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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 냄새는 철에서 오지 않는다


더위를 잊기 위함일지 고정관념이 되어 버린 문화 때문 일지 모르지만 여름은 공포영화의 계절이기도 하다. 심리적인 긴장감을 유발하거나 쉽사리 이해되지 않고 여운을 남기는 복잡한 설정과 미스터리로 가득하기도 하며, 인간의 상상을 넘어선 초자연적인 현상과 괴기로 점철되어 있기도 하다. 하지만 누구나 공포영화라는 단어에서 가장 먼저 떠올리는 것은 붉은색으로 가득한, 소위 유혈이 낭자한 장면일 듯 싶다. 피는 생명의 상징이자 이미지이기도 하며 특유의 강렬한 색상으로 우리를 긴장하게 한다. 무엇보다 실제로 경험해 본 사례는 적을지라도 누구나 피비린내라 는 단어가 익숙하듯 특유의 불유쾌한 냄새마저 갖는다. 깊이 생각해 본 적 없었을 피비린내에 대한 화학을 끄집어 올려 보려 한다.



피 냄새는 철 때문이 아니다


피 냄새는 철분 때문이라는 속설은 당연하게 받아들여 진다. 피의 붉은 색의 핵심이자 가장 중요한 세포 중 하나 인 적혈구, 그 안의 헤모글로빈에는 산소를 운반하는 실질적인 분자인 헴(Heme)이 무수히 많이 함유되어 있다. 정확히는 특징적인 고리형 구조의 중앙에 자리 잡은 2가 철 이온(Fe2+)의 역할이기도 하며, 이로부터 우리는 피의 비릿한 쇠 냄새와 맛을 당연한 이치로 생각한다. 그렇다면 동물의 피 냄새를 맡고 먼 거리부터 다가오는 상어는, 동일한 냄새의 이유가 되는  철에 대해서도 끌려올까? 바닷 물에 닿아 조금씩 녹아 나가는 철 냄새를 맡고 배를 습격하기 위해 상어떼가 출몰한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 없다. 이는 철 냄새조차 철 때문이 아니라는 사실에서부터 오해를 되짚어야 한다. 만약 철 냄새가 비릿하게 풍겨온다면 이는 후각 세포로 철 원자나 화합물이 날아와 접촉해야 한다는 이야기힌데, 이처럼 간단히 승화 혹은 기화되는 물질이 철이었다면 인간의 문명은 풍화되어 무너져 버렸을 테니 말이다.

실제 철의 비릿한 내음이 무엇인가에 대해서는 18년 전 보고된 결과가 있다. 사람의 피부에 철이 접촉하면 땀과의 산화 반응으로 인해 2가 철 이온이 발생하며, 이는 피부 기름에 함유된 지방산들과 촉매 반응을 일으켜 지질과 산화물을 형성한다. 뒤따르는 화학 반응은 6~10개 탄소 길이를 갖는 다양한 알데하이드 물질을 피부에서 발생시키는데, 그중 1-옥텐-3-온(1-Octen-3-one)이 철 냄새를 일으키는 물질이다.

실제로 놓여 있는 동전이나 클립, 못 등에서 참을 수 없을 비릿한 냄새가 풍겨오는 경우는 없다. 우리가 사용하게 위해 손으로 만지거나, 입에 물었을 때 비로소 냄새와 맛이 강렬하게 풍겨온다. 물론 사용이 끝난 후 손을 떼고 나면 다시금 철은 안정한 모습으로 그 자리를 무미 무취의 금속이 되어 지킨다.

철의 냄새란 우리가 금속 냄새를 느낀다는 환상일 뿐이며, 우리는 피부에서 일어나는 매우 빠른 화학 반응의 알데하이드 생성물을 냄새를 통해 금속을 체감하고 있을 뿐 이다.



피 냄새와 E2D


그렇다면 피 냄새는 무엇에 기원할까? 당연하겠지만 화학 분자다. 피는 매우 많은 화학 물질이 뒤섞인 일종의 칵테일과도 같은 상태다. 그러나 신기하게도 그중 피 냄새를 만들어내는 분자는 트랜스-4,5-에폭시-(E )-2-데시날 (trans -4,5-epoxy-(E)-2-decenal)이라는 하나의 알데하이드이다.

편의상 E2D라 줄여 불리는 분자가 피 냄새의 근원이라 는 사실이 확인된 이후, 피에 대한 선호 혹은 혐오를 나타내는 다양한 동물을 대상으로 실제적인 효과가 존재하는지 연구되기 시작한다. 몇 종의 야생 육식동물에 대해 E2D에 적신 나무 토막과 더불어 비교 대상으로 활용하기 위한 실제 말 피에 적신 나무토막, 그리고 과일향 유기분자와 무취 유기분자를 묻힌 나무토막을 던져 반응을 관찰했다. 선호하는 향이라면 물고 핥고 씹고 건드릴 것이며 그렇지 않다면 철저한 무관심의 대상이 될 것이다. 이쯤 되면 예상할 수 있듯 모든 육식동물들은 E2D와 실제 혈액에 대한 선호도에서 차이를 보이지 않을 정도로 완벽히 피로 느끼고 끌렸다.

거대한 육식 척추동물이 아닌 조금 더 직관적이고 원초적인 곤충 등의 무척추동물에게서도 동일한 결과가 보였다. 생존을 위해 혈액을 먹이로 선택해 진화한 흡혈 곤충인 침파리도 말의 피와 E2D를 향해 발걸음을 옮겼으며, 과일향이나 무취의 유기용매에는 아무런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인간은 어떨까? 비록 육류를 섭취하지만 일부러 생 피를 들이키지는 않는 것처럼 우리는 피 냄새에 대해 뚜렷한 호감을 보이지 않는다. 인간은 E2D 향을 맡았을 때 자신도 모르게 몸을 뒤로 기울이며 회피를 시도하려는 경향을 일관되게 보였으며, 위혐 감응과 대응에 대한 지표로 반응 속도나 피부 반응을 체크했을 때도 도주를 준비했다. 경계와 반응성이 강화되고 집중력이 강화된 모습이 관찰된다. 조금 더 작은 피식자인 생쥐들은 E2D나 혈액이 부상당한 동종으로 인식되는 만큼, 최대한 이로부터 멀어지려는 거동을 보이기도 했다.

피 냄새라 구분될 E2D가 혈액에만 함유된 것도 아니며 언제나 혐오의 대상인 것도 아니다. 문화나 종교, 신학 등 에서 종종 피와 동일한 상징으로 등장하곤 하는 포도주는 E2D를 함유한 대표적인 식품이다. 포도의 발효 과정에서 발생하는 이 물질 때문일지 포도주에서 비릿한 느낌을 느끼거나 선호하지 않는 경우도 종종 있다. 몇몇 괴짜들에 의해 피 냄새를 갖는 향수가 개발된 적도 있었다. 향의 아름다움은 둘째치고 피 향수로 집중력이나 반응 속도를 일시적으로 개선하려는 노력이 될 수도 있겠다. 물론 길을 걷다 더 많은 모기나 흡혈 곤충 혹은 야생 육식동물에게 습격당할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장 홍 제 Hongje Jang

 

  • KAIST 화학과, 학사(2004. 3 - 2008. 2)

  • KAIST 화학과, 박사(2008. 3 - 2013. 8, 지도교수 : 한상우)

  • 서울대학교 화학과 박사 후 연구원(2013. 9 - 2015. 1, 지도교수 : 민달희)

  • Georgia Institute of Technology, Department of Chemistry and Biochemistry 박사 후 연구원 (2015. 1 - 2016. 1, 지도교수 : Mostafa A. El-Sayed)

  • 광운대학교 화학과 부교수(2016. 3 - 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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