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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학구조의 인식


1860년 열린 칼스루헤 회의는 비록 폭발적인 변화를 이 끌어내지는 못했지만, 다음 세대 화학의 신호탄 역할을 수행하였습니다. 화학사학자 로크(Alan J. Rocke)는 1860 년대가 “화학 이론의 진실로 혁명적인 시기”였다고 평가합니다. [참고문헌 1] 1860년대의 화학자들은 유기 화합물을 설명하는 이론들을 더 정교하게 만들어내기 시작했고, 이를 이용해 이성질 현상 등 오랜 난제를 해결하는 데 성공합니다. 특히 이 시기를 정의할 수 있는 용어로 “구조”를 들수 있습니다. 1861년, 러시아의 화학자 부틀레로프(Aleksandr But- lerov, 1828-1886)가 최초로 “화학 구조”라는 용어를 사용합니다.[참고문헌 2] 여기서 말하는 “구조”는 실제 분자의 3차원 구조를 가리킨다기보다 각원자가 다른 원자 몇 개와 결합할 수 있는지를 나타내는“원자가”에 기반하여 원자를 레고 블록처럼 다루는 접근법을 말합니다. 바야흐로 화학은 구조 이론(structural theory)의 시대에 접어든 것입니다.[참고문헌 3] 1860년을 즈음해서 화학에는 원자가 개념[참고문헌 4]이 확립되었 고, 수소는 1의 원자가를, 산소는 2의 원자가를, 질소는 3 의 원자가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 밝혀졌습니다. 각 원자는 원자가에해당하는 수만큼의 수소 원자와 결합할 수 있으며, 이 원자가는 화학 반응 전후에 변하지 않는다고 가정 되었죠. 1858년 케쿨레는 탄소가 4의 원자가를 가지고 있다고 가정하고 많은 유기 화합물의 구조를 설명하였습니다. 이 논문은 큰 관심을 받았으며, 구조 이론의 효시가 됩니다. 하지만 올레핀(olefin, C2H4)과 같은 분자에서는 탄소의 원자가가 4가 아닌 것처럼 보인다는 문제가 남아 있었습니다. 이렇게 탄소의 원자가를 만족하지 못하는 유기 화합물들은 꽉 차 있지 않은 화합물들, 즉“불포화(unsat- urated)”화합물이라 불리었습니다.

불포화 유기 화합물의 문제는 1860년대 초반에 해결됩니다. 탄소 원자들이 자기들끼리 결합을 두 개 이상 만들 수 있다는 가정을 넣으면, 원자가도 깔끔하게 설명될 뿐 아니라 불포화 유기화합물들이 반응성이 더 높은 이유도 설명할 수 있었습니다. 탄소 원자들은 자기들끼리 이중, 삼중 결합을 만들기보다 수소 등 다른 원자와 단일 결합을 만드는 걸 선호한다고 보면 되니까요. 비슷한 시기에 탄소 가 가지고 있는 결합 “손”은 네 개 모두 대등하다는 사실이 알려졌습니다. 이렇게 베일에 싸여 있던 유기 화합물의 정체가 조금씩 밝혀지고 있었습니다.

화학자들은 분자의 “구조”를 효율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유형이론에서는 중괄호를 사용하여 각 유형의 분자를 명확하게 보여주고자 했지만, 이는 복잡한 분자에 적용하기 어렵다는 단점이 있었습니다. 1858년 쿠퍼(A. S. Couper)는 유형 이론에서 사 용하던 중괄호에 더하여 원자 사이의 관계를 표현할 수 있는 점선을 도입하였습니다[그림 1]. 3년이 지나 1861년에는 쿠퍼의 후배였던 크럼 브라운(Alexander Crum Brown, 1838-1922)이 중괄호를 사용하지 않고 원자 사이의 관계를 표시하는 새로운 표기법을 개발합니다. 여기 서 각 원자는 원으로 표시되고, 각자 원자가에 해당하는 수만큼 짧은 선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 선끼리 연결하면 결합이 됩니다. 이 표기법에서는 특히 이중 결합 등이 잘 표현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습니다.[참고문헌 5]

한편 다른 창의적인 표기법도 많이 등장했습니다. 케쿨레는 1859년 출판된 자신의 유기화학 교과서에서 “소시지”표기법이라는 것을 발표했습니다[그림 2].[참고문헌 7] 이 표기법 에서는 각 원자가 여러 개의 구슬이 붙어 있는 소시지 모양으로 묘사되는데, 이때 각 원자를 구성하는 구슬의 개수가 곧 원자가를 의미합니다. 소시지끼리 두 줄로 붙여서 분자를 만들 수 있는데, 이때 두 줄을 구성하는 구슬의 수는 같아야 합니다. 로슈미트(Josef Loschmidt, 1821- 1895)는 1861년 동심원을 이용해 원자가를 표기하는 방법을 고안했습니다. 작은 원은 원자가 1인 수소를 나타내고, 이중 동심원은 원자가 2인 산소를, 삼중 동심원은 원자가 3인 질소를, 그리고 큰 원은 원자가 4인 탄소를 나타냅니다. 이중 결합은 원을 겹치고 굵은 선을 두 개 그려서 표시 하였습니다. 호프만은 1865년에 “크로켓 공” 표기법이라 는 것을 제안합니다. 각 원자는 원자가에 맞는 개수의 막대기가 박혀 있는 공으로 표현되고, 이들을 조립하여 분자를 만드는 것입니다. 그림에서 볼 수 있다시피 당시 호프만은 이중 결합 개념을 받아들이지 않고, 비어 있는 원자 가로 보았습니다.


크럼 브라운의 표기법은 오늘날의 구조식과 상당히 유 사하고, 호프만의 크로켓 공 표기법은 오늘날 공과 막대를 이용해 분자의 공간적 구조를 나타내는 방식과 상당히 유사해 보입니다. 그래서 흔히 이 시기부터 오늘날의 이해와 유사한 분자 구조의 개념이 있었으리라 생각하지만, 당시 화학자들 중 원자가 개념을 실제 3차원 구조에 기반하여 이해한 사람은 별로 없었습니다. 케쿨레는 자신의 소시지 표기법을 소개하면서 다음과 같은 말을 남깁니다.“[이 표 기법으로 표현된] 각 원자의 위치는 공간상 상대적 위치를 나타낼 의도를 전혀 담고 있지 않다.”[참고문헌 9]  크럼 브라운 역시 다음과 같이 말했죠.“[내 표기법은] 원자들의 화학적 위치를 나타낼 뿐, 물리적 위치를 가리킬 의도는 없다.”[참고문헌 10] 비록 각자 창의적인 모형을 사용하여 구조 이론을 탐구했지 만, 케쿨레도, 크럼 브라운도, 호프만도, 자신의 모형이 공간상의 “실제”분자 구조를 나타낸다고 믿지 않았습니다. 각 화학자가 구조 이론이 실제로 의미하는 바가 무엇이 라고 생각하였든, 구조 이론은 화학 연구에 큰 도움이 되는 중요한 도구였습니다. 특히 이성질 현상을 설명하는데 큰 강점을 가지고 있었죠. 예를 들어 에테인(C2H6)에 대해 이전의 유형 이론은 두 가지 이성질체를 예측합니다. 바로 H-C2H5와 CH3-CH3입니다. 하지만 구조 이론에 따르면 두 가지 이성질체는 동일한 분자죠. 실험적으로 에테인의 이성질체는 한 가지만 발견되었기 때문에, 구조 이론의 설득력이 더 큰 상황이었습니다. 그 결과 구조 이론을 사 용하여 이성질 현상을 설명하려는 여러 시도들이 있었습 니다.

이 시기를 상징하는 가장 유명한 이론은 케쿨레의 벤젠이론입니다.[참고문헌 11] 벤젠은 1825년 패러데이에 의해 발견되었 습니다. 1830년대에 리비히를 비롯한 여러 화학자들이 순수한 벤젠을 얻기 위해 노력하였지만, 최초로 분별 증류에 성공한 것은 호프만이었습니다. 1843년 호프만의 보고 이 후 벤젠 및 벤젠 유도체에 대한 연구가 활발해졌습니다.[참고문헌 12] 여러 가지 벤젠 유도체가 보고되었고, 그 중 일부는 오류로 판명되었습니다. 1864년 즈음에 벤젠에 관해 실험적으 로 정리된 사실은 다음과 같습니다. (1) 벤젠을 구성하는 탄소 원자의 수는 최소한 여섯 개다. (2) 벤젠은“불포화” 유기 화합물이지만 수소를 더 추가하는 것은 매우 어렵고, 치환 반응은 일으킬 수 있다. (3) 치환 반응을 통해 하나의 라디칼을 도입하면 하나의 이성질체가 나오지만 두 개의 라디칼을 도입하면 세 개의 이성질체가 나온다.[참고문헌 13] 당시 이 러한 사실을 설명할 수 있는 단순한 모형은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케쿨레는 1865년 1월에 출판된 논문에서 여섯 개 의 탄소원자가 고리 모양으로 연결된 구조를 제안했고, 그 들의 결합은 단일 결합과 이중 결합이 반복된 형태라고 주 장했습니다. 이후 그는 이 모형에 기반하여 깔끔하게 벤젠 유도체의 이성질 현상을 설명해냈죠. 화학자들은 열광했고, 구조 이론은 화학계에서 널리 받아들여지게 됩니다. 케쿨레의 벤젠 이론에는 흥미로운 탄생 비화가 있습니 다. 1890년 독일에서 열린 벤젠 논문 25주년 기념 행사에서, 주인공 케쿨레는 강연 중에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남겼습니다.“[어느날 밤,] 저는 [집에] 앉아서 교과서 작업 을 하고 있었지만 일이 수월하게 진행되지 않았습니다. 다른 일에 신경이 쓰였기 때문입니다. 저는 벽난로를 향해 의자를 돌린 후 깜빡 선잠에 들었습니다. 다시 한번 제 눈 앞에서 원자들이 날아다녔습니다. 이번에는 배경에 작은 무리들이 얌전하게 있었습니다. 비슷한 종류의 환상을 반복해서 보면서 더 예민해진 마음의 눈으로, 다양한 조합 속에서 보다 큰 형태를 구분해낼 수 있었습니다. 바로 가끔 긴 사슬들이 결합하여 더 밀집된 구조를 이루는 것이었습니다. 모두가 마치 뱀처럼 꼬물거리고 있었습니다. 그런 데, 저게 뭐죠? 한 마리의 뱀이 자신의 꼬리를 물고는, 마치 조롱하듯이 제 눈앞에서 빙글빙글 돌고 있었습니다. 저 는 바로 깨어났고, 이번에도 이 가설의 의미를 탐구하기 위해 밤을 꼬박 세웠습니다.”[참고문헌 14]

케쿨레가 소시지 표기법을 사용했음을 고려하면, 여기서 이야기하는“사슬”은 아마 소시지 모양의 원자들이 모 여서 만든 분자가 아닐까 싶습니다. [그림 3]에서 케쿨레가 자신의 교과서에서 제시한 벤젠의 구조를 참고하면 케쿨레가 꿈에서 본 모양을 상상해 볼 수 있겠습니다. 재미 있는 것은 같은 책에서 케쿨레가 벤젠 내의 수소 원자가 가질 수 있는 두 가지 구조로 삼각형 구조와 육각형 구조를 제시했다는 것입니다. 케쿨레는 벤젠의 수소 원자가 모두 대등하다면 육각형 구조가 더 좋은 표현이 되겠지만, 두 가지 서로 다른 그룹으로 나뉜다면 삼각형 구조로 그리는 것이 더 좋겠다고 말합니다. 이를 두고 오늘날 어떤 사 람들은 케쿨레가 벤젠의 육각형 고리 형태를 예측했다고 평가합니다만,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케쿨레는 본인이 벤젠의 실제 구조를 탐구하고 있다고 믿지 않았습니다. 지나친 해석은 경계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앞서 소개한 강연에서는 환상 에피소드가 한 가지 더 등 장합니다. 케쿨레는 1854년 런던에서 연구 조수로 일하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저녁, 친구 집을 찾아가는 버스 안에 서 깜빡 잠이 든 그는 눈앞에서 원자들이 이리저리 움직이며 뭉치고 흩어지는 환상을 보았습니다. 이 환상에 기반하여 그는 원자가에 관한 가설을 세울 수 있었습니다. 케쿨 레는 강연에서 이 환상을 회고하며“구조 이론의 기원”이라고 불렀습니다.[참고문헌 16] 특이하게도 케쿨레는 젊은 날의 자신이 환상을 통해 가설의 실마리를 얻곤 했다고 주장한 것입니다. 케쿨레는 심지어 이 강연에서“여러분, 꿈꾸는 법을 배웁시다. 그러면 아마도 진실을 발견할 것입니다.”라며 환상이 창의성의 원천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케쿨레의 환상 이야기가 주는 교훈은 무엇일까요? 어떤 사람들은 케쿨레가 노년에 자신에게 신비한 이미지를 입 히기 위해 이런 이야기들을 만들어냈다고 주장합니다.[참고문헌 17] 하지만 케쿨레가 이 강연을 하기 전에도 사적으로 친구들 과 가족들에게 환상 이야기를 종종 했던 걸 보면 케쿨레 본인이 환상을 보았던 것은 사실로 보입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뱀”이라는 이미지에 집중하여 정신분석학적으로 케쿨레의 무의식을 연구하기도 했고, 연금술 문헌에 자주 등장하는 우로보로스(ouroboros)라는 뱀과 케쿨레의 꿈을 연결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보다 합리적인 설명은, 실제로 케쿨레가 환상을 본 것은 사실이나, 환상만으로 과학적 탐구를 했다고 주장하는 것은 곤란하다는 것입니다. 케쿨레가 원자가 가설이나 벤젠 구조 가설을 생각해냈을 때, 케쿨레는 이미 유기화학에 대한 충분한 배경지식을 갖추고 있었습니다. 그의 머릿속에는 이미 “가능한” 가설과 “불가능한” 가설이 분명하게 정리되어 있었고, 환상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후에도 그 가설을 뒷받침할 수 있는 합리적인 근거를 제시할 수 있었습니다. 또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은 케쿨레가 1865년 논문을 쓸 때까지 방향족 화합물에 대한 연구를 거의 한 적이 없다는 점입니다. 케쿨레는 해당 분야의 “외부인”으로서 다소 과감한 가설을 세울 수 있 었던 것은 아닐까요.[참고문헌 18]

1860년대는 구조 이론이 완성에 가까운 모습을 갖추는 시기였습니다. 비록 “정말로” 원자들이 분자 안에서 어떤 구조를 이루고 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특정한 화학적 구조를 가정함으로써 여러 유기 화합물들을 체계적으로 설명하는 것이 가능해졌습니다. 한편, 이렇게 탄소, 수소, 산소, 질소로 구성된 물질들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는 동안, 당시 화학자들이 알고 있던 모든 원소들을 체계적으로 정 리하는 방법 또한 만들어지고 있었습니다. 바로 현대 화학을 상징하는 표인 “주기율표”죠. 다음 글에서는 이 주기율표에 관한 이야기를 살펴볼까 합니다.





  1. Alan J. Rocke,“Subatomic Speculations and the Origin of Structure Theory,” Ambix 30 (1): 13 (1983).

  2. 소련 과학자들은 이를 근거로 부틀레로프가 구조 이론의 창시자라고 보았으며, 그가 러시아 과학자였기 때문에 서구에서 그간 무시되어 왔다고 주장하였습니다. 하지만“화학 구조”라는 용어를 창안했다는 이유만으로 그가“창시자”라고 하는 것도 무리가 있습니다. 많은 과학사학자들은 그 시기에 여러 사람들이 구조 이론에 기여하였으며, 특히 케쿨 레의  탄소  사슬  개념이  없었다면  구조  이론이  나타날  수  없었다고  생각합니다.  A.  J.  Rocke,“Kekule,  Butlerov,  and  the  Historiography  of  the  Theory  of  Chemical Structure,” The British Journal for the History of Science 14 (1): 27-57 (1981) 참조.

  3. 이 내용은 다음 글들에서 큰 도움을 받았습니다. Alan J. Rocke,“The Theory of Chemical Structure and Its Applications” in  The Cambridge History of Science, Volume 5: The Modern Physical and Mathematical Sciences, ed. Mary Jo Nye (Cambridge, United Kingdom: Cambridge University Press, 2002); Hans- Werner Schuẗt, “Chemical Atomism and Chemical Classification” in The Cambridge History of Science, Volume 5: The Modern Physical and Mathematical Sciences, ed. Mary Jo Nye (Cambridge, United Kingdom:Cambridge University Press, 2002); N. W. Fisher, “Kekule and Organic Classification,” Ambix 21 (1): 29-52 (1974).

  4. 당시에는 염기도(basicity) 혹은 원자도(atomicity)라는 명칭이 더 널리 사용되었습니다.

  5.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표기법은 한동안 무시되어 왔다가 1880년대에“부활”하여 표준으로 자리잡습니다.

  6. A. Couper,“Sur une nouvelle theorie chimique,” Comptes rendus hebdomadaires des seances de l'Academie des sciences 55: 1157-1160 (1858); A. Crum Brown,“On the Theory of Isomeric Compounds,” Transactions of the Royal Society of Edinburgh 23 (3): 707-719 (1864).

  7. 케쿨레의 교과서에서  소시지 그림은 보조적인 역할을 수행합니다.  케쿨레는  전통적인  중괄호 표기법을  주로 사용하였고,  소시지 그림은 각주에 넣어서 이런 식으로 표현할 수   도 있음을 보여주는 데에 그칩니다. 케쿨레는 이 그림을 1856년부터 강의에 활용했습니다.

  8. Kekule,  Lehrbuch  der  organischen  Chemie,  Vol.  I  (1859);  J.  Loschmidt,  Chemische  Studien  (1861);  Hofmann,“On  the  combining  power  of  atoms,” Proceedings of the Royal Institution of Great Britain 4 : 401-430 (1865).

  9. Kekule, Lehrbuch der organischen Chemie, Vol. I (1859), p. 162.

  10. Alexander Crum Brown,“On the Theory of Isomeric Compound,” Transactions of the Royal Society of Edinburgh 23: 707-719 (1864), p. 708.

  11. Alan J. Rocke,“Hypothesis and Experiment in the Early Development of Kekule’s Benzene Theory,” Annals of Science 42: 355-381 (1985).

  12. “방향족(aromatic compounds)”이라는 표현은 원래 일반적으로 향기를 내는 물질을 가리키는 이름이었지만, 1855년 호프만이 벤젠 및 벤젠 유도체에 대해 이 이름을 사용한 이후 그와 같은 용법이 고착되었습니다.

  13. 현대 유기화학에서는 오르토(ortho), 메타(meta), 파라(para) 이성질체라고 부릅니다.

  14. Rocke (1985), pp. 355-356에서 재인용.

  15. Kekule, Lehrbuch der organischen Chemie, Vol. II (1866), pp. 371-3, 388-9.    

  16. Francis R. Japp,“Kekule Memorial Lecture,”J. Chem. Soc. Trans. 73: 97-138 (1898).

  17. Byron Vanderbilt,“Kekule's whirling snake: Fact or fiction,”J. Chem. Educ. 52 (11): 709 (1975).




최 정 모 Jeong-Mo Choi

•  한국과학기술원 화학과, 학사(2003.3 - 2011.8)

•  Harvard University 과학사학과, 석사(2011.9 - 2015.5, 지도교수 : Naomi Oreskes)

•  Harvard University 화학 및 화학생물학과, 박사 (2011.9-2016.5, 지도교수 : Eugene I. Shakhnovich)

•  Washington University in St. Louis, 박사 후 연구 원(2016.8 - 2019.4, 지도교수 : Rohit V. Pappu)

•  한국과학기술원 자연과학연구소, 연구 조교수(2019.6 - 2020.8)

•  부산대학교 화학과, 조교수(2020.9- 2024.8), 부교수(2024.9- 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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