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호 <화학세계가 만난 화학자>에서는 한국화학연구원 원장을 역임하신 이미혜 박사님을 모셨습니다. 이 박사님 께서는 1985년 한국화학연구원에 연구원으로 입사하여 최첨단 고분자인 폴리이미드수지를 집중연구하셨으며, 화 학플랫폼연구본부장, 선임연구본부장, 화학소재연구본부장, 정보전자폴리머센터장 등을 역임하셨습니다. 2019년 11월부터 3년간 한국화학연구원의 최초 여성 원장(16대)을 역임하셨고, 2023년 3월 퇴직하셨습니다. 38년간 최첨단 고분자 연구로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산업 발전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2024년 과학기술 부문의 1등급 훈 장인 과학기술 창조장을 수상하기도 하셨습니다. 폴리이미드수지의 연구개발과 상업화를 이끌고, 국가 화학산업을 견인하고 있는 한국화학연구원의 발전에 힘쓰신 이미혜 박사님(한국화학연구원 명예연구원)의 인터뷰를 시작합니다.
[모더레이터: 문회리 교수(이화여자대학교 화학나노과학과)]
1. 누구보다 바쁜 현직 생활을 마무리하시고 퇴임하신 지 1여 년이 지났습니다. 어떤 일상을 보내고 계시는지요?
오랜 연구원 생활을 마치고, 그동안 바빠서 못하였지만 항상 배우고 싶었던 일을 하는 시간을 가지고 있습니다. 연구자로 살면서 깊게 생각하지 못했던 “과학자는 왜 철학박사(PhD)로 불리우는가?” 등과 같은 당연하지만 새삼스러운 질문을 제 자신에게 던지고 있지요. 동시에 옛 그리스 철학자들의 자연과 과학에 대한 생각, 동서양 철학자들의 인간의 삶에 대한 고찰에 관해서 공부하고 있습니다. 예전에는 앞을 보며 강 위에서 열심히 노를 저었다면, 지금은 언덕에 앉아 흘러가는 강물을 바라보고 있다는 느낌이 듭니다. 이러한 시간을 가질 수 있음을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2. 박사님께서는 서울대학교 화학교육과에서 학위를 하신 후, 교직의 꿈을 접고 KAIST 대학원에 진학 하셨습니다. 특별한 계기가 있으셨는지요?
어릴 때부터 배움과 동시에 가르치는 것을 좋아하였고, 대학을 졸업하고 여성인 제가 선택할 수 있는 직업으로서 ‘교직’ 이 가장 적합하다고 판단하여 사범대학교에 진학을 하였습니다. 이후 대학에서 공부를 하면서 선생님이라는 직업은 ‘지식의 전달’ 뿐만 아니라 ‘타인에 대한 배려심, 공감력, 이타심’을 더 필요로 함을 알게 되었고, 그러한 부분이 다소 부족하다고 느껴서 진로를 바꾸게 되었습니다. 실험실에서 미 지의 세계를 들여다보는 것이 무엇보다 즐거웠기 때문에 KAIST에 진학하였습니다. 대학원에서의 연구와 연구실 생활이 많은 흥미를 주었지만 곧바로 박사과정으로 진학하지 않은 것은 1980년 초‧ 중반 박사 학 위를 가진 여성들의 취업은 매우 어려웠으므로 석사만 마치고 한국화학연구원에 입사하였습니다. 여자도 꼭 직업을 가져야만 한다는 어머님의 교육이 항상 저에게 직업의 중요성을 일깨워 주었다고 생각합니다. 연구원 생활을 1년 정도 하면서 국가를 위해서 연구를 수행하는 목적을 가진 한국화학연구원의 미션이 나의 가치관과 일치하였고, 연구환경도 상대적으로 좋았으므로, 한국화학연구원에서 연구생활을 계속하기로 결정하였습니다. 이후, 연구원의 학위 취득 교육과정 지원을 통하여 박사과정에 진학하였습니다.
3. 많은 연구분야 중에서 고분자 연구에 평생을 바치셨습니다. 처음 이 연구분야를 택하게 되신 이유가 있 으신지요? 그리고, 도중에 후회는 없으셨는지도 궁금합니다
대학 3학년 전공선택 과목으로 ‘고분자화학 특론’을 들었는데, 교과서 속 지식이 바로 눈에 보이는 실생활에 연결됨이 신기하였고, 간단한 분자설계와 합성을 통해 다양한 특성의 고분자를 쉽게 합성해 낼 수 있다는 것이 매우 흥미로웠습니다. 박사학위를 받을 즈음 한국화학연구원에서는 국내 산업의 발전을 선도할 수 있는 첨단소재의 개발에 주력하고 있었고, 이를 위해 다양한 내열 고분자소재를 개발하고 상업화함으로써 사회에 기여를 할 수 있었음에 보람을 느낍니다. 고분자는 아직도 재미있는 주제이고, 산업의 발달에 따라 적합한 소재의 개발이 병행되어야만 합니다. 다만, 대부분의 고분자는 석유화학 산업에서 생산되는 다양한 화합물들로부터 제조되기 때문에 공정 도중 지구온난화의 주요 원인인 이산화탄소가 다량 발생하는 문제를 안고 있어서 이는 고분자 과학자들이 반드시 해결해야만 하는 당면 숙제라고 생각합니다.
4. 박사님의 연구 생활을 통틀어 가장 의미 있는 (또는 가장 뿌듯한) 연구성과로 어떤 것을 꼽을 수 있을까요?
한국화학연구원에서는 1990년대 국내에서는 선도적으로 내열성 고분자 연구를 시작하였으며, 그 중에서도 내열성이 특히 우수한 고분자인 폴리이미드의 분자구조 및 특성제어에 관심을 가지고 연구를 수행하였습니다. 연구팀에서는 알루미늄에 버금가는 내열성을 보유한 다양한 형태의 폴리이미드수지를 개 발하여 국가 주력산업인 전기전자, 반도체, 디스플레이 분야에 적용하였습니다. 대표적인 성과인 2002년 ‘내열 부품용 폴리이미드수지 제조 및 성형가공기술’의 상업화에 이어, 가시광선 영역에서의 투명성 및 우수한 전기 광학적 특성을 가지는 ‘수직구동형 액정 배향막’ 등을 산업화함으로써 첨단 고분자소재의 기술 발전에 기여하였습니다. 현재에도 저온 용액공정용 폴리이미드 유기절연체 및 내열ᆞ고효율 광 전고분자 소재 등의 연구가 계속 추진되고 있으며, 향후 미래 산업을 선도하는 과학‧기술적 연구성과로 이어지리라 믿고 있습니다. 그리고, 가끔 예상치 않았던 연구자가 저의 논문 혹은 특허가 그들의 연구 개발에 많은 도움이 되었다는 이야기를 하였을 때 기쁜 마음이 들었습니다.
5. 2019년 11월에 한국화학연구원 원장에 취임하셨습니다. 3년의 임기가 오롯이 팬데믹 상황에 놓여 있었는데요, 이로 인해 당초 원장으로서 계획하셨던 많은 업무 수행에 큰 여러 어려움이 있으셨으리라 생각됩니다. 예상치 못했던 이러한 상황을 어떻게 헤쳐 나가셨는지요?
2019년 7월 일본은 반도체ᆞ디스플레이 산업 필수 소재들의 수출규제를 강화하는 조치를 시행하였고, 해당 산업들이 큰 타격을 받을 위기 중에 소재전문가로서 연구원 원장으로 취임하였습니다. 또한 같은 해 12월 우한 바이러스가 급증하면서 전 세계는 코로나 팬데믹에 접어들었습니다. 예상치 않은 어려움을 맞이하였지만 한국화학연구원은 지난 30~40년 동안 전략연구분야로서 불소계 계면화학연구, 폴 리이미드연구, 바이러스 예방 및 치료제연구 등을 지속적으로 지원ᆞ개발하여 왔으며, 당면한 국가의 요청에 최대한 적절히 대응할 수 있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21년 제정ᆞ공포된 탄소중립기본법에 의해 국내화학산업의 경쟁력이 크게 저하되는 절박한 환경으로 접어들었습니다. 2022년 한국화학연구원은 18개 화학기업과 함께 ‘탄소중립 화학기술 연구협의체’를 발족하였으며, 이와 병행하여 여수산단에 탄소중립 촉매실용화센터 및 이산화탄소활용센터를 건립하여 산-학-연이 협력할 수 있는 탄소중립연구의 발판을 마련하였습니다.
팬데믹 상황의 가장 어려운 점은 직접 만남과 소통이 어렵다는 점이지만, 그러한 상황 속에서도 가 장 중요한 것은 연구원들의 하고자 하는 열정과 의지입니다. 그들이 열린 마음으로, 새롭고, 어려운 과 제들에 과감히 도전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주고자 노력했습니다. 어려운 기간이었지만 화학데이터 유 래 고효율 합성 연구, 화학기반 수소생산 및 저장 연구 등 미래를 선도하고 발전시킬 수 있는 흥미로운 연구들을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6. 원장님의 이전 인터뷰에서 일과 가정에 대한 밸런스를 강조하신 내용을 접한 바 있습니다. 저 또한 여성과학자로서 백프로 공감을 하고 있는데요, 이 밸런스 유지에 정말 힘들었던 순간은 없으셨는지, 그리고 그것을 어떻게 극복하셨는지 후배 여성 화학 연구자들에게 팁 전수를 부탁드립니다.
한쪽에 치우치면 저울이 균형을 이룰 수 없음은 당연합니다. 매 순간 주어진 일의 우선순위를 정해야 하고, 서로 잘 유지될 수 있도록 지혜를 짜내야 합니다. 때로는 나의 선택에 대해 상대를 설득하고 동의를 얻어야 합니다. 내가 안정적으로 사회생활을 지속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가족들의 지지가 중요 하며 이를 위해 남편 그리고 아이와 많은 대화를 하면서 균형을 유지하였습니다.
그리고 연구와 가정을 동시에 잘 이끌어 가기 위해서는 당연히 남들보다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해야 하기 때문에 건강을 잘 유지하는 것이 요구됩니다. 스스로 정신ᆞ육체적으로 건강할 때 비로소 주어진 많은 일들을 감당해 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반면, 나 자신을 위한 취미활동이나 교우관계 등은 활발한 유지가 다소 힘들 수밖에 없게 되겠지요. 그러나 선택은 자신이 하는 것이니 우선순위를 잘 정하면 될 것으로 생각하며. 나의 경우는 양가 부모님께서 육아를 거의 전담해 주셨기 때문에 큰 어려움은 없었으나, 나중에 함께 살 때조차 아이에게 동화책을 읽어준다거나, 학교 가정통신문을 관심있게 보고 준비해준다거나 하는 일들을 해주지 못했음이 아쉽습니다. 항상 미안한 생각이 들어 아이가 좋아하는 것들 위주로 함께 놀아주다 보니 학업 성취에는 다소 부족함이 있었지만, 전화위복인지 지금까지도 친구와 같은 좋은 관계를 유지해오고 있음은 잘한 일 중의 하나로 생각됩니다.
내가 가장 힘들었던 순간을 극복하게 준 것은 ‘나를 전적으로 이해하고 격려해 주는 사람들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이며, 아직도 그들과의 관계 유지를 가장 소중하게 여기고 있습니다.
7. 2024년 과학기술훈장 창조장(1등급)을 수상하셨습니다. 평생 연구자로서 열심히 살아오신 여정을 인정받고 멋지게 마무리하셨다는 생각이 듭니다. 소감 한 말씀 부탁드리겠습니다. 누가 보아도 성공적인 연구자 삶을 살아오신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돌이켜 볼 때 후회가 되거나 아쉬운 부분이 있으신지요?
1985년 한국화학연구원에 입사한 이래 배우고, 가르치며, 연구자로서, 연구원의 경영자로서 바쁘게 38년이 훌쩍 지나갔습니다. 오랜 시간 폴리이미드 분야 연구를 계속할 수 있었고 건강하게 연구원을 퇴직할 수 있었음에 항상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난 연구 생활을 돌아보면, 더욱 치열하게 노력하지 못하였음을, 새로운 분야에 대해 과감한 도전을 하지 못하였음을 반성하게 되고 아쉬움으로 남았습니다. 그런데 올해 봄 창조장 수상자로 선정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매우 놀랐습니다. 지금의 나를 만들어 준 한국화학연구원, 동료, 선배, 후배, 추천기관 그리고 작은 연구성과를 가치 있게 평가해 주신 미지의 심사위원님들께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퇴직은 하였지만 과학기술인으로서 사회 에 대한 의무와 책임을 다시금 일깨워 주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8. 대한민국 화학산업 발전을 주도해 온 한국화학연구원에 평생을 바치시고 수장으로서 이끄신 분으로서, 화학을 전공하고 있는 많은 연구자들에게 한국화학연구원, 더 넓게는 정부출연연구원의 의미와 중요성에 대해 설명을 부탁드리겠습니다.
1966년 베트남 파병의 대가로 미국의 도움을 받아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이 세워진 후, 1974년 정 부출연기관법이 입법화되고, 전략적으로 다양한 연구기관들이 만들어졌습니다. 한국화학연구원도 그중의 하나로서 136개 화학기업의 출연금으로 창립되었습니다. 이후 1980년대를 거치면서 연구원은 국가 화학 산업을 지원하고 이끄는 역할을 충실히 수행해 왔습니다.
잘 알려진 바와 같이, 정부출연연구원은 과학기술 분야에서 ‘국가가 국민을 위해 해야 할 일을 대신하여 수행하기 위해 세워진 연구기관’입니다. 그러므로 이곳에 소속된 연구원들은 개인적인 목적이 아닌 국가로부터 주어진 업무를 수행해야 하는 임무를 가지고 있으며, 자신이 추구하는 가치와 사회에서 요구하는 가치를 일치시켜 연구에 임해야 합니다. 동시에, 그들이 가진 전문지식을 바탕으로 국가가 수행해야 할 일들을 제시해야 할 책임도 가지고 있습니다. 이렇듯 큰 역할이 주어진 정부출연연구원이 본연의 기능을 효율적으로 수행하기 위해서는 인력, 예산의 운용 등에서 보다 큰 자율성이 부여되기를 바랍 니다.
끝으로, 최근 대한민국이 선진국의 반열에 오르게 됨에 따라, 출연연구원의 연구원을 비롯한 과 학기술자들은 국가 경제ᆞ산업 발전의 견인과 함께 향후 세계의 모든 국가가 반드시 지켜 나가야 할 ‘환경의 지속성 유지’에 큰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 으로 생각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과학기술을 육 성하고 발전시켜야 하는 임무를 가지고 있음과 동 시에 그것이 ‘현재를 사는 우리 뿐만 아니라 미래의 후손들에게도 똑같이 이익이 되는 방향’으로 이루어져야 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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