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월호 <화학세계가 만난 화학자>에서는 현재 ETH 재료과에 재직 중이신 최태림 교수님을 모셨습니다. 최 교수님께서는 2004년부터 4년간 제일모직에 근무하였고, 2008년부터 서울대학교 화학부에서 14년간 재직 후, 2022년부 터 유럽 최고의 이공계 대학으로 꼽히는 ETH로 옮겨 근무하고 계십니다. 최 교수님은 고분자 화학에서의 새로운 합성 방법론을 개발하고 이를 실질적인 응용으로 연결하는 연구를 통해 우수한 연구성과들을 발표하여, 젊은과학자상 (대통령상)과 한성과학상 등을 수상하였고, 현재 한국차세대과학기술한림원(Y-KAST)를 거쳐 정회원이시기도 합니다. 세계 무대에서 한국 과학의 위상을 드높이고 있는 ETH 최태림 교수님과의 인터뷰를 시작합니다. [모더레이터: 문회리 교수
(이화여자대학교 화학나노과학과)]
1. ETH로 옮기신 지 3년 정도가 되셨습니다. 그간 스위스에서의 생활은 어떠신지요?

먼저 ETH 부임 초기에는 고생이 많았습니다. 새로운 곳에서 맨땅에 헤딩을 하는 격이었습니다. 영국 과 독일에서 안식년 등으로 단기간 거주의 경험이 있었고 스위스에는 종종 학회 및 가족 여행을 해봤기 때문에 적응이 어렵지 않겠다 생각했습니다만 이 모든 것이 실제 거주와는 다른 점이 상당히 있었습니다. 학교에서 세미나를 하고 가족 여행으로 아름다운 알프스를 보러 가는것과 실제 거주하면서 그 나라의 문 화와 규칙을 익히면서 하나의 구성원으로 살아가는 것은 전혀다른 것이니까요. 그래도 1년이 지나가면서 저와 가족도 적응을 해가면서 2년이 지난 지금은 훨씬나아졌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스위스는 잘 아시다시피 산과 호수의 나라, 그리고 초콜릿의 나라로 힘들 때 이런 장점들을 잘 활용하면서 지내고 있습니다.
2. 현재 ETH에서 집중하고 계신 연구 주제나 방향에 대해 소개해 주실 수 있을까요?
서울대에서나 ETH에서나 연구 주제는 유사합니다. 계속 고분자 합성에 새로운 방법론을 적용중에 있습니다. 서울대에서는 Ru 촉매를 이용한 합성 방법론에 더 비중을 두었다면 여기서는 Pd 촉매에 기반한 리빙 중합(living polymerization) 연구에 더 집중을 하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리빙 중합반응 은 반응을 조절하기 힘들기 때문에 정밀한 중합법으로 달성하기 어렵습니다. 분자량 및 분산도조절이 매우 어렵고, 합성된 고분자는 비균일한 고분자 분포도를 보입니다. 하지만 화학적 조절이라는 측면에 서 매우 매력적이라고 생각합니다.
단순 합성법 측면을 차치하고, 정밀 중합으로 얻어진 고분자는 자기조립 측면에서도 나노구조체정 밀 형성에 유리하기 때문에 고분자의 나노구조체 형성 연구도 계속 진행 중입니다. 이 주제 또한 서울대에서는 Ru 촉매로 얻어진 고분자를 주로 사용했다면 현재는 Pd 촉매로 얻어진 전도성 고분자를 더 활용 중에 있습니다. 이런 나노구조를 가지는 일차원(1D)이나 2D 반도체들이 전자소재에 활용 가능성 이 있기 때문에 더욱 흥미롭게 연구 중입니다.
마지막으로는 환경 보전에 더 높은 비중을 두는 유럽에 있다 니 고분자의 지속가능성에 대해서 연구를 하고 있습니다. 석유화학에서 얻어지는 출발 물질이 아닌 설탕 같은 천연소재로 활용하거나 정 밀 중합된 고분자를 간단한 방법으로 분해하거나 다시 단량체로 변환을 시켜서 이를 또다시 고분자로 전환할 수 있는 circular economy를 달성하는 전략도 이 연구 주제에 포함됩니다.
3. ETH로의 이동이 연구 방향이나 연구 성과 등에 어떤 변화를 가져왔는지 궁금합니다.
전반적인 연구 방향에 큰 변화는 아직 없지만 현재 재료과에 속해 있어서 과거에는 고분자의 단순 합성적 측면만 전념했다고 한다면 이제는 좀 더 재료적 특성에 대한 연구로 확장하게되었습니다. 예를들면, 예전에는 합성법 개발 후에는 열적 안정성에만 신경을 썼다면 지금은 고분자의 기계적, 전기적 물 성에도 초점을 두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서울대에 있을 때보다도 한국과 공동 연구를 더 활발하게 하게 되었습니다. 한국은 특히 세계적인 전기-전자 기업을 보유하고 있는 만큼 공학적 연구에 더 집중 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고 그래서 재료 분야에서도 전자재료 쪽에 매우 큰 강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한 국에 있었을 때 더 적극적으로 공동 연구를 했다면 저희 연구실에서 합성한 고분자들을 좀 더 수월하 게 전달하고 관련 토의를 할 수 있었을 텐데요. 지금은 거리, 시간 상의 문제가 좀 더 생기긴 했지만 그래도 공동 연구를 지속할 수 있다는 점에서 참 다행입니다.
또 하나는 좀 더 친환경적인 고분자의 분야로 좀 더 집중하게 된 점입니다. 위에서도 설명했듯이 지금까지 경제적 수월함 때문에 무분별하게 플라스틱을 생산·사용·폐기하고 재활용은 제대로 하지 못함으로 인해 발생한 환경 문제는 당장 해결해야 하는 글로벌 이슈로 대두되었습니다. 그래서 더 친환경적인 소재, 분해 및 화학적 재활용이 가능한 소재, 그리고 범용 플라스틱을 좀 더 고부가가치의 재료로 변환시키는 upcycling 방법도 새롭게 연구 중입니다.
4. 이번 인터뷰를 준비하면서, 교수님의 2024년 매일경제와의 인터뷰 기사를 접하게되었습니 다. 서울대에서의 열악한 연구환경에 대한 언급이 있었는데요, 한국 최고대학인 서울대의 연 구 환경에 대한 지적이 어떤 분들에게는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게 할 수도, 또는 교수님의 목소 리로 인해 연구환경 개선에 대한 기대감을 갖게 할 수도 있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먼저 해당 기사가 의도 와 다르게 자극적으로 나오게 된 것에 대해서 송구스럽게 생각합니다. 2024년은 정치적인 이유로 모든 학계가 힘든 시간을 보내셨을 것으로 예상합니다. 대 통령 개인의 잘못된 판단으로 갑작스런 의대 정원 대 폭 상향과 연구비 삭감을 감행했습니다. 이는 한국의 연구 최전선에서 노력하고 계신 많은 연구실들과 그 구성원 뿐 아니라 더 나아가 서는 과학자를 꿈꾸는 어린 초중고 학생들에게도 악영향을 미쳤습니다.
한국이 산업적으로, 과학적으로 이만큼 발전한 것은 역시나 부족하지만 꾸준했던 연구 정책의 결실임은 모두가 알 것입니다. 제가 전달하고자 했던 바는, 이러한 노력을 카르텔로 치부하는 정부의 날벼락같은 대응에 대해서 강하게 비판하고자 했었던 의도였습니다. 가장 강조하고자 했던 것은 1986년 아시안 게 임에서 임춘애 선수가 육상에서는 최초로 금메달 3관왕을 차지했을 때“가난해서 라면만먹고 뛰었어 요”발언이 큰 화제가 되었고 이를 비유하고 싶었습니다. 한국 과학은 그동안 라면만 주고 여기까지 올라온 것이나 마찬가지인데 앞으로도 계속 라면만 주고는 더 잘해서 세계와 경쟁하라고 하면 안 된다는 말이었습니다. 이제는 더 큰 성장을 위해서는 국가가 더 획기적인 연구 정책과 지원이 절실한 시점인데 오히려 역행을 하면 안 된다고 강하게 얘기했습니다. 다만 인터뷰하신 기자께서 젊은 분이셔서 임춘애 선수 일을 모르시는 세대였고 다른 부분들이 기사에 더 초점이 맞춰진 것 같습니다. 모두가 다 아시다시피 과학계가 다음 단계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연구자와 대학원생들에 대한 처우, 연구실 환경 등 모든 부분에서 상향 조정이 되어야 하는 시점이고 이는 국민적 관심과 국가의 전폭적 지원이 필수적이니까요. 점점 과학 정책과 정치가 긴밀해지는 것 같아서 미래를 예상하기 어렵겠지만 정말 과학 발전에 헌신할 수 있는 지도자가 나오기만을 바랄 뿐입니다.
5. 교수님은 고분자의 독창적인 합성 방법론을 개발하시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연구 주제를 발굴해 내 는 본인만의 방법이 있으신지요?
특별한 방법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유기 화학과 고분자 합성의 연결고리를 찾는 직관력이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 같습니다. 매우 흥미로운 유기 반응일지라도 다수는 고분자 합성에 적용 불가할 수 도 있습니다. 그런데 간혹 이 중 어떤 것들은 새로운 고분자를 탄생하게 하는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했고 이렇게 유기합성에서 고분자합성으로의 연결고리를 찾아간 본 것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너무 평이 한 결론이겠지만 결국 학회나 세미나, 논문 등 동료 화학자들의 연구 결과를 통해서 영감을 얻게 되고 좀 더 고분자 합성에 맞게 최적화 단계를 거치면 새로운 고분자 합성법으로 거듭나게 됩니다. 여기에는 연구실 모든 구성원들의 헌신적인 노력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운 좋으면 연구 테마 시작과 함 께 바로 가능성을 확인할 때도 있지만 대부분의 경우는 수많은 초기 실험들의 실패를 겪고 나면서 좀 더 반응에 대해서 제대로 이해를 하게 되고 1~2년 뒤에 성공할 때도 많기 때문입니다. 이 모든 과정이 피나는 노력과 수많은 토의를 거치면서 연구실 구성원 모두가 성장하는 과정이기도 하니 모든 연구실들이 그렇듯이 이런 교육적 측면이 가장 소중하다고 하겠습니다.
6. 교수님 연구 생활을 통틀어 가장 의미있는 (또는 가장 뿌듯한) 연구성과로 어떤 것을 꼽을 수 있을 까요?

초기에 multi-component polymerization과 cascade polymerization 등으로 재미있게 연구를 했었습니다. 이 분야가 고분자 화학에서는 새로운 분야였기 때문입니다. 시작한 지 17년이 되어가는 지금의 시점에서는 그래도 가장 의미있는 연구를 뽑으라면 Ru 촉매와 Pd 촉매를 이용한 전도성 고분자의 living polymerization이라고 하겠습니다. 전도성 고분자 합성에 정밀하게 조절이되는 living polymerization은 매우 도전적인 연구 분야인데 Grubbs 촉매에 의한 cyclopolymerization 으로 polyacetylene을 living으로 할 수 있었습니다. 사실 이 반응은 KAIST의 고 최삼권 교수님께서 개발하시고 2000년에 Chem. Rev.를 발표하시는 등 세계적 성과 를 독자적으로 내신 분야입니다. 최삼권 교수님 연구실에서 수많은 후학들이 학계와 산업계로 진출하셔서 한국 화학을 발전시키 셨습니다. 다만 한국의 독자적인 연구가 빛을 덜 받은 감이 있었는데 저희 연구실이 이 반응의 선택성을 극대화시키고 정밀중합까지 성공시키면서 새롭게 탈바꿈 시킬 수 있었습니다. 이 과 정에서 다양한 촉매들을 활용한 다양한 단량체로 새로운 전도성 고분자를 합성하였습니다. 그리하여 과 거에 보지 못했던 조절된 광학 특성, 자기조립 등의 연구로 발전할 수 있었습니다. 지금와서 생각해 보면 모교의 최삼권 교수님께서 새로운 고분자의 장을 여셨던 분야 및 반응을 제가 (특히 같은 최씨로서) 이 어 받아서 확장해서 학계에 더 알릴 수 있었다라는 한국인 화학자만의 서사를 만들었다는 점이 더 뿌듯 하게 다가온 것 같습니다.

하나만 더 꼽자면 마찬가지 living 방법으로 최근에는 Pd의 Suzuki coupling과 MIDA와 같은 pro- tected boronate 들의 최적의 궁합을 맞추어서 헤테로고리를 fully conjugation으로 이루는 polythio- phene 합성과 전자가 부족하거나 풍부한donor 혹은 acceptor의 전도성 고분자, 더 나아가서 이들이 교차로 연결된 D-A alternating conjugated polymer들을 livingpolymerization으로 합성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 분야 역시 촉매와 단량 체의 좋은 궁합이 필요했고, 기존 poly- acetylene에서 얻을 수 없었던 수많은 전도성 고분자들로 저희 연구실을 인도해 주었습니다.이 분야로 이번에 ACS PMSE 분과에서Aurther K. Doolittle Award를 받게 되어서 더 의미있다 판단하였습니다.
7. 연구실을 운영하며 후학 양성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시는 가치나 철학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ETH에서 학생들과의 상호작용 방식이나 교육 철학에 변화가 있으셨는지요?
이 역시 여느 연구실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 같습니다. 후학들이 독자적인 연구를 주도적으로 할 수 있게 양성을 하는 것이 철학입니다. 이는 연구의 해결 방법뿐 아니라 주제 선정에서도 마찬가지이기를 바랍니다. 하지만 항상 어려운 숙제인 것 같습니다. 이것이 우리의 고질적인 주입식 교육의 한계라고 흔히들 말 하는데요. 정말 그런 것인지 알아보기 위해서 현지 ETH 학생들과 비교해 보고 싶습니다. 아쉽게도 아직 많은 현지 학생들과 접촉을 한 것은 아니라 섣불리 결론 내리기는 어렵겠습니다. 연구실 구성원이 아직 서울 에서 같이 이동한 학생과 연구원이 다수입니다. 천천히 비율이 바뀌어 가고 있고 한국에서 했던 방식이 맞을지 아니면 크게 보완을 해야 하는지 등의 고민이 앞으로 제게 주어진 숙제이겠습니다.

8. 한국 과학자로서 세계 무대의 중심에 서 계십니다. 앞으로의 연구 내외적인 계획은 무엇이신지 요? 또, 어떤 과학자로 기억되고 싶으신지요?
저는 연구실을 스포츠계에 비유를 즐겨했습니다. 서울대에 있을 때는 고분자 화학 분야에서 한국을 대표하는 국가대표 연구실이 되자는 목표를 저희 구성원과 공유했습니다. 연구실 자체가 마치 태릉선수촌이라 생각하자는 의도였습니다. 이제는 고국을 떠나서 좀 더 큰 무대인 유럽으로 이주했습니다. 이는 한국의 많은 프로 선수들이 국내에서 성장해서 해외로 진출한 것과 동일하게 생각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연구실 모두가 많은 지원과 관심을 받고 스위스에 왔는데‘먹튀’연구실은 되지 말자는 단기적 목표를 정하였습니다. 한국에서 성장했고 세계적으로도 통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아직 유럽에서 그 만큼 한 것이 없어서 처음부터 바닥부터 계속 쌓아 가야 하는 단계입니다.
또 연구비는 언제 어디서나 이 길을 마칠 때까지 문제입니다. 연구과제 신청 및 선정 과정이 익숙했던 한국에 비해서 여기는 모든 것이 너무 달라서 지금까지 한 번도 연구비 과제 선정에 성공한 적이 없는 것 이 큰 부담이 됩니다. 유럽은 기본 연구비가 있기 때문에 연구실 파산은 없지만 스위스나 EU 과제를 하나 라도 빨리 받아서 좀 더 자유롭게 연구를 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저는 종국에는 한국 학계와 후학들에게 현재에 안주하지 않고 앞으로도 계속 도전하는 과학자로 기억해 주시면 작은 성공이지 않을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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