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이 된 인간의 피(2025년 7월호)
- 洪均 梁
- 6월 28일
- 4분 분량
최종 수정일: 7월 1일

모기의 계절이 돌아왔다. 기후 이변 때문이지 다른 이유일지 모르겠지만 갈수록 여름이 길어지며 모기와 공동 거주하는 기간도 늘어나는 듯 싶다. 하지만 모기 연구자를 제외하고는 모기를 좋아한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 없다. 어쩌면 모기에게 자신의 피를 먹이며 연구하는 사람들도 퇴근 후 누워있는 와중 귀 옆에서 울리는 거대한 날갯짓 소리마저 사랑하진 못할 것이다. 대부분 모기의 멸종이 생태계에 미칠 어떠한 영향을 우려해서 인도적 차원에서 자제하고 있을 뿐, 과학적 진보와 권력이 주어진다면 모기 멸종에 이바지하기를 원하는 사람도 많으리라. 질문은 여기서 시작된다. 흘러온 시간 속에서 모기에 대항해 우리가 새롭게 얻은 무기는 과연 있을까?
살충제와 독
모기는 결국 인간에게는 해충 중 하나다. 흡혈을 일삼는 파리나 거머리, 빈대나 독을 갖는 거미와 지네, 그리고 우리의 삶의 공간을 침입하는 개미, 흰개미, 바퀴벌레 모두 공생하기에는 너무 먼 대상들이어서 효율적이고 완전한 구축을 꿈꾼다. 해충과의 싸움은 물리적인 방식으로 펼쳐내기에는 체급의 차이가 곤란함을 만든다. 우리의 체격이 작아 이겨내기 어려워서가 아닌, 반대로 그들이 너무 작아 상대하기 쉽지 않아서다. 작은 크기의 생명체가 보이는 일반적인 특성을 따라 급격히 불어나는 많은 개체 수는 일을 더 복잡하게 만든다. 광범위하며 치명적인 공격을 가하는 방법, 답은 화학에 있다. 가장 효과적이었던 살충제는 더 이상 사용되지 않는다 . DDT라는 이름으로 불리던 Dichlorodiphenyl-trichloroethane은 간단하고 대칭적인 구조를 가져 합성은 1874년 오스트리아의 화학자 오트마르 자이들러 (Othmar Zeidler)에 의해 합성에 성공한다. 그러나 사용할만한 분야가 드러나는 데는 60여년의 시간이 흐른 뒤 일이었다. 스위스의 화학자 파울 헤르만 뮐러(Paul Hermann Müller)는 1939년 DDT가 곤충 신경계에 강력한 독성 효과를 보이는 살충제임을 확인한다. 당시는 제2차 세계 대전에 의해 말라리아와 발진티푸스를 매개 하는 모기가 골칫거리였으며, DDT는 즉각적으로 투입되어 수많은 병사들이 감염에서 안전하도록 만들었다. 살충제로서의 DDT의 효능을 발견한 업적은 1948년 노벨 생리의학상의 주인공으로 인정받는다. DDT가 대한민국에서도 한국전쟁 이후 해충을 제거해 안전하게 살아남는 데 큰 도움을 준다. 하지만 이후 역사 속으로 사라져 더 이상 우리 주위에서 찾아볼 수 없는 것은 환경과 생물에게 농축되어 유해성을 보인다는 특징이 알려짐으로부터였다. 살충제는 곤충이나 벌레를 대상으로 유효한 독성 물질이지만 인간의 신경계나 내분비에도 영향을 주는 경우가 많아 음독 자살에도 자주 사용되어온 비극적인 역사를 함께한다. 자연스레 이후의 살충제 개발은 선택적인 효과를 보이는 더 안전한 물질을 찾아내는 방향으로 이루어지는데, 언제나 답은 자연에서 찾을 수 있었다.

국화 중에는 꽤나 효과적인 살충 효과를 보이는 제충국들이 있었으며, 핵심 성분이 무엇일지 화학자들은 관심 가지고 하나씩 분리하게 된다. 파이레트린(Pyrethrin)이라는 계열의 물질들이 천연 살충 물질임을 확인한 후에는 현대의 신약 개발 과정과 마찬가지로 조금씩 구조를 변화 시키며 최선의 답안을 파헤쳤다. 이제는 여름철의 상징이기도 한 추억 속 냄새를 풍기는 모기향이나 가정에서 간단히 사용하는 분사형 모기약의 제조에 여기서 유래한 알 레트린(Allethrin)이나 프랄레트린(Prallethrin)이 사용 되며, 말라리아 위험 지역에 보급되는 살충 섬유 방충망에 투입되는 델타메트린(Deltamethrin)이 대표적이다.
살충제는 계속해서 진화하고 있다. 내성을 만들어 살아 남는 일종의 수퍼-해충들을 상대하기 위해서는 또 다른 방식의 화학물질이 필요해진다. 예를 들어 식물의 독소 인 니코틴(nicotine) 구조를 기반한 아세트아미프리드 (Acetamiprid)나 나이텐파이람(Nitenpyram), 그리고 완전히 다른 형태의 물질인 라이아노딘(Ryanodine) 등 이다. 하지만 계속해서 새로운 항생제로 세균과의 싸움을 이어가고 있지만, 세균도 더욱 강력해져 가듯 단순히 살포하는 방식의 살충제가 완전한 해결책이 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독이 된 혈액

‘오랫동안 심연을 들여다본다면, 심연 또한 너를 들여 다보게 된다.’ 프리드리히 니체(Friedrich Niezsche)가 <선악의 저 편>에서 남긴 문장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재미있게도 최근의 연구는 인간이 곧 살아있는 살충제가 되도록 만드는 방식에도 관심두고 있다. 독의 개발이 아닌 독 자체가 되는 셈이다. 4-하이드록시페닐피루브산 이산소화효소(HPPD)의 기능을 저해하는 니티시논(Nitisinone)이라는 유기 화합물은 살충제가 아닌 제초제 개발 과정에서 탄생한다. 제초제 역시 대부분 강한 독성을 갖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HPPD의 억제는 식물의 대사 과정에서 아미노산 중 하나인 타이로신(tyrosine, Tyr)의 대사를 억제한다. 만약 타이로신 대사가 억제되면 성장이 저해되고 비타민E의 결핍이 발생해 산화적 손상이 유발된다. 특히 엽록소를 보 호하는 카로티노이드 결핍이 발생해 엽록소가 파괴되어 시들게 되는데, 식물의 녹색을 만들어내는 색소인 만큼 잎의 형태는 유지되지만 하얗게 탈색되며 고사한다. 약과 독은 언제나 같은 본질이었다. 니티시논 역시 동물에게도 효소 기능 저해를 일으키는데 타이로신혈증 (Tyrosinemia)의 치료제로 사용되곤 한다. 육류나 유제품으로 흔히 섭취되는 타이로신을 제때 대사하지 못하면 간과 신장에 손상이 시작된다. 특히 타이로신혈증이 유전 질환인 경우 유용한 의약품으로 투여되었다. 재미있는 관점은 니티시논이 인간과 식물의 효소 활성 저해에 기여한다면 곤충을 비롯한 다른 생명체에게도 같은 영향을 이끌어내지 않을까 하는 호기심으로부터 시작된다. 말라리아를 유발하는 열대열원충을 퍼트리는 모기나 흡혈 곤충들 역시 혈액 소화를 위해서는 HPPD의 역할이 중요하다. 니티시논을 투여한 사람의 피를 먹은 모기는 타이로신 분해가 이루어질 수 없어 다양한 문제로 이어진다. 대표적으로 타이로신이 멜라닌 생성의 전구체 이기에 자외선에 의한 손상이나 병원체 감염이 증가해 보호 기능 상실로 모기가 죽게 되며, 도파민 합성의 전구체 이기도 하여 모기의 학습 능력과 혈액 흡수 행동 조절에 장애를 유발해 개체 생존률을 급감시킨다.
이처럼 한 종의 체내 환경이 다른 생물종에게 독성을 보이는 현상을 이종중독법(Xenointoxication)이라 부른다. 니시티논은 대표적인 인간-모기 간 이종중독 물질이며, 유사한 작용을 하는 항생제인 이버멕틴(Iver-mectin)은 혈액에 남아 모기, 파리, 벼룩 등의 흡혈 시 신경근 차단으로 사멸시킨다. 피프로닐(Fipronil)은 인간보다는 개나 고양이에게 사용되는 외부기생충 퇴치제로 역시나 흡혈 시 진드기나 벼룩을 죽게 만들며, 프라지콴텔(Praziquantel) 등 기생충약도 이종중독 효과를 이용한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혈액에 맹독을 주입하는 것으로 단순히 인간은 안전하지만 모든 해충이 박멸되는 것은 아니다. 이종중독 효과는 종에 따라 효과가 다르게 나타나 빈대는 제거하지만 이에게는 효과가 없기도 하고, 유충보다는 성충에게 뛰어난 효과를 보이는 등 아직 확인되어야 할 사항이 많다. 하지만 그럼에도 단순한 살충제의 분사가 아닌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적용 가능한 전략의 확보는 우리에게 많은 가능성과 선택지를 준다. 특히 화학 물 질이 매개체라면 화학자에게는 읽어본 적 없던 새로운 책 한 권이 주어진 것과 마찬가지 아닐까.

장홍제 Hongje Jang
• KAIST 화학과, 학사(2004.3 - 2008.2)
• KAIST 화학과, 박사(2008.3 - 2013.8, 지도교수 : 한상우)
• 서울대학교 화학과 박사후연구원(2013.9 - 2015.1, 지도교수 : 민달희)
• Georgia Institute of Technology, Department of Chemistry and Biochemistry 박사후연구원 (2015.1 - 2016.1, 지도교수 : Mostafa A. El-Sayed)
• 광운대학교 화학과 부교수(2016.3 - 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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