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을 빛낸 화학자 50(2026년 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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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 강재효(姜在孝) 서강대학교 교수(1950~2012)

강재효 교수는 1950년 10월 15일 제주도 서귀포시 법환동에서 항일 학생운동가이신 강시검 선생(1995년 광복절에 독립 유공 대통령 표창을 추서함)의 2남 1녀 중 장남으로 태어나 제주도에서 자랐다. 1968년 서강대학교 화학과에 입학하여 1972년에 학사 학위를 취득하였고, 1976년에는 윤능민 교수의 지도하에서 석사학위를 취득하였다. 1976년 유한양행에서 잠시 연구원으로 근무한 후 미국으로 건너가서 1977년 1월부터 미국 퍼듀(Purdue) 대학교 화학과에서 로버트 벤커서(Robert A. Benkerser) 교수 지도하에 칼슘, 마그네슘 및 백금을 포함하는 유기금속 화합물에 관한 연구를 수행하여 1980년 5월 박사학위(PhD)를 취득하였다. 이후 1980년부터 1982년까지 1990년 노벨 화학상 수상자인 하버드(Harvard) 대학교 일라이어스 코리(Elias J. Corey) 교수 연구실에서 박사후 연구원으로 11(R)-HETE의 입체특이적 전합성 연구를 수행하였다. 1982년 귀국 후 서강대학교 출신으로는 최초로 모교 화학과 교수로 부임하였으며, 2012년 별세할 때까지 30년간 후학 양성과 유기합성화학 연구에 정진하였다.
강재효 교수의 연구 관심 분야는 유기합성화학, 유기합성방법론, 유기금속화학이었다. 강재효 교수는 서강대학교 부임 후 세 가지 핵심 연구 영역에서 두드러진 성과를 이루었다. 그 첫 번째로, 국내 비대칭 합성 연구의 선구자로서 해당 분야를 선도하는 역할을 수행하였다. 분자 간 비대칭적 상호작용은 생명 현상의 근간을 이루며, 이러한 키랄성의 이해와 활용은 신약, 농업용 화학물질, 향료 산업 등의 발전에 필수적인 연구 영역이다. 강재효 교수는 분자 수준에서 키랄성 인식을 최대화하는 독창적인 시스템을 설계하였고, 이를 기반으로 한 촉매 개발에 성공하였다. 개발된 비대칭 촉매는 구조적으로 복잡한 분자들의 비대칭 합성을 용이하게 하는 다양한 반응 시스템 연구에 적용되었다. 특히 촉매적 비대칭 합성 방법론은 소량의 키랄 촉매가 다수의 기질 분자에 광학 활성을 전이시킬 수 있어, 광학적으로 순수한 화합물 생산에 있어 가장 경제적이고 효과적인 접근법으로 평가받고 있다.

두 번째로, 차세대 평판 디스플레이 기술의 핵심 소재인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재료 개발 연구를 수행하였다. 유리 또는 플라스틱 기판 위에 유기 화합물 박막을 형성한 뒤 전류를 인가하면 발광이 일어나는 유기 전자발광 현상을 활용하여, 강재효 교수는 우수한 색 재현성과 장수명 특성을 갖추고 열적 안정성이 뛰어난 발광 소재의 합성 연구에 매진하였다.
세 번째로, 노화 방지 물질 개발 분야에서도 의미 있는 연구 성과를 달성하였다. 노화의 주된 원인으로 지목되는 생체 내 분자의 산화적 손상을 방지하기 위하여, 강재효 교수는 고효율의 신규 항산화제 및 항산화 모방 화합물을 설계·합성하였으며, 이들의 생물학적 활성을 체계적으로 규명하였다. 개발된 항산화 물질은 피부 노화 지연 및 미백 효과를 목적으로 하는 기능성 화장품 소재에서부터 뇌혈관 질환 등 노인성 퇴행성 질환 치료를 위한 의약품 후보물질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응용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강재효 교수는 연구 성과로 78편의 논문과 7편의 특허를 발표하였으며, 특히 “Synthesis of New Bis(amidine)−Cobalt Catalysts and Their Application to Styrene Polymerization”(Organometallics, 2014) 등 국제 저명 학술지에 다수의 논문을 게재하였다. 또한 “Retinyl Polyhydroxybenzoate derivatives”(Korean Pat. 10-0588472-0000) 등의 특허를 통해 연구 성과의 실용화에도 기여하였다. 이러한 학문적 성과를 인정받아 대한화학회가 수여하는 우수논문상(2002년), Sigma Aldrich 화학자상(2004년)을 수상하였다.


강재효 교수는 탁월한 연구 업적과 더불어 학회와 대학 발전을 위한 헌신적인 봉사 활동으로도 한국 화학계의 기반 구축에 크게 기여하였다. 1997년부터 2002년까지 대한화학회 학술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며 학술대회 기획과 학회 발전에 참여하였고, 1998년부터 2000년까지는 대한화학회 Bulletin지 편집위원회 상임편집위원으로 재직하며 국내 화학 연구의 학술적 수준 향상에 기여하였다. 특히 2007년에는 대한화학회 유기화학분과회 회장을 역임하며 국내 유기화학계의 학술 교류 활성화와 젊은 연구자 육성에 앞장섰다. 대학 차원에서는 1999년부터 2007년까지 서강대학교 유기반응연구센터장을 맡아 센터를 국내 유기합성화학 연구의 거점으로 육성하였다.

강재효 교수의 학문적 유산 중 가장 주목할 만한 것은 인재 육성에 있다. 30년의 교육자 생애 동안 석사 과정 131명, 박사 과정 45명(서강대 21명, 해외 및 국내 타 대학 24명)의 연구자를 길러냈으며, 이들은 학계, 연구기관, 산업 현장 등 광범위한 영역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대학 및 연구소에는 경희대학교 응용화학과 김학원 교수, 서강대학교 화학과 이원구 교수를 포함한 5명이 교수 및 연구원으로, 기업에서는 임근조 전 에스티팜 부회장 등 19명이 최고경영자 및 임원으로, 법조계에는 안성훈 변호사를 비롯한 4명이 변호사 및 변리사로, 해외에서는 서세기 박사(Dupont USA) 등 13명이 글로벌 기업에 재직하며 각 분야의 전문가로 성장하였다. 특기할 만한 것은 제약 및 바이오 산업 분야에서의 제자들의 활약상이다. 임근조(전 에스티팜 부회장), 엄태웅(삼양홀딩스 대표이사), 이휘성(엘마이토 테라퓨틱스 대표이사), 김성곤(퍼스트바이오테라퓨틱스 CTO 부사장), 김성헌(현대약품 연구소장), 최순규(아벨로스테라퓨틱스 대표이사), 성무제(에스티팜 대표이사 사장), 김경진(삼양바이오팜 대표), 정재욱(GC녹십자 R&D 부문장), 임원빈(아보메드 대표이사), 이진수(피노바이오 부사장), 이준원(하나제약 의약합성실장) 등 다수의 제자들이 유한양행, 한미약품, 대웅제약, 보령제약, LG화학을 비롯한 국내 주요 제약기업과 신생 바이오 기업에서 연구개발과 경영을 주도하고 있다. 국내 제약 산업이 지난 10년간 개방형 혁신(오픈 이노베이션)에 3000억 원 이상을 투입하며 신약 창출 역량 강화에 박차를 가하는 과정에서, 강재효 교수가 배출한 인재들이 핵심 동력으로 기능하고 있다는 점은 그의 교육적 영향력을 여실히 보여준다. 이 같은 인재 육성이 가능했던 배경에는 강재효 교수의 특별한 교육 철학이 있었다.
강재효 교수는 서강대학교 출신으로는 최초로 모교에 교수로 부임한 만큼, 모교에 대한 각별한 사랑과 긍지, 그리고 막중한 책임감을 가지고 있었다. “내 제자들을 서강의 자랑으로 키우겠다”는 신념으로 교육에 임했으며, 이는 때로는 엄격함으로, 때로는 뜨거운 열정으로 표현되었다. 강재효 교수의 교육 방식은 엄격하기로 유명했다. 학생들에게 높은 학업 수준을 요구했으며, 특히 자신의 지도학생들에게는 더욱 철저했다. 1980년대에는 중간고사가 끝나면 지도학생들은 성적표를 들고 교수님 연구실을 찾아가 면담을 해야 했다. 성적이 기대에 미치지 못한 학생들에게는 큰 눈을 부릅뜨고 강렬한 눈빛으로 응시하며 “이게 최선이냐? 진정으로 화학을 하고 싶은 것이 맞느냐?”라고 호통을 치셨다. 그 매서운 눈빛 앞에서 감히 눈을 맞추지 못하고 고개를 숙이던 학생들의 모습은 제자들의 기억 속에 생생하게 남아 있다. 하지만 이러한 엄격함은 학생들에 대한 실망이 아니라, 그들이 더 나은 연구자로 성장하기를 바라는 간절한 기대의 표현이었다. 강의실에서의 강재효 교수는 열정 그 자체였다. 항상 수업 시작 시간보다 최소 10분 이상 일찍 강의실에 도착하여 준비를 마쳤고, 수업이 시작되면 칠판 가득 복잡한 유기화학 반응식과 메커니즘을 빼곡히 적어가며 강의를 전개해 나갔다. 분필 가루가 날리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칠판을 채워가는 모습에서 학생들은 화학에 대한, 그리고 교육에 대한 교수님의 진심을 읽을 수 있었다. 강의 중 졸고 있는 학생이라도 발견하면 즉시 수업을 멈추고 “지금 네가 졸 시간이냐? 당장 나가서 세수하고 정신 차리고 들어와!”라며 엄중히 꾸짖었다. 이러한 엄격함 속에서 학생들은 학문에 대한 경외심과 연구자로서의 자세를 체득하였다.

강재효 교수의 이러한 열정적인 교육은 놀라운 결실을 맺었다. 1982년 부임 후 처음으로 지도를 맡았던 82학번 학생들은 이후 “강재효 키즈(Kang’s Kids)”라는 별칭으로 불리게 되었다. 이는 단순한 애칭을 넘어, 강재효 교수의 교육 철학과 연구 열정을 물려받은 화학도들의 집단을 상징하는 이름이 되었다. 이들 중 상당수가 대학원 진학을 결심했고, 많은 학생들이 미국, 유럽, 일본 등 세계 유수 대학의 박사과정에 입학하여 국제적 수준의 연구 경험을 쌓았다. 이후 이들은 한국으로 돌아와 제약 산업, 화학 산업, 학계 등 다양한 분야에서 핵심 인재로 활약하며 한국 과학기술 발전의 중추적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강재효 키즈”현상은 이후 학번에서도 계속되어, 그의 문하에서 배출된 수많은 제자들이 각 분야에서 “서강 화학과 출신”의 명성을 드높이는 원동력이 되었다. 강재효 교수가 학생들에게 가장 강조했던 것은 “서강인으로서의 자긍심”이었다. “너희는 서강대학교 학생이다. 어디를 가든 당당해야 하고, 최고가 되어야 한다”라는 말을 입버릇처럼 되풀이했다. 이러한 가르침은 제자들에게 깊이 각인되었고, 그들은 각자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는 연구자, 기업인, 전문가로 성장했다. 실제로 그의 제자들은 국내 제약 및 바이오 산업에서 신약 개발을 주도하는 핵심 인력이 되었으며, 한국이 제약 선진국으로 도약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유한양행, 한미약품, 대웅제약 등 주요 제약사에서 R&D를 이끄는 연구소장급 인사들, 혁신적인 바이오벤처를 창업하여 신약 파이프라인을 구축한 CEO들, 그리고 글로벌 제약사에서 국제적 신약 개발에 참여하는 연구자들 중 상당수가 강재효 교수의 가르침을 받은 제자들이다. 이처럼 강재효 교수는 연구자로서의 탁월함과 더불어 교육자로서의 헌신을 통해 모교의 위상을 크게 높였다.
서강대학교 출신 최초의 모교 교수로서 그가 보여준 학문적 성취와 인재 양성의 성과는, 서강대학교가 국내 최상위 연구중심 대학으로 자리매김하는 데 중요한 초석이 되었다. 그의 업적은 단순히 78편의 논문과 7건의 특허로 계량화될 수 없는, 훨씬 더 깊고 넓은 의미를 지닌다. 그것은 한 사람의 헌신적인 교육자가 수백 명의 제자들을 통해 사회 전반에 미친 파급효과이며, 한국 화학계와 산업계의 지형을 바꾸어 놓은 장기적 영향력이다. 서강대학교의 교시인 “그대 서강의 자랑이듯, 서강 그대의 자랑이어라”는 단순한 슬로건을 넘어 강재효 교수의 삶 자체가 보여준 실천적 가치였다. 그는 제자들을 서강의 자랑으로 키웠고, 그 제자들은 각자의 위치에서 서강의 이름을 빛내고 있다. 이는 교육의 선순환이며, 한 교육자가 남길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유산이다.
강재효 교수는 수년 간의 대장암 투병 끝에 2012년 향년 63세의 나이로 별세하였다. 그의 타계는 한국 화학계에 큰 슬픔을 안겼지만, 그가 심어놓은 학문적 씨앗과 교육적 유산은 시들지 않고 계속 자라나고 있다. 그의 제자들은 여전히 세계 각지에서, 그리고 한국의 산업 현장과 연구실에서 새로운 화합물을 합성하고, 신약을 개발하며, 또 다른 세대의 화학도들을 가르치고 있다. 연구실과 강의실에서 울려 퍼지는 그들의 목소리 속에는 여전히 강재효 교수의 가르침이 살아 숨 쉬고 있다. “너희는 서강의 자랑이다. 최고가 되어라.” 그 메시지는 세대를 넘어 전해지며, 한국 유기화학계와 제약 산업의 발전을 이끄는 원동력으로 작용하고 있다. 강재효 교수의 학문적 업적과 교육적 헌신은 이렇게 그의 제자들을 통해 영속하며, 한국 과학기술사에 지울 수 없는 족적을 남기고 있다.
글 동국대학교 신소재화학과 교수 이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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