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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을 빛낸 화학자 21

윤경병(尹景炳)서강대학교 교수(1956~)



2009년의 어느 따뜻한 봄날, 연구실에서 그룹 토의를

마치고 점심을 먹은 후 서강대 뒷산인 노고산을 산책했던

기억이 난다. 당시 투고했던 논문이 두어 차례 거절된 터

라 마음이 무거웠다. 그랬던 내게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던

“irresistible”이라는 단어가 유난히 기억에 남는다. 이 단

어는 여러 의미를 지닌다. 상대방이 거절할 수 없을 만큼 철저히 준비하라는 의미도 갖지만, 부족한 점이 있을 때 남을 탓하지 말고 자신에게서 원인을 찾으라는 반구저기(反求諸己)의 정신도 담고 있다. 사실 선생님께서 그 말씀을 그때 처음 하신 것은 아니다. 석사 과정 중 연구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고 방법론도 몰라서 좌절감에 빠져있던 내게 다가오셔서 건네셨던 말씀이었다. 그때의 말씀은 나에게 큰 용기와 자신감을 심어주었고,“ 거부할 수 없는”이라는 이 단어는 내 인생에서 중요한 가르침이 되었다. 이제는 필자도 제자를 가르치는 교수가 되어, 학생들에게 하는 장황한 잔소리보다 따뜻하고 강렬한 격려의 한 마디가 더 깊은 울림을 줄 수 있다는 진실을 종종 되새긴다.



화학과의 인연, 그리고 화학자의 길

윤경병 교수의 화학에 대한 열정은 중학교 1학년 때부

터 시작되었다. “처음 접한 주기율표의 규칙성에 대한 신

비로움은 화학의 세계로 들어가는 눈을 뜨게 해주었고,

고등학교 시절 전경갑 선생님을 만나면서 그 매력에 더

욱 빠져들게 되었다. 한편, 어린 시절 선친의 비누 제조

업 경험은 자연스럽게 화학에 대한 친근감을 심어주었고,

이로 인해 화학자의 길로 들어서게 되었다”고 회상한다.

(전민제 화학인상 기념, “화학세계가 만난 화학자” 중)

윤경병 교수는 1975년 서울대학교 화학과에 입학하여

1979년에 학사학위를 받고, 이어 KAIST 전학제 교수 문

하에서 제올라이트 연구를 하며 1981년에 석사학위를 받

았다. 석사 학위를 받은 후, 전학제 교수의 형님인 전민제 사장이 운영하던 (주)전엔지니어링에서 3년 반 동안 근무하였다. 아마도 이때 화학공정, 공정설계, 그리고 화학기술의 산업화와 지속 가능성에 대한 깊은 통찰을 얻은 것으로 보인다. 이후 1984년부터 미국 휴스턴대학(University of Houston) Jay K. Kochi 교수 문하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고, 곧이어 1989년 9월부터 서강대학교 교수로 재직하여, 2021년 8월 정년을 했다. 그 후, 2021년 9월부터 현재까지 로욜라 석학교수로서 활발히 활동 중이다.


화학의 본질을 추구하는 선구자

윤경병 교수의 연구는 제올라이트와 전자전달, 그리고 인공광합성에 중점을 두어 왔다. 전학제 교수를 통해 처음 접한 제올라이트는 그의 연구 인생에서 중요한 축이되었다. 석유화학과 같은 다양한 산업 분야에서 촉매로 사용되어 온 제올라이트 결정을 마이크로미터 크기의 빌딩블록으로 활용해, 결정의 자기조립 및 비선형광학 물질 개발과 같은 첨단 연구를 수행하였다. 특히, Kochi 교수 문하에서 수학한 전자전달 개념과 제올라이트 연구를 융합하여, 세계 최초로 태양과 공기만으로 천연가스를 생성하는 인공광합성 개념을 제안하였다. 그 후 이 제안은 과학기술부/한국연구재단 지원을 받아 한국인공광합성 연구센터(Korea Center for Artificial Photosynthesis, KCAP)를 개소하는 계기가 되었다. 한편, 이 센터는 미국 에너지부(DOE)가 지원하고 캘리포니아 지역의 Caltech, UC at Berkeley, Lawrence Berkeley National Laboratory(LBNL), Stanford 대학 등이 공동으로 참여하는 인공광합성 공동연구센터(Joint Center for Artificial Photosynthesis, JCAP)를 출범하는데 동기를 제공하였다. 한국인공광합성 연구센터의 개소는 추후 한미 공동연구에 관한 양해각서(KCAP-JCAP MOU)의 기반이 되었다.


이 센터는 화학 분야의 학문적 발전 뿐만 아니라 연구의 실용화 가능성을 높이는 중요한 기여로 평가받았다. 그 근간에는 윤경병 교수가 품고 있는 화학의 본질에 대한 철학이 있다. “화학은 단순한 학문을 넘어 인류의 미래를 밝히는 빛이어야 한다”고 늘 강조해 왔으며, “현대 화학이 학문적 호기심을 넘어 인류의 지속 가능성을 보장하는 데 기여할 수 있기를 바라며, 인류가 직면한 기후변화와 에너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화학이 실질적인 기여를 해야 한다”는 신념을 설파해 왔다.


제자들에게 전하는 따뜻한 가르침

윤경병 교수는 뛰어난 연구자일 뿐만 아니라, 따뜻한 마음을 가진 스승으로서 제자들의 존경을 받아 왔다. 제자들은 현재 다양한 대학, 연구기관과 산업 현장에서 활약하고 있으며, 그들은 우수한 연구 성과를 통해 스승의 가르침을 이어가고 있다. 최근, 그는 “모든 제자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행복하게 살아가는 모습을 보는 것이 가장 큰 보람입니다.”라는 말과 함께, 더 이상 연구의 길을 걷지 않는 옛 제자를 회상하며 그에 대한 깊은 애정을 표현하기도 했다. “화학을 하되, 사람의 마음을 이해하고, 연구의 본질에 맞게 순수하게 화학을 탐구하라.” 윤 교수의 이 말은 화학에 대한 그의 깊은 열정과 따뜻한 인품을 잘 나타낸다.



글 | DGIST 화학물리학과 교수 정낙천

부경대학교 화학과 교수 김현성

한양대학교 화학과 교수 이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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