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호 <화학세계가 만난 화학자>에서 만난 분은 2024년 대한화학회 한만정 학술상 수상자로 선정되신 고려대학교 화학과의 곽경원 교수님입니다. 시분해 비선형 분광학을 이용한 복잡계에서의 화학 반응 기작을 연구하고 계십니다. 2차원 분광학으로 리튬이온 배터리 연구부터 유기 화학 반응의 실시간 관찰뿐만 아니라 치매의 원인으로 알려진 단백질 뭉침 현상을 분석하는 바이오 분야까지 다양한 분야를 연구하고 계십니다. 분광학으로 리튬이온 배터리 연구부터 유기 화학 반응의 실시간 관찰뿐만 아니라 치매의 원인으로 알려진 단백질 뭉침 현상을 분석하는 바이오 분야까지 다양한 분야를 연구하고 계십니다. 분광학으로 분자들의 움직임을 관찰하시는 교수님 을 7월호 화학세계에서 모셔보았습니다. [모더레이터: 이준석 교수(한양대학교 화학과)]
1 . 교수님께서는 석사과정은 분광학 이론을 공부하시고 박사과정은 분광학 실험을 전공하셨습니다. 또 학교로 돌아오신 후에는 중앙대에서는 이론계산을 하시고 현재는 다시 실험을 하시는 걸로 알고 있는데 요. 지금까지의 과정을 선택하신 배경이 궁금합니다.
저는 고려대학교 화학과를 졸업 후에, 학부 시절 동아리 활동으로 인연을 맺게 된 고려대학교 조민행 교수님 연구실로 대학원 진학을 하였습니다. 조민행 교수님은 그 당시 막 시작되던 비선형 다차원 분광학 분야 이론 분야의 대가셨고, 초창기 조민행 교수님 연구실에서는 비선형 분광학 이론과 계산화학 연구가 진행되고 있었는데, 저는 비선형 분광학 이론 분야의 공부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아주 무모했지만, 당시 이론 연구를 선택했던 것은 새로운 분야에 대한 호기심이었습니다. 학부 과정에서는 전혀 접해보지 못했던 비선형 분광학과 이를 기술하는 이론을 공부하는 것은 미지의 세계에 대
한 막연한 동경심이 무모한 도전에 용기실어주었습니다. 이렇게 시작된 석사 과정 동안의 이론 연구는 처음부터 많은 난관이 있었지만, 당시 조민행 교수님 연구실에서 박사 후 과정 연구원으로 계시던 성재영 교수님(현 중앙대)의 큰 도움을 얻어 조금씩 진행할 수 있었습니다. 비선형 분광학 이론의 대가이던 조민행 교수님께는 다양한 실험 그룹에서 공동 연구 제안이 있었고, 저는 그 중에서 University of Wisconsin Medison의 John Wright 교수님과 U.C. Berkeley의 Graham Fleming 교수님과의 공동연구 기회가 주어졌습니다. 이 공동연구들을 계기로 내가 이론으로 공부한 것을 실험으로 구현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생겨서 박사과정은 분광학 실험 분야로 선택하게 되었습니다. 박사과정에서는 이차원 적외선 분광학 장치를 구축하고 이를 이용하여 응축상에서의 수소 결합 동력학과 단백질 구조 변화를 측정하는 연구를 수행하였고, 석사 과정 동안에 공부한 비선형 분광학 이론에 대한 지식이 이차원 적외선 분광학을 더 잘 이해하고 활용할 수 있는 밑거름이 되어 주었습니다.
중앙대로 부임 후에는 고가의 레이저 장비 및 실험실 구축이 어려워서 제가 박사과정과 박사 후 연구원 과정에서 수행하던 펨토초 및 아토초 시분해 분광학 실험을 계속 진행하기가 어려웠습니다. 주어진 여건에서 수행할 수 있는 연구를 찾아보았고, 제가 조금의 경험이 있던 범밀도 함수 이론을 이용한 양자 화학 계산 연구를 택하게 되었습니다. 분광학 신호의 해석 과정에서 분광 신호와 분자 구조 사이의 상관관계를 찾기 위해서 양자 화학 계산 혹은 분자 동력학 계산이 필요합니다. 저는 주로 적외선 영역의 분광학을 연구하여 적외선 흡수 스펙트럼 혹은 라만 스펙트럼을 양자화학 계산을 통하여 해석하는 일을 수행하였습니다. 주로 발광 물질 혹은 광전변환에 이용되는 유무기 물질에서 얻어지는 스펙트럼을 양자화학 계산을 통하여 정밀한 구조 분석에 이용하고자 하였고, 이 계산 연구들을 통하여 컴퓨터를 이용한 분광학 연구를 지속할 수 있었습니다.
이후에 감사하게도 고려대학교 IBS 연구단인 분자분광학 및 동력학 연구단의 지원을 받아서 다양한 펨토초 레이저 장비들을 구축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습니다. 실험을 재개할 수 있다는 욕심에서 쉽지 않은 결정이었지만 정들었던 중앙대 화학과를 떠나 고려대 화학과로 실험실을 옮기게 되었습니다. 고려대에서 다시 처음부터 연구실을 만드는 과정이 쉽지는 않았지만, 새롭게 시작하는 마음으로 실험실과 레이저 장비를 구축하게 되었습니다. 중앙대에서 양자화학 계산으로 연구를 지속하면서 다양한 분야의 연구자들과 분광학에 대한 논의를 할 기회가 많았습니다. 여러 분야의 연구자들이 첨단 분광 기술을 자신의 연구 분야에서 적용하고 싶어 하지만 복잡한 실험 방법과 어려운 해석 과정과 더불어 실제 연구자들이 분광학을 적용해 보려고 하는 상황에서는 측정이 어렵다는 문제가 있었습니다. 점점 더 복잡해지는 물질과 물질
의 작동 환경에서 적용이 가능한 비선형 시분해 분광기를 만들어 실제 다양한 전기, 유기 합성, 바이오 시스템 내부에서 진행되는 화학 반응을 관찰하고 싶다는 꿈을 가지고 실험 분광학 연구를 재개하였습니다.
2. 이론과 실험 분야에서 연구 경험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연구자에게 큰 무기라고 생각합니다. 대신 그 만큼 많이 힘드셨을 것 같은데요. 연구자들이 공감할 수 있는 장단점이 있을까요? 현재 교수님 연구실 의 대학원생들에게는 어떤 방법으로 지도하시나요?
잘 아시다시피 이론과 실험은 분리할 수 없고, 실험에 좀 더 중점을 가지고 계신 연구자분은 이론적인 방법들을 숙지하여 힘들게 얻은 실험 자료에 대한 풍부하고 명확한 해석에 대한 도움을 얻을 수 있고, 이론 연구자들은 실험 상황에 대한 이해를 증진하여 풍부한 실험 자료를 기반으로 개발한 이론의 적용성과 정밀도를 높여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와 같은 분광학 연구에 있어서는 특히 분광 신호 자체가 분자나 전자 구조에 대한 정보를 주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분광 신호와 구조를 연결하여 주는 양자화학 기반 계산이 필수적입니다. 물론 분광학 및 양자화학 계산 이론과 실험은 다른 전문성을 요구하여 두 분야에서 모두 좋은 연구를 수행하기는 힘들지만, 실험 분광학자의 입장에서는 항상 새로운 이론 분야에서 제
안되는 새로운 실험 방법과 해석 방법에 대해서 주의를 기울여 살펴보고 새롭게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론 분야를 공부했던 것의 장점은 새로운 이론을 공부하고 받아들이는 것에 조금 더 적은 어려움이 있다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실험을 하는 입장에서 새로운 이론 연구를 하는 것은 어렵지만 좀 더 적극적으로 이론학자들에게 실험 분광학자의 입장에서 필요한 이론을 용감하게 요구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이 장점으로 보일지는 모르겠네요.
단점은 자기 분야 공부할 시간도 부족한데 자꾸 다른 분야들 연구도 들여다보면서 학생들을 괴롭힌다는 것이 있겠네요. 실험해야 할 시간도 부족한 학생들에게 자꾸 이것저것 읽어보라고 해서 학생들이 괴로워한다는 이야기를 자주 듣습니다.
저희 학생들에게는 항상 실험 위주로 생각하고 필요할 때 이론 공부를 하라고 지도합니다. 제가 조금의 이론적인 배경을 가지고 학생들에게 이것저것 설명하면 학생들은 가끔 이론 공부를 해야 하나보다 하면서 기본적인 이론화학 수업이나 논문들을 보는 경우가 있습니다. 하지만 저희 연구실에서는 가급적이면 학생과 토론을 통해서 정말로 필요한 이론이 무엇이고 그것을 활용하는 정도만 알면 되는지 아니면 깊이 있는 이해가 필요한지를 우선 파악하려고 합니다. 그리고 깊이 있는 이해가 필요하면 주로 이론 연구자분들에게 부탁을 하고, 학생들은 실험 문제에 좀 더 집중할 수 있도록 지도하고 있습니다.
3. 한만정 학술상은 아주 뛰어난 업적을 가지신 분들만 받는다고 알고 있습니다. 교수님께서 이번에 인정 받으신 연구 결과에 대해서 화학세계 구독자들에게 간략히 소개 부탁드립니다.
우선, 제가 한만정 학술상 수상자로 선정된 것에 대해서 깊은 감사를 드리고 많은 부끄러움을 느끼고 있습니다. 저보다 훌륭한 연구를 수행하고 계신 많은 선후배 연구자 분들에게 미안할 따름입니다. 제가 그나마 다른 분광학 연구 그룹과 다르게 하고자 하는 분야는 맞춤형 분광학 연구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가령 이차전지 혹은 단백질 구조를 연구하더라도 좀 더 구체적인 상황에서, 즉 실험 혹은 응용 과정과 유사한 상황에서 적용할 수 있는 분광학 방법들을 만들어 보고 싶습니다. 많은 경우, 전자 기기 및 생체 내에서도 화학 반응은 매우 불균일한 환경에서 진행이 됩니다. 각 불균일한 환경은 분자 구조의 변형을 가져오기 때문에, 구조-성질 관계에 기반하여 화학물을 합성하거나 현상을 이해하려고 할 때, 잘못된 구조에 대한 정보가 많은 어려움을 주고 있습니다. 가령 유기 합성 반응이 진행되는 반응기에서 높은 온도와 복잡한 용매 환경에 의해서 다양한 구조의 분포가 존재합니다. 이러한 다양한 구조는 서로 빠르게 변화할 수 있기 때문에 많은 분광학 연구에서는 이 다양한 구조들이 평균 구조를 검출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저희 연구단에서는 우선 증진된 시간 분해능과 주파수 분해능으로 화합물의 구조를 명확히 파악하고자 합니다. 그리고 화학 반응이 진행되는 상황에서 분광 측정을 진행하여 이 다양한 구조 중에서 어떤 구조를 가진 화합물이 반응에 참여하는지를 측정하는 수단을 만들고 싶습니다. 나아가 고체 촉매를 사용하거나 전기 화학 반응으로 합성을 진행하는 경우, 당연하게도 중요한 화학 반응은 고체와 액체의 계면에서 진행됩니다. 하지만 일반적인 분광학을 이용하는 경우에는 벌크에서의 신호가 계면에 존재하는 분자에서 발생하는 신호를 압도하기 때문에 계면에서의 분자 구조를 파악하기가 어렵습니다. 즉 공간분해능이 필요합니다. 저희 연구단이 구축한 합주파수 분광학 및 ATR-IR 방법 등을 이용하여 관심을 가지는 화학 반응이 진행되는 공간에서 발생하는 분광 신호 만을 선택적으로 측정하여 화학 반응의 각 단계에서 나타나는 구조 및 구조 변화를 명확히 관찰하고, 이를 이용하여 화학 반응을 이해하고자 하는 것이 저희 연구실의 목표입니다.
나아가 많은 화학 반응기는 단단하고 빛이 잘 침투할 수 없는 외피로 둘러 쌓여 있습니다. 실제 생체내부를 관측하기 위하여 투명한 쥐를 만드는 등의 방법들이 이용되어져 왔습니다. 저희 연구실은 광학적인 방법을 이용하여 전기화학 반응기, 유기화학 반응기 및 생체 세포 내에서 진행되는 화학 반응들을 관측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고, 이 목표를 위해서 한 걸음씩 나아가고 있습니다.
4. 분광학 실험은 장비 구축이 중요하고 연구비도 많이 필요하다고 들었습니다. 교수님은 특히 적외선 레이저를 사용하시는 실험이라서 장비 구축하는 것뿐 아니라 관리도 어렵다고 알고 있습니다. 장비를 사용하지 않는 화학전공 학생들이 이해하기 쉽게 교수님께서 구축하신 장비에 대해서 설명 부탁 드립니다.
분광학은 크게 3가지 요소를 필요로 합니다. 적절한 광원이 있어야 하고, 측정할 샘플이 있고, 생성된 신호를 측정할 수 있는 검출기가 필요합니다. 또한 광원에서 샘플을 거쳐서 검출기까지 적외선을 배달할 수 있는 다양한 광학 부품들이 필요합니다. 적외선 분광학은 광원, 광학 부품, 검출기 모두 사용하기가 쉽지 않고 많은 문제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하여 최근 나노 화학 기술을 이용한 광학 부품 및 검출기 개발에 많은 투자가 이루어지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 분야를 제외하고 우선 가장 기본적인 광원에 대해서 설명하도록 하겠습니다. 제가 진행하고 있는 연구는 적외선 분광학을 이용한 시분해 분광학 연구입니다. 펨토초 수준의 레이저 펄스를 분자 사진의 필름으로 이용하여 펨토초 동안 레이저 펄스에 각인된 순간적인 분자 구조를 분석합니다. 펨토초 레이저 생성과 증폭은 그동안 레이저 기술의 발전에 의해서 많은 진보를 가져왔습니다. 작년 노벨 물리학상 분야에서 도 알 수 있듯이 이제는 펨토초를 넘어서 전자의 순간적인 움직임을 포착할 수 있는 아토초 펄스의 생성과 이용도 가능해졌습니다. 이러한 발전은 모드 잠금 레이저 기술과 펄스 압축 기술 및 증폭 기술이 집대성된 결과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펨토초 레이저 펄스는 주로 가시광선 혹은 근적외선 영역에서 생성이 되기 때문에 제가 이용하는 중적외선 영역의 레이저 펄스를 만들어 내기 위해서는 또 다른 비선형
광학 장치가 필요합니다. 잘 아시다시피 중적외선 영역은 지문영역으로 불리면서 화학자들에게는 아주 중요한 정보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위에서 기술한 바와 같이 가시광선이나 근적외선 영역의 분광 신호는 자체로서 분자 구조에 대한 정보를 주지 않습니다. 하지만 지문영역의 중적외선 분광 신호는 흡수 픽의 위치와 모양으로 분자 구조와 동력학에 대한 정보를 제공합니다. 이것이 제가 중적외선 영역에서의 실험에 집착하는 이유입니다. 그럼 중적외선 영역의 펄스를 생성하기 위해서는 높은 에너지를 가지는 레이저 펄스의 에너지를 나누어서 가지는 두 개의 펄스로 나누어야 합니다. 하지만 첫 번째 과정에서 둘로 나누어진 펄스의 에너지가 여전히 중적외선 보다 높기 때문에 또 다른 비선형 광학 현상을 이용해야
합니다. 이는 차이주파수 생성 방법으로 낮은 에너지를 가지는 펄스로 나누어진 두 개의 레이저 펄스를 비선형 광학 결정을 이용하여 두 펄스의 에너지 차이에 해당하는 중적외선 펄스를 만들어내고 실험에 이용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다양한 광학 부품들을 거쳐서 중적외선 펄스가 생성되면 레이저 펄스의 폭이 넓어져서 시간 분해능이 저하되는데 이를 장지하기 위하여, 중적외선 펄스 생성 후에 펄스 압축 과정을 거쳐서 펨토초 펄스를 만들고 이를 이용하여 분광 실험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너무 간략하게 설명해서 많은 과정이 생략되었지만 전체과정은 이와 같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이후에 비선형 분광학 실험을 위해서는 생성된 중적외선 레이저 펄스를 2개 혹은 4개로 나누어서 각 펄스들이 샘플과 상호작용하는 시간을 펨토초 수준에서 조절합니다. 이때 조절되는 각 펄스의 시간 및 입사되는 각도 등에 따라서 생성되는 신호가 분자에 대한 다른 정보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분자의 어떤 특성을 측정할 것인가에 따라서 실험 방법이 결정되고 생성된 신호를 측정하게 됩니다.
이렇게 생성된 중적외선 펄스를 여러 개 섞어서 이차원 적외선 분광기, 적외선 들뜸-탐지 분광기, 적외선 합주파수 분광기 및 테라헤르츠 분광기를 만들어서 응축상의 분자 움직임을 추적하고 있습니다.
5. 추격형(fast-follower)) 리서치가 아니라 선도형(first-mover) 리서치가 교수님의 목표로 알고 있 습니다. 그런데 현재도 구축하신 여러 레이저를 동시에 사용하여 분석하는 장비를 가지고 분광 학 분야를 선도하고 계신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교수님께서 보유하신 장비를 활용해서 분광 학으로 분석하고 싶으신 가장 관심 있는 분자의 움직임은 무엇일까요?
비선형 분광학 분야는 레이저 기술의 발전과 함께 급격히 발전하였습니다. 그동안 다양한 분자의 구 조 및 움직임을 측정하는 연구 결과가 발표되었고, 최근에는 시분해 분광학의 높은 시간 분해능과 현미 경의 공간 분해능을 결합하여 분자 및 다양한 준입자들의 움직임을 관찰하는 수준까지 이르렀습니다. 하 지만 아직도 비선형 분광학은 유기 화학이나 재료 화학에서 접근하기 어려운 장비입니다. 운용이 어려 워서 사용하기 불편하거나 비용이 많이 드는 면도 있지만, 실제로 훨씬 더 많은 비용과 인력이 소모됨 에도 불구하고 다양한 초고해상도 전자현미경들이 늘어가고 있는 것을 보면 단순한 비용의 문제는 아니 라고 생각됩니다. 제가 생각하는 가장 큰 이유는 분광학을 적용하고 싶은 상황에는, 즉 분자의 움직임이나 구조가 정말로 궁금한 상황에서는 장치의 복잡성으로 인하여 비선형 분광학을 적용하기가 어렵다는 점입니다. 예로 들면 배터리의 전기 이중 층에서 충전과 방전이 진행되고 있을 때의 리튬 이온 주변의 전해질의 분자 구조 변화, 화학 반응기 안에서 유기 반응이 진행될 때 활성화된 분자 구조, 혹은 세포 내에서의 단백질의 이차구조 변화 등은 전기화학 반응기, 유기 반응기 혹은 세포에서 반응이 진행되는 조건에서 관측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것이 현실이라고 생각합니다. 즉, 아직까지는 복잡한 분광기에 적합한 간단한 샘플들을 주로 측정하였는데, 이제는 어떤 방법을 이용하든 실제 화학 반응이 진행되는 조건에서 적용할 수 있는 분광학 장치를 만들고 적용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여러 가지 해결해야 할 것들이 있지만, 계획대로 진행되어 제가 꿈꾸는 분광 장치가 만들어진다면 전기 화학 반응기 혹은 이차전지에서 충전 혹은 방전 과정에서 음극 혹은 양극을 빠져나온 리튬 이온이 전해질에 둘러 쌓이는 용매화 과정, 그리고 용매화된 리튬 이온 전해질 뭉치가 이동해가는 모습, 리튬이 이동하는 중간에 분리막을 만났을 때의 거동 및 전기 이중층을 통과하면서 전기장의 분포에 따라서 나 타나는 용매화 구조의 변화와 마지막 과정으로 전극으로 삽입되기 위해서 전해질 용매들을 모두 제거하 는 탈 용매화 과정 등, 전기화학의 전과정에서 일어나는 핵심 분자와 주변 용매 분자의 구조 변화를 관 측하고 싶습니다. 이러한 분자 구조 및 용매화 구조 변화가 전기화학적 성질을 지배하고 예측할 수 있 는 분자 수준에서의 지식을 제공할 것으로 믿고 있습니다.
6. 분광학으로 다양한 분자들의 움직임을 분석하고 이해하려면 분광학이 아닌 분석하고자 하는 시료에 대해 서도 공부가 필요할 것 같은데요. 에너지, 유기 화학, 바이오 등 다양한 분야를 이해하시기 위한 교수님의 특별한 전략이 있으실까요?
저의 연구실에서 분광학으로 분석하고 있는 물질들은 말씀하신 대로 간단한 물과 같은 분자에서 시작하여 유기 화합물, 단백질, 공액 고분자, 자가조립 분자 단일층, 전기 이중층, 그래핀과 같은 저차원 물질 및 양자점까지 매우 다양합니다. 이 모든 분야의 최신 동향과 연구에 대해서 제가 혼자 공부해서 이 해한다는 것은 저에게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렇다고 다양한 물질들에 대한 공부를 하지 않는다면 힘들게 연구하여 개발한 분광기들의 장점을 최대한 보여줄 수가 없어서 저와 같이 공부하는 연구원들과 학생들에게 몹시도 미안한 상황이 올 것입니다. 다행히도 저의 주변에는 각 분야를 대표하는 연구 실적으로 가지고 있는 대학 및 연구소의 선배 후배 연구자분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다양한 분야의 연구자분 들과의 친목을 유지하면서 만남을 지속하면 자연스럽게 자신이 관심을 가지고 연구하는 분야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고, 여러가지 이야기들 중에서 특히 제가 분광학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있는 경우는 좀 더 심도 깊은 대화를 이어가면서 타분야에 대한 공부를 수행할 수 있었습니다. 각 분야의 최고 전문가들에게 개인 과외를 받는 것과 같은 행운을 찾아갈 수 있었습니다. 나아가 국내 및 국외 학회 에 적극적으로 참석하여 항상 새로운 연구 동향을 듣기 위해서 노력하였습니다. 이제 국내의 연구 환경 이 좋아지고 세계 최고의 실적을 자랑하시는 연구자들이 국내에도 많기 때문에 항상 최첨단 연구 결과 에 대한 강의를 들을 수 있고, 또한 그 연구자들과의 개인적인 만남을 이어갈 수 있는 학회 참석은 타분 야의 지식을 가장 효과적으로 흡수할 수 있는 가장 좋은 기회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잘 모르는 분야의 학회에 참석하는 것은 어떤 경우 상당히 어색하고 힘들 일입니다. 하지만 이 어색함을 조금 이겨내면 새 로운 지식들을 빠르게 습득할 수 있는 다양한 기회를 찾을 수 있습니다. 저도 올해부터는 좀 더 다양한 분야의 학회에 참석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7. 교수님의 연구/교육 외에 평상 시 취미활동도 궁금합니다.
대부분의 교수님들이 그렇듯이 많은 시간을 연구실 책상에 앉아서 보내기 때문에 의도적으로 취미 활동은 몸을 움직이는 야외 활 동을 선택하여 하고 있습니다. 이 중에서 특별한 기술이 필요하지 않고, 답답한 공간을 벗어나서 복잡한 머리속을 정리할 수 있는 등산을 주로 하고 있습니다. 주로 서울 근교의 산을 좋아하고 가급적이면 하루 일정으로 소화할 수 있는 산들을 위주로 등산을 하고 있습니다. 최근 물리화학 분야 교수님들과 산행을 자주 진행하고 있습니다.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다른 일들의 방해를 받지 않고 3시간 이상 같이 산 행을 하다보면 자연스럽게 연구 이야기를 하게 되고, 서로의 연구에 대해서 더 많이 이해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지게 됩니다. 머리를 식히기 위한 혼자만의 산행도 좋지만 가끔은 같은 분야 연구자분들과 같이 시간을 보내면서 서로의 고충과 관심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은 즐거운 경험입니다.
최근에는 좀 더 활동량을 늘리기 위해서 주변에서 개최되는 마라톤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아직은 주로 10km를 뛰지만 올해 말에는 하프 마라톤에 도전하고자 합니다. 찾아보면 주말에 다양한 곳에서 마 라톤 대회가 개최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처음에는 조금 힘들지만 가벼운 마음으로 뛰다 보면 근심 걱정도 머리에서 떨어지고 제 몸을 감싸고 있던 지방 덩어리들도 조금은 저에게서 멀어지는 것을 기분 좋게 느낄 수 있습니다. 달리기의 장점은 연구하다가 마음이 답답하고 일이 진행되지 않을 때 어느 곳 어느 시간대에도 달리기를 할 수 있는 장소를 찾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여러분들도 실험이 잘 진행되지 않을 때, 가볍게 운동화를 들고 주변을 한번 달려보는 것을 추천드립니다.
8. 교수님의 연구 생활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이 궁금합니다.
연구자에게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항상 실험에 성공했던 순간일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기뻤던 순간은 박사과정 1년 차 겨울에 실험 장치를 망가뜨리고 한 달여의 각고의 고생 끝에 다시 작동을 하게 해서 성공적으로 원하던 신호를 관측했을 때라고 생각이 됩니다. 스탠포드에 박사과정으로 입학하여 아직 실험보다는 수업에 집중하고 있던 때였습니다. 학기 중간에 추수감사절이 지나고 크리스마스 전이라 서 대부분의 연구원들은 휴가를 가고 연구실에 없을 때였습니다. 무슨 생각이었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갑자기 번뜩이는 아이디어가 생각이 나서 실험으로 증명해 보고 싶은 생각이 앞서서 아직 익숙하지도 않은 레이저 장치를 다루다가 한밤중에 레이저가 고장 나는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저를 가르치던 박사 후 과정 연구원은 고향에 가서 2주 후에나 올 수 있고, 대부분의 연구원들이 휴가를 가서 텅 빈 연구실에서 자정 가까운 시간에 빛이 나오지 않은 레이저 장치를 바라보면 느꼈던 절망감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습니 다. 도움을 받을 곳도 없고, 고장 난 상태를 2주 이상 방치하고 있으면 더 큰 고장이 생길 것 같아서 고민 끝에 이래도 고장 난 것이고 더 고장 내도 같은 고장 상태이니 이참에 내 맘대로 고쳐보자 하는 생각을 가지고 레이저 매뉴얼을 보면서 크리스마스 휴가의 2주를 꼬박 연구실에서 지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우 연히 레이저를 수리할 수 있었고, 그때 얻은 자신감으로 이후에도 엉뚱한 실험을 계획하고 진행할 수 있었습니다. 내가 혼자 남의 도움 없이 무언가를 이루어냈다는 성취감에 취해 힘든 학위 과정을 무사히 통과할 수 있었고, 그 후에도 닥친 더 어려운 일들도 묵묵히 수행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해서 제가 가장 기억 에 남는 순간은 처음 레이저를 내 손으로 고장내고 내 손으로 고쳤던 순간으로 생각됩니다.
9. 화학 전공 학생들에게 조언의 말씀을 해주실 수 있을까요?
화학이라는 분야를 정의하는 것이 이제는 불가능해질 만큼 화학은 다양한 분야에 응용되기도 하고, 또 새로운 분야를 만들어내는 초석이 된다고도 생각합니다. 이렇게 다양한 분야로 확장과 응용이 가능하기 때문에 종종 화학의 기본 혹은 화학 전공자만이 가지고 있는 기초 지식에 대한 중요성이 경시되는 경우가 있는 것 같습니다. 새로운 현상 혹은 응용을 발견하고 나서 이러한 일들이 일회성의 발견이 아니라 근본적인 발전으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기초 지식을 이용한 설명 혹은 새로운 기초 이론을 만들어 가는 것 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들은 화학과의 오랜 역사 속에서 구축된 교과 과정의 습득을 통하여 익힐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어지러울 정도로 빠르게 변화하는 사회 혹은 연구 현장에서 흔들리지 않는 중심을 가지고 화학의 눈으로 물질세계를 볼 수 있는 능력을 기를 수 있기를 바랍니다.
10. 화학연구를 열심히 해나가고 있는 신진/중견 화학 연구자에게 조언의 말씀을 해주실 수 있을까요?
마지막 질문이라서 그런지 가장 어렵고, 저도 중견 연구자인 입장에서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이네요. 제가 조언을 드릴 수 있는 입장은 아니라고 생각됩니다. 다만, 동료 연구자의 입장에서 최근 어려운 연구 및 교육 환경이 신진/중견 연구자들의 머리를 짓누르고 있는 것이 느껴집니다. 새로 독립적 연구를 시작하시는 신진들과 더불어 이제 긴 호흡으로 자신의 분야를 심화 시켜보려고 하는 중견 연구자들도 연구비 삭감과 학령 인구 감소라는 현실적 벽 앞에서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지 막막할 것으로 생각됩니 다. 이럴 때일수록 다른 동료 연구자들과의 소통을 넓히고 같이 발전할 수 있는 길을 찾아보는 것이 좋 을 것 같습니다. 화학회와 각 분과회를 중심으로 연구 및 교육에 대해서 공동으로 대응할 수 있는 방안을 논의하면 좋겠습니다.
Comentari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