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0회 헤테로고리 화합물의 화학 심포지엄 후기(2026년 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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쉰 번째 만남, 그리고 다시 이어질 길
제50회 「헤테로고리 화합물의 화학」 심포지엄을 마치며

2026년 8월 25일 오후, 강원대학교 60주년 기념관에서 제50회 「헤테로고리 화합물의 화학」 심포지엄을 개최하였다. 1995년 12월 2일 첫 행사를 시작한 지 32년 만의 일이다. 한 학술 행사가 쉰 번째를 맞았다는 사실만으로도 감회가 깊지만, 이번 심포지엄은 개인적으로 더욱 특별하였다. 35년 넘게 몸담았던 강원대학교 화학과를 8월 말에 정년으로 퇴임하게 되어, 재직 중 마지막으로 주관한 학술 행사였기 때문이다. 행사장 앞에 걸린 ‘제50회’라는 글자를 바라보면서 한동안 여러 생각이 교차하였다. 처음에는 그저 몇 차례 이어가기도 쉽지 않을 것 같았던 작은 심포지엄이었다. 그러나 봄이 오고 가을이 오듯 한 회, 또 한 회가 이어졌고, 어느덧 쉰 번의 만남이 되었다. 그 사이 세월은 강산을 몇 번이나 바꾸어 놓았고, 처음 이 자리에 함께했던 연사들은 어느덧 우리나라 화학계를 이끄는 원로 과학자가 되었고, 당시 젊은 대학원생이었던 참가자들은 이제 학계와 산업계 곳곳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하는 연구자로 성장하였다. 강의실의 모습도, 연구 장비도, 춘천으로 오는 교통편도 크게 달라졌지만, 좋은 화학을 이야기하고 싶은 마음과 젊은 학생들에게 꿈을 심어주고 싶은 소망만은 변하지 않았다.
이 심포지엄은 강원대학교 화학과에 재직하셨던 이창규 교수님께서 1995년에 시작하셨다. 당시에는 강원대학교의 학생들이 국내의 뛰어난 연구자들을 가까이에서 만나고, 빠르게 발전하는 화학 연구의 흐름을 직접 접할 기회가 지금보다 훨씬 적었다. 서울이나 대도시에서 열리는 학술 행사에 참석하는 일도 쉽지 않았고, 지방대학의 제한된 연구 여건 속에서 학생들이 더 넓은 학문의 세계를 상상하기도 어려웠다. 이창규 교수님께서는 이러한 현실을 안타깝게 여기셨다. 강원대학교의 학생들에게도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화학자들의 강연을 들려주고, 그들과 직접 만나 질문하고 대화할 기회를 마련해 주고 싶어 하셨다. 좋은 연구를 수행하는 연구자를 한 번 가까이에서 만나는 일이 한 젊은이의 삶을 바꿀 수도 있다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 소박하면서도 간절한 바람이 「헤테로고리 화합물의 화학」 심포지엄의 출발점이었다.
돌이켜보면 이 심포지엄은 풍족한 여건에서 시작된 행사가 아니었다. 처음에는 연사 한 분을 모시는 일도, 참석자들에게 식사를 제공하는 일도, 현수막 하나를 준비하는 일도 모두 부담이었다. 충분한 예산도 없었고, 행사를 전담할 인력도 없었다. 멀리 계신 훌륭한 연구자들에게 춘천까지 방문해 달라고 부탁드리는 것조차 조심스러웠다. 그럼에도 많은 선배 화학자께서 강원 지역의 학생들을 격려하고 우리나라 화학의 기반을 넓히는 일에 뜻을 함께해 주셨다. 적은 강연료와 불편한 교통에도 개의치 않고 흔쾌히 초청에 응해 주셨으며, 정성껏 준비한 연구 결과를 학생들에게 소개해 주셨다. 심포지엄이 오래 지속될 수 있었던 힘은 화려한 시설이나 넉넉한 재정에 있지 않았다. 좋은 학문을 함께 나누려는 마음, 후배 연구자를 키우려는 선배들의 책임감, 그리고 먼 길을 마다하지 않고 자리를 채워 준 화학자들의 우정에 있었다. 행사 준비를 맡은 교수와 학생들은 부족한 부분을 정성으로 채웠고, 초청 연사들은 학문적 열정으로 응답하였다. 그 마음들이 겹겹이 쌓여 오늘의 제50회를 이루었다.
2005년 제20회 심포지엄을 마치고 이창규 교수님께서는 그 행사의 성격을 ‘화학을 연구하는 기쁨’이라고 표현하셨다(화학세계 2005, 45, 99-101). 참으로 이 심포지엄을 가장 잘 설명하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누구의 평가를 받기 위해서도 아니고, 어떤 실적을 만들기 위해서도 아니라, 그저 화학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한자리에 모여 새로운 분자와 반응을 이야기하고, 서로의 연구를 격려하며, 다음 연구를 위한 영감을 얻는 자리였다. 발표가 끝난 뒤에도 질문이 계속되었고, 강연장 밖의 복도와 식사 자리에서도 토론이 이어졌다. 젊은 연구자는 평소 논문에서만 접하던 연구자에게 직접 질문할 수 있었고, 선배 연구자는 학생들의 솔직하고 예리한 질문을 통해 새로운 자극을 얻었다. 때로는 한 장의 반응식에서 시작된 대화가 새로운 공동연구로 이어졌고, 짧은 만남에서 얻은 조언이 한 학생의 연구 방향을 바꾸기도 하였다. 학문은 논문과 숫자로만 발전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 사이의 만남을 통해 성장한다는 사실을 우리는 이 심포지엄에서 거듭 확인하였다.
2006년 제22회 심포지엄부터 저는 이창규 교수님의 뒤를 이어 행사 운영을 맡게 되었다. 처음에는 이미 오랜 전통을 지닌 행사를 잘 이어갈 수 있을지 부담도 컸다. 연사를 선정하고 연락을 드리는 일에서부터 프로그램을 구성하고, 강연장과 식사 장소를 준비하며, 참석자들을 맞이하는 일까지 어느 것 하나 가볍지 않았다. 연구와 강의, 학과의 여러 업무를 수행하면서 매년 두 번의 행사를 준비하는 일이 때로는 벅차게 느껴지기도 하였다. 그러나 심포지엄 당일 아침, 학생들이 일찍부터 행사장을 정돈하고 발표 자료를 확인하는 모습을 보면 힘이 났다. 먼 길을 달려온 연사들이 반갑게 인사를 건네고, 강연장을 가득 채운 학생들이 진지하게 발표를 듣는 모습을 바라보면 준비 과정의 어려움은 어느새 사라졌다. 행사를 마친 뒤 “좋은 공부를 하고 간다”, “학생들의 눈빛이 인상적이었다”, “다음에도 꼭 초청해 달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이 행사를 계속해야 할 이유를 다시 발견하였다.
제가 주관한 30여 회의 심포지엄 동안 우리나라 유기화학은 놀라운 발전을 이루었다. 과거에는 해외 연구를 따라가기에 바빴던 분야에서도 이제는 국내 연구자들이 새로운 반응과 아이디어를 제시하며 세계의 연구를 이끌고 있다. 발표 주제도 크게 넓어졌다. 전통적인 헤테로고리 화합물 합성에서 출발하여 유기금속화학, 비대칭 촉매반응, 천연물 전합성, 의약화학, 화학생물학, 기능성 분자 합성, 계산화학에 이르기까지 시대의 변화와 함께 다양한 연구가 소개되었다. 그러나 연구 주제가 변하고 기술이 발전하여도 심포지엄의 중심에는 늘 사람이 있었다. 특히 가장 보람 있었던 순간은 과거 학생으로 참석했던 연구자가 훗날 훌륭한 연구 성과를 이루어 연사로 다시 강원대학교를 찾아왔을 때였다. 강연장의 뒤편에서 조심스럽게 질문하던 학생이 세월이 흘러 앞에 서서 자신의 연구를 자신 있게 발표하는 모습을 볼 때면, 학문의 전통이란 결국 사람을 통해 이어지는 것임을 실감하였다. 강연 한 편이 당장 눈에 보이는 성과를 만들지는 않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 강연을 들은 학생의 마음에 작은 불씨를 남길 수는 있다. 그 불씨는 오랜 시간이 지난 뒤 새로운 연구와 발견으로 피어날 수 있다. 우리가 심포지엄을 계속해 온 까닭도 바로 여기에 있다. 모든 학생이 같은 길을 걷지는 않겠지만, 적어도 한 번쯤은 훌륭한 화학자를 가까이에서 만나고, 자신도 같은 연구자가 될 수 있다는 꿈을 꾸게 해 주고 싶었다.
제50회 행사의 의미는 단순히 숫자에만 있지 않다. 쉰 번의 행사가 개최되기까지 수많은 분의 시간과 정성이 있었다. 바쁜 일정 속에서도 초청에 응해 주신 연사들, 전국 각지에서 춘천까지 찾아와 주신 연구자들, 연구실의 학생들을 데리고 참석해 주신 지도교수들, 행사를 위해 지원과 격려를 아끼지 않은 기관과 관계자들, 그리고 보이지 않는 곳에서 초록집과 명찰을 만들고 강연장을 정리하며 참석자들을 안내한 강원대학교 화학과의 학생들이 있었다. 학술 행사는 프로그램 표에 적힌 발표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행사 며칠 전부터 강연장을 점검하고, 연사들의 도착 시간을 확인하며, 예상하지 못한 문제에 대비하는 사람들의 수고가 있어야 한다. 행사가 끝난 뒤 빈 강연장을 정리하고, 마지막 손님을 배웅하는 이들의 헌신도 필요하다. 제50회라는 역사의 절반 이상을 주관해 온 사람으로서, 그동안 묵묵히 애써 준 모든 학생과 구성원에게 이 지면을 빌려 깊이 감사드리고 싶다.
저에게 이번 심포지엄은 더욱 각별하였다. 며칠 뒤면 정년을 맞아 오랫동안 생활했던 강원대학교 화학과를 떠나게 된다. 1991년 강원대학교 교수로 부임한 뒤 연구실을 꾸리고 학생들을 가르치며, 때로는 기쁨 속에서, 때로는 어려움 속에서 35년의 세월을 보냈다. 논문이 받아들여졌을 때의 기쁨도 있었고, 오랫동안 준비한 연구가 뜻대로 되지 않았을 때의 어려움도 있었다. 학생들의 졸업을 지켜보며 큰 보람을 느꼈고, 화학자로 성장하여 정든 연구실을 떠나 새로운 길을 향해 나아가는 제자들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뿌듯함을 느끼기도 하였다. 그 긴 시간의 한가운데에 이 심포지엄이 있었다. 해마다 연사를 모시고 학생들과 함께 강연을 들으면서 저 역시 끊임없이 배우고 성장하였다. 새로운 연구를 접하며 제 연구를 돌아보았고, 젊은 연구자들의 도전적인 발표를 들으며 다시 연구할 용기를 얻었다. 어쩌면 이 심포지엄의 가장 큰 수혜자는 학생들뿐 아니라 바로 저 자신이었는지도 모른다.
제50회 심포지엄의 개회를 알리는 순간, 처음 이 행사를 시작하셨던 이창규 교수님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리고 그동안, 이 강연장을 다녀간 수많은 선배와 동료, 후배 화학자들의 얼굴도 하나둘 떠올랐다. 이미 우리 곁을 떠나신 분도 있고, 연구 현장에서 은퇴하신 분도 있으며, 지금도 왕성한 활동을 이어가는 분도 있다. 그분들이 들려준 강연과 격려의 말씀은 강원대학교 화학과의 역사 속에 고스란히 남아 있다. 한 사람의 연구 인생은 언젠가 끝나지만, 그가 전한 생각과 열정은 다른 사람에게 이어질 수 있다. 한 세대가 모든 일을 완성할 수는 없다. 앞선 세대가 작은 씨앗을 심으면 다음 세대가 물을 주고 나무를 키우며, 또 그 다음 세대가 그 그늘에서 새로운 꿈을 꾸게 된다. 이창규 교수님께서 심은 씨앗을 제가 이어받아 가꾸었듯이, 이제는 후배 교수들과 젊은 연구자들이 새로운 방식으로 이 심포지엄을 발전시켜 나갈 것이라 믿는다.
정년을 맞는다고 해서 화학에 대한 관심과 애정까지 내려놓을 수는 없을 것이다. 학교의 연구실과 강의실에서는 물러나지만, 앞으로도 후배들의 연구를 응원하고 젊은 연구자들의 성장을 지켜보며 제가 할 수 있는 역할을 계속하고 싶다. 제60회와 제70회 심포지엄에는 한 사람의 청중으로 참석하여 후학들의 강연을 듣고 박수를 보낼 수 있기를 소망한다. 더 먼 훗날 제100회 심포지엄이 개최될 때는, 1995년 작은 강의실에서 시작된 한 학술 행사가 한 세기를 향해 나아가는 자랑스러운 전통으로 기록되기를 바란다. 오늘날 학술 행사를 둘러싼 환경은 과거보다 풍요로워졌지만, 학문하는 사람들의 만남이 지닌 본질적인 가치는 변하지 않았다. 연구 실적과 평가, 경쟁과 성과가 강조될수록 조건 없이 만나 배우고 토론하는 자리는 더욱 소중해진다. 젊은 연구자들이 경제적인 부담이나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선배들과 대화하며, 실패한 실험과 아직 완성되지 않은 생각까지도 자유롭게 나눌 수 있는 학술 문화가 우리나라 곳곳에 뿌리내리기를 바란다. 기초과학의 성과는 하루아침에 나타나지 않는다. 오랜 기다림과 수많은 실패, 세대 간의 지식 전수와 학문공동체의 신뢰가 쌓여야 비로소 의미 있는 발견으로 이어진다. 따라서 연구자들이 꾸준히 만나고 교류할 수 있는 학술 행사를 지원하는 일은 단순히 한 번의 행사를 돕는 것이 아니라 우리나라 과학의 미래를 키우는 일이다. 한국연구재단과 대학, 기업과 사회가 이러한 작은 학술 모임의 가치에 더욱 관심을 기울여 주기를 기대한다.
제50회 행사를 마친 지금, 지난 시간을 돌아보면 모든 것이 감사하다. 처음 길을 열어 주신 이창규 교수님께 깊은 존경과 감사드린다. 그 뜻에 공감하여 먼 길을 찾아와 주신 모든 연사와 참석자들께도 머리 숙여 감사드린다. 행사의 전통을 지키고 발전시키는 데 힘을 모아 준 강원대학교 화학과의 교수님들과 학생들에게도 고마운 마음을 전한다. 무엇보다도 오랜 세월 변함없이 이 심포지엄을 아끼고 성원해 준 우리나라 화학자 여러분이 계셨기에 오늘의 제50회가 가능하였다. 제20회를 마쳤을 때는 앞으로 이 행사가 얼마나 더 이어질 수 있을지 기대와 염려가 함께했을 것이다. 제30회 행사를 이어받아 발전시키는 모습을 보며 제40회와 제50회를 기대하였다. 그리고 이제 우리는 마침내 제50회의 문턱을 넘어섰다. 과거의 소망이 오늘의 현실이 되었으니, 이제는 더 큰 미래를 꿈꾸어도 좋을 것이다.
한 계절이 지나면 또 다른 계절이 찾아오고, 한 사람이 자리를 떠나면 그 자리에 새로운 사람이 선다. 그러나 그들이 함께 지켜 온 정신은 사라지지 않는다. 좋은 학문을 나누고, 젊은 연구자를 격려하며, 사람과 사람을 이어 주려는 마음이 계속되는 한 「헤테로고리 화합물의 화학」 심포지엄의 역사는 멈추지 않을 것이다. 저는 이제 이 길의 앞자리에서 한 걸음 물러나려 한다. 하지만 아쉬움보다는 감사가, 끝이라는 생각보다는 새로운 출발에 대한 기대가 더 크다. 지난 32년 동안 수많은 화학자가 함께 걸어온 길이 앞으로는 더 많은 후배의 발걸음으로 이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사람은 은퇴하지만, 학문은 은퇴하지 않는다. 한 사람의 강연은 끝나도 그 강연을 들은 젊은이의 가슴에서는 새로운 질문이 시작된다. 한 세대가 떠나도 그들이 정성껏 지켜 온 학문의 불빛은 다음 세대의 손으로 옮겨진다.
1995년 강원대학교의 작은 강의실에서 피어난 한 점의 불빛이 쉰 번의 만남을 지나 이제는 우리나라 화학계의 소중한 등불이 되었다. 그 불빛이 제60회와 제70회를 넘어 제100회까지 꺼지지 않고 이어지기를 바란다. 그리고 먼 훗날 누군가 이 심포지엄의 역사를 돌아볼 때, 이름난 몇 사람의 행사가 아니라 수많은 화학자가 함께 만들어 온 따뜻하고 아름다운 학문공동체였다고 기억해 주기를 소망한다.
그동안 함께해 주신 모든 분께 다시 한번 깊이 감사드린다.
2026년 8월 2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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