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한 전해질의 이온 구조와 전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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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민 | 부산대학교 화학교육과 조교수, jeongmin@pusan.ac.kr
서 론
전해질은 일반화학 교과서에도 등장하는 익숙한 화학 시 스템이다. 하지만 전해질은 이온 이동의 매질일 뿐 아니라, 전극 계면의 안정성, 부반응 억제, 장기 구동 안정성까지 좌 우하는, 차세대 에너지 저장·변환 기술의 핵심 소재로 최근 폭넓은 주목을 받고 있다.1-8
많은 리튬이온전지용 비수계 전해질에서는 용매의 유전 율, 점도, 염의 용해도, 이온 해리도 등을 주요 변수로 보았 고, 많은 경우 염 농도는 약 1 몰농도 부근에서 최적화되었 다5. 그러나 물-속-염 전해질(water-in-salt electrolyte, WISE)을 비롯한 최근의 고농도 전해질 연구1-7는 농도 자체 가 전해질의 구조와 기능을 바꾸는 설계 변수임을 보여준 다[그림 1]. 높은 염 농도는 점도 증가와 확산 저하를 일으 킬 수 있지만, 동시에 용매화 껍질의 재편, 이온쌍 및 이온 집합체 형성, 계면 반응 제어와 같은 새로운 가능성도 연다. 이제 전해질 설계는 염–용매–농도 공간을 조절해 원하는 국 소 구조, 이온 상관, 수송 특성을 만드는 문제로 확장되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전해질 이론의 확장도 요구한다.9-10 고 전적인 드바이–휘켈 이론은 이온 사이의 장거리 정전기 상 호작용을 평균장 수준에서 기술하여, 묽은 전해질 용액의 비이상성을 이해하는 출발점을 제공했다. 이온 분위기 (ionic atmosphere)와 드바이 차폐 길이(Debye screening length)는 지금도 전해질 화학의 핵심 개념이다. 그러나 진한 전해질에서는 이온 사이의 평균 거리가 짧아지고, 이 온의 유한 크기, 배열 효과(packing), 용매화 구조, 다체 상관, 비균질 국소 환경이 동시에 중요해진다. 그 결과 고 전적 드바이–휘켈 이론만으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구조적· 동역학적 비이상성이 나타난다.
본 총설은 전하 밀도 요동과 그 시간적 완화에 주목하여, 진한 전해질의 비이상성을 다루는 최근의 이론적· 계산화학 적 시도를 간략히 다룬다. 이를 통해, 이온들의 공간적 배열 을 예측하고, 순간적인 전하의 불균형 및 그 완화를 이해하 여, 현상학적 구조-전도도 상관관계의 미시적 기반을 구축 하기 위한 시도를 살펴본다.

본 론
1. 농도가 높아지면 전해질 안에서는 무엇이 달라지는가
묽은 전해질에서는 각 이온이 비교적 잘 정의된 용매화 껍질에 둘러싸여 있고, 자유 용매도 충분하다. 반면 염 농 도가 증가하면 자유 용매의 비율이 줄어들고, 하나의 용 매 분자가 여러 이온과 동시에 상호작용하거나 양이온과 음이온이 쌍을 이루는 등 다양한 용매화 구조가 나타난다 [그림 2]. 극단적인 경우에는 염이 용매에 녹아 있는 salt-in-solvent 관점보다, 용매가 염-풍부 네트워크 안에 들어 가 있는 solvent-in-salt 관점이 더 적절하다.1-2
이러한 구조 변화는 이온이 이동하는 방식도 바꾼다.4-7 운반체형(vehicular) 메커니즘에서는 이온이 자신의 용 매화 껍질을 비교적 유지한 채 이동한다. 반면 구조형 (structural) 메커니즘에서는 하나의 안정한 용매화 껍 질이 장거리로 이동하기보다, 결합 또는 배위 환경이 연 속적으로 재배열되면서 실질적인 전하 이동이 일어난다. 양성자 수송에서 잘 알려진 그로투스(Grotthuss) 메커 니즘은 구조형 메커니즘의 대표적인 예이다. 진한 전해 질이나 고분자 전해질에서도 배위 결합의 교환, 자리-간 이동, 고분자 사슬 운동과 결합된 구조 재배열 기반 이동 이 활발히 논의되고 있다. 결국 좋은 이온전도체로서의 전해질은 이온을 충분히 안정화하면서도, 과도한 응집이 나 느린 구조 재배열은 피해야 한다.

2. 전하는 어떻게 공간적으로 배열되는가: 드바이 차폐(Debye screening)와 구조적 상관
드바이–휘켈 이론의 핵심 통찰은 전해질에서 전하가 무 작위로 분포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전기적 중성 조건과 장 거리 쿨롱 상호작용 때문에, 한 이온 주변에는 평균적으로 반대 전하가 더 많이 분포하는 이온 분위기가 형성된다. 묽 은 전해질에서 이러한 전하 불균일성이 드바이 길이 정도 에서 차폐되며, 이 모델은 활동도 계수와 정전기적 비이상 성을 이해하는 기초가 되었다.
그러나 진한 전해질에서는 이 단순한 모델을 그대로 쓸 수 없다. 이온은 점전하가 아니라 유한한 크기를 가진 입자 이며, 장거리 쿨롱 상호작용뿐 아니라 배제 부피, 배열 효 과, 단거리 반발도 중요하다. 또한 용매는 단순한 유전율 연 속체가 아니며, 양이온과 음이온도 서로 독립적으로만 분 포하지 않는다. 이들은 이온쌍, 클러스터, 네트워크와 같은 구조를 만들 수 있다.9-14 이러한 효과는 전하 구조인자 (charge structure factor, 𝑆QQ(𝑘))에 반영된다[그림 3]. 전 하 구조인자는 특정 길이 척도에서 양전하와 음전하가 어 떻게 상관되어 있는지를 보여주는 물리량이다. 진한 전해 질에서는 이온의 유한 크기와 배열 효과 때문에 전하 상관 이 진동성을 가질 수 있고, 구조인자에는 유한한 파수 𝑘에서 특징적인 피크가 나타난다. 평균 구면 근사(mean spher-ical approximation)를 비롯한 액체상 이론13과 분자동역 학 시뮬레이션14-16,18은 이러한 미시 구조를 정량적으로 이 해하는 데 중요한 도구가 된다.
최근 활발히 논의되는 언더스크리닝(underscreening)17-19 도 같은 맥락에 있다. 묽은 전해질에서는 드바이–휘켈 이론 의 예상과 같이 염 농도가 증가하면 차폐 길이가 짧아진다. 그러나, 일부 진한 전해질과 이온성 액체에서 전기적 상호 작용 또는 표면힘의 장거리 감쇠 길이가 드바이 길이보다 훨씬 길게 나타나고, 경우에 따라 농도 증가와 함께 길어지 는 현상으로 보고된 것이다[그림 3C]. 다만 이 현상의 미시 적 기원과 보편성은 아직 논의 중이며, 이온 크기, 배열 효 과, 용매화 구조, 계면 효과, 장거리 집단 상관 등이 주요 원 인으로 다루어지고 있다.
3. 용매는 단순한 배경인가: 이온–용매 결합과 유전(dielec-tric) 응답
드바이–휘켈 이론은 묽은 용액의 용매를 하나의 유전율 을 가진 연속체로 다룬다. 이 접근은 진한 전해질에서는 충분하지 않다.19-21 많은 용매 분자가 이온의 용매화 껍질 에 참여하면서 자유 용매, 용매화 용매, 벌크 용매의 구분


이 중요해진다. 동시에 용매의 회전 자유도, 분극 응답, 수 소결합 네트워크, 국소 유전 환경도 달라진다. 대표적인 예로, 염 농도의 증가에 따른 전해질의 정적 유전율 감소 가 있다[그림 4]. 이온 근처의 용매 분자가 강하게 구속되 면 외부 전기장에 의해 배향 및 그 완화가 제한되기 때문 이다. 따라서 진한 전해질의 유전 응답은 염 농도와 용매 화 구조에 크게 의존한다.
더 나아가 유전 응답은 공간과 시간에 따라서도 달라질 수 있다. 한 위치에서 생긴 전하 요동은 주변의 용매 분극 과 이온 분위기를 함께 변화시키며, 이 변화는 항상 즉각 적이거나 국소적으로만 일어나지 않는다. 용매의 빠른 회 전 운동, 이온 분위기의 느린 완화, 집단적 전하 수송은 서 로 다른 시간 척도에서 나타난다. 따라서 진한 전해질에 서는 이온과 용매가 함께 만드는 분극 구조를 농도·공간· 시간에 따라 달라지는 응답으로 이해해야 한다.
4. 이온 전도도는 왜 확산계수만으로 설명되지 않는가
묽은 용액에서 유용한 네른스트–아인슈타인(Nernst–Einstein) 관계식은 각 이온이 독립적으로 확산하고, 그 확 산이 곧 전하 수송으로 이어진다고 가정한다. 이 가정은 진 한 전해질에서는 뚜렷한 한계를 가진다.3-7, 22-24 양이온과 음이온의 운동이 서로 강하게 얽혀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 어 양이온과 음이온이 함께 움직이는 중성 집합체는 각 이 온의 자기확산에는 기여하지만, 전체 전류에는 제한적으로 만 기여한다. 반대로 국소적인 구조 재배열이 빠르게 일어 나면, 개별 이온의 장거리 확산이 크지 않아도 전하 불균일 성은 빠르게 완화될 수 있다.
이 관점에서 이온 전도도는 전하 밀도 요동이 장시간·장 거리 극한에서 얼마나 효율적으로 완화되는지를 나타내는 집단적 응답으로 이해할 수 있다[그림 5]. 이를 정량화하는 한 가지 방법은 전하 밀도의 동적 구조인자(𝑆QQ (𝑘,ω))12,15,23 를 분석하는 것이다. 특히 선형응답 이론과 연속 방정식의 관점에서 이 물리량의 장파장·저주파 거동은 전류 상관 및 이온 전도도와 연결된다. 여기서 파수 𝑘는 전하 불균일성 의 공간적 길이 척도를, 진동수 ω는 그 불균일성이 완화되 는 시간 척도를 나타낸다. 이 관점은 구조, 동역학, 전도도 를 하나의 틀에서 연결한다. 국소 용매화 구조와 이온쌍 형성은 정적 전하 상관을 바꾸고, 이 전하 상관은 다시 전하 요동의 완화 방식에 영향을 준다. 즉, 특정 구조적 환경에 서 전하 밀도 요동이 얼마나 효율적으로 완화되는지에 대 한 정량적 분석은 구조-동역학-전도도 상관관계의 미시적 기반을 구축해 나가는 길을 제시한다.

결 론
이 글에서는 진한 전해질에서 나타나는 구조적·동역학 적 비이상성을 묽은 전해질과 구별되는 관점에서 살펴보 았다. 염 농도가 높아지면 용매화 구조, 이온쌍과 집합체 형성, 전하 차폐, 유전 응답, 이온 운동의 상관성이 함께 달 라진다. 따라서 진한 전해질의 이온 구조와 전도도는 따로 떼어 설명하기 어렵다. 앞서 살펴본 최근 연구들은 국소 구조가 전하 상관을 만들고, 그 전하 상관이 시간에 따라 완 화되는 과정을 함께 보아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고전적 드바이–휘켈 이론을 넘어서는 전해질 이론도 이 러한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핵심은 전하 밀도의 공간적 배열과 시간적 완화를 함께 다루는 것이다. 이를 통해 열역 학적 비이상성, 용매화 구조, 전하 상관, 비국소 유전 응답, 집단적 전하 완화를 하나의 틀 안에서 연결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동적 전하 구조인자는 여러 현상을 함께 읽어내 는 중심 개념이 되며, 분자동역학 시뮬레이션은 미시 구조 와 동역학을 정량적으로 잇는 핵심 도구가 된다. 이러한 접 근이 액체 전해질뿐 아니라 계면 전기화학, 고분자 전해질, 고체 이온전도체, 비평형 이온 수송 현상까지 폭넓게 확장 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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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민 Jeongmin Kim
• 서강대학교 화학과, 학사(2007.2–2011.2)
• 서강대학교 화학과, 석사(2011.2–2013.2, 지도교수: 성봉준)
• Caltech 화학과, 물리화학 박사(2016.9–2021.8, 지도교수: Thomas F. Miller III)
• 한국에너지공과대학교 에너지공학부 조교수(2023.2–2025.2)
• 부산대학교 화학교육과 조교수(2025.3–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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