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호 <화학세계가 만난 화학자>는 동국대학교 화학과 여인형 명예교수입니다.여 교수님은 연구뿐 아니라 교육과 화학대중화에 있어서 큰 공헌을 하고 계십니다. 특히 네이버 지식 백과에 연재한 ‘화학 산책’으로 조회수 1,400만 이상을 기록할 만큼 일반인과 학생들에게는 화학 대중화의 선구자로 유명한 교수님입니다. 그럼 여인형 교수님의 화학 대중화와 관련된 다양한 경험과 고견을 함께 들어보도록 하겠습니다. [모더레이터: 이준석 교수(한양대학교 화학과)]
1. 교수님께서는 화학 대중화와 관련해서 칼럼을 쓰시거나 강연을 오랫동안 하셨지만, 사실 전기화학을 전공하셨고 70여 편의 논문을 발표하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먼저 간단히 교수님의 전공 연구에 대해서 간단히 설명 부탁드립니다.
제가 국제학술지에 발표한 논문 70여 편은 요즈음 연구자들이 발표하는 논문의 수와 비교해 보면 많이 적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내 환경에서 최선의 노력을 해서 얻은 결과입니다. 1989년 교수로서 처음 연구를 시작할 때 제 연구에 반드시 필요한 정전위/정전류기를 청계천 전자상가에서 부품을 사다가 직접 제작을 했으니까요. 석사과정의 제자와 함께 미국 전기화학회지에 발표한 논문이 국내 연구에서 나온 첫 논문이었습니다. 저의 연구는 기본적으로 전기화학 방법을 이용한 물질의 정량 분석과 전극 반응 특성 연구입니다. 구체적으로 전극 활성 물질의 분석에 적합한 새로운 전극 물질 및 그것을 이용한 새로운 분석 방법의 개발이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전극 촉매 반응과 그 반응을 이용하여 유해 화학물질을 덜 유해 한 물질로 변환하는 연구 및 그것을 응용한 환경/실험실 정화 방법도 관심이 있었습니다. 연구실에 지원 한 대학원생이 없어진 이후로는 아주대 모선일 교수와 공동으로 대학원생들을 지도하면서, 2차 전지의 캐소드 전극 물질의 개발 및 전지 특성 연구를 했습니다.
2. 항상 선배 교수님들께서 연구를 잘하는 것도 중요한 일이지만, 교수라는 직함은 교육과 봉사가 매우 중요하다고 말씀해 주십니다. 교수님께서는 어쩌면 연구와 교육& 봉사라는 두 가지 토끼를 모두 잡으신 것 같습니다. 교수님께서는 언제부터 화학 대중화에 관심이 많으셨고 특별한 계기가 있을까요?
연구가 한참 탄력이 붙어야 할 50대 초반에 연구비는 있었지만, 더 이상 같이 연구를 할 대학원생이 없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사실은 그때까지도 많은 기간동안 한두 명의 대학원생으로 연구를 진행해 왔지만, 막상 연구 인력이 한 명도 없는 상황이 되니 무척 당황스러웠습니다. 더 이상 연구비가 필요 없는 상황이므로 남은 연구비는 국가에 반납했습니다. 그것이 2005년 말이었습니다. 그때 정말 심각한 고민에 빠졌습니다. 아직도 정년까지 한참 남았는데 무엇을 어떻게 하면서 지내야 할지를 결정해야 되니까요. 한동안 방황 끝에 내린 결정이 대학원생 도움이 필요 없는 혼자만의 “글쓰기를 해보자”였습니다. 왜냐하면 과학자의 사회적 책임 가운데 하나는 과학을 대중에게 알리는 일도 포함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생활하면서 흔히 마주치는 화학물질에 대해서 쉽게 풀어서 정리한 글을 발표하고, 그 글이 이해가 된다면 우리 삶에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했거든요. 그래서 2006년 봄에 처음으로 식품 첨가물에 대한 글을 작성했고, 그것을 평생 화학과는 인연이 전혀 없었던 고등학교 친구에게 읽어보라고 건넸습니다. 얼마 후에 그 친구는 그 글은 혼자 보기 아까우니 글과 생각을 공유하는 방법을 찾아보자고 제안도 했고, 글을 실을 수 있는 신문까지 소개해 주었습니다. 그것이 인터넷판 헤럴드 경제입니다. 그것이 일반인들을 위한 글 쓰기 의 시작이었습니다.
3. 교수님의 화학 대중화 업적 중 대표적인 업적이 네이버의 교양 콘텐츠 서비스인 지식 백과에 연재한 ‘화학 산책’이 아닐까 싶은데요. 네이버 웹툰에서 유명한 기안84 작가가 떠오릅니다. 화학 세계에도 컬럼을 연재하시는 등 주기적으로 글을 쓰는 것은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연재와 관련해서 에피소드가 있을까요?
처음 시작은 매우 어려웠습니다. 일단 수락부터 하고 난 후에 제가 엄청난 일을 저질렀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습니다. 왜냐하면 1주일에 한 편의 원고를 정해진 시각까지 보내주어야 했는데, 글 윤곽과 주제를 미리 정한 것도 아닌 상태에서 수락을 했기 때문입니다. 발등에 불이 떨어진 것이지요. 부지런히 자료 찾고 공부도 하고, 정리해서 시간에 맞추어 원고를 보내고 나면, 1주일이 어찌나 빨리 가는지…다음 주 제 선정, 공부, 시간에 쫓기는 일이 계속되었습니다. 초보자로서 6개월에 24개의 글을 대중에게 내놓는 일도 어렵지만 그것에 맞는 주제와 자료를 고르는 일도 쉽지 않았습니다. 그때부터 아마존 서점을 통해 관련 서적을 구입했고, 외국으로 출장을 가면 현지 서점을 반드시 찾아가서 관련 서적도 구입했습니다. 또한 신문과 뉴스를 보면서 키워드를 모으고, 그것과 관련된 정보를 담은 책과 자료를 읽었지요. 읽은 내용은 메모하고, 쓸 주제는 물론 개인적으로 궁금했던 주제별로 정리했습니다. 원서를 읽고, 그것에서 글 주제와 아이디어는 얻었지만 번역은 하지 않았습니다. 글 내용이 다소 부족하더라도 내 생각을 우리말로 작성해야 독자들과 소통이 되고, 공감을 더 얻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 것이지요. 그것은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번역서가 주는 한계를 내 방식대로 극복하고자 노력을 했던 것이지요. 그 후 2009년경에 네이버 편집진에서 한 달에 한 번 글을 써달라는 제안을 받았습니다. 글을 써서 보내면 그림 편집, 맞춤법 교정도 해주어서 훨씬 편했습니다. 그 후에 연재가 중단될 때까지 작성한 원고가 약 80편이 넘었습니다. 그 글들은 현재에도 온라인에서 검색과 읽기가 가능합니다. 책과는 달리 신문이나 방송에 화학물질에 관한 뉴스가 있으면 관련 글의 조회수가 늘어나고, 그것이 쌓이다 보니 조회수가 천만을 훨씬 넘기게 되었습니다. 화학세계를 비롯한 다른 매체에 네이버에 연재된 글의 유형과 비슷한 것을, 혹은 새로운 글을 올리면서 지금까지 노력해오고 있습니다. 특히 뉴스 혹은 사회에서 회자되는 화학물질에 대해 해설 형식으로 글 들은 사람들의 관심을 많이 끄는 것 같습니다.
4. 제가 고등학교 때는 화학은 당연히 과학을 좋아하는 학생들이 선택하는 과목이었는데요. 요즘은 화학에 대한 선호도가 많이 줄어들었다고 합니다. 저희처럼 화학 전공자들에게는 믿기 어려운 현실인 데요. 학생과 일반인들에게 대면 강의, KMOOC 화학 강좌, 또는 독서 토론 모임과 같은 활동을 하 시면 체감을 하셨나요?
일반인과 대화할 때 제가 화학 교수라고 하면 일단 억지로 주기율표를 외웠던 불편한 기억을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두 번째로는 화학은 복잡하고 예외가 많고 외울 것이 많아서 싫었다고 하는 성인들이 의외로 많습니다. 화학이 암기과목이라는 생각이 적지 않다는 것입니다. 사실 저도 고등학교에서 처음으로 화학을 배우는 첫 시간의 숙제(주기율표 20번까지 외우기)를 안 해서 선생님으로부터 꾸중을 들었거 든요. 그때는 다른 교과목도 열심히 안 했기 때문에 화학 역시 좋아할 수가 없었습니다. 은퇴 후에 교육 기부 강연으로 전국 초중고를 다녀보면 많은 학생들이 화학은 외우는 과목이라고 여기는 것 같습니다. 외울 것도 많고, 계산이 복잡하기에 싫다는 학생들도 적지 않습니다. 아마도 화학을 처음 배울 때 화학이라는 전체 숲을 피부로 느끼지 못한 것이 큰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당장 발등에 떨어진 화학 시험지 빈 칸을 메꾸려고 일단 암기를 해서 급한 불을 끄기에 벌어진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처음 화학을 시작하는 학생들에게 화학의 큰 그림을 알려주고, 왜 중요한지를 이해시키려는 노력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느낍니다. 또한 화학은 비전공자들도 살아가는데 반드시 필요한 지식이라는 것을 설득하는 일 또한 매우 필요합니다. 이제껏 만난 수많은 일반인 가운데 딱 한 분만이, 제 전공을 물어본 후에, “교수님, 화학 이 모든 것 아닙니까?”라는 의외의 답변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분의 전공이 궁금해서 물어보았더니 법학이었습니다. 어떻게 그런 “올바른 생각”을 했냐고 재차 물었더니, 자기는 법학 전공으로 화학 회사에 근무했고, 책을 좋아해서 관련 서적을 많이 읽다 보니 화학이 정말 모든 것과 연결된 중요한 공부라는 생각을 자연스럽게 가질 수 있었다는 대답을 하더군요. 정말 인상 깊었던 순간이었습니다.
5. 화학이 없는 세상은 상상하기 어렵고 앞으로의 세상에도 화학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후속 세대들이 꾸준히 화학에 관심을 가지고 공부를 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화학의 대중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데요. 화학 대중화를 효과적으로 하기 위해서는 어떤 방법이 있을까요?
선진국을 정의할 때 하나의 기준은 화학 실력이 좋은 나라라고 생각합니다. 그들 나라의 과학자들은 화학을 비롯해서 과학에 대해서 일찍부터 일반인들의 눈높이에 맞는 강연을 해 오는 전통이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 교수로서 그런 일을 하면 인정을 받지 못합니다.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여야 하는 일이 성과 인정을 못 받으니, 당연히 교수들의 관심에서 멀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더구나 학교 강 의도 많고, 연구 실적도 맞추어야 하고, 재미난 일거리(연구)도 많지요. 심지어 좋은 연구 결과를 얻으면 회사도 차리고 경제적 이득도 얻는데, 현실적으로 아무 이득이 없는 대중화를 위한 일에 화학 교수 누가 힘을 쓰겠어요? 현실을 살펴보면 더 비참합니다. 전국 곳곳에 있는 “문화센터” 프로그램 중에는 과학(화학) 관련 수업 혹은 강연은 거의 없습니다. 사람들의 관심이 없기도 하겠지만, 강연을 그들의 눈높이에 맞도록 강연해 줄 강사 구하기도 어려우니 그럴 것이라고 짐작만 합니다. 눈높이 강연을 위해서는 많은 노력과 시간이 필요한데 누가 나서서 소득도 없는 일에 나서겠습니까? 저는 과학 대중화를 위해 서는 초등학교 5,6학년 학생들과 학부모가 함께 들을 수 있는 강연, 과학 기자들을 위한 정기 강연, 일반인들이 매일 대하는 물질에 대한 정보를 올바르게 설명해주는 문화센터 강연이 활성화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특히 초등학생들이 부모와 함께 화학 강연을 듣고 일찍부터 화학의 중요성을 깨닫게 된다면 많은 학생들이 화학 공부에 관심을 둘 것이라 생각합니다. 또한 화학은 물론 과학 전공자가 매우 드문 과학기자들에게 필요한 정보와 과학의 재미를 주기적으로 전달해 주는 정기 강연으로 최신 화학정보의 이해를 돕는 일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개인적으로 문화센터 강연을 기획하고 시도를 해 보았지만, 우선 인원모집부터 성사되지 못했습니다. 그것은 화학은 어렵다는 인식이 깔려 있는 사람들이므로 화학 공부가 주는 이득의 실체를 실감할 수조차 없었을 것입니다. 일반 대중 강연은 사람들이 생활 할 때 필요한 과학 정보, 일상용품, 위생과 청소, 음식에 관련된 주제로 강연준비를 한다면 일단 관심은 끌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런 면에서 볼 때 학회 차원에서 대중 강연 강사를 섭외하고, 대중에게 흥미로운 주제 및 눈높이에 맞는 강연을 기획하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고 여겨집니다. 다소 늦었지만, 화학대중화위원회가 활동을 시작하니 그나마 다행입니다.
6. 그런 의미에서 최근에 “여인형의 화학 공부”라는 교수님께서 집필하신 책이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희 화학세계에서도 지난 2월에 소개를 한적이 있습니다. 화학세계 구독자들에게 간략히 책소개를 다시 한번 부탁드립니다.
“여인형의 화학 공부”는 한마디로 그동안 강연과 강의 경험을 담아서 화학 개념을 우리말로 풀어낸 책입니다. 처음 책의 제목을 “국어로 읽는 화학”이라고 했던 이유입니다. 그런데 출판사가 “여인형의 화학 공부”로 변경을 했습니다. 아마도 네이버 검색 조회수가 1500만에 이르는 것을 활용하려고 기획한 것 같습니다. 책에는 화학에 반드시 필요한 기본 개념을 자세히 설명했고, 화학반응이 일상에서 어떻게 보여지는 지를 알리려고 노력했습니다. 화학반응에 따른 에너지의 종류와 변환이 갖는 의미와 특징도 다루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전지 에너지와 화학반응의 관계, 호흡에너지와 전기에너지의 상호 변환 등이 그것입니다. 학생들이 흔히 생각할 수 있는 것으로 처음 화학공부를 시작한다면 설득력이 있을 것이라 본 것입니다. 화학(과학) 공부를 시작할 때 외국 책의 번역본에서 볼 수 있는 예들은 피부와 와닿지 않을 뿐 아니라 이해하기도 어려울 때가 많습니다. 그런 일들이 쌓이면 화학에서 상상력이 필요한 개념/반응 등이 구체화되기 보다 낯설게 느껴질 것입니다. 이 책에서는 화학 개념과 예를 “국산화”하려고 노력했습니다. 고등학교 교과서에서 보는 간략한 설명이 오히려 학생들의 이해를 감소시키는 원인이 될 수 도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예를 들어 원자와 핵의 크기를 서울시와 농구공에 비유한다면 학생들이 원자와 핵, 전자의 활동 범위에 대한 개념이 보다 구체화될 것이고, 더 나아가서 화학 결합에서 왜 전자의 역할이 중요한지를 직관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 거지요. 전자의 활동범위의 비유를 학생들이 알고 있는 것과 비유를 한다면 개념에 대한 올바른 상상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본 것입니다. 각종 화학반응 종류를 기본 설명과 함께 그런 반응들이 일상에서 경험하는 일과 무슨 상관이 있는지 설명하려고 노력했습니다. 또한 강의 경험에서 습득하고 축적된 암기법도 공개해서 학생들의 부담을 덜어주려고 했습니다. 화학반응과 에너지의 관계, 에너지 변환에 대한 계산을 예와 함께 제시하여 통합적인 사고가 가능할 수 있도록 설명을 했습니다. 책을 중·고등 학생들이 많이 읽고 화학에 관심을 갖도록 하는 것이 1차 목적이지만, 화학을 가르치는 중·고등학교 교사 혹은 일반화학 담당 교수들이 책을 읽고 강의에 활용한다면 화학 인구의 저변 확대에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새로운 유형의 책을 낸 목적은 첫째는 그동안 내가 사회에 받은 많은 도움을 다시 사회에 환원하는 일의 일부이며, 둘째는 화학 공부를 하려는 고등학생/대학생 수가 줄어서 미래 한국의 산업 발전에 장애물이 되지 않을까 하는 노파심도 있습니다.
7. 연구와 교육을 평생 할 수 있다는 것은 연구자들에게 큰 축복일 수 있는데요. 그러기 위해서는 체력이나 정신적인 건강도 중요할 것 같습니다. 교수님께서는 평상시 운동이나 여가 활동을 하시나요?
저는 현재 테니스로 건강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다른 사람보다 늦게 테니스를 시작했지요. 계기는 2009년에 받은 정기 건강검진에서 중요한 지표들의 수치가 경고 수준을 넘어가는 것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테니스를 본격적으로 코치에게 배우면서 다시 시작했습니다. 6개월 테니스 수업을 받고 나니 몸무게가 약 7kg이 줄어 들었고, 건강 지표들이 정상범위로 돌아왔습니다. 현재에는 화학인들의 테니스 모임(화정회)에도 빠지지 않고 참석한 지도 꽤 되었습니다. 지난 4월에는 스페인 마요르카섬에 있는 나달 테니스 캠프에 2주간 다녀왔습니다. 그 곳에서 테니스 훈련해 보는 것이 은퇴 후 버킷 리스트 1번이 었거든요. 본래는 2020년 봄에 갈 예정이었는데, 코로나 때문에 미루다가 드디어 이번에 훈련 겸 휴가를 다녀왔습니다. 그곳에서 얻은 가장 큰 수확은 10년 후에 다시 오도록 노력하자는 다짐입니다. 왜냐하면 테니스 훈련에 참가한 유럽인과 미국인들 중에는 저보다 나이가 훨씬 많은 “젊은 노인”들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것을 제대로 보고 느끼고 왔습니다. 후배 연구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나이가 50이 넘으면 무조건 취미로 할 수 있는 운동을 반드시 시작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체력을 유지해야 연구, 교육, 하고 싶은 일도 계속해서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평생 운동을 반드시 해야 되는 이유는 삶의 질을 유지하는 데 꼭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8. 화학세계 구독자들은 이미 화학의 매력을 느껴서 화학을 전공한 분들이 대부분일 텐데요. 교수님께서 생각하시는 화학의 매력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화학은 사람들이 살아가는 데 반드시 필요한 과학입니다. 사람들은 사는데 왜 산소, 물, 밥이 필요하냐고 묻지 않습니다. 화학은 인간의 삶에 물어볼 필요도 없이 중요한 과학이라는 것입니다. 몰라도 살 수 있지만 없으면 삶이 불가능합니다. 화학을 전공해서 돈을 많이 버는 사람도, 훌륭한 연구로 세상이 알아주는 과학자도 되겠지만, 일반인도 화학을 공부하면 생활과 건강 유지에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생활에서 마주하는 화학물질에 대한 기본 지식만 갖추어도 안전하고, 편리하며, 경제적으로 사는 것이 가능하기 때문 입니다. 과대 광고 및 거짓 정보에 대한 올바른 판단을 할 수 있을 정도에 필요한 과학 지식은 화학 지식이 최고라는 것입니다. 온갖 물질에 대한 정보가 널려 있지만, 그것이 정말 맞는 지 혹은 틀린 지에 대한 판단은 최소의 화학(과학)지식만으로도 해결될 수 있는 것이 많기 때문입니다. 인간이 살아가는 데 반드시 필요한 공부를 꼽자면 화학과 더불어 철학과 경제학이라고 봅니다.
9. 화학 전공 학생들에게 조언의 말씀을 해주실 수 있을까요?
어떤 이유로든 화학을 전공으로 선택한 것은 이미 절반의 성공이라고 말해주고 싶습니다. 대학 1, 2학년은 이 말의 의미를 모르고, 확신도 없겠지만, 열심히 노력하고 화학과를 졸업하면 이 말의 의미를 깨닫는 날이 올 것입니다. 화학을 전공하면 우선 취업할 곳이 많고, 다양한 분야의 진출이 가능합니다. 물질을 다루는 직업이라면 그 물질이 무엇이든 간에 화학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화학이 공부할 것이 많아서 대학 공부로는 부족한 경우가 있으니, 적어도 대학원 석사과정은 경험할 것을 추천합니다. 그때쯤 되면 화학 분야에서도 무엇을 좋아하는지,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알 수 있고, 그것을 바탕으로 미래의 자기 평생 직업과 진로를 선택할 수 있는 판단이 설 것이라 생각합니다. 예전에 미국에서 박사과정을 이수할 때 회계학 전공의 학생이 일반화학을 듣는 것을 보고 그 당시에는 문화적 충격을 받았습니다. 문과 전공 대학생이 왜 자발적으로 화학과목을 듣는 까닭을 물었지요. 그 학생으로부터 “많은 회사들의 대부분은 화학 회사인데, 나중에 회계학 전공으로 취직을 한다 해도 화학 기본용어 정도는 알고 이해를 해야 업무를 잘할 수 있다”는 판단으로 화학 과목을 듣는 이유라는 답변을 들었습니다. 그것은 그때까지 제가 자라온 우리 사회의 통념과는 너무 달라서 놀랐던 것입니다. 그런 경험이 있어서 제가 문과대 학생을 대상으로 오프라인 화학 강의에 도전을 했고, 그것이 온라인 KMOOC 강의(삶은 화학물질과의 소통이다: 웰빙 사이언스)로 이어졌다고 생각합니다. 강의 수강생 전부는 고등학교에서 화학을 전혀 듣지 않았지만, 학기가 끝날 무렵에는 화학 기본의 이해를 바탕으로 정말 좋은 질문을 해서 매우 좋았습니다. 결국 공부는 관심을 갖고 흥미를 느끼는 일이 시작이고, 그것을 유도하는 일 또한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화학이 어렵다고 생각하는 심리적 장벽을 넘어서고 노력하면 분명히 극복할 수 있다고 봅니다. 화학 전공은 잘한 선택이니, 자신의 노력을 잘 다듬어가면 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화학 공부를 시작하는 학생들에게 제 블로그를 소개하고 싶습니다. 블로그에 화학전공 학생들이 필요한 자료(일반화학 실험, 분석화학실험)는 물론 그동안 발표한 글을 한데 모아 놓았습니다. 2018년 4월에 은퇴를 앞두고 개설한 것이며, 그 후에 발표한 글과 생각을 정리한 것도 들어 있습니다. 특히 과학에 관심있는 고등 학생과 대학생들이 필요한 일반화학 실험/분석화학 실험 사진 및 결과 처리/계산 등의 내용을 담고 있어서 학생들이 많이 방문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현재 블로그 조회수가 70만을 넘었습니다. 주로 학기 중과 주중에 방문이 몰리는 것으로 보아 방문자의 대부분은 학생들이라 생각합니다. 방문자의 소속 국가 종류가 매우 다양한 것은 아마도 교포 자녀 혹은 조기 유학 간 고등학생/대학생들이 아닐까 하고 짐작만 합니다.
10. 화학 연구를 열심히 해나가고 있는 신진/중견 화학 연구자에게 조언의 말씀을 해주실 수 있을까요?
자신이 좋아하는 주제를 정해서 끝까지 열심히 노력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지금 현재의 연구 환경은 모르겠지만, 연구비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선택한 공동연구 주제라 할지라도 노력하다 보면 그 주제에서 찾을 수 있는 금맥도 분명히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연구, 인생, 모든 것이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이루어지는 사람은 극히 적을 것입니다. 주어진 환경에서 최선을 다해 노력하다 보면 조그마한 성취라도 얻을 수 있을 것이고, 그것을 성장시키면 가끔은 좋은 일도 있을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연구비 관련 연구와 본인의 관심이 일치하면 최상이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에도 본인이 정말 궁금한 연구 주제, 현재에는 답도 없고 길도 보이지 않지만, 평생 생각하고 궁금해할 주제를 가지고 있다면 뇌가 늙는 것을 방지할 수 있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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