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과서 밖의 유기화학(2026년 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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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문을 파헤치는 방식은 다양하다. 대학교 공부와 같이 분야별로 한 과목씩 공부할 수도 있고, 시간과 역사의 흐름을 따라가며 선배 화학자들의 발자취를 연결하는 것도 흥미롭다. 하지만 오랜 공부는 우리를 지치게 만들며,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 공부량을 해치우느라 미처 이야기하지 못하고 남겨지는 흔적들이 아쉽다. 우리는 이를 일화나 야사로 표현한다. 확실한 것은 언제 들어도 흥미롭다는 것. 그리고 화학 반응의 명칭 하나에 남겨진 마지막 흔적이 생각보다 더 거대하다는 것. 마지막으로 천재적인 그들 역시 우리와 같은 사람이었다는 동질감과 위안으로 한 걸음 더 공부를 이어갈 자신감을 건네주기도 한다는 점이다.
러시아 근대 화학 황금기

흔히 러시아는 현대 과학의 최전선이라는 이미지보다는 불곰, 보드카, 그리고 추운 날씨 정도로 연상된다. 하지만 19세기 러시아 제국은 의외로 화학 분야에서는 격렬한 격전지 중 한 곳으로 치열한 학문적 발전과 위대한 화학자들이 즐비했다. 러시아 제국 화학 황금시대는 니콜라이 지닌(Nikolay Zinin)이라는 뛰어난 화학자이자 교육자로부터 뻗어 나간다. 지닌은 현대 실험실 체계의 선구자이자 화학사 전반에 큰 파급력을 만든 유스투스 폰 리비히(Justus von Liebig)의 제자였으며, 그로부터 배운 진보된 학술 시스템을 러시아에 도입한다.
지닌의 직접적인 제자는 아니지만 관련된 두 유명인을 나열한다면 먼저 다이너마이트의 발명가이자 노벨상과 재단의 설립자인 알프레드 노벨(Alfred Nobel)이 등장한다. 발명가 겸 사업가이자 화학자였던 노벨이 연구를 이어갈 수 있던 것은 화학 개인교습 선생님으로 존재했던 지닌의 역할이 있었음을 무시할 수 없다. 그리도 다른 인물은 화학 역사상 가장 대표적인 발명품으로 여겨지는 원소 주기율표의 드미트리 멘델레예프(Dmitri Mendeleev)다. 지닌은 멘델레예프의 멘토로서 조언을 아끼지 않았던 인물이었다고 알려져 있다.
물론 지닌에게도 학술적인 후계자들이 있었으며 가장 유명한 두 명을 꼽는다면 알레산드로 보로딘(Alexander Borodin)과 알레산드로 부틀레로프(Alexander But-lerov)를 이야기하겠다. 보로딘은 근대 화학계에서 흔치 않은 전문적인 다중 직업을 보유한 인물이었으며, 심지어 그 두 분야가 과학과 음악이다. 클래식 음악에 관심있는 사람이면 들어보았을 ‘중앙아시아의 초원에서(In the Steppes of Central Asia)’나 ‘이고르 공(Prince Igor)’, 현악사중주와 교향곡까지 보로딘의 유명한 작품이 있다. 국민악파의 러시아 5인조 중 한 명으로 음악가로의 업적도 뛰어나지만 화학자로서의 모습도 흥미롭다. 흔히 삼각 플라스크라 부르곤 하는 에를렌마이어 플라스크의 발명가 에밀 에를렌마이어(Emil Erlenmeyer) 밑에서 일하기 도 했으며 알돌 축합반응에 대한 연구로 알데하이드 간의 화학 반응 발견에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부틀레로프와 화학 구조론

본격적인 뒷 이야기는 지닌의 또 다른 제자였던 부틀레 로프를 통해 찾아갈 수 있다. 부틀레로프는 벤젠의 고리조를 제안한 아우구스트 케쿨레(August Kekulé), 탄소 의 4개 결합수를 제안하고 분자 구조를 원자들을 선으로 이어 연결하는 방식으로 처음 표현했던 아치볼드 스콧 쿠퍼(Archibald Scott Couper)와 함께 화학 구조론의 창시자로 여겨진다. 화학 구조(Chemical structure)라는 용어를 처음 만들어 이론을 정립했으며 유기 이성질체의 존재를 예측하고 실험적으로 합성해 증명하는 데까지 성공한다. 무엇보다 이중 결합을 두 개의 선으로 표현하는 방식을 이전까지의 구조식에 처음으로 도입해 불포화 화합물의 분자 구조 표현을 가능케 한 화학자이기도 하다. 이 발견들은 유기 화합물 구조의 끝없는 다양성과 가능성 을 설명하는 핵심일 수밖에 없다.
부틀레로프의 가장 번뜩이는 제안은 입체 화학에 대한 직감이라 생각한다. 1901년 첫 노벨 화학상을 수상한 야코뷔프 판트 호프(Jacobus van’t Hoff)는 탄소가 사면체 형태의 입체적인 결합을 이루는 구조임을 제안하기도 한다. 그리고 부틀레로프는 구체적인 연구와 제안이 이루어 지진 못했지만 이보다 10여 년 앞선 시점에 미지의 영역을 엿본 인물이었던 셈이다.
부틀레로프 역시 여러 제자들이 있었으나 그중 유기화학 교과서에서 일찌감치 만나게 되는 인물들, 심지어 ‘규칙’을 통해 중요성을 이해하고 수없이 이름을 되뇌이지만 정확히 누구인지 그 어떤 학부생도 기억하지 못하고 있을 두 명에 주목하려 한다. 바로 블라디미르 바실리예비치 마르코프니코프(Vladimir Vasilyevich Markovnikov), 그리고 알렉산드르 미하일로비치 자이체프(Alexander Mikhaylovich Zaytsev)다. 화학 구조론과 연관된 중요한 반응 결과물의 이해와 예측을 다루는 이 두 화학자의 규칙이 기억나지 않는다면 대부분의 유기화학 지식을 뇌에서 지워냈다는 심각한 문제일 정도로 중요한 두 내용이 동일하지만 반목하는 뿌리에서 기인했음은 흥미로운 관 점이다.
마르코프니코프 vs 자이체프
마르코프니코프와 자이체프는 모두 부틀레로프의 제자이지만 화학자를 꿈꾸지 않았다. 마르코프니코프는 1856년, 그리고 자이체프는 2년 후인 1858년 후배로 법학부 통상학과(Cameralwissenschaft)에 입학한다. 당시 러시아 교육은 전문 지식이 효율적 정부에 필요하다는 관점, 그리고 학업적이고 실용적인 교육의 목표는 절대주의 정부의 복잡한 요구를 처리할 수 있는 실용적 관리자여야 한다는 카메라리즘(Cameralism) 패러다임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그리고 그 결과는 법학 및 경제학과의 학생들은 학위 취득을 위해 의무적으로 2년간 화학 수업을 들어야만 한다는 방침이었다. 의무적인 교육 동안 부틀레로프를 만나면 이들의 길은 급변한다.
지도교수였던 부틀레로프가 탄소 이중결합에 대한 연구를 확립했던 만큼, 마르코프니코프는 탄소 이중결합을 보유한 화합물인 알켄(Alkene)이 할로젠화 수소 분자 등에 의한 첨가반응을 겪을 때 공통적으로 관찰되는 경향성을 실험적으로 추론한다. 교과서에서 <마르코프니코프 규칙>으로 배우는 내용으로, 요약한다면 수소 또는 전기양성 부분이 수소 치환기가 더 많은 탄소에 결합되고, 할라이드 또는 전기음성 부분은 알킬 치환기가 많은 탄소에 결합한 다는 내용이다.
자이체프의 연구는 유사하지만 다른 관점이다. 역시나 교과서에서 <자이체프 규칙>으로 배우는데 유기 화합물에서 할로젠화 수소 혹은 물과 같은 형태로 제거 반응이 이루어질 때 탄소 이중결합이 어느 위치에 형성되는 지를 추론한다. 이중결합에 연결된 탄소의 개수가 더 많은 분자가 만들어지길 선호하는데, 수소화열이 출발 알켄의 안정성과 반비례한다는 사실로부터 다양한 알켄의 수소화 열을 살펴보는 것으로 이론적 해석이 가능하다. 이러한 두규칙은 탄소 양이온의 존재, 전이 상태(Transition state)의 구조, 입체적인 조건과 제한에 의한 영향을 고려해 ‘반응 메커니즘’에 대한 이해가 비약적으로 발전하는 디딤돌 이 된다.

같은 스승을 둔 제자이자 선후배 관계로 둘은 긴밀한 우 정을 다졌을 것으로 생각되지면 현실은 정 반대였다. 깊 은 반감과 오랜 분화로 앙숙으로 알려져 있으며, 당시 유 기화학의 성지였던 카잔 제국 대학교에서의 활동 시기를 통해서도 체감할 수 있다. 먼저 부틀레로프는 1849년부 터 1868년까지 카잔 제국 대학교에서 교수로 활동한다. 그 기간 중인 1860년 마르코프니코프 역시 카잔 제국 대 학교에 교수로 임용되어 1871년까지 활동한 후 우크라이 나의 오데사 대학으로 옮겨가게 된다. 그리고 자이체프는 1869년 카잔 제국 대학교에 임용되어 1910년까지 무려 40년 이상을 몸담게 된다. 이들이 직장 동료로 함께한 1869~1871의 단 2년, 마르코프니코프는 자이체프와 마 주하는 것에 대한 견딜 수 없는 스트레스로 이직하게 되었다고 전해진다. 학위 심사나 평가에서도 노골적일 정도로 서로를 방해하고 충돌한 화학계에 길이 남을 앙숙이었다. 심지어 뒤늦게 만들어진 <자이체프 규칙>이 제거 반응을 대상으로 한 것은, 첨가 반응을 연구하던 마르코프니코프 와 그의 규칙이 너무나도 마음에 들지 않아 상극의 분야로 일부러 연구 주제를 정했다고까지 할 정도였다.
어찌됐던 이들의 대립과 경쟁은 현대 유기화학 특히 반응 메커니즘에 대한 이해와 화학 합성의 정밀도를 혁신적으로 발전시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음은 부인할 수 없다. 이 모든 이야기를 교과서에서는 결과와 원리에 입각 한 두 ‘규칙’만으로 10분 남짓한 시간 다루고 넘어가게 된 다. 위대한 발견과 발명이 있기까지의 흥미로운 이야기들 은 언제나 우리를 집중하게 한다. 다만 주어진 수업 시간이 한정적이며 가르치고 배워야 할 내용이 너무나도 많음이 아쉬울 뿐이다. 화학도 교양이 될 수 있으며 실용적 지식 외의 흥미를 불러일으킬 수 있음은 이 학문을 사랑하는 우리가 언제고 한 번은 진득히 고민해 봐야 할 부분이 아닐까.

장홍제 Hongje Jang
• KAIST 화학과, 학사(2004.3-2008.2)
• KAIST 화학과, 박사(2008.3-2013.8, 지도교수 : 한상우)
• 서울대학교 화학과 박사후 연구원(2013.9 - 2015.1, 지도교수 : 민달희)
• Georgia Institute of Technology, De-partment of Chemistry and Biochem-istry 박사후 연구원(2015.1-2016.1, 지도 교수 : Mostafa A. El-Sayed)
• 광운대학교 화학과 부교수(2016.3 -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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