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대 | 울산과학고등학교 화학교사, tjdeo5469@ushs.hs.kr
서 론
과학교육에서 불일치 상황이란 “학생들이 자신의 예상, 교과서 내용, 교사의 설명 등과 일치하지 않은 실험 결과를 직면한 상황”으로, 모든 탐구 과정에서 예상치 못하게 발 생할 수 있다.[참고문헌 1] 학교에서의 다양한 탐구 실험에서도 불일치 상황은 언제나 나타날 수 있지만, 이러한 불일치 상황에 대 한 교사의 대처나 인식은 부족한 편이다.
선행 연구 결과에 따르면, 예비 교사가 불일치 상황과 같이 증거와 이론이 일치하지 않는 상황을 직면했을 때, 증거와 이론의 조정 과정을 거치지 않는 경우의 빈도가 높았다는 연구 결과가 보고되었다.[참고문헌 2] 또한, 수업에서의 교사도 불일치 상황에 대하여 임기응변적인 대처를 하거나[참고문헌 3] 전통 주의적 인식론에 따라 관련 설명을 교사가 곧바로 제시함으로써 학생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기회를 줄인다[참고문헌 4]는 연구 결과가 보고되었다. 불일치 상황에서의 이러한 교사의 대 처는 과학적 실천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할 수 있으며[참고문헌 5], 구성주의적 관점에 따라 학생들 스스로 탐구와 논의를 통해 증거와 이론을 조정하는 과학적 실천을 수행할 필요가 있다.
이 글에서는 화학Ⅰ 교과서의 탐구 활동에 있는 ‘물질의 극성 확인하기’의 실험 중 하나인 ‘극성과 대전체’ 실험을 간단히 살펴보고, 해당 실험 결과에서 불일치 현상을 직면 한 학생들이 어떠한 반응을 보이는지 알아봄으로써 극성과 대전체 실험에서 나타나는 불일치 상황의 활용 가능성을 탐색하고자 하였다.
본 론
1. 극성과 대전체 실험
‘물질의 극성 확인하기’는 2015 개정 교육과정의 화학Ⅰ 교 과에 있는 탐구 활동 중 하나이며[참고문헌 6], 세 번째 단원인 ‘화학 결합과 분자의 세계’에 포함되어 있다. ‘물질의 극성 확인 하기’는 실험을 통해 극성 분자와 무극성 분자가 가지는 특 징을 확인하는 탐구 활동으로, 물질의 극성에 따른 용해성을 확인하는 실험과 극성 분자의 전기적 성질을 확인하는 실험으로 구성되어 있다. 극성 분자의 전기적 성질을 확인 하는 실험은 뷰렛으로 액체 상태의 극성 분자를 가늘게 흘려보내고, 액체 줄기에 대전체를 가까이 대어서 액체 줄 기가 대전체 방향으로 휘는 것을 관찰함으로써 극성 분자가 가지는 특징을 확인할 수 있다. 이 실험을 지칭하는 것이 ‘극성과 대전체’ 실험이고, 교과서마다 제시하는 실험명은 다양하며, 실험 준비물에서도 차이를 보인다.
1.1 교과서 비교
각 교과서에서 극성과 대전체 실험을 어떻게 제시하는지 알아보기 위해, 2015 개정 교육과정에 의해 개발된 5종의 화학Ⅰ교과서를 비교하였다[표 1].
비상교육 교과서는 ‘물질의 극성 확인하기’라는 탐구 활동 내에 ‘대전체를 가까이 했을 때의 변화’라는 이름으로 실험을 제시하였으며, 미래엔 교과서는 ‘물질의 극성 확인하기’라는 탐구 활동 내에‘극성 분자의 전기적 성질’이라는 이름으로 실험을 제시하였다. 천재교육의 교과서는 ‘물질의 극성 확인하기’, 동아출판의 교과서는 ‘물의 극성 확인 하기’, 금성출판사의 교과서는 ‘물과 헥세인의 성질‘이라는 이름으로 실험을 제시하였다.
비상교육, 미래엔, 동아출판의 교과서는 극성 분자인 물 로만 실험한다. 뷰렛으로 흘려보내는 물줄기에 대전체를 가져다 대어서 물줄기가 휘는 것을 관찰함으로써 극성 분자의 특징을 확인할 수 있다. 천재교육과 금성출판사의 교과서는 극성 분자와 무극성 분자로 실험한다. 액체 줄기에 대전체를 가져다 대었을 때 무극성 분자의 액체 줄기는 휘지 않지만 극성 분자의 액체 줄기는 휘는 것을 관찰함으로써 극성 분자의 특징을 확인할 수 있다. [자료 1]은 미래엔의 화학Ⅰ 교과서[참고문헌 9]에 실린 관련 탐구 실험 내용의 일부이다.
위의 실험을 통해 학생들은 극성 분자에 대전체를 가져다 대었을 때 극성 분자가 일정한 배열을 이루게 된다는 것을 알게 된다. 정전기적 인력에 의해 일정한 배열을 이루고 액체 줄기가 대전체 쪽으로 휘기 때문이다. [자료 2]는 미래엔의 화학Ⅰ 교과서[참고문헌 9]에 실린 탐구 활동 관련 설명 내용의 일부이다.
위의 내용에서는 (-)대전체를 가까이 가져다 대면 부분적인 양전하를 띤 수소 부분이 대전체 방향으로 배열되고, (+)대전체를 가까이 가져다 대면 부분적인 음전하를 띤 산소 부분이 대전체 방향으로 배열되기 때문에 극성 분자에 대전체를 가져다 대었을 때 극성 분자의 액체 줄기가 대전체 쪽으로 휜다고 설명한다. 즉, 극성 분자의 액체 줄기가 대전체에 의해 대전체 방향으로 휜다는 실험 결과를 통해 극성 분자는 외부 전하에 의해 일정한 방향으로 배열된다는 특징을 가진다는 것을 제시하고자 하였다.
1.2 불일치 상황
학생들은 극성 분자가 대전체에 끌린다는 것을 관찰함으로써, 대전체를 극성 분자에 가져다 대면 극성 분자가 일정 한 배열을 이룬다는 것을 알 수 있으며, 실험 결과와 극성 분자의 분자 구조를 바탕으로 극성 분자와 대전체 사이에 정전기적 인력이 발생하는 과정을 확인할 수 있다. 불일치 상황은 무극성 분자를 이용한 실험에서 발생할 수 있다. 천재 교육과 금성출판사의 교과서에서는 무극성 분자인 헥세인을 이용한 실험을 제시한다. 2015 개정 교육과정 화학Ⅰ의 수준에 따르면, 무극성 분자인 헥세인은 대전체에 의해 액 체 줄기가 휘지 않는다. 왜냐하면, 무극성 분자이므로 분자 구조에서 극이 비대칭적으로 치우쳐져 있지 않으며, 외부 전하에 의해 무극성 분자가 일정한 배열을 가지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2015 개정 교육과정 화학Ⅱ의 수준에 따르면, 무극성 분자인 헥세인도 대전체에 의해 액체 줄기가 휠 가능성이 존재한다. 왜냐하면, 2015 개정 교육과정 화학Ⅱ에서는 편극 현상을 학습하기 때문이다. 편극 현상이란 분자에서 전자구름이 일시적으로 한쪽으로 치우쳐서 부분적인 전하를 띠는 현상이다. 무극성 분자인 헥세인이라고 하더라도 액체 줄기에 대전체를 가까이 가져다 대면 편극 현상으로 인하여 대전체와의 정전기적 인력이 작용하여 액체 줄기가 휠 수 있다. 즉, 대전체에 의해 무극성 분자가 일정한 배열을 이루지는 않지만, 대전체에 의해 액체 줄기가 휠 수 있다.
직접 실험을 통해 대전체의 대전 정도를 강하게 하였을때, 무극성 분자인 헥세인이 대전체에 휘는 것을 확인하였으며, 극성 분자의 실험 결과와 무극성 분자의 실험 결과는 몇 가지 차이점을 보였다. 첫 번째 차이점은 대전체의 대전정도를 비슷하게 하고 가져다 대었을 때, 극성 분자의 액체 줄기는 매번 휘지만, 무극성 분자의 액체 줄기는 매번 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는 극성 분자는 분자 구조에 의해 극성 을 가지기 때문에 대전체를 가져다 댈 때마다 액체 줄기가 휘게 되지만, 무극성 분자의 경우 대전체에 의해 효과적으로 편극이 이루어진 후에 전기적 인력에 의해 액체 줄기가 휘게 되므로 대전체를 가져다 댈 때마다 액체 줄기가 휘지는 않는 것으로 보인다. 두 번째 차이점은 대전체의 대전 정도를 비슷하게 하고 가져다 대었을 때, 무극성 분자의 액체 줄기는 극성 분자에 비해 적게 휜다는 것이다. 이는 대 전체와의 정전기적 인력이 극성 분자가 무극성 분자보다 강하기 때문으로 보인다.
무극성 분자의 경우 액체 줄기가 매번 휘는 것도 아니며, 휘는 정도도 크지 않기 때문에 학생들이 무극성 분자가 대전체에 휘는 현상을 실험에서의 오차로 고려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이지만, 무극성 분자의 액체 줄기에 대전체를 가까이 가져다 대었을 때 극성 분자의 액체 줄기보다 많이 휘는 현상이 나타나기도 하므로 학생들에게 효과적으로 불일치 상황을 제시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학생들에게 이러 한 불일치 상황을 제시하고, 불일치 상황을 학생들이 직면 하였을 때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 알아봄으로써 ‘극성과 대 전체’ 실험에서 나타나는 불일치 상황의 활용 가능성을 탐색하고자 하였다.
2. 일반계 고등학교 학생들의 반응
광역시 소재의 일반계 고등학교 2학년 학생 27명을 대상으로 극성과 대전체 실험을 진행하였다. 학생들은 선택 과목으로 화학실험 수업을 선택한 학생들이고, 화학Ⅰ의 관련 내용을 이미 학습한 상태였으며, 27명의 학생은 5~6 명의 5개 모둠으로 편성되었다. 학생들은 2021년 9월에 2차시(고등학교 수업 시간 1차시 50분) 동안 관련 주제에 대해 주도적으로 실험하고 보고서를 작성하였고, 교사는 학생들의 실험 과정과 이에 따른 학생들의 반응을 관찰하 였다. 5개의 모둠 중 불일치 상황을 직면하지 못한 모둠은 2개 모둠, 불일치 상황을 직면하였지만, 이론과 증거의 조정 과정을 거치지 않고 불일치의 원인을 단순한 실험 오차로 판단한 모둠은 2개 모둠, 불일치 상황을 직면하고 이론과 증거의 조정 과정을 거친 모둠은 1개 모둠이었다.
2.1 이론과 증거의 조정 과정을 거치지 않은 경우
동일한 실험 과정을 거쳤음에도 불구하고 불일치 상황을 직면하지 못한 모둠의 학생들은 본인들이 진행하고 있는 실험을 단순한 확인 실험으로 생각하였으며, 적극적으로 실험에 임하기보다는 빠르게 실험을 끝내고자 하였다. 빠르게 대전체를 대전시키고 극성 분자와 무극성 분자에 대전체를 가져다 대었으며, 극성 분자는 대전체에 휘었지만, 무극성 분자는 대전체에 휘지 않았다.
무극성 분자인 헥세인이 대전체에 의해 휘게 되는 불일치 상황을 직면한 모둠 중에서 이론과 증거의 조정 과정을 거치지 않고 불일치의 원인을 단순한 실험 오차로 판단한 모둠의 학생들은 불일치 상황을 직면한 이후 교과서와 참고서를 검토하였다. 교과서의 내용과 실험 결과가 다름을 다시 한번 확인하고, 교과 지식을 바탕으로 불일치의 원인을 단순한 실험 오차로 판단하였다. 극성 분자인 물은 대전체를 가져다 댈 때마다 휘었지만, 무극성 분자인 헥세인은 대전제를 가져다 댈 때마다 항상 휘는 것은 아니며, 휘는 정도도 극성 분자에 비해 작다는 점을 근거로 불일치의 원인을 단순한 실험 오차로 판단하였다. 또한, 완전히 순수 한 헥세인을 사용하거나 완전히 일정하게 대전된 대전체를 사용한다면, 이론과 일치하는 실험 결과를 얻을 수 있을 것 으로 판단하였다.
2.2 이론과 증거의 조정 과정을 거친 경우
불일치 상황을 직면한 모둠 중에서 이론과 증거의 조정 과정을 거친 모둠의 학생들은 불일치 상황을 직면한 이후 이론과 증거의 조정 과정을 거치지 않은 학생들과 같이 교과서와 참고서를 검토하였다. 교과서의 내용과 실험 결과가 다름을 다시 한번 확인하고, 다른 무극성 분자에서도 동일한 불일치 상황이 나타나는지 확인하기 위해 추가적인 실험을 진행하였다. 학생들은 또 다른 무극성 분자인 벤젠을 이용하여 실험하였으며, 헥세인과 같이 대전체에 의해 휠 뿐만 아니라 극성 분자와 비슷한 정도로 많이 휘는 것을 관찰하였다. 이후 학생들은 교과서의 지식과 관찰 사실 간 의 차이를 조정하기 위해 인터넷을 통해 ‘무극성 분자의 정전기적 인력’과 관련된 자료를 조사하였다. 인터넷 조사 결과로부터 학생들은 무극성 분자의 액체 줄기에 대전체를 가져다 대었을 때 무극성 분자가 일정한 배열을 이루지는 않지만, 편극 현상에 의해 대전체 방향으로 끌릴 가능성이 있음을 확인하였다. 하지만, 인터넷 자료 조사를 통해 본인 들이 경험한 불일치 상황의 사례를 발견하지는 못했기 때문에, ‘교과서의 지식이 틀렸다’라고 판단하기보다는 ‘예외 상황이 존재할 수 있다’라고 판단하였으며, 만약 쌍극자 모 멘트의 합이 0에 가까운 헥세인이 아니라, 쌍극자 모멘트의 합이 완전히 0인 무극성 분자로 실험한다면, 교과서의 실험 상황과 일치하는 실험 결과를 얻을 수 있을 것으로 판단하였다.
위와 같은 결론을 도출하기 위해서는 쌍극자 모멘트의 합이 0인 벤젠이 대전체에 의해 액체 줄기가 휠 뿐만 아니라 극성 분자와 비슷한 수준으로 많이 휘는 이유를 설명했어야 했다. 따라서 학생들은 대전체에 의해 벤젠의 액체 줄기 가 휜 이유를 ‘무극성’에서 찾지 않고 ‘벤젠의 또 다른 특징’에서 찾기 시작하였다. 벤젠은 쌍극자 모멘트의 합이 0 인 무극성 분자이므로 전자 밀도가 대칭적으로 치우쳐져 있다. 학생들은 자료 조사를 통해 확인한 벤젠의 전자 밀도 그림에서 전자 밀도가 대칭적임에도 불구하고 그 치우침 정도가 크다는 것을 확인한 후, 이러한 큰 치우침으로 인해 벤젠이 대전체에 의해 많이 휜다고 판단하였다.
결 론
살펴본 바와 같이 극성과 대전체 실험은 간단한 실험이지만, 학생들이 불일치 상황을 직면할 수 있는 실험이다. 또한, 실험은 2015 개정 교육과정의 화학Ⅰ에 존재하는 실험이지만, 해당 실험의 불일치 상황을 설명할 수 있는 과학 지식은 2015 개정 교육과정의 화학Ⅱ에 포함되어 있다.
자신이 학습한 개념을 검토하고자 하는, 확인 실험의 목적으로 실험에 참여한 학생들은 불일치 상황을 경험하지 못하였다. 불일치 상황을 직면하였지만, 교과서의 지식을 근거로 실험 결과를 판단한 학생들은 이론과 증거의 조정 과정을 거치지 않았다. 불일치 상황을 직면한 이후, 추가적인 실험과 자료 조사를 진행한 학생들은 이론과 증거의 조정 과정을 거침으로써 교과서의 실험 상황에 예외가 존재할 수 있음을 판단하였다.
이를 통해 극성과 대전체 실험의 불일치 상황을 화학Ⅱ 교과 내용 중 하나인 ‘분자 간 상호작용’을 학습하는 과정에서 활용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극성 분자의 액체 줄 기가 대전체에 의해 대전체 방향으로 휜다는 것을 통해 화학Ⅰ의 학습 내용을 검토하는 과정을 거칠 수 있으며, 무극성 분자의 액체 줄기가 대전체에 의해 대전체 방향으로 휘지만, 그 모습이 극성 분자와 다르다는 점을 통해 무극성 분자의 특징에 대한 탐구로 이어질 수 있다. 극성 분자와 달리 무극성 분자는 쌍극자 모멘트의 합이 0에 가까워서 대전체에 의해 분자가 일정한 배열을 이루지 않으므로, 자연 스럽게 분자간 인력에 대한 탐구로 이어갈 수 있을 것이다. 물론, 해당 실험의 설계와 수행을 학습자 스스로 수행하는 학습자 중심의 탐구 실험을 진행해야 할 것이며, 탐구 활동의 시작점에서 학생들에게 문제 상황 혹은 갈등 상황을 제시함으로써 학생들이 실험에 적극적으로 임하게 할 수 있다면, 학생들 스스로 이론과 증거의 조정 과정을 거치는 탐구 활동을 수행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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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성 대 Park Seongdae
• 부산대학교 화학교육과, 학사(2014.3-2020.2)
• 부산대학교 과학교육과(화학교육학전공), 석사(2021.9-2024.2, 지도교수 : 남정희)
• 울산광역시 교육청 교사(2020.3-현재)
• 현재 울산과학고등학교 근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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