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수(金性洙) 인하대학교 교수(1945~)
김성수 교수는 1945년 서울에서 출생하여 서울대학교 공과대학 응용화학과를 졸업하고(1964-1968), 미국 유학을 떠나, 1969-1974년 남가주대학교(University of Southern California) 화학과에서 Lawrence Singer 교수님 지도하에 유기화학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하였습니다. 이후 1974-1976년 동안 유타 대학(University of
Utah) 화학과에서 Cheves Walling 교수님과 자유라디칼반응성 메커니즘 연구로 박사 후 연구원(Post-Doc)으로 연구를 수행했고 그 후, 캐나다 앨버타대학교(University of Alberta, Edmonton) 석유연구소 연구원으로 자리를 옮겨 1979년 5월까지 다양한 hydrocarbon 합성 반응성과 응용에 관한 연구를 수행하였습니다.
1970년대 후반 무렵부터 대학과 연구소의 연구 환경이 좋아지면서 김성수 교수도 한국으로 귀국해서 한국화학연구원 선임연구원으로 근무했으며 연구에 박차를 가하다가 1980년 인하대학교 이과대학 화학과로 후학 양성과 연구에 대한 열정을 갖고 부교수로 부임해서 2010년까지 30년간 교수로 재직하였습니다.
화학과 부임 시에 마침 인하대학교 화학과에서 재직하고 있던 고 이익춘 교수 그리고, 김유항 교수의 물리화학분야의 학술연구가 세계 정상급 학술지에 게재되기 시작하였습니다. 하지만 김성수 교수가 인하대학교에서 연구와 학생들을 가르치기 시작한 1980년초에는 유기화학 분야는 참으로 열악한 연구환경에 있었습니다. 현재로서는 상상을 못 할 좁은 공간과 부족한 실험자재 등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말에도 늘 불이 켜 있는 교수실에서 보듯 그의 열성은 이 모든 난관을 하나하나 극복해 나갔습니다. 김성수 교수는 연구와 국내외 학술교류에 대한 열정도 대단하였지만 초창기 연구는 무엇보다도 세계 유명 학술지에 게재하여야 한다는데 목표를 두었고, 미국과 유럽 등의 화학자들과 동등한 연구결과를 창출해내는데 전념하였습니다.
40년 전을 생각해 보면 한국과학재단이나 문교부에서 지원하는 연구비와 석사과정의 대학원생들로 구성된 연구팀만으로 첨단분야인 ‘자유라디칼 반응 메커니즘’연구주제를 수행하기에는 벅찬 시절이었습니다.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세계적인 연구팀과 경쟁할 수 있었던 것은 그의 연구에 대한 열정과 대학원생들을 동등한 연구자로 대하면서 형성된 밀접한 연구관계에서 이루어졌다고 생각됩니다. 몇 가지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도 기억나는 것들은 처음 대학원에 진학한 학생들에게 실험실에서 Freeze-pump-thaw degassing 방법을 토치로 sealing 방법을 직접 보여주고, 실험실 안전 규칙을 자상하게 강조하고, 늘 연구결과를 학생들과 동등한 위치에서 자유스럽게 토론하며 나누는 교수님의 모습입니다.
그러한 연구실의 분위기는 1985년에 저명한 학술지인 Journal of the American Chemical Society (JACS)
에 논문을 게재할 수 있었던 큰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또한, 석사과정 대학원생들에게 American Chemical Society(
ACS)의 회원등록을 권유하고, JACS 나 Journal of Organic Chemistry (JOC)저널을 읽게함으로써 유기화학의 첨단 연구방향을 따라갈 수 있도록 격려하였습니다. 대학원생 뿐만 아니라 김성수 교수는 교정에서 만나는 학생들에게도 “연구와 영어 공부는 잘 되어가는지, TOEFL은 언제 보는지?” 등 학생들에게 관심과 격려를 보여주어, 그 당시의 다른 교수님들과는 다른 면모를 보여주었습니다. 항상 입버릇처럼 “넓은 세상에 가야 많이 배울 수 있다”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 이유 때문인지는 몰라도 그의 실험실에 있던 많은 학생이 해외로 대학원 진학 혹은 직장 취업으로 나가는데 동기부여가 됐습니다. 그는 마치 잠자고 있던 학생들에게 꿈을 심어주는 사람 같았습니다. 그의 유기화학 메커니즘의 열정과 꿈이 그래서 더 많은 유기화학전공자 학생들에게 영감이되었습니다.
김성수 교수의 국내외에서 참여한 유기화학 연구분야는 자유라디칼 화학반응의 메커니즘의 규명과 유기화학 반응의 방법론에 관한 것으로 지금까지 해외유명저널에 100편이 넘는 논문이 출간되었습니다. 1980년대 이후의 브롬인 라디칼의 수소전달반응의 본질적인 메커니즘 규명은 새로운 접근방식으로 창출되었으며(J. Am. Chem. Soc. 1985, 107, 4234-4237), 이전까지 보고되어왔던 결과들에 비해 독창적인 온도에 따른 Entropy-driven 효과를 제시하였습니다. 알콕시라디칼의 균일분열도 온도에 따른 극성 용매안에서 메커니즘이 잘 규명될 수 있었습니다(J. Am. Chem. Soc. 1994, 116, 2754-2758). 이러한 35편 이상의 자유라디칼의 메커니즘 연구논문은 (.J. Org. Chem. Tetrahedron Lett.,Bull. Korean Chem. Soc) 세계적인 선도연구자로서 인정을 받는 계기가 되었고 미국화학회와 유명학술단체에 초청강의를 하였습니다. 라디칼의 메커니즘 규명에 따른 반응성은 라디칼 성질을 이용한 유기화합물의 합성에 속도론적 예측을 가능
케 하는 정보를 줄 뿐아니라, 빠른 라디칼들(Hypersensitve radicals)의 중간체로 DNA-damage 메커니즘 연구와 Methane mono oxygenase(MMO)와 Cytochrome P450 엔자임의 하이드록시(OH) 라디칼의 리바운드 산화반응의 메커니즘 연구에 기여를 하였습니다. 그의 이러한 자유라디칼을 응용한 바이오 유기화학에 대한 인사이트는 미국의 Martin E. Newcomb 교수(University of Illinois, Chicago)와 고인이 되신 Sir Derek H. R. Barton 교수(Texas A&M University, 노벨화학상 1969)와 의 활발한 세미나 교류로 발전시켰습니다.
2000년부터 은퇴하기 전 10년 동안에는 유기합성의 방법론에 대하여 연구를 수행하였습니다. Mn(sale) 촉매를 이용하여서 비대칭 산화반응과 생화학적 응용에 있어서 획기적인 연구 성과를 지속적으로 이루게되었습니다. 특히 그의 연구는 2005년과 2006년 Tetrahedron 저널에 가장 인용이 많이 된 논문으로 선정이 되기도 했습니다(2005년 Tetrahedron: Asymmetry 2006, 17, 1165-1169, 2006년:Tetrahedron 2006, 62, 49-53). 이러한 많은 연구결과를 통하여 많은 해외 강연도 하였으며(12th, 16th, 17th, 40th IUPAC 학술모임 등) 한국유기화학의 탁월함과 위상을 높이는 대표적인 화학자로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김성수 교수는 국내 유기화학 분야의 어려웠던 환경에서 집약적인 연구를 통하여 국내에서도 세계적인 유기화학자들과 비교하여 절대 뒤처지지 않으며 동등한 연구결과와 성과를 이룰 수 있다는 열정을 동시대의 교수님들과 후배 연구자들에게 보여주었습니다. 한국 연구자들의 논문 수준을 국제적 수준으로 발전시키는 것 이외에도, 대한화학회 등 국내외 학회와 학술지 활동 및 교류를 다양하게 노력하여 왔습니다. 1990-1995년에는 대한화학회 편집간사, 총무간사, 간사장을 역임하였으며, 대한화학회의 균형 있는 발전을 위해 봉사하였습니다.
특별히 1996년 8월에는 제13차 IUPAC 물리유기화학 학술대회를 인하대학교에서 개최하였습니다. 이와 같이 다양한 학술회의들을 성공적으로 이끌며 해외 학자들과의 교류를 확장시키며 한국유기화학분야의 발전에 기여하였습니다.
인하대학교 재직기간 동안, 그리고 2010년 은퇴 후에도 늘 한결같은 60명 이상의 제자와 소식을 나누시기를
즐기며 산행과 여행으로 건강을 돌보고 있습니다. 한국유기화학의 발전을 위해 선구자적 사명감으로 1980년부
터 연구 인력과 기자재가 부족한 상황에서도 오직 과학적 창의력과 연구에 대한 열정으로 Gap Jumping에 묵
묵히 최선을 다하셨습니다. 그의 반평생의 과학적 공헌이 있었기에, 현재의 한국 유기화학의 수준이 명실공히
세계의 유수한 대학이나 연구소와 어깨를 나란히 할 수있게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글 ABZENA 연구소장 최승룡 / Michigan 대학교 교수 임상철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