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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학을 넘어 초 융합적 연구를 지향


<화학세계가 만난 화학자>에서는 대한민국 화학계에 공헌한 화학자와의 인터뷰를 소개해 드리고 있습니다.

이번 호에는 제131회 대한화학회 학술발표회에서 한만정 학술상을 수상하신 홍창섭 교수님(고려대학교 화학과)을 모셨습니다. 교수님께서는 다공성 유기/무기분자소재를 디자인 및 합성하여 에너지와 환경 분야에서 중요한 기체들의 저장과 분리에 응용하는 연구를 진행하고 계십니다. 이에 교수님의 연구 및 그 외 다양한 면모를 소개합니다.


[모더레이터: 한순규 교수 (KAIST 화학과)]



1. 『화학세계』 독자에는 청소년 및 중고등학교 선생님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교수님께서는 중고등학교 학창시절부터 화학에 관심이 많으셨나요? 교수님께서 화학을 전공하시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었나요?


청소년 시절 장래 희망이 자주 바뀌었습니다. 초등학생 때는 나폴레옹 전서를 읽고 군인이 되고 싶었고 중학생 때는 비스마르크 전기에 감동하여 외교관이 되고 싶었습니다. 그러다가 고등학교 때에 일본 학자가 쓴 초전도체 서적을 읽고 과학자가 되어야겠다고 결심했습니다. 특히 초전도체처럼 신소재를 연구하는 과학자가 되고 싶었습 니다. 그 후 입학한 KAIST에서는 무학과제를 운영하고 있었기 때문에 기초 교양과목을 수강하고 나서 물질을 다루는 화학과를 자연스럽게 선택하게 되었습니다.



2. 교수님께서는 KAIST 화학과에서 학사, 석사, 박사학위를 받으시고, 이후 한국표준과학연구원에서 3년간 근무하셨고, 이후 UC Berkeley 화학과에서 포닥을 거치시고 현재의 고려대학교로 2003년에 부임하셨습니다. 그 과정에서 다양한 스승에게서 사사하셨는데, 교수님을 지도하신 분들에 대한 소개를 해주실 수 있을까요? 그 분들은 현재의 교수님을 있게 한데 어떠한 영향을 끼쳤나요?


KAIST 대학원 지도교수님은 도영규 교수님입니다. 교수님께 학부 무기 화학 강의를 수강했을 때 무기화학이란 학문이 유기화학에 비해 제대로 정립되지 않은 것 같아 매료되었고 전통적인 무기합성에 대해 공부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그 계기로 도영규 교수님 실험실에 석사과정생으로 합류하게 되었습니다. 교수님은 대학원 시절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자기주도적 연구를 할 수 있는 실험실 환경을 만들어 주셨습니다. 그리고 언제나 “자신의 기준을 높여서 연구하라.”라고 하셨는데 이 조언이 연구를 진행하는데 에너지가 되었습니다. 표준연구소에서 포닥을 할 때 현재 서강대 화학과에 계시는 허남회 교수님이 지도해 주셨습니다. 솔선수범하시며 연구하시는 모습은 저에게 연구자의 자세에 대해 배움을 주셨습니다. 그 후 UC Berkeley 화학과 Jeffrey Long 교수님 그룹에서 포닥을 시작하였습니다.

온화한 성격을 가지고 계시면서 연구에 대해 토론하는 것을 좋아하셨는데, 제가 교수로서 독립적인 실험실을 운영하며 대학원생들과 연구에 관해 토론하는 법을 그때 배웠습니다.


박사과정 때 일본 나고야대학에서 개최된 심포지엄 참석 후 나고야성에서 도영규 교수님과 함께



3. 『화학세계』의 대학원 독자가 궁금해할 수 있는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교수님의 대학원 시절은 어떠 했나요? 특별히 기억나는 사건이나 경험 혹은 에피소드가 있나요?


연구실 생활을 할 때 연구계획을 세우고 점검하는 루틴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런 루틴은 연구를 자기 주도적으로 수행하는 데 도움이 되었습니다. 그 당시 분자자성체 연구를 수행하고 있었는데 국내 전문가가 없어서 어려움을 겪었고 논문 투고 후 리비전 과정에서 리뷰어 코멘트를 보고 배우던 때였습니다. 그때 이 분야 대가 Olivier Kahn 교수님을 학과에서 초청하였습니다. 제가 한 연구에 대해 그 교수님과 면담을 했을 때 대가가 가진 남다른 안목을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4. 지난 춘계 대한화학회에서 진행된 한만정 학술상 수상강연에서 교수님께서는 다공성 MOF(Metal Organic Framework)의 디자인을 통해서 효율적으로 이산화탄소 혹은 암모니아를 흡착하는 재료의 개발, 논리적인 분자적 디자인에 기반한 다공성 유기 고분자 기반 양성자 전도성 전해질 연구, 그리고 빛 존재하에서 설파머스터드를 산화시켜 해독할 수 있는 다공성 유기 고분자 물질의 개발에 대해서 발표하셨습니다. 화학과 학부생 정도가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교수님의 주된 연구 관심사를 간략히 설명해주실 수 있을까요?


제가 관심을 두고 있는 연구분야는 다공성 물질의 설계와 구조-물성 상관성 규명과 응용성 연구입니다. 대학원 시절만 하더라도 무기화학 분야의 주 관심사는 새로운 물질을 합성하고 구조를 분석하는 데 초점이 있었습니다. 그 후에는 구조와 물성에 대한 이해가 동시에 중요해졌습니다. 현재는 단순한 물성 이해를 넘어 구조 변화를 통해 물성을 조절하고 그 특성을 분자적 수준에서 탐구하는 연구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습니다. 다양한 다공성 물질들이 알려져 있으며 그중 금속-유기 골격체는 무기화학자들의 집중적인 관심을 받아왔습니다. 저의 연구 관심사는 튼튼한 금속-유기 골격체의 후합성적 변형을 통해 다양한 성질을 구현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방법을 활용하면 만능 소재 플랫폼을 만들 수 있을 거로 생각합니다. 이미 알고 있는 구조를 이용하여 원하는 성질을 도입할 수 있으므로 성능을 설계하고 극대화할 수 있는 전략이 가능합니다. 또한 후합성적 변형법을 탄소-탄소 공유결합 기반 튼튼한 다공성 유기 고분자에 적용해서 맞춤형 성능 구현 연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이를 통해 에너지/환경 분야에서 대두한 한계 돌파형 연구를 중점적으로 추진하고 있습니다.


제131회 대한화학회 학술발표회에서 한만정학술상 수상 기념 강연 모습



5. 교수님께서 지금 주력으로 연구하고 계시는 다공성 물질에 관심을 갖게 되신 계기가 무엇인가요?


고려대 화학과에 임용된 후에 분자자성체 연구에 매진하였습니다. 이 연구에서는 새로운 물질을 합성한 후에 구조분석과 자기적 성질을 조사하는 게 핵심입니다. 구조분석은 실험실에서 수행할 수 있었지만 자성 측정을 위해 SQUID가 필요했습니다. 다행히 고대 내에 위치한 KBSI에 SQUID가 있어 주말마다 사용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장비가 고장이 난 후에 자성 측정이 어렵게 되었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연구 환경 변화가 실험실에 구축된 장비로 실험을 마무리할 수 연구분야를 찾게 된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 당시 금속-유기 골격체 연구가 무기화학 분야에서 크게 주목을 받고 있었고 국내 몇몇 그룹에서도 해당 연구를 세계적 수준으로 진행하고 있었습니다. 금속-유기 골격체의 기공을 이용한 응용분야가 매우 광범위하다는 점이 저에게는 매력적으로 다가 왔고 본격적인 연구를 시작하게 한 또 다른 계기가 되었습니다.



6. 교수님께서는 수많은 논문을 출판하셨습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기억에 남는 논문이 어떤 것인가요? 가장 기억에 남는 이유가 무엇인가요?


금속-유기 골격체 관련 연구를 시작하면서 전문지식이 없어서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논문들을 정독하면서 다공성 물질 분석법을 하나하나 배워 나갔습니다. 특히 한양대에 계신 전형필 교수님의 논문들이 큰 도움을 주었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란탄족 금속 기반 골격체를 합성하고 구조분석과 흡착특성 연구를 마칠 수 있었고, 그 결과를 2010년 『Inorganic Chemistry』(https://doi.org/10.1021/ic902182x)에 게재할 수 있었습니다. 이는 금속-유기 골격체 관련 실험실 최초의 논문이어서 저에게는 특별한 의미가 있습니다.

『Inorganic Chemistry』에 나온 논문 그래픽 초록



7. 교수님께서는 학창시절(중고등학교), 학부시절, 대학원시절, 포닥시절, 신임교수 시절, 현재 중 가장 스 트레스가 많았던 시기가 언제였나요? 또 반대로 가장 행복한 시기는 언제였나요?


박사 학위 후에 한국표준과학연구원에서 3년간 포닥 생활을 했습니다. 허남회 박사님이 창의연구단을 꾸리고 계셨는데 매우 자유롭고 개방적인 분위기를 만들어 주셨습니다. 연구원들 간에 족구도 하고 그 당시 유행했던 DDR을 랩 컴퓨터에 연결해서 점심식사 후에 운동 삼아 하곤 했습니다. 그리고 날이 좋으면 계룡산 자락에 있는 분위기 좋은 카페에 가서 바쁜 가운데 여유를 즐기기도 했습니다. 이때가 즐거웠던 시절로 떠오릅니다. 그 후에 UC Berkeley에서 포닥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Jeff Long 교수님께서 연구테마로 형상 이방성 자성 나노 클러스터 화합물 개발 미션을 주셨는데 제가 생각했던 주제가 아니어서 첫 미팅 후 매우 당황했던 기억이 납니다. 연구 진행이 더디고 잘 안되어 고민이 많았습니다. 그때 Peidong Yang 그룹에 포닥으로 온 현재 카이스트 화학과에 있는 송현준 교수가 논문을 찾아 주면서 힘내라고 응원해 주기도 했습니다. 그 시절이 가장 스트레스를 받았던 시기였습니다.



8. 교수님께서는 많은 후학을 배출하셨고 그들은 지금 산업계 학계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약 중입니다. 훌륭한 많은 제자가 있지만, 특별히 기억나는 제자가 있으신가요? 특별히 기억나는 이유가 무엇인가요? 구체적인 일화를 소개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금속-유기 골격체 연구를 성공적으로 시작하는데 크게 기여한 이우람 박사(한림대학교 화학과), 분자자성체 연구의 전성기를 이룬 임광수 박사(한국화학융합시험연구원), 연구과제 수주 일등공신인 송정화 박사(한라대학교 교양과정부), 다공성 유기 고분자 연구의 기틀을 마련한 강동원 박사(인하대학교 화학과), 그리고 MOF 대량 합성의 기반을 다진 김정은(삼성 디스플레이) 등을 포함하여 제 실험실을 거쳐 간 모든 제자에게 감사한 마음이 있습 니다. 현재 각자가 처한 위치에서 제 역할을 멋지게 해내는 모습들이 참 대견하고 자랑스럽습니다.


스승의 날을 맞이하여 제자들의 방문: (왼쪽부터)

김정은, 송정화 박사, 임광수 박사, 강동원 박사, 홍창섭 교수, 이우람 박사



9. 사회 변화의 속도가 날로 빨라지고 있는 요즘입니다. 화학은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는 사회에서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요? 화학자는 어디에 주안점을 두고 연구 및 교육을 해야 할까요?


인류가 직면한 문제 중의 하나로 급격한 기후 변화를 야기하는 지구온난화는 이제까지 경험하지 못했던 자연 재해를 초래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과학계에서는 에너지와 환경 분야 연구의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습니다. 화학은 분자 수준에서 자연현상을 들여다보는 학문이기 때문에 원천소재 개발, 반응 메커니즘 이해, 특성 최적화 등 신물질에 대한 기초적인 이해를 기반하여 과학 난제를 해결하는 데 선도적이고 주도적인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또한 연구와 연계하여 축적된 과학지식이 어떻게 사회 문제 해결에 기여 하는지에 대한 콘텐츠를 개발하여 교육에 포함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10. 지금 이 시간에도 화학연구를 열심히 해나가는 신진/중견 화학 연구자에게 조언의 말씀을 해주실 수 있을까요?


요즈음 화학저널에 게재된 연구논문을 보면 기초뿐만 아니라 응용 연구도 상당히 강화되고 있는 추세입니다. 아무리 개발한 물질이 흥미 있다고 해도 응용성이 없으면 주목도가 떨어지고 있습니다. 따라서 연구목표가 인류의 삶과 관련된 산업·사회·과학 문제와 밀접하면 가시성이 높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이를 위해 화학이라는 울타리에만 머물지 말고 그 경계를 넘어 초 융합적 연구를 지향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다양한 분야 전문가 그룹과 협력연구를 적극적으로 추진하길 추천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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