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호 <화학세계가 만난 화학자>에서는 서울대학교 자연과학대학 화학부 명예교수이자 포항공과대학교 총장이신 김성근 교수님을 모셨습니다. 김 교수님께서는 1989년 서울대학교에 부임하여 2022년까지 화학부 교수로 재직하면서 자연과학대학 학장을 역임하셨고, 물리화학분야에서 탁월한 연구실적을 발표하여 2013년 영국 왕립화학회 펠로우로 선정되었을 뿐만 아니라, 현 화학계를 이끌어가는 우수한 후학들을 양성하셨습니다. 또한, 삼성미래기술육성재 단 이사장 및 KAOS과학위원장으로 활동하시면서 우수연구자 지원 및 과학의 대중화에 크게 힘써 오셨습니다. 포스텍 총장 취임 1년을 맞이하신 부드러운 카리스마의 표본, 김성근 교수님의 인터뷰를 시작합니다. [모더레이터: 문회리 교수(이화여자대학교 화학나노과학과)]
1. 최근 중고등학생들의 자연과학 기피 현상에 대한 많은 우려들이 있습니다. 교수님께서 자연과학, 특히 화학을 선택하게 되신 계기가 있으신지요?
흔히들 잘 하는 것과 좋아하는 것 중에서 뭘 택해야 하는지 얘기하곤 하지요. 그런데 저는 딱히 잘 하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아주 좋아했던 것도 아닌 경우입니다. 좋아 “보였다”는 것이 맞겠군요. 고등학교에서는 이과보다는 문과가 적성이라는 판정을 받았고 실제로 성적도 그랬습니다. 그러나 아폴로 로켓 발사와 달 착륙을 보고 자란 세대답게 무작정 자연과학과 공학에 대한 동경이 있었습니다. 의학은 주변에서 권유하긴 했으나 단순 서비스업처럼 느껴져서 지적 매력을 전혀 느끼지 못했습니다. 지금 돌아보니 정말 어느 세대건 당시의 사회 분위기가 중요한 것 같군요. 대학은 계열별 입학을 해서 당시 인기 학 과였던 전자공학과나 물리학과를 가려고 했는데 일반화학 강의를 듣다가 양자역학에 매료되었습니다. 신비스러웠어요. 오히려 일반물리에서는 양자역학 분량이 별로 없었는데 아마 그게 저를 화학과로 이끈 우연한 동기가 아니었을까 합니다. 그런데 실은 제 머릿속 어딘가에 화학에 대 한 호기심은 그전부터 자리 잡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고교 시절 음악 감상 시간에 우연히 선생님께서 틀어 주신 교육 영상이 있었는데 진동하고 회전하는 “살아있는” 분자들끼리 충돌하여 결합이 깨지고 만들어져 화학반응이 일어나는 것이었어요. 맨날 분자량이니 몰 농도니 그런 것만 계산하는 따분한 과목이 화학인 줄 알고 있다가 진짜 화학의 모습을 본 거지요. 그래서인지 대학원에서는 그런 단일충돌 화학반응을 실제로 다루는 연구실을 선택했어요. 더들리 허쉬바하 교수님 연구실이었는데, 저를 화학으로 이끈 바로 그 영상 속 분자들 간 충돌 연구, 분자 동역학을 여신 분이었던 거죠. 지금 생각하니 모든 게 우연 같은데 어쩌면 우연을 가장한 필연이었는지도 모르겠군요.
2. 교수님께서는 전통적인 기체 반응동력학과 분광학에서부터 클러스터, 표면물리화학, 생물리화학, 나노재료화학 등에 이르기까지 물리화학 분야의 다양한 주제로 연구를 수행하셨습니다. 연구 주제 선정 및 진행은 어떻게 하셨는지요?
과학자로서의 제 인생의 모든 지향점과 방식은 거의 대부분 대학원에서의 경험과 생각으로부터 형성 된 것 같습니다. 제 지도 교수님은 연구의 모든 것을 학생에게 일임하시는 분이었어요. 심지어 연구주제도 학생이 정하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근데 사실 교수님이 세부적인 것에 대해서는 자유방임주의셨지만 자연을 보는 과학자의 예리한 눈과 넓은 시야에 대해서는 대체 불가능한 가르침을 주셔서 저는 지금도 무척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어쨌든 이런 지도 방식은 호불호가 나뉘게 마련이라 결국 몇 명은 당시 연구실을 떠나기도 했습니다만 이 과정을 버텨낸 나머지 학생들에게는 좋은 경험과 값진 훈련이 되었습니다. 재미 있는 건 박사 후 연구원 시절 지도 교수이셨던 로버트 고머 교수님은 너무 열정이 넘치셔서 하루에도 몇 번씩 연구실에 들러 실험에 대해 물어보시곤 하셨어요. 처음엔 적응을 못해 무척 불편했는데 지나고 보니 이 두 방식의 조화가 필요하다는 생각입니다. 하여간 박사과정 때 경험했던 “Sink or Swim”방식은 독자적으로 연구를 수행할 수 있는 능력을 조기에 길러주기 때문에 저도 학생지도에 차용했던 것 같습니다. (어쩌면 저의 열정 부족과 게으름을 이렇게 미화하고 있는지도 모르겠군요…) 다행히 대부분의 제 학생들은 여기에 잘 적응하였는데 아마도 우수한 학생들 사이의 상호작용 덕이 컸을 것입니다. 저희 연구실에서 다뤘던 다양한 주제들은 일차적으로 저의 관심사를 반영하지만 무엇보다도 새로운 분야를 두려워하지 않고 젊은 패기로 뛰어들어 자신의 영역을 개척해 나간 대학원생들의 모험담이라고 생각합니다. 그중 일부, 특히 단분자분광학 분야에서는 주제 자체를 학생들이 주도적으로 발굴하고 추진하였기 때문에 저는 연구책임자라기보다는 연구지원자 역할에 머물렀다고 생각합니다.
3. 교수님 연구 생활을 통틀어 가장 의미있는 (또는 가장 뿌듯한) 연구성과로 어떤 것을 꼽을 수 있을까요?
세부 분야에서는 몇 가지 언급할 만한 것이 있지만 조금만 떨어져서 보면 너무 지엽적이라 별로 내세 울 일들은 아닌 것 같습니다. 어쩌면 학부생도 흥미를 가질 수 있는 것이 한 가지 있는데 DNA/RNA 염기의 들뜬 상태 수명을 측정해서 핵산 자체의 광안정성과 연결시킨 일입니다. 잘 알려진 대로 핵산의 구성요소 중 당과 인산골격은 웬만한 자외선과 가시광을 흡수하지 않기 때문에 염기가 유일한 발색단입니다. 일반적으로 유기분자들이 들뜬 전자상태에서는 광반응이 잘 일어나기 때문에 핵산도 태양광에 의해 염기가 들뜨게 되면 광유발 반응에 의해 변이가 일어나 높은 내구성이 요구되는 유전 전달 물질로 사용 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교과서에서 A–T, G–C 쌍의 수소결합 구조가 특이적이어서 마치 이들 분자들이 유전 전달 물질로 선택된 것 같은 암시를 주는데 사실 그런 수소결합 구조는 매우 흔하고 핵산염기의 tautomer들로도 수많은 안정된 조합을 만들어 낼 수 있습니다. 따라서 이들 염기의 자연선택에는 다른 이유가 있었기 때문일 것으로 생각되는데 바로 그것이 이들의 들뜬 상태 수명인 것입니다. 즉 자연 염기 (A, T, G, C, U) 5종 모두는 그들의 tautomer 및 일반적인 유사 염기들에 비해 훨씬 짧은 (1/1,000 이하 인 피코(10−12)초 수준의) 들뜬 상태 수명을 갖고 있기 때문에 빛에 의해 들뜨더라도 곧바로 바닥상태로 떨어져 화학적 안정성이 담보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핵산의 광안정성(photostability)이라고 하는데 저희는 이것이 핵산 구조나 주위 분자들, 또는 생체 환경 때문이 아니라 염기 자체의 고유한 분자적 특성, 즉 특이한 전자구조 때문임을 밝힌 것입니다. 이외에 또 생각나는 몇 가지는 분자 내 전하 분포가 거의 절반 씩 분리되는 현상이라든지, 금속 내 전자가 빛에 의해 들떴다가 이완되면서 화학반응을 유발하는 과정의 실시간 관측, 그리고 이산화탄소에 전자를 주입하여 준안정 음이온 상태에서 착물형성이나 촉매반응이 가능하다는 걸 보인 연구 등도 있군요. 저는 무척 재미있다고 생각했는데 한결같이 인용은 별로 안 되더군 요...하하. 그러고 보니 제 스스로 독창적이라고 생각했던 연구와 남들이 관심을 갖는 연구는 전혀 반대였던 것 같군요.
4. 교수님께서 배출하신 많은 훌륭한 연구자들이 현재 우리 화학계에서 큰 역할들을 하고 있습니다. 개성 강한 제자분들도 있으셨을 것 같은데요. 학생지도하시면서 힘드셨던 점, 또는 학생지도 철학이 궁금합니다.
앞서 얘기한 대로 학생지도는 무책임과 자율 허용의 경계를 오갔던 것 같습니다. 많은 학생들을 지도했지만 서로 비슷한 학생은 당연히 하나도 없었습니다. 다들 개성파였던 것 같아요. 현재 국내외 대학과 연구소에서 일하는 졸업생이 90명 가까이 되지만 연구분야도 모두 다르더군요. 그래도 법조계, 예술 계, 종교계로 진출한 졸업생까지 포함하여 거의 대부분 지금도 저를 포함하여 다들 서로 연락을 주고받고 있습니다. 밖으로 봐서는 전혀 같은 연구실 출신이라고 보일만한 공통점이 없지만 뭔가 이렇게 다양한 사람들을 엮어주는 방황하던(?) 경험과 동질적인 문화가 있었나 봅니다.
5. 교육, 연구뿐만 아니라 보직 및 다양한 외부 활동을 해오셨습니다. 바쁘신 중에도 이러한 활동 들을 할 수 있게 한 원동력은 무엇이었으며 그런 경험을 바탕으로 동료 과학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씀이 있으신가요?
저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행운을 누린 교수였다고 생각합니다. 우수한 학생들이 끊이지 않았고 시설 과 공간, 연구비도 충분했었습니다. 연구성과가 부족했다면 제가 능력이 모자라거나 게을러서였지, 연구여건 때문은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제 연구실이 어느 정도 궤도에 오른 뒤 주위를 보니 저보다 훨씬 열악한 환경에서도 분투하시는 분들이 많이 보이더군요. 그래서 과학기술정책에 대해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습니다. 연구자들은 대개 조용한 편이라 작은 목소리조차 눈에 띄었던지 조금씩 학내외에서 의견을 구하는데 응하다 보니 저도 모르게 “외부활동” 전문가처럼 되어버렸습니다. 아마 유명 대학에 재직하고 있다는 점과 저의 반복되는 불평이 그런 상황으로 연결시킨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저는 사실 정책도 잘 모르고 단지 대학과 연구계가 좀 더 선진적이고 공정하며 본질을 추구해야 된다는 생각으로 작은 목소리를 냈을 뿐입니다. 보직과 외부 활동은 여전히 제 몸에 맞지 않는 거북한 옷이지만 일을 하기 위해 입는 작업복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돌아보니 연구자에게 필요한 세 가지는 능력과 열정, 그리고 운 이라고 생각되는데 만약 인생의 어느 시점에서 더 이상 행운이 따라주지 않을 때에는 뭘 해야 할까요? 저는 연구가 제대로 안 된다고 과학자임을 포기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교육의 장은 대학 바깥으로도 초·중·고와 일반인을 대상으로 늘 열려 있고, 기술 개발과 창업도 중요하며, 정책 제안이나 언론홍보도 다 과학계의 발전을 위해 다양한 방식의 가치 있는 기여라고 생각합니다. (막상 은퇴를 해 보면 이 중 하나라도 할 걸 하는 생각이 든다고들 하지요..)
6. 누가 보아도 성공적인 연구자 및 교수로서의 삶을 살아오신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돌이켜 볼 때 후회가 되거나 아쉬운 부분이 있으신지요?
앞에서 한 얘기와 연결되는 부분인데 다른 외부 활동을 일절 하지 않고 온전히 연구에만 전념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은 가끔 듭니다. 만약 미국에서 살았던지 아니면 한국에서라도 2024년부터 교수 인생을 다시 시작한다면 연구에 좀 더 매진했을 것 같군요. 하지만 시공간을 다시 1989년 한국으로 돌린다면 아마 다시 비슷한 경로를 밟았지 않을까 합니다. 그만큼 연구 외에도 개선되어야 할 부분들이 우리나라에 산적해 있었기 때문이겠죠.
7. 포스텍 총장으로 취임하신지 1년이 다 되어가는데 대학 운영을 책임진 분으로서 한국의 대학이 나가야 할 방향에 대해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포스텍에 부임할 때 ‘아카데미즘’의 회복을 얘기했더니 많은 분들이 “아, 논문을 더 열심히 쓰라는 거구나” 라고 오해하시더군요. 오히려 정반대입니다. 너무 연구결과물을 내는데 치중해서 연구의 본질, 좀 더 넓게는 대학의 본질을 잃어버리는 데 대한 자성을 얘기한 것입니다. 우선, 대학은 교육을 통한 지식의 전수와 함께 그 지식을 만들어내는 연구가 기본적인 기능입니다. 그러나 대학의 궁극적 목적은 인재를 길러내는 것입니다. 교육과 연구는 인재 양성을 위한 도구이지요. 만약 대학의 최고 가치가 연구라면 그건 대학이 아니라 연구소가 되어야 합니다. 대학은 지적 호기심과 앎에 대한 열망이 원동력이 되어야지 어느 저널에 논문이 실리는지, 얼마나 많은 연구비를 받았는지가 가장 중요한 관심사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한국 대학들이 급속히 성장하여 세계적인 대학의 반열에 오르게 된 이면에 성과주의의 효과가 있었던 것은 사실입니다만 그렇다고 해서 무한정 거기에 머무를 수는 없습니다. 노벨과학상을 못 타는 데 대해 많은 개탄과 분석이 있습니다만 저는 한국 대학에 진정으로 지적인 호기심과 앎에 대한 열망이 부족한 것도 한 이유라고 봅니다. 최근 한국 대학들의 위상이 정체 내지 하락하고 있기 때문에 치열한 국제 경쟁에서 당장 살아남기 위해서는 성과에 대한 요구가 아직도 어느 정도 필요할 것입니다 만 장기적으로는 본질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8. 업무 외에 평상시 취미활동도 궁금합니다. 또는 건강 유지를 위해 하고 계신 습관이 있으신지요?
취미활동은 하고 싶지만 못 하고 운동은 해야 되지만 안 하고 있습니다. 젊은 시절에는 모든 것에 흥미를 가졌지만 이제는 별로 감흥이 없더군요. 음악회에 가거나 혼자 음악을 듣는 것이 유일하게 남은 취미입니다. 건강을 위해 운동을 해야 하지만 게을러서 미루고 있는데 일단 몸 대신 마음이라도 꾸준히 비우려고 합니다.
9. 요즘 우리 대한민국 연구자들 사이에 최고의 화두는 “글로벌”이 아닐까 싶습니다. 정부 주도의 R&D 방향이기도 한데요, 교수님께서 재직 중에 외국인 교수님들 초청을 통해서 많은 교류를 이어 오셨다고 생각됩니다. 교수님께서 생각하시는 연구자 특히 한국 과학자로서 글로벌 네트워킹의 방향성 또는 중요성에 대해서 말씀해 주시겠어요?
자연을 다루는 과학은 그 어떤 것보다 국경과 역사와 문화를 초월한 글로벌한 언어라고 생각합니다. 내가 관심을 갖고 있는, 지극히 지엽적이지만 내게는 무엇보다 중요한 문제를 지구 반대편 누가 동일한 관심과 열정으로 연구하고 있다는 사실이 우리를 인류의 “특별한 소수”로 느끼게 합니다. 그 지엽적인 문제에서 만큼은 나와 그가 걸음을 내딛는 만큼 인류 지식의 경계는 넓혀질 것입니다. 아무리 과학이 재 미있고 가치가 있어도 무인도에서 열정을 갖기 힘든 이유는 우리의 노력을 누군가는 이해해 주고 박수와 격려를 보내는 것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해외의 동료들은 경쟁자이자 우리를 외로운 여정에서 길 동무 해주는 동반자이기 때문에 그들과 경쟁하고 협력하는 것은 현대 과학자들에게는 필수적이라고 생각합니다.
10. 교수님은 교수, 민간 재단 이사장, 현재 총장 등 다양한 경험을 하셨습니다. 특히, 삼성미래기술육성 재단으로부터의 과제 수주는 연구자들 사이에서 연구비 확보, 그 이상의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이렇게 자리매김하기까지 이사장으로서 많은 고민과 노력이 있으셨을 텐데요, 한국 화학계, 나아가 과학계 전반을 위한 제언을 부탁드립니다.
오래된 개인적인 경험으로부터 시작하겠습니다. 20여 년 전 창의적연구진흥사업의 단계 평가에서 탈락한 적이 있습니다. 탈락에는 누구나 억울한 사유가 있겠지만 그 경우는 업적 심사에서 압도적으로 1등을 한 뒤 일어난 결과였습니다. 충격이었던 것은 그런 과제 평가가 얼마나 편파적이고 배타적인지를 제 눈으로 보게 된 것이었습니다. 그 직후 미국에서 연구년을 보내면서 “공정성”이란 이슈를 놓고 한 학기 내내 혼자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연구자에게 가장 필요한 덕목이 창의성이라면 평가자의 덕목은 공정성과 포용성일 것입니다. 그 뒤로 저는 어떤 경우에도 평가만큼은 제 소신껏 공정하게 하기로 결심했습니다. 주위 사람들은 서운하겠지만 친 구든, 선후배든, 동료든, 제자든 상관없이 최대한 공정한 평가를 하고 그 기조를 과학계 전반으로 확산 해 나가는 것이 우리 모두를 위하는 길이란 생각이었습니다. 2013년 삼성미래기술육성사업이 발족할 때 이를 실행하기로 마음먹었고 11년이 지난 지금 아직도 부족하지만 우리 과학계에 한 단계 높은 평가 문화를 정착시켰다고 생각합니다. 소속기관, 출신학교, 전공분야, 개인적 관계 등 어떤 것에도 구애받지 말고 오로지 과제에만 집중하여 평가를 해야 우리 과학계가 내부와 외부로부터 신뢰와 존중을 받을 수 있을 겁니다. 최근의 “카르텔”논란과 정부 연구비 삭감도 그 자체는 잘못되었지만 배경은 이와 무관치 않습니다.
마지막으로, 우리 과학계가 일반인, 특히 자라나는 세대에 좀 더 활발히 과학을 전하면 좋겠습니다. 특히 요즘같이 의대 열풍과 인공지능 만능시대를 맞아 그런 노력은 더 필요합니다. 제가 카오스재단이라는 민간기구에서 과학위원장으로 있으면서 과학대중화사업을 옆에서 지켜본 바로는 우리 과학계에 뛰어난 분들이 너무 많고 그들이 너무나 유능하게 과학을 잘 전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유튜브를 비롯한 다양한 매체에는 비전문가들이 만든 왜곡되고 질 낮은 콘텐트가 범람하고 있습니다. 이를 비판하고 그들을 폄하만 할 게 아니라 과학계가 발벗고 나서서 더 양질의 재미있는 콘텐트를 만들어 보급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선 교수님들이 강의용으로 만든 온라인 강의도 조금만 손보면 훌륭한 교육용 자료이자 일반인들의 교양을 함양하는 도구로 쓰일 수 있습니다. 우리 대한화학회에서 선도하면 어 떨까 하는 바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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