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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ve for the Day”

57분 전
9분 분량

화학세계가 만난 화학자 56


천진우

연세대학교 화학과 언더우드 특훈교수 IBS 나노의학 연구단장

막스플랑크-연세 IBS 센터장


이번 호 [화학세계가 만난 화학자]에서는 연세대학교 화학과 언더우드 특훈교수이자 IBS 나노의학 연구단장, 막스플랑크-연세 IBS 센터장인 천진우 교수를 모셨습니다. 천 교수는 미국 일리노이대학교에서 유기금속화학으로 반도체 소재를 만드는 연구로 학위를 받은 뒤, 1990년대 후반 KAIST에서 나노입자의 형성 원리를 개척하며 국내 나노화학의 기틀을 놓았습니다. 2002년 연세대학교로 옮긴 뒤에는 나노입자를 생명과학과 연결해 나노MRI, 자기유전학(MAGIC), DNA 나노로봇으로 이어지는 나노의학의 길을 열었고, 호암상과 대한민국 최고과학기술인상을 수상했습니다. 한국 화학자로는 처음으로 ACS 저널 에디터를 맡아 현재 JACS 부편집장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지난해 막스플랑크 센터를 개소해 나노의학 난제에 도전하고 있습니다. 기계의 언어를 화학이라는 번역기로 생체의 언어로 바꾼다는 그가, 기초과학이야말로 '홈런'이라며 과학의 힘을 믿으라고 말하는 이유와 젊은 화학자들에게 전하는 메시지를 들어봅니다.

[모더레이터: 김형준 교수(한양대학교 화학과)]


Q1. 교수님께서는 대한민국 1세대 나노 화학자이십니다. 나노입자의 형성 원리를 탐구하고 개척해 가셨는데요. 처음 '나노'에 도전하게 되신 계기가 궁금합니다. 또한, 교수님께서는 화학이라는 학문만의 매력이 있다면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저는 1990년대 후반 KAIST 조교수로 나노화학을 시작했습니다. 아쉽게도 나노화학의 핵심 개념인 양자현상은 이미 구형 입자, 즉 양자점(quantum dot)에서 확립된 상태였지요. 노벨상을 받은 양자점 합성 JACS 논문이 1993년에 나왔고, 전 세계적으로 나노가 태동되는 시기였습니다. 그 무렵 입자의 기하학적 형태 역시 중요하다는 흐름이 막 시작되고 있었고, 저도 여기에 뛰어들어 별, 큐브, 막대기 같은 입자의 형성과 변환을 연구했습니다. 나노입자는 열역학적으로 가장 안정한 형태가 구형이지만, 결정이 자라는 과정에는 여러 준안정(metastable) 상태가 있습니다. 성장 조건을 조절해 특정 결정면만 빠르게 자라게 하는 속도론적(kinetic) 제어로 이 중간 상태를 붙잡으면 다른 형태로의 변환이 나노 영역에서 가능했습니다. 지금은 당연한 이야기지만 그때의 최첨단은 ‘양자점은 구형만 가능하다, 어쩌면 막대기 정도는 만들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수준이었습니다. ‘나노’라는 말 자체가 생소한 시절이라, 실험실 이름에 '나노화학'을 붙인 것도 국내에서는 저희가 처음이었을 겁니다.

한편, 화학은 오랫동안 분자를 다루는 학문이었기에 나노과학의 등장은 화학자들에게 생소했고, 화학과 신소재공학은 교류가 거의 없는 분야였습니다. 저는 운이 좋았습니다. 일리노이대학 학위 과정에서 지도교수님이 유기금속분자를 반도체 소재로 바꾸는 연구를 하게 하셨고, 그 덕분에 화학과에서는 다루지 않던 신소재 개발과 전자현미경과 같은 분석 장비를 직접 익혔습니다. 나노는 분자와 벌크의 중간 상태라서 양쪽을 다 볼 수 있어야 하는데, 이 훈련이 나노에 빨리 합류할 수 있는 바탕이 되었습니다. 화학자라는 배경은 무조건 장점이었습니다. 공학이 응용에 집중하는 동안 화학자는 물질이 왜 그렇게 만들어지고 왜 그런 성질을 갖는지를 분자 수준에서 근본부터 이해하기 때문입니다. 특히 나노화학의 매력은 기존 과학의 통념이 깨진다는 데 있습니다. 물질의 고유한 특성을 우리가 제어할 수 있게 되는 것이지요. 그래서 나노화학자를 21세기 연금술사라고 부르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Q2. 교수님의 연구는 화학에서 출발해 나노과학, 의학, 뇌과학 등 다양한 분야로 확장되어 왔습니다. 그럼에도 교수님께서 스스로를 '화학자'라고 생각하게 만드는 가장 본질적인 요소는 무엇인가요?


나노의학이라는 이름 때문에 제가 의학을 연구한다고 오해하시는 분들이 많지만, 의학적 문제를 해결하는 핵심은 화학입니다. 예를 들어 뇌과학의 난제인 ‘뉴런의 활성’을 유도하려면 자기장 자극에 반응하는 자성 나노입자를 합성하고, 선택성을 부여할 분자 연결자를 설계해야 합니다. 저희 연구단의 자기유전학 기술 MAGIC(Magnetogenetics)은 이렇게 화학을 통해 구현된 것입니다.

제가 하는 일을 한마디로 말하면, 컴퓨터나 물질의 기계적 언어를 나노라는 매개체를 통해 생체의 언어로 바꾸는 것입니다. 기계의 세계(physical world)와 생명의 세계(biological world)는 거의 소통하지 못합니다. 스마트폰도 사람이 일일이 입력해 주어야 하고, 그 정도의 인터페이스마저 사람처럼 고도로 발달한 생명체만 할 수 있는 일이지요. 결국 유전자 하나, 세포 하나는 기계와 정확히 대화할 방법이 없습니다. 생명 시스템 역시 주요 원소의 조합으로 만들어진 정교한 ‘분자 기계’이고, 효소나 DNA처럼 모든 것이 분자의 언어로 움직입니다. 따라서 이 세계를 기계와 연결하려면 분자의 언어와 기계의 언어를 모두 이해하는 번역기가 필요합니다. 그런 번역기가 나노의학이며, 나노는 기계 신호를 이해하는 '물질'이면서 동시에 ‘생체 분자의 신호’를 이해하는 크기 스케일에 있기 때문입니다. 물질도 알아야 하고 분자도 알아야 하는 일, 바로 화학이 하는 일이지요. 그래서 저는 화학자로서의 정체성을 잃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연구 지도하는 천 교수


Q3. Central Science로서 화학을 활용하여 확장하는 이유가 있으실까요? 실제로 화학이라는 분야는 주변 학문(에너지, 환경, 바이오 분야 등)에 중요한 영향을 주고, 과학의 지평을 넓히는 데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고 생각하는데요. 화학이 새로운 기술이나 응용을 만들어내는 데 어떤 특별한 강점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화학은 여러 학문을 연결하는 힘이 큽니다. 물질의 구성요소를 이해하고 그것들을 조합해 새로운 기능을 만들어 낼 수 있기 때문이지요. 저희 연구단에서는 나노입자와 DNA를 조합해 기계적 운동이 가능한 DNA 나노로봇을 구현했습니다. 엔진과 구동축 사이에 DNA 클러치를 두어 유전 신호로 제어할 수 있는, 세계에서 가장 작은(200 nm) 나노로봇이 화학으로 가능했습니다. MAGIC 기술 역시 자성 나노입자로 세포의 이온채널을 작동시켜 뇌 회로를 무선으로 조절하는 것이니, 이것도 나노화학으로 실현된 것입니다.

연구단 밖의 예를 들면, 코로나 팬데믹을 이겨낸 mRNA 백신도 화학의 힘이었습니다. mRNA는 몸속에서 금방 분해되기 때문에, 이를 감싸서 전달하는 지질나노입자(LNP)가 없었다면 백신은 불가능했습니다. 개발한 사람들은 공학자였을지 몰라도 그들이 쓴 원리는 화학이었지요. 이렇게 사회의 큰 문제를 실제로 해결하는 힘이 화학에 있다는 점에서, 화학은 공학, 생명과학, 의학의 진보를 이끄는 Central Science라고 생각합니다.


Q4. 화학이 이렇게 중요한 학문인데도 최근에는 화학을 전공하려는 학생이 줄고 있습니다. 학생들이 화학의 재미를 잘 모르는 이유가 무엇이라고 보시고, 화학 교육이나 화학계가 어떻게 달라져야 한다고 생각하시나요?


화학이 다루던 영역의 상당 부분이 화학공학, 신소재공학, 생명공학 같은 ‘공학’으로 넘어가고 있습니다. 에너지, 신약, 소재가 모두 그렇지요. 그러면서 경계가 불분명해졌고, 요즘 화학을 하는 사람들도 공학적 방법으로 공학과 경쟁하려는 경향이 생겼습니다. 저는 반대로 가야 한다고 봅니다. 과학적 방법으로 승부해야 하고, 그러려면 더 깊이 들어가야 합니다. 저는 현대 과학기술을 야구에 비유하곤 합니다. 세상을 바꾸는 슈퍼히어로들이 모인 과학기술팀이고, 인류의 문명을 발전시키며 난제를 해결하고 있습니다. 다만 그 역할이 다릅니다. 안타, 번트, 도루는 이미 알고 있는 지식으로 빠르게 진도를 나가는 것이고 공학이 여기에 가깝지요. 홈런은 타이밍, 힘, 정확한 타격이 모두 맞아야 나오는 야구의 정수이고, 기초과학이 바로 홈런입니다. 화학은 그런 근본적인 힘이 있습니다.

우리나라 화학 교육과정 자체는 좋습니다. 근본을 배우기 때문에, 과학자로 교육받은 사람이 사회에 나가 공학자처럼 일해도 아무 문제가 없고 오히려 개인을 더 발전시키는 교육이지요. 문제는 우리가 그 내재된 힘을 덜 믿는다는 데 있습니다. 과학자로서의 자부심(Pride of Science)과 과학의 힘(Power of Science)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게임 체인저가 되고 싶다면 기초과학이 중요합니다. 리스크 테이커 (risk-taker)를 존경하세요. 성공하면 과학자가 기술자보다 더 크게 성공하기 때문이지요. 교과서에 이름이 남는 사람 역시 과학자이고, 창업을 해도 원천 기술을 가진 과학자가 더 잘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Q5. 교수님께서는 화학을 기반으로 자기유전학 (MAGIC, magnetogenetics), 나노MRI, 나노로봇 등 의학과 생명과학을 아우르는 혁신적인 나노의학 분야를 개척하셨습니다. 순수 화학을 전공하는 학생들이 응용 과학으로 시야를 넓히고자 할 때, 가장 중요하게 갖춰야 할 시각이나 태도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화학을 기반으로 응용과학을 하고 싶다면 우선 화학의 전문성부터 키우기를 권합니다. 성공적인 응용을 결정하는 것은 얼마나 깊은 기초과학을 가지고 해법을 제시할 수 있느냐이기 때문입니다. 그 위에서 화학에만 머물지 말고 과학이라는 큰 테두리에서 해결되지 않은 문제를 찾아보는 노력이 있으면 좋겠지요. 저 역시 나노MRI, 자기유전학, 나노로보틱스 같은 융합연구를 할 때 항상 그 중심에 나노화학이 있었습니다. 깊이와 확장을 어떻게 함께 하느냐고 묻는다면 순서의 문제라고 답하겠습니다. 공학자는 알려진 지식의 활용을 극대화하도록 훈련받아 빠르고, 자연과학은 질문과 호기심에서 출발해 모르는 대상에 도전하기 때문에 오래 걸립니다. 이 상태에서 공학과 일대일로 기술 경쟁을 하면 질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알려지지 않은 발견을 추구하는 과학을 깊이 있게 해야 하고, 확장은 그 깊이 위에서 자연스럽게 따라옵니다.

요즘 학생들이 진로를 정할 때 경제적 보상을 많이 고려한다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앞서 말한 지질나노입자도 결국 화학을 이용한 공학이었고, 공학자들은 화학자와 함께 일하며 화학적 개념을 계속 가져갑니다. 기초과학을 한 사람이 그 안에서 리더십을 가질 수 있다는 뜻입니다. 산업의 꽃은 과학에서 시작되고, 노벨상을 받은 리튬이차전지, 유전자 가위, 양자점이 산업화되어 큰 성공을 거둔 것도 기초를 하는 사람들이 해낸 일입니다. ‘기초과학은 쓸모가 없다’는 생각은 오히려 반대입니다. 쓸모를 보고 시작하면 기존 기술을 일부 개선할 수는 있어도, 게임을 바꾸는 지식을 만들 수는 없습니다. 호기심과 상상력, ‘왜 그럴까’ 에서 출발해야 새로운 원리가 나오고, 원천 기술을 가진 사람이 결국 이깁니다.


Q6. 교수님께서는 기존의 과학을 따라가기보다, 새로운 물질이나 작동 원리를 만들어 문제를 해결하는 연구를 많이 해오셨습니다. 이런 연구 접근법에서 기초과학인 '화학 전공'이 어떤 역할을 했나요?


제가 나노를 시작한 1990년대 후반에는 양자점 분야에 미국의 선도 연구자들이 여럿 있었습니다. 저도 국내에서 양자점을 가장 먼저 연구한 사람 중 하나로, 2000년경 삼성전자와 공동연구도 했지요. 당시에는 그것이 무엇인지 아는 사람이 거의 없었고, 삼성이 양자점을 상업화한 것은 15년쯤 지난 뒤였습니다.

‘2등’의 한계를 절감한 일도 있었습니다. 2001년 저희가 가지 친 나노입자(tetrapod)의 형성에 관한 논문을 JACS에 냈는데, 버클리의 알리비사토스(Paul Alivisatos) 그룹이 같은 구조를 6개월 정도 먼저 발표했습니다. 그쪽이 제시한 형성 메커니즘에 오류가 있었고 저희가 맞았지만, 인용 수는 그쪽이 세 배쯤 됩니다. 과학에서는 먼저 제시하는 것이 중요하고, 2등이 주장할 수 있는 것은 설령 옳더라도 별로 없다는 것을 배웠지요.

나노양자점 분야의 주역들은 분광학에 강한 물리화학자들이었고, 저의 강점은 합성이었습니다. 이미 개념이 정립된 양자점을 더 다양하게, 더 많이 만드는 것은 엔지니어링 문제이지 새로운 과학은 아닙니다. 그래서 저는 선점된 분야에서 2등을 하기보다 남들이 가지 않은 ‘자성 나노입자와 생명공학의 연결’을 택했습니다. 유전자, 단백질 같은 생체 분자들이 모두 나노 스케일이기 때문에, 새로운 관찰과 제어가 가능한 길이 열립니다. 의학은 해결된 것보다 해결되지 않은 것이 훨씬 더 많기 때문에, 나노의학은 새로운 과학을 통해서 발전할 수 있는 블루오션이고, 화학은 이런 융합 분야의 근간을 제시하기에 매우 중요합니다.

새로운 분야를 개척할 때는 성과가 빨리 나오지 않는 시기가 있고, 그때는 더 노력하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습니다. 다만 무모해서는 안 되고 ‘현명한 리스크 테이커(wise risk-taker)’가 되어야 합니다. 모든 것을 한 번에 걸지 않고 점진적으로 자기 방향의 비중을 높여 가는 것이지요. 방향성은 분명히 하되, 무모함과 용기를 구별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Q7. 교수님께서는 한국 화학자로는 처음으로 ACS(미국화학회) 저널의 에디터로 활동하셨습니다. 지난 17년간 저널 에디터로 활동해 주시면서, 한국이 국제 화학계의 주역이 될 수 있도록 기여해 주셨는데요. 현재 JACS 부편집장으로서의 역할과 중요성, 그리고 한국 화학계가 국제 무대에서 더 인정받기 위해 필요한 노력에 대해 말씀 부탁드립니다.


저널 에디터는 논문의 완성도만 평가하는 사람이 아니라, 어떤 연구가 그 분야에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고 영향을 줄 수 있는지를 함께 판단하는 역할을 합니다. 2009년 한국 화학자로서는 처음으로 Accounts of Chemical Research의 에디터가 된 것은 큰 영광이었고, 국제 화학계에 봉사하면서 화학의 흐름을 가까이에서 볼 수 있는 큰 경험이었습니다. 현재 JACS에서는 나노소재, 나노바이오 분야를 맡고 있는데, 연구 분야의 발전 속도와 국가 간 경쟁이 훨씬 치열해지는 것을 느낍니다.

에디터로서 한국 연구자들에게 드리고 싶은 말씀은, 어떤 형태로든 오리지널리티(originality)와 새로움 (novelty)을 넣으려고 애써야 한다는 것입니다. 최근 10여 년간 중국의 연구력이 급속히 커져 국제 학계의 중심이 중국으로 옮겨 가고 있습니다. 한국 교수님들의 에디터나 편집위원 진출도 늘었지만 중국에 비하면 여전히 적습니다. 지난 8년간 저는 C&E News 자문위원이자 ACS 아시아 자문위원(AEAC)으로 활동해왔고, 대한화학회(KCS)-ACS 협력 시스템과 한국 ACS 담당자 채용을 제안하고 한국인 에디터가 늘어나도록 ACS 본부와 지속적으로 논의해왔습니다. ACS나 세계화학계는 한국의 발전과 우수함에 놀라고 또 더 큰 혁신으로 성장하기를 기대하는 것 같습니다. 단지, 아직 한국이 세계 화학을 주도하기에는 부족한 면이 있습니다. 학문적 리더가 되려면 좋은 과학은 기본이고, 그 위에 네트워킹과 국제 학회에 봉사하며 본인의 과학을 세계에 알리려는 노력이 있어야 합니다. 이 점에서 중국이 훨씬 적극적인 것으로 보입니다. 이때 우리만의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본인 연구가 조금 부족해도 ‘나는 이것을 한다’는 자기 색깔을 갖고 어필해야 하고, 그 색깔은 결국 오리지널하고 깊이 있는 연구로 이어지는 자신감이 필요합니다. 즉, 세계의 화학을 함께 이끄는 동반자가 되려는 노력이지요.

연세대학교 IBS관 전경


Q8. 2015년부터 현재까지, 연세대학교에 기초과학연구원(IBS)을 유치하셨는데요. IBS가 한국 기초과학에 어떤 기여를 하고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또, 앞으로 한국 기초과학이 달성해야 할 목표점이 있다면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연세대 IBS 나노의학연구단은 나노바이오 융합 분야에서 수월성(excellence)과 파급력(impact)을 세계적 수준으로 올리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이것은 개인이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여러 연구자가 함께 하는 다학제 팀 사이언스로 달성하는 것이고, 개인으로는 풀기 어려운 복잡한 난제에 도전해 결국 세계적인 리더 그룹을 만들어 내는 일입니다. 저희 연구단에는 화학자뿐 아니라 공학자, 생명과학자, 의사가 모두 있는데, 종합 학문이지만 그 중심에는 새로운 질문과 사고의 전환이 필요한 화학이 있습니다. 세계가 따라오고 싶어 하는 학문 분야를 창출하는 것, 그것이 한국 기초과학이 달성해야 할 목표점이라고 생각합니다.


Q9. 지난 해, 아시아에서 두 번째로 개소한 막스플랑크 센터에 대한 질문을 빼놓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막스플랑크-연세 IBS 센터(MPYIC, Max Planck-Yonsei IBS Center)가 글로벌 나노의학연구의 허브로 도약하기 위해 현재 도전하고 있는 연구분야와, 단장님께서 궁극적으로 풀고 싶으신 문제에 대해 말씀 부탁드립니다.


막스플랑크-연세 IBS 센터의 설립은 저희가 선진국과 어깨를 나란히 할 학문적 수준이라는 것을 국제적으로 공인 받았다는 점에서 큰 성과입니다. 그동안 선진국과의 협력은 항상 배워 오는 쪽이었는데, 이번에는 막스플랑크 본부의 심사를 거쳐 처음부터 동등한 협력 파트너로 선정된 것입니다. 막스플랑크 본부는 상대가 막스플랑크와 동등하거나 이익이 되지 않으면 센터를 만들지 않는다는 기준이 있고, 아시아에는 일본 한 곳 밖에 없었습니다. 저희 MYPIC은 막스플랑크 산하 의학연구소, 뇌과학 분야 연구소와 연세 IBS가 주축이 되어, 앞으로 10년간 생체 심부 제어(Deep Tissue Control)를 주제로 몸속 깊은 곳에서 일어나는 생명현상을 관찰하고 제어하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몸 안 깊은 곳은 볼 방법이 없기 때문에 의학에서도 가장 어려운 영역이지요. 빛은 생체 깊숙이 전달되기 어렵기 때문에, 자기장이나 초음파처럼 인체 깊은 곳까지 전달되는 물리적 신호와 이에 반응하는 인공수용체를 결합하는 플랫폼을 구상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잘 되면 뇌 연구, 면역계, 암 치료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MPYIC에서 궁극적으로 풀고 싶은 문제는 ‘정밀 세포 조절’입니다. 암이든 알츠하이머든 노화든 결국 세포 조절의 문제로 귀결되기 때문에 우리가 세포를 원하는 방식으로 조절할 수 있으면 게임이 끝납니다. 이때 앞서 말한 기계 언어와 생체 언어 사이의 번역기가 필요한 것이지요. 새로운 과학적 문제를 설정하는 것이 중요하기에 지금은 무엇을 하면 좋을지 함께 고민하는 유도기에 가깝습니다. 큰 방향은 생명현상의 관찰과 제어를 나노 스케일에서 가장 최적화된 방법으로 알아내는 것이고, AI, 로봇, 분자를 모두 동원할 생각입니다.


Q10. AI, 로봇공학, 바이오 기술이 빠르게 발전하는 지금, 앞으로 10~20년 동안 화학자의 역할은 어떻게 달라질 것이라고 예상하시나요? 아울러, 현재 하고 계시는 MAGIC(자기유전학) 연구가 뇌 회로 발견에 큰 기여를 하게 된다면 인공지능과 휴먼 인텔리전스가 어떻게 공존하게 될지, 또 그에 따르는 윤리적 문제는 어떻게 보시는지도 궁금합니다.


무엇보다 AI는 물질 합성, 구조 분석, 특성 예측 등 화학 전 분야에서 진보를 가져올 수 있기에, 화학자에게 매우 강력한 도구가 될 것입니다. 지금 미국 딥테크가 관심을 갖는 것은 인간지능(Human Intelligence)을 인공지능(AI)과 연결해 초지능으로 가는 가능성, 즉 인간지능과 인공지능의 완벽한 공존입니다. 이를 해낼 기술이 BCI(Brain-Computer Interface)이고, 일런 머스크의 Neuralink, 샘 올트먼의 Merge Labs를 포함해 전 세계가 이 분야를 선점하려고 투자하고 있습니다. 저희 연구단도 MAGIC을 BCI에 접목하는 연구를 하고 있는데, 기존 BCI가 뇌 신호를 읽어 내는(read-out) 데 특화되어 있다면 MAGIC은 명령을 입력(write-in) 할 수 있다는 점에서 게임 체인저가 될 수 있습니다. 또 하나의 차이는 선택성입니다. 뉴런의 소통은 본래 분자를 통해 이루어지는데, 전기 신호는 뇌 회로의 수많은 스위치를 구별하지 못하고 신호를 ‘대충’ 넣는 셈입니다. MAGIC은 분자로 특정 스위치를 선택적으로 조절할 수 있고, 두 기술은 언젠가 합쳐질 수도 있을 것입니다.

2025년 막스플랑크-연세 IBS 센터 개소식


뇌 회로를 조절할 수 있게 되면 윤리적 문제가 따라오리라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과학과 기술의 진보에서 혜택을 찾아내느냐 해를 끼치느냐는 결국 쓰는 사람에게 달려 있습니다. 핵도, 플라스틱도, 신약도 모두 양면성이 있지요. 그래서 과학은 매우 조심스럽게 해야 하지만, 이 방향이 대세라는 것 또한 부정하기 어렵습니다. 우리는 고령화 사회로 가고 있는데 알츠하이머 같은 뇌질환을 고칠 방법이 거의 없습니다. 사람의 신경회로 중 우리가 이해하는 것은 1%도 되지 않는다고 하는데, 회로를 모르는데 고칠 수 있겠습니까? 수명이 길어질수록 너무 많은 사람이 거기서 벗어나지 못하니 이것은 사회의 핵폭탄 같은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인공지능을 이용해 뇌의 오작동을 해결하려는 방향으로 연구가 가는 것이고, 결국 인류가 풀지 못한 뇌과학의 난제를 이해하고 질병을 치료하는 새로운 과학을 만들어 낼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Q11. 마지막으로, 차세대 화학계를 이끌어갈 화학세계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나눠 주세요.


과학자의 길은 긴 여정(journey)이지만 충분히 보람차고 즐거움이 있습니다. 여러분도 본인과 과학 사이의 관계를 잘 설정하고, 매일 할 수 있는 만큼 최대한 도전하는 과정 속에서 기쁨과 성취를 누리시면 좋겠습니다. 제가 자주 하는 말은 ‘하루하루를 잘 하세요(Live for the day)’입니다. 지루한 듯하지만, 문제를 붙들고 매일 조금씩 나아가는 점진적인 발전이 결국 이기는 방법이고, 오늘 하루를 잘 사는 것이 미래를 만드는 방법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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