN는 2017년 이후에 그 사용이 급증했는데 바로 초저온 전자현미경분석법에 의한 막단백질 구조분석에 매우 유용하기 때문입니다. 최근 2년간의 막단백질 구조연구에서 LMNG와 GDN은 총 308개의 막단백질 구조규명에 기여하였고 이는 이 기간의 전체 막단백질 구조의 40%를 차지합니다. 이 두 개의 양친매성분자는 미국회사인 아나트레이스에서 시판하고 있어 전 세계 연구자들이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림 1. 주세포막 단백질 추출 및 구조 규명에서 양친매성분자의 역할. 양친 매성 분자는 마이셀을 형성하여 막단백질 주변을 둘러쌓아 단백질의 구조안정화에 기여한다.
그림 2. 본 연구실에서 개발한 두 개의 양친매성 분자 (LMNG와 GDN)의 막단백질 구조연구에 활용. 두 양친매성 분자는 지난 10년간 450 개 이상의 막단백질 구조규명 (전체 막단백질 구조의 22%에 해당) 에 기여했고 최근 2년간 308개의 구조규명에 기여함 (전체 막단백 질 구조의 40%에 해당).
LMNG와 GDN의 성공적인 사례를 바탕으로 더욱 성능이 뛰어난 양친매성 분자를 개발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노력의 결과로 2016년 이후로『J. Am. Chem. Soc.』저널에 논문 4편,『Chem. Sci.』저널에 논문 5편을 게재한 바가 있고 2022년에는『Chem』 저널에 review 논문을 게재하여 2010년 이후로 이 분야에서 70개 이상의 논문을 쏟아내고 있습니다. 이 중에는 단백질처럼 접히는 접힘형 양친매성 분자 (foldable detergent)와 팬던트의 친수성 및 소수성에 따라 형태가 바뀌는 가변성 양친매성 분자, 분자 간 수소결합을 하는 수소결합성 양친매성 분자등 새로운 개념을 도입한 분자들을 개발하여 이 분야에서 세계를 선도하고 있습니 다. 또한, 현재 양친매성 분자들이 막단백질을 둘러싼 상태에서 생체직교반응을 수행할 수 있도록 분자를 설계 및 개발하는 것을 주제로 한양대 ERICA에서는 유일하게 기초과학(화학)분야에서 삼성 과제(삼성미래기술육성사업)를 수행하고 있습니다. 이는 막단백질 맞춤형 고분자성 마이셀을 형성할 수 있어 막단백질 구조연구에 혁신을 일으킬 것으로 기대합니다.
연구실 환경
저희 연구실은 탄탄한 국제공동연구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있습니다. 미국에는 2012년 노벨 화학상을 수상한 스탠포드대학의 Brian Kobilka 교수, 영국의 임페리얼 대학의 Bernadette Byne 교수, 덴마크 코펜하겐 대학의 Claus Loland 교수와는 15년 동안 공동연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저희 BNCL에서 다양한 양친매성 분자를 디자인하고 합성하여 송부 하면 위와 같은 공동연구자들의 이 분자들의 막단백질 안정화 및 추출 효율을 평가합니다. 또한, 최근에는 새로 개발한 양친매성 분자의 막단백질이 안정화 특성을 파악하기 위해 미국 리하이 대학교의 임원필 교수님과 공동 연구를 수행하고 있습니다. MD 시뮬레이션을 통해 막단백질-양친매성 분자 복합체에 존재하는 다양한 분자간 상호작용을 정량적으로 파악할 수 있습니다. 이외에도 중국 칭화 대학의 Xiangyu Liu과 서울대 최희정 교수님과도 공동연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이를 통해 국내외 연구자들과 소통하면서 공동연구를 수행하는 과정을 배울 수 있습니다.
저희 연구실은 다양한 장비를 갖추고 있어 양친매성 분자를 합성하고, 합성된 화합물을 정제 및 분석하는데 최적의 조건을 갖추고 있습니다. 초고성능 겔 투과 크로마토그래피/크기 배제 크로마토 그래피 시스템으로 절대 분자량을 측정하여 양친매성 분자의 aggregation number를 알 수 있는‘OMNISEC’과 역상/정상 컬럼으로 분리/정제 과정에 유용한‘MPLC’가 갖추어져 있으며, 8월 중으로‘LC-MS’가 연구실에 설치되어 더욱 다양하고 효율적인 연구를 수행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와 같은 장비들의 운용법을 배우고 실제로 실험에 활용할 수 있다는 점이 저희 연구실의 큰 장점입니다.
무엇보다도 지도교수님이신 채필석 교수님의 아낌없는 조언과 지지 속에 좋은 연구자로 성장할 수 있는 환경에 있습니다. 저희는 2주마다 리서치 미팅시간을 갖습니다. 리서치 미팅을 매주하지 않고 2주 간격으로 하는 이유는 교수님께서 학생들이 연구 중 장애물에 부딪힐 때마다 스스로 고민해보고 여러 가지 방법을 시도 해 볼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시기 때문입니다. 또한, 좋은 연구자가 되기 위해서는 단순히 많은 양의 실험을 소화하는 것뿐 아니라 풍부한 배경 지식과 끊임없는 아이디어를 창출할 능력을 갖추어야 한다는 교수님의 지론 아래 한 달에 한 번씩 진행되는 저널 클럽 시간을 가져 실험과 최신 연구 동향에 대해 끊임없이 탐구하고 고민하고 있습니다. 교수님께서는 학생이 관심 있어 하는 연구 주제가 있다면 항상 열심히 지지해 주시고 마음껏 해보라고 지원해 주십니다. 제가 학부생 시절 연구실 에서 졸업 작품을 위해 실험을 하던 시절에도 ‘아직 학부생이지만 졸업하기 전에 한 번이라도 연구실에 있는 많은 시약을 가지고 하고 싶은 실험을 마음껏 해볼 기회가 되었으면 좋겠다.’하셨고, 그 때 원 없이 하고 싶은 실험을 시도했던 경험이 제가 대학원에 진학하는 큰 계기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교수님께선 종종 ‘지도교수를 뛰어넘는 연구자가 되어야 한다.’라고 말씀하곤 하시는데, 학생을 훌륭한 연구자로 키우고 싶어 하시는 마음을 잘 느낄 수 있는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떤 방향성을 가지고 공부해야 하는지, 논문공부가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해 기회가 될 때마다 열심히 설명해 주시고, 바쁘신 와중에도 학생들이 상담을 요청하여 오피스 문을 두드릴 때마다 항상 두 팔 벌려 환영해 주십니다. 이렇게 충분히 공부하고, 고민하고, 시도할 수 있는 조건 속에서 학생들도 교수님의 지원과 지지에 보답해야 한다는 책임감을 가지고 더 열심히 연구에 임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연구실 회식(삼성 재단 PD 김경국 선생님과 함께)
학회 참석
바닷길 자전거 라이딩
즐겁고 편안한 BNCL
저희 연구실의 특색은 자유롭고 평등한 분위기와 돈독한 선후배 관계입니다. 우선 학생들의 연차와 상관없이 모든 업무를 공평하게 나누고, 예상치 못하게 생기는 업무는 매번 제비뽑기나 사다리타기로 결정합니다. 그래서 누가 어떤 업무를 수행하게 되어도 불평없이 기꺼이 할 뿐 아니라, 오히려 사다리타기를 하는 것을 이벤트처럼 기다리게 되었습니다. 또한, 저희 BNCL에는 학부 연구생 때부터 맺어진 선후배 2인 1조 ‘듀오’문화가 있습니다. 각 듀오에서 후배는 선배에게 실험 방법과 노하우를 배우고 실험하는 동안 많은 조언을 들을 수 있습니다. 선배에게 연구실에서 진행되는 연구에 필요한 주요 실험 기법들을 배우며 많은 시간을 같이 보내 면서 후배들이 선배들을 존경하는 한편 마음을 터놓고 의지할 수 있는 인생의 선배로도 느끼게 되는 것 같습니다. 선배들은 자신이 손수 하나하나 가르쳐 키운 후배들을 보며 큰 보람을 느낍니다. 연구 진행 상황을 교수님께 보고하기 전에 선배와 충분한 토의를 한 다음에 교수님 오피스에 찾아가면 그냥 무작정 데이터만 들고 찾아갈 때 보다 훨씬 든든함을 느낄 수 있습니다. 오랜 시간을 같이 보내다 보니 듀오의 선배와 후배는 말투와 사고방식이 닮아가는 일도 자주 있습니다. 얼마 전에도 충청도 출신인 저에게서 부산이 고향인 제 선배의 말투가 저도 모르게 나와서 연구실 친구가 박장 대소를 한 적이 있습니다. 이 외에도 다같이 바다로, 계곡으로 연구실 MT를 가기도 하고, 바닷길을 따라 자전거 라이딩을 하기도 하는 등 휴일에도 연구실 구성원끼리 뭉치는 것을 보면 모두 연구실을 편안하고 즐거운 공간으로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맺는 글
지난 스승의 날에는 교수님과의 정기 회식으로 초밥을 먹고 카페에서 티타임을 가졌습니다. 맛있는 식사 후 카페에서 둘러앉아 이야기하던 중 신입생들에게 ‘생활하며 어려운 일은 없니?’하고 물어보시는 교수님의 질문을 듣고 대학원 진학을 고민할 때 그렇게 불안해하고 걱정했던 것이 거짓말처럼 지난 시간을 너무 잘 지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공부는 어떻게 해야 할지, 연구는 해 나갈 수 있을지, 선배나 교수님과의 관계는 어렵지 않을지 고민했었는데, 하루하루 연구실 생활을 하며 하나하나 가르쳐주는 선배들과 믿고 맡겨주시는 한편 열심히 지도해주시는 교수님 덕분에 걱정조차 잊었던 것 같습니다. 또, 하루하루 주어진 일과와 연구를 수행하다 보니 사소한 걱정이나 불안은 생각도 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여전히 앞에 놓여있는 수많은 공부와 아직은 서툴고 익숙하지 않은 실험들을 보며 가야 할 길이 멀다는 것을 알지만 무엇을 열심히 해야 하는지도 모른 채 입학을 고민하던 그때와는 다르게 ‘좋은 연구자’를 목표로 차근차근 해나가다 보면 앞서간 선배들과 교수님의 뒤를 따르는 연구자가 될 수 있을 거라고 꿈꿔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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