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학사고로부터국민을 지키는 최전선,신뢰받는 화학안전의 리더십(2025년 12월호)
- 성완 박
- 12월 15일
- 8분 분량

『화학세계가 만난 화학자』 2025년 12월호에서는 화학물질안전원의 박봉균 원장님을 만나보았습니다.
화학물질안전원은 유해화학물질로부터 국민의 생명과 환경을 보호하기 위한 국가 전문기관으로, 화학사고 예방과 대 응, 제도 개선, 교육·훈련, 기술 기반 정보시스템 구축 등을 통해 국내 화학안전체계를 선도하고 있습니다.
박봉균 원장님은 서울대학교 화학과를 졸업하고, 제35회 기술고시에 합격하여 공직에 입문한 이후, 환경부에서 화학 안전과장, 화학물질정책과장 등을 역임하며 정책과 현장을 두루 경험해 오셨습니다. 특히 2002년 월드컵에 대비하 여 화학사고대응정보시스템(CARIS)을 구축하여 국가차원의 화학사고 대응 인프라를 마련한 바 있으며, 구미불산사 고를 계기로 대폭 강화된 화학물질관리법 시행 초기였던 2015년부터는 화학안전과장으로써 강화된 규제가 산업현 장에 맞게 작동할 수 있도록 불합리한 부분을 개선하는데 주력하였으며, 2021년 화학안전기획단장을 맡아 산업계, 시민사회 등과 함께 ‘화학안전정책포럼’이라는 거버넌스를 통해 제도적 전환을 이끈 핵심 인물이기도 합니다. 현재 원장님은 화학안전의 디지털 전환을 추진하며 AI 기반 위험 예측, VR 교육 시스템, 전문인력 양성 등을 통해 화학물 질안전원을 ‘화학안전 종합 서비스 기관’으로 확장해 나가고 있습니다. 이번 인터뷰에서는 공직자로서의 철학과 리더 십, 그리고 화학을 전공하는 후배들에게 전하는 안전의 가치에 대하여 진솔한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모더레이터: 이현수 교수(서강대학교 화학과)]

1. 원장님께서는 환경부에서 오랜 공직 경력을 쌓으신 뒤, 현재 화학물질안전원의 4대 원장으로 재직 중이십니다. 먼저 독자들을 위해 화학물질안전원은 어떤 기관인지, 그리고 이 기관이 수행하는 핵심 역할에 대해 소개해 주시겠습니까?
화학물질안전원은 2012년 9월 구미공단 불산 누출사고로 인해 설립되었습니다. 구미 불산사고는 작업자의 작은 실수에서 비롯되었습니다만, 역대 ‘최악의 화학사고’라 불리울 만큼 큰 피해가 발생한 사고였습니다. 인명피해가 23명, 농작물 200ha 이상, 4,000두 이상의 가축이 피해를 입었고, 피해보상과 복구를 위해 554억원의 정부 예산이 편성되었습니다. 당시 화학사고 주관부처가 모호하고, 대응기관들의 역량 부족으로 피해를 더 키웠다는 지적이 많았었습니다. 이러한 반성을 담아 정부는 화학물질안전관리 종합대책을 마련하였고, 2013년 9월 화학사고·테러의 예방·대비·대응을 총괄 지원하는 환경부 소속 전문기관으로 화학물질안전원 설립이 직제에 반영되었습니다.
화학물질안전원은 국내 유일의 화학안전 종합전문기관이라고 감히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우선 설립 취지상 화학사고 예방을 위한 제도적 기반을 마련하고, 사고 발생시 신속한 대응과 복구를 지원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기능입니다. 구체적으로는 유해물질별 취급기준 정비, 화학사고 예방관리 계획서 심사, 24시간 종합상황실 운영 및 사고 조사. 그리고 화학안전 전문인력의 양성과 교육·훈련을 책임을 지고 있습니다. 작년에는 국립환경과학원에서 수행하던 화학물질 등록·평가 기능과 살충제·살균제 등 살생물제 승인도 이관받아 화학물질과 제품의 개발, 생산, 유통, 사용 전과정에 걸친 안전관리체계 구축까지 기능이 확대되었습니다.
저희는 단순한 규제기관이 아니라 산업계·지자체·시민사회와 함께 협력하며 ‘예방중심의 화학안전 문화를 확산시키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국민 여러분이 보다 안심할 수 있는 화학안전 환경을 만들어가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2. 서울대 화학과 졸업 후 기술고시를 거쳐 환경부에서 근무해 오고 계시는데요. 공무원이 되신 특별한 이유가 있으신지, 대학에서 화학을 전공한 것이 어떤 도움이 되셨는지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사실 조금 솔직히 말씀드리면, 대학 다닐때는 화학을 그리 좋아하진 않았습니다. 그래서 공무원이 된 것인데, 공교롭게도 환경부에 와서 처음 배치된 부서가 화학물질과였습니다. 인사담당자에게 “저는 화학이 싫어서 공무원이 된 사람이니 다른 부서로 보내달라”고 말씀 드렸는데, 화학전공자가 귀하니 무조건 화학물질과로 가야 한다고 하더군요. 당시는 다이옥신 등 환경호르몬 이슈가 사회적으로 크게 부각되던 시기였고, 업무난이도도 높다 보니 화학물질과를 기피하는 분위기도 있었습니다. 그래서인지 화학물질과에서 5년이나 근무하게 되었는데, 통상 한 부서 보직 기간이 2년정도인 공무원 인사관행을 생각해 보면 꽤 이례적인 경험이었습니다.
돌이켜 보면 그 기간이 제 공직 방향을 결정지은 것 같습니다. 화학을 전공하며 쌓은 물질 특성, 반응성에 대한 이해는 현장의 위험 요인을 해석하고 관리기준을 설계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고, 이후에도 화학안전과장, 화학물질정책과장 등 관련 보직을 맡으며 환경부 경력의 절반 이상을 화학물질과 환경보건분야에서 일하게 되었습니다. 화학을 좋아하지 않아 공무원이 됐는데, 결국 공직에서 화학을 가장 오래 만나게 되었네요.
3. 과거 2002년 월드컵과 부산아시안게임을 앞두고 화학사고 대응체계를 만드셨다고 들었습니다. 이 당시 경험과 그 의미, 그리고 현재의 대응시스템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궁금합니다.
2001년 911 테러사건 이후 화학사고·테러 대응 업무를 맡게 되었어요. 당시 2002년 월드컵과 부산 아시안 게임을 앞두고 긴급히 테러대비 정부 종합대책이 만들어졌고, 이에 따라 환경부가 화학사고와 테러 대응체계를 주도적으로 정비해야 했습니다. 당시에는 화학사고에 대한 준비가 굉장히 취약했었습니다. 일례로 화학물질별로 방재방법이 다른데 이에 대한 정리도 안되어 있었고, 대응인력을 위한 화학보호복 조차 제대로 갖추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사업장에서는 도면도 제대로 확보되어 있지 않았었지요.
그래서 국립환경과학원에 화학물질안전관리센터를 만들고 그 분들과 밤을 세워가며 유해화학물질 다량 취급장을 조사하여 DB도 만들고, 화학물질사고대응정보시스템(CARIS)의 초기 버전을 만들어 대응기관들이 영향 범위을 확인하고 방제 정보를 받을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아울러 화학사고 방제요령을 정리하여 소방 등 현장 대응요원 교육까지 연결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그 때 함께 고생하셨던 직원들 중 몇 분은 지금 안전원에서 같이 근무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훨씬 더 정교하게 발전되었습니다만, 그 때의 문제의식과 방식은 현재의 체계에도 그대로 이어져 화학물질·취급시설DB 구축과 고도화, 사고시 물질정보·확산범위·방제요령·응급조치 정보를 즉각 제공하는 체계, 그리고 관계기관이 함께 움직을 수 있도록 돕는 정보 공유 방식으로 발전해 왔다고 생각합니다. 한 마디로 2002년을 준비하면서 만든 그 초기 시스템이 오늘날 화학사고 대응체계의 출발점이자 원형이었다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4. 화관법(화학물질관리법)의 개정과 현장 중심의 제도 개선에도 깊이 관여해 오셨습니다. 이 과정에서 가장 어려웠던 점, 그리고 제도적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느끼신 부분은 무엇이었는지 말씀 부탁드립니다.
2015년 화관법 전면 개정 시행 초기에 화학안전과장으로 근무했습니다. 당시 화관법은 구미 불산사고를 계기로 강화되었고 예상되는 모든 위험 경로를 2중, 3중으로 관리하도록 설계되기 때문에 기업들이 현장에서 큰 부담을 느끼는 것도 자연스러운 현상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관계부처·산업계·전문가들과 TF를 꾸리며 현장 점검과 간담회를 통해 다수의 개선 과제를 발굴해 불합리한 기준들을 정비하는 방식으로 접근했습니다. 기억을 더듬어 보면 당시 각종 업종별 협회, 단체들과 만나서 수렴한 건의사항이 100여 가지가 넘었고, 이 중 상당 부분을 개선했었죠.
그럼에도 언론과 일부 전문가들은 이미 개선된 내용을 충분히 인지하지 못한 채 개선 전 사례를 들면서, ‘화학법이 경제의 발목을 잡는다’는 비판을 반복하는 경우도 많았어요. 그래서 전문가들과 산업계를 만나 개선 내용을 설명하고 정확히 인식시키는 것도 과제였어요.
한편, 화관법의 ‘주인’이라고 할 수 있는 시민사회와 국회가 정부의 이행을 엄중히 지켜보는 상황이었어요. 자칫 정부가 자신들이 만든 법의 취지에 반해서 기업의 요구만을 듣고 기준을 완화한다고 비난할 수도 있었지요. 시민사회는 산업계가 안전은 도외시하고 경제만 따지며 정보를 숨긴다고 우려했고, 산업계는 시민사회가 현실은 무시한 채 과도한 요구와 일방적 비판을 한다고 느끼는 인식의 간극도 컸습니다. 안전에 대한 요구와 현실간에 균형을 맞추는 것이 큰 과제였고, 결국 합리적인 제도는 이해당사자간 신뢰를 형성하는 과정 위에서만 제대로 작동한다는 점을 분명히 깨달았습니다.

5. 합리적인 제도는 이해당사자간 신뢰 위에서 작동한다는 말씀이 굉장히 인상적입니다. 원장님께서는 2021년부터 화학안전포럼을 운영해 오셨는데 이해당사자간 신뢰구축과 무관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포럼에 대해서 소개해 주시고 포럼이 어떠한 성과를 가져왔는지 궁금합니다.
2016년에 산업계·시민사회·지자체가 함께 지역화학사고대비체계를 논의하는 지역 협의체를 수원과 여수에서 시범적으로 구성·운영한 적이 있습니다. 당시 이해당사자간 잦은 만남이 상호 이해와 신뢰를 높이고 제도의 효과를 끌어올린다는 점을 현장에서 체감했습니다. 그리고 이 경험은 제가 2021년 화학안전기획단장으로서 ‘화학안전정책포럼’을 이끌어 가는데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화학안전정책포럼은 개방성, 투명성, 참여의 원칙 아래 운영되는 거버넌스입니다. 관심이 있는 분들은 누구나 이해당사자로 등록할 수 있고, 정부·산업계·시민사회 대표로 구성된 기획단이 논의 의제를 설정합니다. 이후 기획단 준비 회의, 공개토론회, 열린 대화 등을 통해 폭넓게 의견을 수렴하며, 논의 과정과 결과를 홈페이지에 투명하게 공개하는 것이 포럼의 중요한 특징입니다.
화학안전정책포럼은 본질적으로 산업계의 규제 이해 어려움과 시민사회의 안전기대치 사이에 존재하는 인식격차를 줄이고, 안전취지를 흔들지 않으면서도 현장에서 잘 작동되는 합리적인 대안을 찾기 위해 출발했습니다. 서로를 ‘비판자’나 ‘규제 대상’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같은 테이블에서 현실과 안전의 균형점을 함께 설계하는 구조를 만들자는 것이지요.
포럼의 성과는 분명합니다. 포럼 논의와 합의를 바탕으로 2024년 화평법·화관법 제도 개선을 이끌어 냈습니다. 특히 화평법상 신규화학물질 등록기준을 0.1톤에서 1톤으로 상향한 부분은 기존 문법으로는 거의 불가능한 과제였습니다. 가습기 살균제 피해와 관련이 있는 기준이기 때문에 시민사회가 수용하기 매우 어려웠지만, 나중에는 오히려 시민사회가 국회를 설득하여 입법을 성사시켰다는 점은 포럼이 만들어낸 신뢰와 합의의 힘을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나아가 포럼을 통해 향후 10년의 화학안전 정책방향을 제시한 ‘전환전략 2033’이 마련된 것도 중요한 성과입니다. 화학안전정책포럼은 이해당사자 간의 합의에 기반한 거버넌스를 통해 성공적인 제도를 설계해 낸 대표적인 사례이고, 앞으로도 주요한 화학안전제도의 변화는 포럼의 논의를 통해서 이루어질 것입니다.
6. 최근 VR 기반 훈련 시스템 도입, AI 기반 화학물질 위험 예측 등 디지털 전환과 기술 고도화에 대한 노력이 돋보입니다. 이러한 변화는 어떻게 시작되었고,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확장할 계획인가요?
저희 안전원이 가장 자랑하는 것 중의 하나가 VR(가상현실) 기반 체험교육시스템입니다. 다양한 화학사고·테러 상황을 가상현실로 재현해 대응과정을 실제처럼 훈련할 수 있다 보니 소방·군·해경·지자체 등 대응기관에서 만족도가 높고, 해외기관에서도 많이 방문하시곤 합니다. 다만, VR실에서 훈련해야하는 공간적 제약으로 많은 사람을 교육하는 데는 한계가 있습니다. 그래서 안전원을 벗어나서도 훈련이 가능하도록 이동형 VR을 개발해 작년부터 활용하고 있으며, 앞으로는 증강현실(AR)과 결합해 실제 플랜트 현장에서도 실감나게 훈련할 수 있도록 고도화할 계획입니다. 또한, 개인이 게임처럼 가상의 NPC(Non-Player Character)와 상호작용하며 혼자서도 팀워크를 익힐 수 있는 훈련, 더 나아가 여러 기관이 원격으로 동시 접속해 합동 훈련을 할 수 있는 언제 어디서나 훈련가능한 ‘유비쿼터스 체험교육 시스템’을 갖추는 것이 목표입니다.
AI 기반 화학위험성 예측은 크게 두 축으로 추진하고 있습니다. 하나는 AI기반 화학물질 유·위해성 예측입니다. 동물시험 대체에 대한 사회적 요구가 커지는 상황에서 AI는 유해성능 예측·평가하는 대안적 방법으로 주목 받고 있습니다. 특히 많은 시험비용을 투입하기 어려운 소량의 신규물질에 대해서 효율적인 방법이고, 나아가 더 안전한 대체물질 개발에도 실질적으로 기여할 수 있습니다.
다른 하나는 공정위험성 예측입니다. 1단계 목표는 도면을 스캔하면 AI가 설계상 오류와 고위험 구간을 자동으로 찾아내고 위험저감 방안까지 제시해 주는 것으로 현재 NIPA(한국정보통신산업진흥원) 과제로 추진하고 있습니다. 2단계는 여기서 할 걸음 더 나아가 AI가 목적에 맞는 공정 설계를 제안하고 시뮬레이션을 통해 이를 검증하여 공정을 최적화하는 것까지 나아가는 것입니다.

7. 최근 화학물질안전원은 기관 평가에서 3년 연속 S등급을 받는 등 안정성과 전문성을 모두 인정받고 있습니다. 기관장으로서 조직을 이끄시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리더십 철학이 있다면 말씀 부탁드립니다.
저희 안전원이 2018년 책임운영기관으로 지정되어 행정안전부로부터 기관평가를 받아 왔는데, 제가 부임한 2022년 평가부터 3년 연속 S등급을 받았습니다. 이러한 성과는 무엇보다 우리 직원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정말 치열하게 노력해 준 결과라고 생각하여 기관장으로서 늘 고맙게 생각합니다.
저희 안전원이 우수한 평가를 받을 수 있었던 데에는 ‘국민이 신뢰하는 화학안전 선도기관’이라는 비전의 달성을 위해 각계 이해당사자들과 소통을 통해 신뢰를 구축하고 수요자의 니즈를 충족하는데 주력한 결과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제가 특히 강조해 온 방향은 ‘수요자 니즈를 정확히 충족하는 현장형 전문기관’으로 진화였습니다. 예를 들어 반도체나 조선업 맞춤형 시설기준 마련처럼 업종 특성과 현실을 반영한 제도 설계에 집중했고, 교육생 만족도 향상처럼 서비스 품질을 높이는 데도 역량을 모았습니다.
또 하나는 소통과 협력의 구조를 제도적으로 키우는 것이었습니다. 앞서 화학안전정책포럼을 말씀드렸습니다만, 지역적 차원에서도 거버넌스의 작동은 지역의 화학사고 위험을 줄이면서도 실제 사고가 발생했을 때도 신속한 수습과 복구 그리고 합리적인 재발 방지 대책을 만드는데 매우 효과적으로 작동합니다. 우리 안전원은 2026년까지 전국 70개 중점관리지역의 거버넌스 활성도를 B등급 이상 높이는 것을 목표로 지자체 기술지원, 시민사회의 역량강화를 위한 교육 프로그램 제공 등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8. 2024년 12월 화학물질안전원과 대한화학회가 상호협력 업무협약(MOU)를 체결한 바 있습니다. 협약 체결의 이유와 안전원이 기대하시는 성과는 어떤 것인지 말씀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간 저희 기후에너지환경부의 화학안전업무는 주로 유해성과 안전관점에서 추진되다 보니, 독성학회나 안전분야의 학회들과의 교류는 있었지만, 정작 ‘화학’ 전반을 대표하는 대한화학회와의 협력은 미흡했던 것이 사실입니다. 한편, 최근 화학사고와 관련하여 언론을 통해 부정확한 정보가 확산되는 사례도 있어 국민 불안이 과도하게 커지거나 현장 대응에 혼선이 생길 우려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대한화학회와 ‘화학사고 사고 발생 시 미디어 대응역량 강화와 미지물질 분석 등 전문기술 협력’을 중심으로 실질적인 협력을 추진하기로 합의하고 관련사업도 진행하고 있습니다.
기대하는 성과는 분명합니다. 대한화학회의 폭 넓은 화학전문성과 안전원의 현장·제도 경험이 결합되면, 사고시 과학적이고 정확한 정보를 제공할 수 있고, 화학사고 대응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한 단계 끌어올리는 계기가 될 것입니다. 또한 MOU는 양 기관 간 협력의 출발점으로 사고대응 뿐만아니라 앞으로 친환경 녹색화학 육성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9. 일반 시민들뿐만 아니라 화학을 전공한 전문가들도 ‘화학안전’이라는 분야에 대해 막연한 인식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전문가로서 보시기에 화학 전공자들이 꼭 이해하고 있어야 할 안전의 기본 개념이나 태도가 있다면 무엇일까요?
최근 실험실 안전 사고가 증가하고 있습니다. 이로 인해 학생들이나 연구자들이 다치는 경우를 볼 때면 안타까운 마음이 듭니다. 사고는 드문 예외가 아니라 시스템의 빈틈에서 반복적으로 발생합니다. 대부분의 사고는 몰라서가 아니라 알고도 놓친 작은 관리의 결함이 누적되어 생깁니다. 그래서 전공자일수록 현장은 이 정도면 되겠지 같은 감각적 판단보다는 매뉴얼에 기반한 시스템적 사고가 중요합니다.
사실 기본을 지키는 데서 많은 사고의 예방이 가능합니다. 예를 들어 실험실 안전의 기본은 사전에 물질별 위험성을 파악하는 것이 출발입니다. 대학 다닐 때 실험 노트에 실험물질의 물성과 유해성 정보를 찾아서 기입하는 것을 굉장히 귀찮아 했는데 안전업무를 담당해 보니 그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항상 체감합니다. 물질별 위험성을 파악하고 노출 위험을 줄이는 설비와 개인보호장구를 이용하는 것, 마지막으로 물질별 위험성을 고려하여 폐수통을 따로 두고 버리는 것도 중요합니다. 소재 연구를 하는 실험실에서 종종 폐수통에 섞어 버리지 말아야 물질들을 섞어서 폭발이나 유해 가스가 발생하기도 합니다. 화학과 실험실들에서 폐기사고는 잘 나지 않는데 아마도 물질별 반응성에 대해 충분히 인지하고 관리하기 때문에 그런 것 같습니다. 결국 안전은 부가적인 것이 아니라 전문성의 증명이라는 인식 하에 기본을 지키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10. 마지막으로 화학을 전공하는 학생들과 연구자, 산업 현장의 실무자들에게 ‘화학안전’이라는 키워드가 왜 중요한지, 그리고 앞으로 이 분야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보시는지 조언 부탁드립니다.
화학안전이 중요한 것은 사고 발생 시 인명피해나 환경·재산상 피해를 발생시키기도 하지만, 경제적 차원에서는 기업의 경쟁력과 직결되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효율이 뛰어난 기술도 안전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시장에 통용될 수가 없습니다. 이에 대한 사례로, 최근 2차전지업계에서는 효율이 높은 차세대 소재를 상용화하거나, 주요 첨가제 등을 국산화하려고 노력하는 중에 새로 지은 공장에서 사고가 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설계 단계에서 꼼꼼히 점검했더라면 막을 수가 있었던 사고로 인해 시설가동이 중단되고 납품이 지연됨에 따라 수백억원, 수천억원의 손실이 발생하기도 합니다.
사고 난 기업들을 방문해 보면 사고 전후에 기업의 자세가 얼마나 다른지 체감할 수 있습니다. 사고 전에는 어떻게 하면 법령에 위반되지 않을 것인지가 기준인데 사고 후 기업은 법령이 아니라 실질적 안전의 관점에서 바라보게 됩니다. 제가 방문한 사고 경험 기업들은 “법에는 없지만 안전을 위해 이것까지 했습니다”라고 자량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화학안전’은 불편한 옷이 아니라, 기업의 경쟁력과 지속가능성에 직결된다는 인식, 안전은 비용이 아니라 전문성의 증명이라는 인식 아래 사후가 아니라 사전에 안전을 체크하고 개선하는 문화가 확산되기를 기대합니다. 저희 안전원도 규제기관으로서가 아니라 서비스 기관으로 ‘첨단산업 사전위해성 컨설팅’과 같은 기업 안전경쟁력 강화를 위한 서비스를 확대해 갈 계획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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