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만의 루틴으로 몸과 마음의 건강을지킵시다.(2026년 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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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 수정일: 10시간 전

“실패율 99%라도 해 볼 때 의미가 있습니다. 다 보이는 앞날은 재미없잖아요.” 일본 기초과학의 요람인 이화학연구소(RIKEN)에서 한국인 최초로 종신 수석과학자 자리에 올랐던 김유수 단장님께서 안정적인 미래를 뒤로하고 한국행을 택하며 던진 소신입니다. 2024년 9월 GIST 화학과 교수이자 IBS(기초과학연구원) 양자변환 연구단장으로 부임하신 교수님은 분자 한 개의 움직임을 포착하고 제어하는 세계적인 표면화학 석학입니다. 단장님께서는 1조분의 1초 단위로 분자의 ‘표정’을 관찰하는 독보적인 기술을 바탕으로, 기초 연구가 실험실을 넘어 산업의 혁신으로 이어지는 연결 고리를 구축하는 데 전념하고 계십니다. 최근에는 그 학술적 공로를 인정받아 2025년 제21회 경암상(자연과학 부문) 수상자로 선정되기도 하셨습니다.
[모더레이터: 김형준 교수(한양대학교 화학과)]
Q1. 최근 인터뷰에서 "기초 연구와 산업화 사이의 거대한 장벽을 허무는 체인(Chain)을 구축하는 것이 한국행의 이유"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단장님께서 꿈꾸시는 '연구-산업 선순환 구조'의 구체적인 모습은 무엇인가요?
기초 연구와 산업 사이의 거리가 반드시 아주 멀다고만은 생각하지 않습니다. 현실에서는 기초를 표방하는 연구실이나 연구자들 역시, 그 연구 안에 더 기초적인 주제와 더 산업에 가까운 주제가 연속적인 스펙트럼, 즉 gradation으로 공존하고 있습니다. 산업 응용에 가까운 연구실 또한 제품과 직접 맞닿은 영역부터 원리와 메커니즘에 가까운 영역까지 다양한 단계의 연구를 동시에 수행하고 있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연구–산업 선순환 구조는 이 스펙트럼을 억지로 하나의 다리로 잇는 것이 아니라, 각 연구실이 가진 기초–산업의 쌍극자를 잘 정렬하고, 분야적으로 인접한 연구실들 사이에 자연스러운 overlap을 만드는 것에서 출발합니다. 이렇게 인접한 연구 주제들이 맞물리면, 기초에서 응용으로 이어지는 작은 chain들이 형성될 수 있습니다. 이 작은 chain들이 연구 과정에서 얻어진 질문과 한계, 새로운 아이디어를 다시 앞단의 기초 연구로 되돌려 보내는 피드백 구조를 가질 때, 비로소 전체가 연결된 선순환이 만들어진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한국에서 만들고 싶었던 것은 하나의 거대한 연결 고리가 아니라, 여러 개의 작은 chain들이 서로 겹 치며 이어지고 함께 진화하는 연구–산업 생태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구조를 실제로 작동하게 만들기 위해서는, 연구 주제와 목표에 따라 각 연구실이 가진 기초–산업 쌍극자의 정렬을 설계하고 조율할 수 있는 역할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이는 단순한 행정 지원이 아니라, 연구의 내용과 맥락을 이해한 상태에서 프로젝트 매니저이자 모더레이터와 같은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존재입니다. 특히 기초과학의 성과를 산업화나 국가 차원의 대형 연구로 잇기 위해서는, 국가가 나서서 이러한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인재를 발 굴하고 장기적으로 교육·양성하는 체계를 갖추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Q2. 일본 최고의 연구소인 RIKEN에서 20년 넘게 주임연구원으로 계시며 큰 성과를 거두셨습니다. 일본의 연구 문화와 한국(GIST)의 연구 환경에서 느끼시는 가장 큰 차이점이나 시너지는 무엇인가요?
RIKEN은 한 질문을 오랜 시간 붙잡고 갈 수 있는 안정적인 환경을 갖춘 곳입니다. 연구자가 단기 성과에 흔들리지 않고, 스스로 납득할 때까지 깊이 파고들 수 있는 구조가 잘 마련되어 있습니다. 반면 한국, 특 히 GIST는 빠른 의사결정과 높은 집중력을 바탕으로 새로운 시도를 가능하게 하는 에너지가 강한 곳입니다. 이 두 환경은 우열의 문제가 아니라, 연구에 필요한 시간의 리듬이 서로 다른 문화라고 생각합니다. 지금 제가 다루고 있는 연구는 깊은 축적과 빠른 실험적 전개가 동시에 필요한 단계에 와 있고, 그 점에서 한국의 환경은 새로운 가능성과 자극을 주고 있다고 느끼고 있습니다.
Q3. 최근 사이언스(Science) 지에 발표하신 연구에서 테라헤르츠(THz) 광원과 STM을 결합해 피코초 (1조분의 1초) 단위로 단일 분자의 양자 상태를 제어하는 데 성공하셨습니다. 기존 기술로는 '흐릿 하게'만 보이던 분자의 움직임을 어떻게 이토록 정밀한 '실시간 스냅샷'으로 포착할 수 있었나요?
이번 연구에서 우리는 단일 분자의 양자 상태를 능동적으로 제어하기 위해, 특정 에너지를 가진 전자가 분자에 들어오고 나가는 과정을 직접 제어하고자 했습니다. 분자의 양자 상태는 전자가 어떤 에너지로, 어 떤 시간 순서로 분자에 주입되고 다시 빠져나가는가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에, 이 전자 출입 과정을 피코초 시간 스케일에서 다룰 수 있다면 분자의 양자 상태 자체를 시간적으로 제어할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이를 위해 금속 탐침을 가진 주사 터널 현미경(Scanning tunneling microscopy, STM)에 초고속 테라헤르츠(THz) 레이저 펄스를 조사했습니다. THz 펄스가 유도하는 순간적인 강한 전기장에 의해, 탐침과 분자 사이의 전자 주입과 회수가 피코초 단위로 일어나게 됩니다. 즉, 전자를 연속적으로 흘려보내는 것이 아니라, 전자 한 개 한 개의 출입 타이밍을 시간적으로 잘라서 제어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또한 THz 펄스의 파형 을 정밀하게 설계함으로써, 전자가 분자의 특정 궤도에 주입되었다가 다시 빠져나오는 연속적인 과정을 시간 순서대로 제어할 수 있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형성되는 분자의 일시적인 양자 상태를 발광 신호로 검출함으로써, 기존 기술로는 평균화되어 ‘흐릿하게’ 보일 수밖에 없던 분자의 움직임을 실시간 스냅샷처럼 포착할 수 있었습니다.

Q4. 1조분의 1초 단위로 분자의 변화를 관찰하는 '초고속 관측 기술'이 실제 반도체나 에너지 산업 현장에 적용된다면, 어떤 공정의 혁신을 가져올 수 있을까요?
이 기술이 당장 산업 공정을 바꾼다고 말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대신 중요한 변화는 문제를 이해하는 방식에 있습니다. 많은 산업 공정에서 실패는 흔하지만, 왜 실패했는지를 분자나 계면 수준에서 정확히 설명 하기는 매우 어렵습니다. 초고속 관측 기술은 공정의 결과가 아니라, 문제가 발생하는 순간을 이해할 수 있 는 가능성을 제공합니다. 이는 시행착오에 의존하던 문제 해결을 보다 정량적인 이해로 전환하고, 장기적 으로 공정 설계와 소재 선택의 사고방식을 바꾸는 데 기여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Q5. 2022년 네이처(Nature)를 통해 단일 분자 내의 광전류 흐름을 가시화하는 계측법을 선보이셨습니다. 분자 하나하나를 일종의 '회로'나 '스위치'로 사용하는 '분자 전자공학'의 꿈에 얼마나 가까워졌다고 보시는지 궁금합니다.
저희가 분자 하나를 대상으로 연구하는 것은, 거시적인 전자공학의 개념을 단순히 분자 크기로 축소한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매우 단순해 보이는 분자 한 개 안에도 다양한 양자 상태가 존재하며, 전자는 그 상태들 사이를 오가며 에너지를 받고 이동하고 방출합니다. 저희 연구의 핵심은 전자가 어떤 양자 상태를 거쳐 어떤 경로로 이동하고, 어떤 조건에서 에너지를 내놓는지를 분자궤도의 공간적 분포와 함께 실공간에 서 정량적으로 이해하는 데 있습니다. 이를 통해 분자 자체가 어떤 조건에서 기능적으로 동작하는지를 하나하나 밝혀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분자 전자공학을 기존 전자공학을 그대로 축소한 형태로 보지 않습니다. 오히려 분자의 세계에서만 드러나는 새로운 메커니즘과 패러다임을 바탕으로 한 전혀 다른 전자 공학을 개척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나의 분자가 여러 기능을 동시에 수행하거나, 아직 알려지지 않은 새로운 기능을 통해 전자공학의 새로운 길을 여는 것이 저희가 기대하는 방향입니다.
Q6. 새롭게 이끄시는 IBS 양자변환 연구단의 목표 중 하나가 '양자 상태 간의 상호작용을 정량적으로 계 측'하는 것입니다. 단순히 관찰하는 것을 넘어 '양자적 변환'을 능동적으로 설계한다는 것은 미래 양자 컴퓨터나 센서 기술에 어떤 기초 체력을 제공하게 됩니까?
양자적 변환은 반드시 에너지의 변화를 수반합니다. 중요한 것은 그 변화가 일어났는지를 보는 것이 아니라, 얼마만큼의 에너지가 어떤 경로로 이동하고 변환되었는지를 극한의 정밀도로 계측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저희 극한 나노분광법의 기본 철학입니다.
이를 위해 저희는 정밀 여기 수단과 고감도 검출기라는 두 핵심 요소 기술을 발전시켜 왔습니다. 특정 양자 상태를 선택적으로 여기시키고, 그 결과로 나타나는 매우 작은 신호를 민감하게 검출함으로써, 양자 상태 간 상호작용과 변환 과정을 능동적으로 다룰 수 있게 됩니다.
이러한 접근은 양자 컴퓨터나 센서 기술에 국한되지 않고, 양자 상태를 거치는 에너지의 이동–변환–소멸 과정에 관련된 모든 미래 기술에서 원리를 이해하고 쓰임새를 확장하는 데 중요한 기초 체력이 될 것 이라고 생각합니다.

Q7. "노벨상보다 연구 성과를 산업으로 잇는 길이 중요하다"라는 소신을 밝히셨습니다. 기초과학자로서 이러한 실용적 가치관을 갖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으신가요?
이 말이 노벨상의 가치를 낮게 본다는 뜻으로 오해되지 않았으면 합니다. 노벨상을 받는 일은 연구자가 목표로 삼아 실현시킬 수 있는 일이기보다는, 결과적으로 주어지는 평가에 가깝다고 생각합니다. 반면 기초 연구에서 얻은 이해를 산업 현장과 연결하려는 노력은, 연구자가 의지를 갖고 선택하며 실천할 수 있는 일입니다. 줄지 안 줄지도 모르는 노벨상을 기다리며 노심초사하기보다는, 지금 현실에서 연구자로서 할 수 있는 일에 정직하게 도전해 보자는 의미였습니다. 그렇게 꾸준히 하다 보면, 혹시라도 누군가 “이 연구는 상을 주고 싶다”라고 생각해 줄 날이 올지도 모르겠지요.(웃음)
Q8. 단장님께서는 "실패율 99%라도 해볼 때 의미가 있다"고 말씀하신 바 있습니다. 수많은 실패를 견디게 하는 단장님만의 원동력은 무엇이며, 실패를 정의하는 단장님만의 기준이 있으신가요?
저에게 실패란 결과가 나오지 않았다는 의미라기보다, 질문이 아직 충분히 다듬어지지 않았다는 신호입니다. 실패할수록 무엇을 다시 정의해야 하는지가 더 분명해집니다. 모든 것이 예상대로 흘러가는 연구는 오히려 배울 것이 많지 않습니다. 실패를 통해 질문이 점점 선명해질 때, 그 과정 자체가 연구를 계속하게 만드는 가장 큰 동력이 됩니다.
Q9. 인공지능이 실험 가설을 세우고 논문을 쓰는 시대가 다가오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인간 과학자'만이 할 수 있는 영역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이 질문을 주셔서 개인적으로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요즘 저는 이 문제를 기술 발전의 문제가 아니라, 아카데미아가 질문의 주권을 스스로 내려놓고 있는가라는 문제로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인공지능(artificial intelligence, AI)은 가설 제안과 데이터 분석, 논문 작성까지 가능해지고 있지만, 어떤 질문을 던질 것인가, 그리고 그 질문이 왜 중요한가는 여전히 인간의 몫입니다. 인간 과학자의 역할은 답을 만드는 능력이 아니라, 불편하더라도 반드시 던져야 할 질문을 선택하고 그 결과에 책임을 지는 데 있다고 생각합니다. AI 시대의 위기는 기술이 아니라, 질문의 품격을 포기하는 데서 올 수 있습니다. 그 품격을 지키는 용기만큼은 끝까지 인간 과학자의 몫으로 남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Q10. 단장님께서 궁극적으로 도달하고 싶은 '연구의 종착지' 혹은 과학자로서 꼭 풀고 싶은 단 하나의 숙제가 있다면 무엇입니까?
제가 궁극적으로 도달하고 싶은 연구의 목표는, 분자와 고체표면 사이의 나노계면에서 일어나는 에너지 변환 과정을 하나의 일관된 언어로 정량적으로 설명하는 것입니다. 이 영역은 분자 내부의 현상과 고체 물성, 그리고 계면에서의 상호작용이 동시에 작용하는 공간으로, 기존의 어느 한 분야의 언어만으로는 충분히 설명하기 어렵습니다. 특히 이 나노계면에서는 전하 이동, 여기 상태, 진동 모드, 국소 전기장, 구조적 불균일성 등 매우 많은 파라미터들이 서로 얽혀 작용하기 때문에, 실험과 이론이 항상 깔끔하게 맞아떨어지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이 문제는 이론·계산·정밀 계측·물질과학이 총집결된 협업을 통해서만 접근할 수 있 는 과제라고 생각합니다. 남은 연구 인생 동안 이 복잡한 나노계면의 에너지 변환 과정을 조금이라도 더 명확한 기준과 언어로 정리하고, 서로 다른 분야의 연구자들이 함께 대화할 수 있는 공통의 좌표를 만드는 것—그것이 제가 꼭 풀고 싶은 단 하나의 숙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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