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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학교육과 연구의 두 무대: In Silico와 In Silica(2026년 4월호)

  • 4일 전
  • 3분 분량

최종 수정일: 2일 전

김홍기 순천향대학교 화학과 조교수, hongki@sch.ac.kr


서 론

 

화학은 물질의 성질, 조성, 구조, 그리고, 그 변화를 원자와 분자 스케일에서 탐구하는 학문이다. 그리고, 전통적으로 화학교육의 중심에는 ‘실험’이 있었다. 실험 가운을 입고 비커와 시험관을 다루며, 용액의 색 변화나 기체의 발생을 직접 눈으로 확인하는 과정은 학생들에게는 강력한 학습 동기를 제공해 왔다. 더 나아가, 과학자들은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쳐 최적의 반응 조건을 찾아냈으며, 눈에 보이지 않는 미시 세계의 사건들을 실험 결과를 통해, 입증해 왔다. 본 글에서는 유리를 상징하는 ‘실리카(Silica)’ 에 착안하여, 이러한 유리 초자 기반의 전통적인 실험실 환경을 ‘In Silica’라고 정의하고자 한다.

한편, 디지털 전환의 물결과 함께, 컴퓨터 및 컴퓨터와 관련된 기술이 비약적으로 발전하였고, 이는 화학 탐구의 무대를 근본적으로 확장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제 학생들 은 유리 비커와 시험관만을 사용하는 데 그치지 않고, 컴 퓨터 프로세서의 핵심 재료인 ‘실리콘(Silicon)’을 기반으로 한 컴퓨터 환경에서 화학 반응을 구현하고 분석할 수 있게 되었다. 이것이 바로 ‘In Silico’의 세계이다. 현대 화 학교육은 더 이상 실험실 기반의 ‘In Silica ’ 환경과 컴퓨 터를 활용한 ‘In Silico’ 환경을 분리하여 이루어질 수 없다. 즉, 이 두 무대가 길이와 시간 스케일의 관점에서 어떻게 연결되고 상호보완적으로 작용하며, 각각의 한계를 보완하고 장점을 극대화하는지를 이해하고 상호보완적으로 수행하는 것이 중요해진 것이다[그림 1]. 즉, 물질을 직접 다루는 In Silica의 무대와, 원자·분자 수준의 이론적 모델링 및 계산 시뮬레이션의 In Silico의 무대가 유기적으로 결합되고 수행될 때, 비로소 미래 지향적 화학교육이 완성 될 수 있다.

두 무대가 선사하는 교육적 요소는 각기 명확한 개성을 지닌다. 먼저, 전통적인 실험 중심의 ‘In Silica ’환경의 가장 큰 강점은 학습자가 화학 반응의 역동성을 몸소 체득할 수 있다는 점이다. 비커 속 용액의 색이 서서히 변해가는 찰나, 기체가 발생하며 올라오는 미세한 기포, 반응 과정에서 느껴지는 특유의 후각적 자극, 그리고 결정이 형성되어 보석처럼 성장하는 모습은 단순한 숫자나 문자적 데이터로 환원될 수 없는 실제적 경험을 선사한다. 이러한 감각적 경험은 화학 반응이 교과서 속 기호와 식으로만 존재하는 개념이 아니라 실제 시간과 에너지가 흐르는 연속적인 과정임을 직관적으로 깨닫게 한다. 또한, 실험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마주하게 되는 ‘예상치 못한 변수들’(온도의 미세한 차이, 혼합 속도의 변화, 불순물의 존재 등)은 이론과 현실 사이의 간극을 명확히 인식하게 한다. 학생들은 이 간극을 메우기 위해 고민하는 과정에서 과학적 사고력과 문제 해결 능력을 자연스럽게 체득하게 되는데, 이 는 정교하게 설계된 컴퓨터 시뮬레이션(In Silico)만으로 는 온전히 대체하기 어려운 ‘In Silica’만의 독보적인 교육 가치이다.

반면 ‘In Silico’ 환경은 분자 수준의 정밀한 구조 분석, 반응 경로의 에너지 계산과 함께, 실험적으로 접근하기 어려운 극한 조건의 모사 등에서 강력한 장점을 가진다. 학생들은 전자구조 계산과 분자 동역학(Molecular Dy-namics, MD) 시뮬레이션 등의 접근법을 바탕으로, 실제 실험실에서는 찰나의 순간이기 때문에 포착하기 어려운 전이상태(Transition State)나 눈으로 관찰할 수 없는 전자 밀도의 변화를 가시적이고 입체적으로 탐색할 수 있다. 이는 단순한 시각화를 넘어, 복잡한 화학 결합 네트워크의 동적 거동을 분석함으로써, 화학 반응의 근본적인 기전(Mechanism)을 깊이 있게 이해하도록 돕는다. 이러한 과정은 실험에서 관찰된 현상을 이론적으로 뒷받침하는 해석 능력을 길러줄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특정 목적에 맞는 새로운 화학 반응이나 물질을 설계할 수 있는 ‘설계 역량’으로 확장된다. ‘In Silico’는 학생들에게 분자 수준에서 현상을 통제하고 설계해 보는 창조적 경험을 제공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In Silica’와 ‘In Silico’의  두 무대가 실제 어떻게 연결되는지, 그리고, 상호보완적으로 결합되어 시너지를 창출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 살펴보고자 한다.


본 론

 

1.  분자수준의 사례: 물

 

전통적인 ‘In Silica ’ 무대에서 물은 단순히 수소 원자 2개와 산소 원자 1개가 결합한 H2O라는 기호로 정의된다. 실험실의 유리 비커 속에서 우리는 물의 무색투명함, 끓는점(100 °C), 그리고 전기 분해 시 발생하는 기체의 부피 비 등을 통해 화학적, 물리적 특성을 확인한다. 하지만 ‘In Silico’의 무대인 컴퓨터 시뮬레이션 환경에 들어서는 순간, 물 분자는 단순한 기호를 넘어 고도의 정보가 집약된 역동적인 시각화 구조로 탈바꿈한다[그림 2].


실험실에서 물이 극성 용매임을 확인하는 가장 간단한 방법은 다른 물질과의 용해도를 관찰하는 것이다. 반면 ‘In Silico ’는 정전기 전위 지도(Electrostatic Potential Map)를 통해 분자의 전하 분포를 색상으로 시각화한다. 산소 원자 주변의 붉은색(음전하)과 수소 원자 주변의 푸른색(양전하) 대비는 물 분자의 강력한 쌍극자 모멘트를 직관적으로 증명한다. 더 나아가, ‘InSilico’ 환경에서 수 행되는 양자역학적 계산은 눈에 보이지 않는 전자의 에너지 상태를 정밀하게 가시화한다. 그림에서 나타낸 5번에 해당하는 반응성의 핵심인 최고 점유 분자 오비탈(High-est Occupied Molecular Orbital, HOMO)은 물 분자가 다른 분자와 반응할 때 전자를 제공하는 핵심 부위임을 시사한다. 이를 통해, ‘In Silica ’ 실험에서 단순히 ‘반응’ 이라고 부르는 현상의 실체를 분자 오비탈의 상호작용이 라는 관점으로 깊게 파고들 수 있게 된다. 또한, 계산화학은 실험적으로 측정된 데이터를 이론적으로 해석하고 검증하는 가교 역할을 수행한다. 이론 계산을 통해, 물 분자의 대칭 신축진동, 비대칭 신축진동, 가위질 굽힘진동과 같은 각각의 진동모드와 고유 진동수에 대한 정밀한 정보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실험자가 실제로 관찰한 데이터가 어떤 미시적 분자 운동에 기인한 것인지 명확히 확인하고 이해할 수 있으며, 이는 현상에 대한 논리적 확신으로 이어질 수 있다.



2.  물질수준의 사례: 금속-유기 구조체

 

분자 수준의 사례를 넘어, 이제는 물질 개발의 영역으로 탐구의 무대를 확장해 보고자 한다. 실제 물질 개발의 영역에서 ‘In Silico ’와 ‘In Silica’의 시너지는 더욱 극명하 게 드러나는데, 그 대표적인 예가 바로 현대 화학 및 재료 과학 분야에서 큰 주목을 받고 있는 금속-유기 구조체 (Metal-Organic Frameworks, MOFs)이다[그림 3].

금속-유기 구조체(MOFs)는 다양한 금속이온 및 금속 클러스터와 유기 리간드의 조합을 기반으로 자가 조립(Self-Assembly)을 통해 형성되는 배위 고분자의 일종이다. 이는 기공의 크기와 모양, 차원성 및 표면 환경을 정교하게 조절할 수 있어, 특정 응용연구에 최적화된 맞춤형 설계가 가능한 차세대 다공성 물질로 각광받고 있다. 이러한 화학적/구조적 다양성을 바탕으로 금속-유기 구조체(MOFs)는 가스 저장 및 분리, 촉매, 분자 센싱, 이온 전도 등 광범위한 응용 분야에서 혁신적인 솔루션으로 활용되고 있다. 특히, 금속-유기 구조체 연구는 무수히 많은 가능한 조합 중 응용 분야에 최적화된 성능을 가진 물질을 탐구해야 하기 때문에, ‘합리적 설계(Rational Design)’ 의 가치가 무엇보다 높게 평가되는 영역이다.

가장 대표적인 MOF 소재인 MOF-5의 구조적 안정성을 높이기 위해, 분자 수준의 ‘트러스 빔’을 도입한 연구 사례는 ‘In Silica’와 ‘In Silico’ 무대의 상호보완적인 시너지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MOF-5는 높은 비표면적 덕분에, 가스 저장 분야에서 혁신적인 물질로 연구되어 왔으나, 습한 환경에 노출될 경우, 물 분자가 아연 산화물 노드(Zn4O) 부분을 공격하여 굉장히 짧은 시간 안에 구조가 완전히 붕괴되는 현상이 보고되어 왔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건축 공학의 ‘트러스 빔’ 원리를 분자 수준에 도입하는 ‘합리적 설계’를 시도하였다. 가상 공간(In Silico)에서 유 기 리간드(1,4-benzenedicarboxylic acid, BDC)에 카바졸 작용기를 기능화한 새로운 유기 리간드(2,5-bis(3-(9H-carbazol-9-yl)-propoxy)-1,4-benzenedicar-boxylic acid, CZ3-BDC)를 모델링하였다. 그리고, 이 작용기가 구조체의 모서리를 가로질러 인접한 리간드와 강력한 π-π 상호작용을 형성하여 구조를 견고하게 지지하도록 설계하였다[그림 4].



이 시점에서 우리가 깊이 주목해야 할 점은 ‘합리적 설계(Rational Design)’의 진정한 가치는 ‘In Silico’ 무대의 가상 공간 연구가 실제 실험실의 결과물로 적절하게 구현될 때 비로소 증명된다는 점이다. 본 연구에서는 이론적 분석을 통한 구조적 유효성 검증을 수행하였으며, 이러한 계산화학적 분석은 실험에 앞서 설계의 타당성을 선제적으로 확보할 수 있게 해주었다. 더 나아가, 설계된 구조를 바탕으로 직접 금속-유기 구조체(MOFs)를 합성하여 연구 를 수행한 결과, 기존 MOF-5가 90 °C의 증기 조건에서 1시간 만에 구조가 붕괴된 것과 달리, 분자 트러스 빔이 도 입된 CZ3-MOF-5는 동일한 환경에서도 5일간 구조적 온전성을 유지하였다. 이는 미시 세계에 대한 이론적 설계와 분석이 실제 ‘In Silica ’ 환경의 결과물로 입증되었음을 보여주는 사례이다. 이러한 통합적 탐구 과정은 미래의 화학자가 단순히 주어진 지식을 습득하는 차원을 넘어, 스스로 문제를 정의하고 최적의 해결책을 직접 설계하는 주도적 인 연구자로 성장하는 데 필수적이다.



결 론

 

화학 탐구의 본질은 눈에 보이지 않는 미시 세계를 깊이 있게 이해하고, 이를 통해, 인류에게 유용한 새로운 물질적 가치를 창조하는 데 있다. 앞서 서술한 ‘In Silico ’와 ‘In Silica ’는 현대 화학자가 올라서야 할 두 개의 필수적 인 탐구 무대이다. 유리 기구(In Silica) 안의 화학 반응이 우리에게 물질적 실체와 감각적 경험을 선사한다면, 컴퓨터 칩(In Silico)은 그 현상 이면에 숨겨진 원리와 무한한 확장성을 제공한다.

결국, 미래의 화학교육은 학생들이 ‘In Silica’와 ‘In Silico’라는 두 무대를 자유롭게 넘나들며 탐구의 시너지를 경험하게 하는 장(場)이 되어야 한다. 실험실에서의 실제적인 경험이 직관과 감각의 근육을 길러준다면, 컴퓨터를 활용한 정밀한 이론 계산은 현상의 본질을 꿰뚫는 통찰과 예측의 안목을 선사한다. 즉, 물질을 직접 다루는 손끝 의 감각과 데이터를 해석하는 논리적 사고가 상호보완적으로 작용할 때, 학생들은 비로소 원자 수준의 미시적 사건부터 거시적인 물질의 변화까지 아우르는 융·복합적 역량을 갖추게 된다. 이러한 환경에서 배우고 성장한 학생들은 기후변화 위기나 난치병 치료와 같이, 현대 사회가 직 면한 복잡한 문제들에 대해, 혁신적인 솔루션을 설계하고 제시할 수 있는 과학자로 거듭날 것이라고 믿는다.



 

 참고문헌

  1. Kochmann, D. M.; Amelang, J. S.; The Quasicontinuum Method: Theory and Applications, in: Weinberger, C. R.; Tucker G. J. (Eds.), Springer Series in Materials Science, Multiscale Materials Modeling for  Nanome-chanics. Springer International Publishing, Cham2016245, 159.

  2. Uemura, T.; Yanaia, N.; Kitagawa S. Polymerization reactions in porous coordination polymers. Chem. Soc. Rev. 2009, 38, 1228.

  3. Kim, H. K.; Jung, J.-Y.; Kang, G.; Baik, M.-H.; Choi, E.-Y. Installing a mo-lecular truss beam stabilizes MOF structures. npj. Comp. Mater20221, 117.





김홍기 Hong Ki Kim

 

•  연세대학교 화학및의화학과, 학사(2008.3–2014.2, 지도교수: 팽기정)

•  대구경북과학기술원 신물질과학전공, 석사(2014.3–2016.8, 지도교수: 정낙천)

•  한국과학기술원 화학과, 박사(2016.9–2021.8, 지도교수: 백무현)

• Harvard University Department of Chemistry and Chemical Biology, Postdoctoral Fellow(2021.9–2025.8, 지도교수: Jarad A. Mason)

• Harvard University Department of Chemistry and Chemical Biology, Associate(2025.8–현재)

•  순천향대학교 화학과 조교수(2025.9–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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