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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인 실험을 넘어 연구 경험으로- 커피 한 잔에서 시작된 물리화학실험 자율탐구 - (2026년 9월호)

8월 31일
5분 분량

장혜진 | 강원대학교 과학교육학부 부교수, hjchang@kangwon.ac.kr 


서 론 


‘물리화학실험’ 수업에서 무엇을 남길 것인가 


학부 실험 수업에서는 이론과 실제가 만난다. 학생들은 용액을 만들고, 장비를 조작하며, 측정값을 그래프로 나타낸다. 이론값과 실험값이 다르면 오차의 원인을 찾는다. 잘 설계된 확인 실험은 추상적인 화학 개념을 실제 데이터와 연결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러나 실험의 목적과 절차, 분석식, 예상 결과까지 모두 주어진다면 학생들이 직접 내려야 할 판단은 많지 않다. 실험이 끝난 뒤 데이터는 남지만, 과학이 어떤 질문에서 시작되고 어떻게 수정되는지에 대한 경험은 충분히 남지 않을 수 있다. 

실제 연구에서는 흥미로운 현상을 측정 가능한 질문으로 좁히고, 질문에 적합한 장비와 분석 방법을 선택해야 한다. 예상과 다른 결과가 나오면 실험을 실패로 처리하기보다 가설과 측정법, 데이터의 의미를 다시 살펴야 한다. 때로는 하고 싶은 실험을 늘리는 것보다 하지 않을 실험을 정하는 일이 더 중요하다. 

본 글에서는 사범대 과학교육학부 화학교육전공 3학년을 대상으로 하는 물리화학실험 수업에서 자율탐구 프로젝트로 운영한 사례를 소개한다. 학생들이 일상적·사회적 맥락의 현상을 전공 수준의 과학적 연구 문제로 전환하고, 연구 질문 설정에서 실험 설계, 측정, 데이터 분석, 피드백과 과학적 소통에 이르는 과정을 경험하도록 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였다. 

수업 대상은 예비 화학교사였지만 이러한 접근의 의미는 교사교육에만 한정되지 않는다. 다만 예비교사에게는 자신이 학습자의 위치에서 탐구의 막막함과 시행착오를 경험한다는 의미가 더해진다. 탐구를 한 번 수행했다고 탐구 지도 역량이 자동으로 생기는 것은 아니다. 다만 길을 잃어 본 사람은 학생이 왜 그 자리에서 멈추었는지 조금 더 잘 이해할 가능성이 있을 것이다. 


본 론 


1. 일상적 소재를 전공 수준의 연구 대상으로 


중고등학교 과학과 교육과정에서는 생활 속 과학을 강조하지만, 대학의 교육과정은 꼭 그렇지 않은 것 같다. 그러나 소재의 친숙성과 연구의 엄밀성은 반드시 같은 축에 있지 않다. 탐구의 수준은 소재가 얼마나 낯선가보다 질문을 어떻게 정의하고, 어떤 방법으로 증거를 만들며, 결과를 어디까지 해석하는가에 의해 결정된다. 

2025학년도에는 환경 문제를 맥락으로 ‘라만 분광학과 인공지능을 활용한 플라스틱 분류 프로젝트’를 운영하였다. 학생들은 관련 문제와 분석 방법에 대한 환경공학과, 수학과 두 분 교수님의 특강을 한 차례씩 들었고, 교수자가 제공한 가이드를 바탕으로 조별 프로젝트를 설계하였다. 무엇을 왜, 그리고 어떻게 분류할지 고민하고, 플라스틱 시료의 라만 스펙트럼을 직접 측정하고, 기저선 제거와 정규화 등의 전처리를 수행한 뒤 기계학습 분류 모델을 적용하였다. 분류 정확도뿐 아니라 오분류가 분자구조, 스펙트럼의 유사성 또는 데이터 처리와 어떻게 관련될 수 있는지도 해석하였다. 

2026학년도에는 ‘커피의 화학: 비평형 시스템의 물리화학적 이해’를 공통 주제로 제시하였다. 커피 추출은 단순히 뜨거운 물에 성분을 녹이는 과정이 아니다. 물이 다공성 고체에 침투하고, 성분이 입자 내부와 표면에서 이동·용해되며, 용액 속에서 확산과 혼합이 일어나는 시간 의존적 물질전달 과정이다. 크레마와 기포, 액적의 젖음성과 건조 얼룩까지 고려하면 계면현상과 콜로이드 동역학도 등장한다. 커피 한 잔에 물리화학 교과서의 여러 장이 꽤 촘촘히 들어 있는 셈이다. 

학생들에게 소재와 범위를 구체적으로 제공했지만 각 조가 연구 질문, 가설, 변인, 시료, 측정 물리량, 측정 방법과 시점을 직접 설계하도록 하였다. 무엇을 측정했는가보다 왜 그것을 측정했는가를 설명하게 하였다. 직접 측정한 값과 그로부터 추론한 화학적 의미도 구분하도록 요구하였다. 

두 자율탐구 프로젝트는 서로 다른 성격의 탐구에 맞게 안내의 초점을 달리한 사례이다. 플라스틱 분류 프로젝트에서는 낯선 분광·데이터 분석 방법을 수행할 수 있도록 연구 경로를 비교적 구체적으로 제시하였다. 커피의 화학 프로젝트에서는 친숙한 현상이 단순 비교나 지나치게 넓은 질문에 머물지 않도록 연구 설계의 기준을 구체화되었다. 자율탐구에서 교수자가 내려야 하는 중요한 결정 중 하나는 무엇을 안내하고 무엇을 학생의 판단에 맡길 것인가였다. 


2. 계획하고, 실행하고, 다시 고치기 


이제는 ‘커피의 화학’ 프로젝트를 어떻게 진행했는지 더 구체적으로 풀어보려 한다. 한 학기 15주 수업 중에 자율탐구에 공식적으로 배정한 시간은 최종 발표를 포함해 10-13주 차, 총 네 차례였다. 하지만 조별 프로젝트 설계·수행에 있어 교수자가 얼마나 세심한 가이드와 피드백을 제공하느냐는 전체 자율탐구의 성패를 가르는 중요한 요인이다. 7주 차 정도 되었을 때 미리 프로젝트의 취지와 공통 소재를 소개했고, 학생들은 조별로 관심 현상을 탐색하고 연구 질문의 초안을 만들었다. 이후 계획서를 제출하면 교수자는 질문의 범위, 변인, 측정 방법과 필요한 재료를 검토하여 피드백을 제공하였다. 그리고 수정 계획서까지 제출받은 뒤 9주차에 재료 목록을 수합해 주문하였다. 10, 11주차 수업 시간에는 조별 실험을 진행하였고, 필요하다면 학생들이 별도의 실험과 분석을 하였다. 11주차 수업 직후에 중간 결과 보고서를 받아서 교수자 피드백을 주었고, 12주차 실험을 한 후에 포스터 초안을 받아서 피드백하고, 13주차에는 보완된 결과를 포스터로 발표하였다. 2학년 후배들도 와서 발표를 듣고 질문을 했다. 

커피 프로젝트는 다음의 순환 구조로 운영하였다. 


초기 계획에 대한 피드백에서는 질문과 증거의 연결을 점검하였다. 연구 질문이 실제로 측정 가능한지, 주어진 시간 내에 연구가 가능한지, 독립변인이 어떤 물리화학적 요인을 변화시키는지, 선택한 장비가 질문에 적합한지, 반복 측정과 바탕값 또는 검량선이 필요한지를 함께 검토하였다. 

중간 결과 단계에서는 학생들이 수집한 데이터가 연구 질문에 답하기에 충분한가를 살폈다. 관찰 사진을 어떻게 정량 자료로 바꿀 것인지, 센서값을 어느 범위까지 해석할 것인지, 결론이 실제 데이터보다 앞서 달리고 있지는 않은지를 확인하였다. 

연구 계획은 실험대 위에 올라가는 순간 조금 다른 모습이 된다. 반복되는 실패와 함께 분쇄 원두는 생각보다 빠르게 줄어들고, 크레마는 연구자의 일정에 맞춰 기다려 주지 않으며, 센서는 가설을 존중해 주지 않는다. 학생들은 계획대로 되지 않았다는 사실보다 무엇을 수정하고 무엇을 포기할 것인지를 판단해야 했다. 피드백은 결과를 정답에 가깝게 고치는 과정이 아니라, 질문–측정–데이터–해석 사이의 연결을 다시 맞추는 과정이었다. 


커피라는 공통 소재가 주어졌지만 다섯 조의 연구는 동일한 소재가 하나의 질문이나 실험 절차로 수렴하지 않음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표 1]과 같이 취향과 경험에 따라 학생들은 같은 커피를 대상으로 하면서도 반응속도론, 계면현상, 비평형 물질전달, 진동분광학, 콜로이드와 빛 산란이라는 서로 다른 면을 보고 있었다. 자외선-가시광선 분광광도계, 라만 분광기, 센서, 영상 분석, 크로마토그래피, 관능평가와 프로그래밍을 연구 질문에 맞게 조합하였다. 학생들이 AI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면서, 이전보다 더욱 풍부한 연구가 가능하다는 점도 확인하였다. 



결 론 


탐구자가 되어본다는 것 


이 사례는 2018년에 강원대에 부임한 이후에 매년 운영해온 물리화학실험 수업 자율탐구 프로젝트의 최신판이다. 그간 교육과정 연계 실험 개발, 센서 기반 반응속도론 연구 등 서로 다른 주제를 시도해 왔으며, 같은 프로젝트를 반복한 적이 없을 만큼 매년 고민이 이어졌다. 과학 교사들의 탐구 지도 능력은 점차 강조되고 있지만, 예비교사가 충분한 연구 경험을 쌓기는 쉽지 않다. 이 프로젝트는 그러한 간극을 어떻게 줄일 것인가를 고민하며 시행착오를 거쳐 온 과정의 일부이며, 그 시행착오는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대학원생 조교의 도움을 받기 어려운 환경에서 언제나 품이 많이 드는 작업이고, 학생들에게도 쉽지 않은 과정이다. 

그럼에도 이 과정을 포기할 수 없었던 이유를 스스로 물었을 때, 누군가의 성장을 목격했기 때문이라고 답하는 것이 적절할까? 질문을 예리하게 만드는 어려움, 예상과 다른 결과, 장비의 한계, 교수자의 피드백을 학습자의 위치에서 경험한 일은 향후 학생 탐구에서 필요한 지원의 성격을 이해하는 기반이 될 수 있을 것이라 믿고 싶다. 다만 이 수업이 탐구 지도 역량을 실제로 향상시켰는지는 별도의 자료와 분석을 통해 확인해야 한다. 현재로서는 그러한 가능성을 바탕으로 설계한 수업 사례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학생들의 연구가 모두 완전한 결론에 도달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결과가 예상과 다르거나 특정 성분을 확인하지 못했더라도, 무엇을 측정했고 어디까지 말할 수 있는지를 다시 생각했다면 중요한 연구 경험은 남는다. 연구는 기대한 답을 언제나 얻는 활동이라기보다, 얻은 자료가 허용하는 답의 범위를 판단하는 활동에 가깝기 때문이다. 

커피 한 잔에서 학생들은 반응속도론, 물질전달, 계면화학, 콜로이드, 분광학, 크로마토그래피와 프로그래밍을 발견하였다. 누군가는 맛을 모델링했고, 누군가는 커피 방울이 마른 자리를 분석했으며, 누군가는 사라지는 거품을 데이터로 바꾸었다. 커피 한 잔에서 시작된 탐구가 질문의 답을 모두 찾아낸 것은 아니다. 그러나 학생들은 일상의 현상을 물리화학적 질문으로 바꾸고, 그 답을 데이터에서 찾아가는 과정을 경험하였다. 이러한 경험은 앞으로 또 다른 연구를 수행하고, 나아가 학생들의 탐구를 지도하는 출발점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장혜진 Hyejin Chang


• 서울대학교 화학교육과, 학사 (2001.3-2005.8) 

• 서울특별시 교육청 교사(2006.3-2018.2) 

• 서울대학교 과학교육과 박사 (2011.3-2016.8, 지도교수: 정대홍) 

• 강원대학교 과학교육학부(화학교육전공) 조교수(2018.3-2023.2) 

• 강원대학교 과학교육학부(화학교육전공) 부교수(2023.3-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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